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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61] 보길도 윤선도 원림에 가요

윤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업데이트 2026.09.03. 10:54

고산은 병자호란을 계기로 보길도에 들어왔다. 왕자의 사부였던 그는 왕자를 보위하러 강화도로 향하다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배를 탐라로 돌렸다.

울분을 품고 남쪽으로 항해하던 중 보길도를 만났다. 풍수에 밝았던 고산에게 봉우리가 둘러선 특별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연꽃이 핀 듯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하고는 좋은 자리를 골라 거처인 낙서재를 지었다. 맞은편에는 산자락 돌이 석실처럼 이뤄진 곳에 정자를 지었다. 이곳을 동천석실이라 한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세연정이란 정자를 만들어 그만의 낙원에서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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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신문

불운한 정치가, 조선의 으뜸시인 윤선도 2007-07-27 해남신문

선조 대에 훈구파와 치열한 대결을 벌여 권력의 주도권을 쥐게 된 사림파 지식인들은 사림 내부의 각 분파들이 권력 배분을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게 되면서 서인과 동인으로 갈리게 된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수습하면서 서인(西人)의 영수가 된 송강 정철은 동인 세력을 철저하게 밟아버린 뒤, 다음해에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591년 동인인 영의정 이산해가 계략을 부려 정철이 광해군 책봉 건의를 하도록 해놓고, 그 문제를 탄핵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인은 탄핵의 정도를 놓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나뉜다. 유성룡을 필두로 한 남인은 한 때 정권을 장악하였지만, 1602년에 정인홍의 탄핵을 받아 실각하면서 북인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리고 북인은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을 즉위시킨다. 학풍과 정치 노선에 따라 당쟁이 격화되던 시대였다. 남인 계열에 속했던 윤선도 또한 그런 세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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