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5/06/04/WLJ5PJ7IBNGOLJH7S2NUGRLZI4/
- 송필경
- 승인 2025.03.28 16:56
1894년 9월 프랑스 참모본부 정보국 요원이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문서에서 프랑스의 기밀을 독일로 빼돌리는 간첩이 프랑스 참모본부에 있다는 게 드러났다.
정보국에 근무하는 ‘에스테라지’라는 프랑스 장교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돈이 필요해 독일에 정보를 팔아먹다 꼬리가 잡힌다. 에스테라지는 정보국 내 장교 앙리 중령과 공모해 문제의 문서필체를 유대인 장교의 필체로 둔갑시킨다.
범인으로 내몰린 사람은 육군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였다.
출처 : https://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7922
"유대인을 죽여라!" 프랑스 폭민(暴民)은 나치 돌격대의 예고편이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7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⑥
드디어 드레퓌스가 군사법정에 섰습니다. 재판은 완전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적에게 국경을 열어 독일 황제를 노트르담 성당까지 안내한 반역자라도 이보다 더 쉬쉬하며 재판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기소장인지요! 이런 기소장으로 한 인간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그야말로 불의의 극치입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기소장을 읽고 저 '악마의 섬'에 갇혀 말도 안 되는 속죄를 강요당하고 있는 한 인간(드레퓌스)을 생각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반항의 외침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장담합니다](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책세상, 2005, 93-94쪽).
출처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71916240915945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

[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드레퓌스’, 혁명과 진실 그리고 정의
- 김민웅
- 등록 2022.04.11 06:00:00
이 모든 사태는 귀족 출신 프랑스 장교 에스테라지(Esterhazy)가 자신의 곤궁한 경제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 첩자가 되기를 원해 독일 대사관에 근무하는 정보책임자 슈바르츠코펜(Schwartzkoppen) 대령을 찾아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94년 7월이었다.
에스테라지가 쓴 명세서는 정보담당 부서 제2국에서 검토되는 중에 ‘무뢰한 D’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D로 시작되는 이름의 드레퓌스가 진범으로 지목되는 근거로 만들어진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은 반 유대주의로 희생양을 찾는 프랑스의 당시 분위기상 범죄 입증에 편리한 조건이었고 전문 필적 검사까지 마치면서 ‘확정’으로 결론이 난다. 그러나 이 필적 조사라는 것은 모두 엉터리였다. 전문가들의 사기행위였다는 것은 나중에 죄다 드러난다.
출처 :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96331
40년 간 파리 떠돈 드레퓌스 동상, 佛 최고법원 앞으로
무죄 판결 120년 만에 제자리 찾아
99세 손자·마크롱 등 참석 제막식
최하연 기자 입력 2026.07.14. 00:45 업데이트 2026.07.14. 12:47
높이 3.5m의 드레퓌스의 동상은 지난 40여 년간 파리 곳곳을 떠돌았다. 1985년 제작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드레퓌스가 군적을 박탈당했던 ‘에콜 밀리테르(군사학교)’ 안뜰에 동상을 세우려 했지만 군 수뇌부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군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의 동상을 군사 시설 한복판에 세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동상은 루브르박물관 옆 튈르리 공원에 임시로 세워졌다가, 1994년 드레퓌스가 수감됐던 감옥 인근 ‘피에르 라퓌 광장’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동상은 반유대주의 세력 등에 의해 붉은 페인트 테러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europe/2026/07/14/LYQ6YOVTRRCM5NEG2GJC2SKI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