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에서 훔쳐온 고려 불상
양국의 갈등 키울 악재였지만
오히려 협력의 계기로 승화해
몽유도원도 다시 볼 계기 되길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6.06.01. 23:39
업데이트 2026.06.02. 06:44


[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19) 갓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 입력 2026.06.06. 00:30
‘갓’은 순우리말로, 한자로는 ‘립(笠)’이라 쓴다. 넓은 의미에서 갓은 여러 종류의 모자를 포괄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착용한 검은색의 흑립(黑笠)을 가리킨다. 흑립은 죽사(竹絲), 말총, 견사(絹紗) 등의 재료로 만들고 먹칠, 옻칠을 더해 완성한다. 흑립은 바로 눈에 띄는 외양은 아니지만, 간결한 기하학적 형태와 섬세한 엮음이 만들어낸 반투명의 색과 은은한 결은 볼수록 기품과 멋이 느껴진다.
출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6/06/TUCOO4SJDBGXPHUQALHWI5CVRY/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6/06/01/ZR6LUELKN5B6VNE545U2G6WBHU/
| 입력 : 2023.07.27 03:30 | |
| 조선 후기 불교 건축 |
괘불: 조선 불교의 '재미'
도시가 아니라 깊은 산속에 지은 불교 사찰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규모 야외 법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영산재’, 육지와 물에서 죽은 모든 중생을 위로하는 ‘수륙재’, 생전에 지은 업보를 미리 닦는다는 ‘예수재’ 같은 것이 대표적인 법회죠. 많은 사람들이 절 건물 안에 다 들어갈 수 없어서 절 마당에 불단(부처를 모셔 놓은 단)을 차리는데 이를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때 내건 부처님 그림이 괘불이었던 것입니다
| 미륵의 꿈 아전의 꿈(단편소설) | 황태영 |
동서양의 미학이 교차하며 빚어낸 아름다움
[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14) 간다라 보살상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입력 2026.03.14. 00:30
업데이트 2026.03.16. 10:10
이 보살상은 간다라 불교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간다라는 간다리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의 서북 지역에 위치하며, 현재 영토로는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 걸쳐 있다.
현시점에서 보면 2000년에 걸쳐 이어진 불상의 전통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기원후 1세기쯤 인도 북부의 마투라와 더불어 간다라에서는 부처를 보리수, 발자국 등의 상징물로 표현하던 오랜 관습을 깨고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3/14/J3B2PGGC5VFNHPZJ3NUQFIHHXA/출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5/09/CBEQL6M7PFEZZGSHXXMBVZKN4Y/
** [범정스님(해안사 주지)] 꽃스님! 요즘 불교는 어떤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힙'한 불교!
** "이게 진짜일 리 없어 군대를 또 가라고요?" 주지스님 시켜준다길래 좋다고 왔더니|군인이자 수행자의 삶을 사는 군종법사 스님의 일상|가을 사찰 모음|한국기행
** [Full] 한국기행 - 산사에서의 하루 1부 길 없는 하늘 아래 암자
출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5/23/NTSWXF73QBHG7LPD26TBDNKHME/
이에 화강암 불상과 금동불상의 단점을 보완하는 철불이 만들어지게 됐답니다. 다른 금속에 비해 저렴한 철을 녹여 불상을 만들면 정교하면서도 단단한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거든요. 표면을 다듬고 금박을 입혀 화려한 느낌도 냈고요. 철불은 신라 말기인 9세기부터 고려 시대에 걸쳐 많이 만들어졌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도 철불을 만들었어요. 이처럼 공통적으로 철불이 많이 제작된 건 금동불상의 주재료인 구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여요. 경제가 발전한 송나라에서는 구리로 화폐를 만들었는데요. 동전이 부족해 구리를 다른 나라로 유출하는 걸 제한했죠. 한반도에서도 구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요. 반대로 철은 비교적 흔했어요. 당시 한반도의 지방 세력인 호족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철을 갖고 있었죠. 사찰을 만들려는 호족도 많았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