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국의 강력한 부활을 꿈꾼 파라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2년 히타이트 정복에 나섰어요. 히타이트는 현재 튀르키예 자리에 있었던 국가입니다. 양측 군대는 카데시(현 시리아 지역) 근처에서 마주했어요. 람세스 2세는 거짓 정보에 넘어가 포위돼 큰 위험에 빠졌지만 곧 탈출에 성공합니다. 카데시 전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기록했기에 승패를 확실히 알 순 없어요. 다만 현대 학자들은 히타이트가 우세했던 것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전투가 일어난 지 약 15년 후 두 국가 사이 평화 조약이 맺어지는데요.
내전 격렬했던 시리아판 '킬링 필드'… 삶과 웃음 피어나기 시작했다
인구 약 400만명의 알레포는 고대부터 번성했던 시리아 제2의 도시다.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의 몰락을 이끈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근거지였고, 2011년부터 13년간 계속된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장악한 반군, 다마스쿠스로 진격하는 반군을 막으려는 정부군, 정부군을 도와 참전한 러시아군,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까지 뒤엉켜 ‘킬링필드’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수없는 살상이 되풀이됐다.
세계 각지에 시리아 난민들… 중동 400만명, 유럽 150만명, 한국에도 1300명
세 살 난민 쿠르디로 전세계 주목
"집·학교·병원 모든 게 사라졌다"
내전 끝나도 귀국 속도 더디기만
김영우 기자 업데이트 2026.07.29. 09:51
시리아 난민 문제는 2015년 9월 튀르키예 남서부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짜리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주목받았다. 시리아 북부 소도시 코바니 출신인 쿠르디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튀르키예로 탈출한 뒤,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려다 배가 난파해 엄마·형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2일 터키 남서부 해변에 시리아 난민인 세 살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엎어져 있다. 2일 터키 남서부 해변에 시리아 난민인 세 살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엎어져 있다. 터키 해안 경찰은 이날“쿠르디와 그의 부모 등 시리아인 23명이 탄 난민선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코스섬으로 가려다 전복돼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쿠르디의 소식이 전해진 뒤 유럽에서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3000㎞ 떨어진 우간다에 네타냐후 형 동상 세운 이유는?
엔테베 작전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민기 기자 입력 2026.08.12. 00:40 업데이트 2026.08.12. 09:18
. 1917년,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재건하는 걸 지원하겠다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 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늘어났어요.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에 반발했지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 선언을 하자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아랍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넓히려 했습니다. 1957년 이스라엘은 가나의 독립을 인정했고 1958년에는 신흥 독립 아프리카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제협력단’을 설립했습니다.
1962년 우간다는 오랫동안 영국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는데요. 이스라엘은 우간다가 독립하자마자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