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집회서 – 율법과 지혜의 조합
지혜문학의 마지막 작품은 집회서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모임에서 낭독된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기억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집회서는 다른 책들과 달리 장, 절의 표기가 없는 머리글이 본문 앞에 위치합니다. 머리글은 집회서를 누가 기록하였는지 알려주며, 이 책이 무엇을 위해서 쓰였는가 하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머리글에 따르면 원래는 히브리어로 쓰인 책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자신을 ‘예수’라는 인물의 손자로 밝힙니다. 아울러 집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는 ...”(집회 50,27).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을 히브리 전통을 살려서 벤 시라(시라의 아들이라는 히브리어입니다)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라틴말 성경은 이 책을 ‘교회(모임)의 책’이라는 의미에서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라고 불렀고, 우리는 라틴어 전통에 따라서 이 책을 ‘집회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집회서의 원문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어 본문이 쓰인 시기는 기원전 190~180년경으로 추정되고, 예수의 손자인 벤 시라가 그리스어 번역본을 완성한 것이 기원전 140~13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지혜문학의 시대적 배경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집회서가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이 책의 집필 목적을 “이국땅에 살면서 배우기를 즐기고, 율법에 맞는 생활 습관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 책을 펴냅니다.”(머리글 35절)라고 밝힙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방 문명의 영향권 아래서, 동시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약속의 땅이 아닌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쓰인 책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조상들에게 전수된 율법의 가르침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다시금 주님의 가르침 율법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기록된 책이 바로 집회서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인간의 지혜로 세상과 사물의 이치 파악을 추구했던 시대가 바로 헬레니즘 시대였습니다. 지혜서는 바로 인간의 지혜로 도달할 수 없는 그 영역을 하느님의 영역으로 규정함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집회서도 기울였습니다. 하4지만, 집회서와 지혜서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와 율법의 조화’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계약의 글이고 야곱의 회중의 상속 재산으로 모세가 우리에게 제정해 준 율법이다.”(집회 24,23).
이처럼 집회서는 유다인의 문화와 종교가 이방 민족의 그것과 만나면서 하느님의 가르침이 잊혀 가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유다 정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하느님의 계약, 바로 율법이라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헬레니즘 문화가 인간 이성을 활용한 지혜를 강조하고 그러한 사조가 유행을 타고, 더 가치 있어 보이지만,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인은 율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지혜의 출발점,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었습니다. 인간의 사고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 그것이 바로 지혜였습니다. 그런 지혜를 집회서의 저자는 율법과 동일시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 그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그러므로 집회서가 이야기하는 지혜는 하느님 경외를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고, 완성이며, 동시에 모든 토대입니다(1,11-21; 2,1-18; 10,22; 34,14-20; 40,26-27; 50,27-29). 지혜는 그렇게 하느님 경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올바른 지혜는 하느님의 계시를 해석하는 원리요 기준이 됩니다. 진정한 지혜. 그것은 유식함을 뽐내는 지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집회서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참된 지혜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있고, 그분의 말씀, 그분의 가르침, 율법에 귀를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지니고 살아갔던 인물들이 바로 신앙의 선조들이고, 그러한 이유로 집회서의 마무리는 그 위대한 인물에 대한 칭송으로 이뤄집니다(집회 44-50장).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12호 2020.4.12.
[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예언서 – 심판과 구원의 드라마
이제 구약성경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예언서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시작하여 말라키 예언서가 예언서 부분에 속하면서 구약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예언서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과 우리가 사용하는 가톨릭 성경은 차이가 있습니다. 정경 목록을 언급할 때, 한 번 이 차이점을 언급하였지만, 짧게 다시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예언서는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 하권까지를 전기 예언서로, 세 권의 대 예언서와 열두 권의 소 예언서를 후기 예언서로 바라보면서 전기와 후기 예언서 모두를 예언서라고 분류합니다. 하지만, 가톨릭의 정경 목록은 예언서를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예언서라고 지칭하는 책은 히브리어 성경의 후기 예언서에 속하는 작품을 예언서로 바라봅니다.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 열왕기 상하)를 제외한 세 권의 대 예언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와 열두 권의 소 예언서(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만을 예언서라고 분류합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히브리어 성경에서 성문서에 속하는 애가와 다니엘서와 칠십인역 성경에만 들어가 있는 바룩서가 예언서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우리 성경에서 예언서는 열여덟 권의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앞에 다가올 일들을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의 “예언(豫言)”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미리 예언된 말씀-임마누엘 탄생 예고(이사 7,14), 고난받는 종의 노래(이사 42,1-7; 49,1-7; 50,4-11; 52,13-53,12)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기에 예언서(豫言書)라는 명칭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거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사람에게 맡기셨다는 ‘예언(預言)’의 의미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의미 속에서 예언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언서에는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에게,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전달됩니다. 백성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주님 보시기에 거스르는 짓을 저지르면 심판과 고발의 말씀을, 백성이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위로와 구원의 말씀이 전달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를 우리는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 안에서 많은 이들이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언자들은 모세, 엘리야, 엘리사, 나탄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서, 엘리야서, 엘리사서, 나탄서라는 예언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언자로 활동은 하였지만, 자신이 선포한 내용을 따로 기록하여 예언서의 형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자를 ‘활동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언서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선포 내용과 활약을 남겨 놓은 예언자들을 ‘저술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저술 예언자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술 예언자들의 활동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활동 시기의 기준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를 삼습니다. 그러므로 유배를 중심으로 전·중·후로 예언서를 분류하고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언서들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예언하였을 뿐 아니라, 예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유배 시기 이전과, 유배 중, 그리고 유배 이후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이사야 예언서를 간략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예언서를 만나는 가운데 우리에게 구원과 희망의 말씀도 듣게 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경고 말씀을 듣게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아서 심판을 면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닮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회심의 기회로 삼는다면, 그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13호 202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