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병력 동원에만 1년···우리가 몰랐던 정유재란

정원식 기

이 같은 내용은 형개가 정유재란을 수행하면서 작성한 공문서들을 모아 1601년 발간한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에 실려 있다. <경략어왜주의>는 정유재란 당시 명군의 대응, 병력과 물자 조달, 전황, 논공행상을 둘러싼 명군 내부의 갈등, 전후 처리 과정 등을 명나라의 시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다.

구범진, 김창수, 박민수, 이재경, 정동훈 등 한중관계사료연구팀 학자들이 이를 번역하고 주석을 덧붙인 역주서 <명나라의 정유전쟁>(사회평론 아카데미)이 최근 출간됐다. 총 4권으로 이뤄진 <명나라의 정유전쟁>은 국립진주박물관이 2017년부터 추진 중인 ‘임진왜란자료 국역사업’의 세 번째 성과물이다. <경략어왜주의>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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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은 1597년(선조 30)에 일본이 재침략하면서 발생하였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1592∼1598)에 정유재란(1597∼1598)을 포함한다. 그러나 정유재란 명칭 자체는 정유년(1597, 선조 30)에 발생한 일본의 재침략을 일컬을 뿐 아니라 전쟁의 성격도 다르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명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의 길을 빌려달라)’ 요구에 의해 전쟁이 발생함으로써 북진을 위한 전투들이 발생하였다. 그에 비해 정유재란 때 일본은 조선 영토 장악에 주력하며 가혹한 공격을 이어갔다. 그나마 조선은 나름 전력을 보강한 상태에서 정유재란에 임하였고, 명량해전의 승리를 계기로 전세를 역전하였다. 정유재란은 1598년(선조 31)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죽음을 계기로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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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해귀' 흑인용병, 임진왜란에 참전하다


“명나라 장군 유정이 수 십 종류의 해귀(海鬼)를 이끌고 나왔다고 한다. ~얼굴이 새까만 것이 귀신처럼 생겼고 바다 밑으로 헤엄을 잘 쳤으며, 그 중에 키가 거의 두 길 정도나 되는 거인(巨人)이 수레를 타고 오기도 했다. ~유정은 경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다. 왜 해귀(海鬼)를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왜선의 밑을 뚫어 침몰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성호사설> 23권 ‘경사문·유정동정’)



중앙일보      
[픽댓]"곱슬에 온몸 검다"…임진왜란 당시 '흑인 용병' 정체
중앙일보
입력 2020.06.21 16:00

업데이트 2020.06.21 16:15

유성운 기자 
김태호 기자 

당시 인도에는 고아(Goa) 등 포르투갈이 지배하는 상업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또, 인도에 오는 흑인들은 상당수가 군인으로 충원됐습니다. 이들을 합쉬(Habshi)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에 왔던 흑인 병사도 동아프리카에서 인도, 마카오를 거쳐 명나라 군대에 채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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