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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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택리지] 12개 대학·역동적인 젊음의 도시, 삼성현(원효·설총·일연)의 얼이 깃든 경산

최슬기 기자 skchoi@kyunghyang.com


‘갓바위 부처'는 관봉 아래 선본사에 속해 있는 문화재다. 선본사는 신라 소지왕 13년(491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했다. 경산쪽 팔공산 자락에는 선본사 외에도 유서깊은 사찰이 많다. 와촌면 강학리의 불굴사에는 원효대사가 수련한 석굴이 있다. 김유신 장군이 이 곳에서 삼국 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다 천신으로 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된 사찰로 적멸보궁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보물 제429호다. 경쾌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 [KBS 역사스페셜 – 원효는 왜 파계승이 되었나 / KBS 20000506 방송 

** [BTN1시간만에 알아보는 의상대사의 일대기  [길위에 인문학 TV 고승전]


** [KBS 역사스페셜 – 부석사 지하에는 13미터 용이 있다  / KBS 2001.5.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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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뉴스 속의 한국사] 임란 이후 커진 불교… 높이 22.7m 팔상전도 지었죠

입력 : 2023.07.27 03:30
조선 후기 불교 건축

당시 미처 설명을 못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주로 서울 바깥에서 불교가 다시 크게 일어났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휴정(서산대사)·유정(사명당) 등의 활약에 힘입어 불교에 대한 규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전란 중 수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는 것을 본 백성이 '죽음' 문제를 외면한 유교 대신 내세(來世·죽은 뒤의 세상)의 희망을 말하며 현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교에 끌리게 됐습니다. 불교가 아래의 지지를 받는 '대중(大衆) 불교' 성격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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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야외 법회 때 거는 초대형 부처 그림… 불교 대중화 이끌었죠

괘불: 조선 불교의 '재미'


입력 2024.05.16. 03:00

‘야단법석’ 자리에 걸어놓은 조선 괘불

왜 이런 그림들이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전성기를 이뤘을까요. 우선 임진왜란(1592~1598) 이후 조선의 불교가 다시 크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은 원래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해 숭상하고 불교는 억압한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나라였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이 국난 극복을 위해 활약한 결과 불교에 대한 규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또 전란 중 허망한 죽음을 많이 본 백성들이 죽음 뒤의 희망을 말하는 불교에 많이 끌렸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법주사 팔상전, 화엄사 각황전 같은 대형 불교 건물이 세워지게 됐고, 불교 미술은 다시 전성기를 누리게 됐습니다.

도시가 아니라 깊은 산속에 지은 불교 사찰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규모 야외 법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영산재’, 육지와 물에서 죽은 모든 중생을 위로하는 ‘수륙재’, 생전에 지은 업보를 미리 닦는다는 ‘예수재’ 같은 것이 대표적인 법회죠. 많은 사람들이 절 건물 안에 다 들어갈 수 없어서 절 마당에 불단(부처를 모셔 놓은 단)을 차리는데 이를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때 내건 부처님 그림이 괘불이었던 것입니다




미륵의 꿈 아전의 꿈(단편소설)황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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