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사관은 이제 청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공간이었다. 이항억의 <연행일기> 이후 연행록에서는 ‘아라사관’ 혹은 러시아 공사관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당을 더는 갈 수 없던 것과 비슷하다.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구미 국가들이 청과 조약을 체결하고 북경에 공사관을 세웠다. 북경 내 서양을 대표하는 공간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조선 사신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