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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2 03:00

독일사 산책 책 사진

독일사 산책

닐 맥그리거 지음ㅣ김희주 옮김
옥당 | 584쪽ㅣ2만8000원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단일 국가로서의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강력한 왕권 국가의 기틀을 확립해 나갈 때 이 나라는 중세 대부분의 기간을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제후국과 공국, 주교령으로 나뉘어 살아왔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커다란 지붕 아래 있었을 뿐, 법률도 달랐고, 화폐도 제각각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분권(分權) 시스템은 유럽의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자유로운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다양한 주장을 담은 책을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이 독일에서 맨 먼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소리 높여 반박할 수 있었던 것도 독일이었기에 가능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2/2016031200065.html


** 책 속의 제주 [독일사 산책] KBS제주 220523방송

** [독일 역사 요약(Summary of German History)]외유내강의 나라! 독일 역사 15분 총정리 

신성로마제국 (Sacrum Romanum Imperium)

** 신성하지도, 로마적이지도, 제국이지도 않았던 신성로마제국?

** 유럽의 재앙, 독일의 트라우마 | 30년 전쟁 몰아보기

** 개신교 VS 로마 가톨릭, 대혼란의 종교 개혁. 유럽의 지도를 바꾼 30년 전쟁 | 벌거벗은세계사

**  30년 전쟁의 대반전, 분수령이 된 신의 한 수┃백전백패 무명 연합군은 어떻게 유럽 무적 군대를 전멸시켰을까? ┃강제혁신┃다큐프라임┃골라듄다큐

** 같은 독일인들끼리 왜 '굳이' 따로 살까?|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 

** 억지로 탄생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앙일보

[중앙일보루터 순례길, 500여년 전 중세로 시간여행

입력 2012.10.05 03:10 업데이트 2015.01.05 14:52 

 의도했든, 아니든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개인주의와 근대화의 씨앗을 뿌렸다. 2017년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을 촉발(1517년 10월31일)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해서 독일관광청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를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루터 10년’으로 정했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9497501

루터 종교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인쇄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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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보다 1000년 앞서 '인간 사냥'… 로마 제국을 부활시키다

조선일보
  •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7.01 03:14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8]
'새 사냥꾼' 하인리히제국의 길을 열다


중세 독일의 역사적 실체는 매우 복잡하다. 19세기에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주도 아래 '독일제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 중동부 유럽에는 크고 작은 정치 단위 수백 곳이 난립해 있었다. 예수가 생전에 신고 다니던 샌들을 보관하는 프륌 수도원공국(Fürstabtei Prüm) 같은 작은 나라부터 작센이나 바이에른 같은 대규모 공국까지 각국의 규모나 성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길을 연 하인리히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1/20200701000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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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과 美의 국민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선택했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벤저민 카터 헷 지음|이선주 옮김|

가장 선진적인 헌법으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초로 꼽히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왜 히틀러로 귀결됐는가. 제왕적 대통령의 욕망, 가치를 저버리고 세(勢) 불리기에만 여념 없었던 우파, 붕괴한 사법시스템이 낳은 참사였다고 미국 뉴욕시립대 역사학과 교수는 진단한다. 원제 ‘민주정의 죽음(The Death of Democracy)’이 드러내듯 이 책은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년) 민주주의 붕괴에 대한 사례 연구다. 저자는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종말은 갈수록 음모론과 비합리성에 치우치는 문화 속에서, 나치가 엘리트들의 복잡한 이기주의와 결합한 결과”라고 본다.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2/04/23/JB2ET4XECJCQPCSQDHURCE3IWA/

** (60분) '히틀러'의 어린시절부터 희대의 학살자가 되기까지 그 모든 것을 읽어드립니다|사피특강

** 독일은 왜 유대인을 주적으로 삼았을까? 최악의 학살자 히틀러의 모든 것|차이나는 클라스|JTBC 220703 방송


 국민일보   

[손에 잡히는 책] 수치스런 역사도 기념비 세우는 독일의 힘

독일사 산책/닐 맥그리거/옥당

입력 2016-03-11 04:02

안내자는 30년 가까이 영국 국립미술관과 대영박물관 관장을 지낸 닐 맥그리거다. 그는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보며 그 실마리를 발견한다. 수도 한복판에 수치스러운 역사를 담아 기념비를 세우는 나라는 독일뿐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추모비 외에도 뮌헨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당시 프랑스 편에 서서 같은 독일 민족을 공격했던 바이에른 군대의 배신을 담은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조차 분명히 밝히고 이를 단호히 질책하며 미래로 이끄는 자세야말로 독일이 다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물론 중책을 맡게 된 배경이다. 

출처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45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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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면벌부 비판으로 시작된 개혁, 근대 세계를 열다
입력 : 2017.01.19 03:11                             

[종교개혁 500주년]

교황청, 성당 증축하려 면벌부 팔자 루터가 반박문 발표해 개혁 시작
교황청 지배 벗어난 신교도 급증, 유럽 전체로 신교·구교 갈등 번져
30년 전쟁 후 종교의 자유 획득… 중세 막 내리고 근대가 시작됐어요

15~16세기 무렵 오랜 시간 막강한 힘을 휘두른 교회와 성직자들이 부패하면서 부정 축재를 일삼고 황제·군주와 결탁해 농민들을 착취하는 일이 흔해졌어요. 그러자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났답니다. 법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부가 된 루터도 그중 하나였지요. 당시 교황청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고자 사람들에게 면벌부(2003년 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면죄부'가 '면벌부'로 바뀜)를 팔았어요. "면벌부를 산 사람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는 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며 신도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인 것이죠. 보다 못한 루터는 면벌부를 파는 교황청과 로마가톨릭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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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8] 독일 베를린 한복판 우뚝 선 프랑스 교회… "관용을 베풀라" 하네

조선일보
  • 베를린=송동훈 문명탐험가
  •     
    입력 2018.07.05 03:00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교회


    이때 브란덴부르크의 군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1620 ~1688년)이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이미 '대선제후(Great Elector)'라 불린 위대한 리더였다. 낭트의 칙령 폐지로 프랑스에서 내쫓기기 시작한 위그노들은 보잘것없는 난민이 아니라 유럽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었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척박한 나라 브란덴부르크의 군주로, 평생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꿈을 품고 질주했던 대선제후에게 이들은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했다. 그는 위그노들에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제도적, 물질적 특혜를 제공했다. 예배를 프랑스어로 드릴 수 있는 권리와 위그노만의 교회 설립까지 약속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5/2018070500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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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도시들이 일어설 때, 한양은 술로 흥청댔네

     

  •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 입력 2018.06.16 03:03

    한국 18세기학회 소속 25인 학자, 18세기 세계 각국 도시 풍경 담아

    18세기 도시|정병설·김수영·주경철 등 지음|문학동네|372쪽|2만2000원

    브란덴부르크 공국(公國)의 작은 수도였던 베를린은 1701년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초대 왕으로 즉위해 왕국 수도로 선포하면서 유럽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우뚝 섰다. 베를린의 약진엔 선진 기술을 지닌 외국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프로이센 제왕들의 노력이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공국 말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공은 프랑스가 신교도 위그노들을 탄압하자 그들에게 특별 대우를 약속하는 칙령을 반포하며 이민자 유치에 나섰다. 염색·섬유 분야 수공업자였던 위그노들을 불러들인 선택은 베를린을 유럽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게다가 위그노가 들여온 커피와 정원 문화 덕에 베를린은 '북쪽의 아테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5/2018061503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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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 도시화의 시작 18세기… 인문학자의 발걸음으로 가보다

                               

  • 김민정 객원기자
  • 입력 2018.06.25 03:00

    18세기의 도시 정병설 외 25명 |문학동네

    문화와 예술이 융성하고 축제와 여흥도 발달했던 당시 영국 귀족들은 고대 스파 도시 바스의 펌프 룸에 모여 온천수를 마시고 사교계 활동을 했다. 바스에는 사교계의 주인으로 불리던 '보(Beau, 멋쟁이) 내시(Nash)'가 있었는데, 그는 1704년부터 약 반세기 동안 바스 사교계의 주인 격인 '마스터 오브 세레머니(Master of Ceremonies)'로 활약하면서 스스로를 '바스의 왕'이라 칭했다. 당시 서울은 소설에 푹 빠져 있기도 했다. 규방 처자들은 물론 임금과 비빈까지 소설에 재미를 붙여 책을 빌려주는 산업이 발달했다.

     출처 :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3부 거대한 전쟁의 서막 프로이센의 등장.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4부 프로이센의 군사 개혁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5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I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6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II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7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III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8부 18세기 유럽전쟁 프랑스군 VS 국본군

    ** [토크멘터리 전쟁史] 159부 18세기 유럽 전쟁 플랑드르 전선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0부 18세기 유럽전쟁 프로이센VS오스트리아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1부 18세기의 세계대전, 7년전쟁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2부 18세기 세계대전의 서막 비긴즈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3부 근세 전쟁사 7년 전쟁I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4부 근세 전쟁사 7년 전쟁 II 

    ** [토크멘터리 전쟁史] 165부 근세 전쟁사 7년 전쟁 III



    ChosunBiz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미니정보: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조선비즈
  •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 입력 2019.01.15 00:00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 8.14~1740.5.31)는 1713년부터 1740년까지 프로이센의 2대 국왕으로 재임했다. ‘군인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독일인의 특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강한 책임감, 정확성, 행정 규정의 엄격한 준수를 든다. 이러한 특성은 프로이센 시대의 관료제와 상비군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료제와 상비군 제도는 프로이센을 강하게 만든 2대 요소다. 이 제도를 정착시킨 사람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이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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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리더가 개인 성향을 고집할 때 공동체는 난파한다

    조선일보
    •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8.09.04 03:13

    로마 누마, 獨 프리드리히 2세… 개인적 성품·취향 한계 넘어서 공적 역할과 책무 성공적 수행
    宋나라 양공 같은 리더는 개인 도덕률에 빠져 본분 잊고 조직을 파탄·혼란에 빠뜨려 

    현대 독일의 시발점이 된 원형(原型)은 동유럽 변방에 있던 프로이센 공국이다. 프로이센을 국가로 도약시킨 주인공은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인데 그는 왕자 시절 국정(國政)에는 관심 없고 예술과 철학에 빠진 감수성 풍부한 문학청년이었다. 엄격한 부왕(父王)이 군대식 규율과 가혹한 훈련을 강요하는 걸 견디다 못해 해외 도피를 감행했다가 실패했다. 자신은 유폐되고 동행한 친구는 참수형을 당했다. 이런 고난은 역설적으로 그가 주어진 운명을 깊이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34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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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9] 독일 상수시 궁전에서만큼은 근심은 내려놓으세요

    조선일보
    • 베를린·포츠담=송동훈 문명탐험가
    입력 2018.07.19 03:00 | 수정 2018.08.09 03:08

    大王으로 불린 프리드리히 2세와 그의 안식처


    요충지 슐레지엔 확보해 强國으로

    프리드리히가 왕위에 오른 그해 10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인 카를 6세가 죽었다. 남자 상속인이 없었기 때문에 대공녀 마리아 테레지아(Theresia·재위 1740~1780)가 영지와 작위, 권리를 모두 상속받았다. 500년 합스부르크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탁월한 전략적 안목의 소유자였던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의 국제적 지위를 바꿔놓을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토 가운데 가장 산업이 발달하고 부유하며 전략적 요충지인 슐레지엔을 노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19/2018071900011.html


    chosun.com

    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모두가 마다한 황제, 제후들이 선거로 뽑았어요

    입력 : 2017.05.11 03:08             

    [대공위(大空位)시대]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병으로 사망… 이후 20년 가까이 황제 자리 비어
    "새 황제 빨리 뽑아라" 교황 통보에 선거권 가진 제후들이 회의 열어 합스부르크 가문 루돌프 1세 선출

    ◇신성로마제국의 기원

    고대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무너진 뒤 서유럽은 오랫동안 분열의 시대를 보냈습니다. 7~8세기에는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서유럽 세계를 공격했고요. 이런 위기 상황에서 프랑크 왕국의 유능한 신하였던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냈어요. 서유럽 세계의 영웅이 된 카롤루스 마르텔은 프랑크 왕국의 실권을 차지하게 되었지요. 나아가 카롤루스 마르텔의 권력을 이어받은 아들 피핀은 강제로 왕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답니다.
    피핀에 이어 왕이 된 카롤루스 대제(742~814년)의 활약으로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어요. 그러자 교황은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제국의 후계자'이자 '로마제국의 황제'로 지목하였습니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난 뒤 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들에 의해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노르만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로마의 황제'를 계승할 사람도 사라졌어요.

    출처: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0/20170510000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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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15] 보이시나요, 이 동화같은 도시의 세 남자 꿈이

    조선일보
    • 인스브루크=송동훈 문명탐험가

    입력 2018.10.18 03:01 | 수정 2018.11.01 03:37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가면 세 개의 꿈을 기억하세요

    '합스부르크(Habsburg).'

    1493년 오랜 기다림 끝에 가문을 일으켜 세울 사람이 나타났다.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Ⅰ·재위 1493~1519). 그는 허울뿐이던 황제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들 터였다. 그런데 그의 주무대는 빈이 아니었다. 알프스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도시 인스브루르크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8/2018101800070.html


    동아일보

    승리의 진짜 요인[임용한의 전쟁사]〈190〉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12-07 03:00수정 2021-12-07 03:00

    유럽의 근대사, 세력지도를 바꾼 전쟁이 보오전쟁(1866년)과 보불전쟁(1870∼1871년)이다. 프로이센이 강국으로 떠오르고 독일 통일을 목전에 두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방해를 시도했다.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이어 프랑스까지 격파했다. 유럽의 강자가 바뀌었고, 프로이센은 거침없이 내달려 독일 통일을 완성함으로써 더 강한 국가가 되었다.

    출처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1206/1106508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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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사]

    거함거포 시대의 짧고 굵었던 대해전

    유틀란트 해전 [1]     

    덕분에 188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 독일은 본토의 산업 생산량만 놓고 보면 어느덧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1888년, 온건한 자유주의자인 2대 카이저(Kaiser) 프리드리히 3세(Frederick III)가 재위 99일 만에 급서하고, 아들 빌헬름 2세(Wilhelm II)가 새롭게 보위에 오르자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불과 29살에 황제가 된 그는 아버지와 달리 상당히 야심만만하고 군국주의적인 인물이었다.


    chosun.com

    미디어로 정치 선동… 지식인들이 좌파 권력에 순종하게 만들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5] 좌파 프로파간다의 선구자, 빌리 뮌첸베르크(1889~1940)

    독일의 빌리 뮌첸베르크(Willi Münzenberg·1889~1940)는 오늘날에는 거의 잊힌 인물이지만 전간기(戰間期·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거대한 좌파 미디어 조직가였고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의 귀재였다. 최근 한 역사가는 그에게 ‘마르크시스트 루퍼트 머독’이라는 별명을 부여했다. 그는 정치 프로파간다를 위해 신문, 잡지, 영화, 연극 등 각종 미디어를 종합적으로 사용한 최초 인물이며, 많은 지식인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도록 유도했다. 그가 나치의 프로파간다 전문가 괴벨스보다 한 수 위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5/10/7FLWRAOJVBGEZGTLOABUBFO4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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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13] 왕과 城의 아이러니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

    업데이트 2025.12.29. 23:47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는 1864년, 열아홉 나이에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독일 지역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되면서 바이에른은 자율성을 잃고 왕의 지위 또한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됐다. 루트비히 2세가 중세 기사의 전설을 주제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된 건 필연이었다. 백조가 끄는 배를 타고 나타나 공주를 구하는 신비로운 기사 로엔그린은 자기 정체를 밝혀야 하는 순간에 멀리 떠나야 했다. 죄를 뉘우쳤지만, 오직 죽은 다음에서야 구원을 받은 기사 탄호이저의 절망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사라져 가는 바이에른 왕국을 위한 애가(哀歌)와도 같았을 것이다.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2/29/LJCRWOAOVBDORLOBFDLDD7JC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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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 도시화의 시작 18세기… 인문학자의 발걸음으로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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