
정치적 격동·경제성장에 가려진 20세기 대중의 생활·미시史 탐색
소비의 한국사
김동주·김재원·박우현·이휘현·주동빈 지음 | 서해문집 | 320쪽 | 2만1000원
당시 사람들에겐 술, 곧 막걸리가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농사를 지으면서 야외 노동을 견디게 하는 ‘마시는 밥’이었다. 1960년대부터 술 빚는 데 양곡 사용을 제한하면서 막걸리의 시대는 저물고, 소주 소비량은 1965년 연간 7만kL에서 1970년대 말 50만kL로 폭증하며 주류계의 왕좌를 차지했다. 고도 성장기 고된 산업 역군이었던 한국인은 값싸게 마시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 이후 그 자리가 맥주로 넘어간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3저 호황과 중산층 대두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덜 취하면서 세련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가 된다.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4/09/28/ZTGYX4U54ND77KRZEQTM22X6JA/
2박 3일에 완성하는 부산 완전정복[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56] 피란수도 부산, 영도다리의 추억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입력 2026.06.24. 23:41업데이트 2026.06.25. 10:29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은 산비탈과 시장, 부두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고향과 가족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갔다. 당시 영도다리는 헤어지더라도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기약 없는 약속에 기대어 다리 주변에는 고향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 점괘로 가족의 생사를 묻는 사람, 부두와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이별의 아픔과 재회의 기쁨이 교차한 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새 출발의 희망을 다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전쟁기 피란 수도 부산의 1023일 동안 사람들이 겪었을 고충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한 적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생이별을 했을지, 낯선 타지에 몰려든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는지, 급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했을지, 목욕은, 밥벌이는. 비석 위에 지은 판잣집에서 가족을 돌보고, 소막사에 옹기종기 모여 버텨낸 피란의 흔적이 이 도시에는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도.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6/07/29/AFCB3E63FFBCTJ5UGBSCPJF2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