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는 직장이 정해진다

                               안또니오

보건소 민원 담당 모집이 있다고 지인이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전산사용가능한자.  기간제근로자. 최장 11개월까지 근무 가능하지만 정규직 직원이 채워지면 그만 두어야 하므로 1달만에 그만둘 수도 있는 자리였다.

지인은 전산사용가능자라는 조건을 보고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난 해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형인데 60대 말에 가까왔고 그 직장은 그 나이대가 주종이었다. 그 나이대 동료들은 나를 아주 컴퓨터 박사로 보았다. 그래서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알려주었을 것이다. 

여기 직장은 입력하는 데이터가 많고 작성해야할 문서작업이 많아서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노인 방문객의 경우 필요에 따라서는 휠체어로 모시는 적극적인 민원 담당의 자세도 필요하고.

뭐, 오랜만에 컴퓨터를 만지는 직업이니 1달을 하든지 11개월을 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더하여 보건소 홈페이지 관리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해줄 생각이었다, 붙기만 한다면. 


서류 전형을 통과했으니 면접오라는 문자메세지가 왔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1월 25일부터 근무를 해야 하니 빠르게 일정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이 점은 마음에 든다.

1명 모집에 면접장소에 갔더니 2그룹 15명이었다. 앞 시간에는 1그룹 15명이 면접을 본 모양이었으니 3그룹이 없다면 총 30명을 부른 것이다.  1명 모집에 5명 정도가 아니라 30명을 부르다니. 서류심사는 한 것일까?
 

30대 초반부터 50대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가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제일 고령자인 모양.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승산이 없다. 반대로  젊은 여성 대기자는 승산이 높아 보인다.  보건소 민원 담당은 구세대의 직업이 아님을 현장에 와서야 깨닫는다.
 

며칠 전 사무실 담당 직원에게 이력서를 접수할 때, "이 일은 전산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입력할 데이터가 많은 일입니다."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해왔다. 젊은 사람이 이력서를 접수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받았을 것이다. 연령대가 구세대라 전산에 대해서는 모를 것 같은데 잘못 접수하러 온 거 아니신가 하는 선입관을 갖고 말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런 선입관은 면접관도 갖고 있지 않을까? 도전은 해보지만 실패하기 쉬운 싸움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도전을 받아드리지 않는 직업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두 명씩 면접실로 들어갔는데 내 옆은 30대 여성이었다. "직장을 갖고 계시네요?  이 일은 정규직 직원이 채워지면 1달만에 그만둘 수도 있는 자리입니다. 괜찮겠어요?"라고 면접관이 물었다.
그녀는 현재 건설쪽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보건소 민원 담당 개시일에 맞춰 미리 그만둘 수 있다고 답했다. 아주 적극적이었다. 최저임금 즉 시급을 주는 자리, 1달만에 그만둘 수도 있는 자리, 수많은 문서 작업 및 데이터 입력이 예상되는 자리, 경우에 따라서는 노인 방문객을 휠체어에 태워 진료실로 모셔가는 일도 해야 하는 자리, 한마디로 말하면 최전선에서 무척 바쁜 직업이라  젊은이가 선호할 일자리는 아닐텐데 무엇이 저토록 절실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녀 외에도 젊은 남녀들이 면접 대기 의자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춘들은 적어도 월 200만원 수입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급을 받는 최저임금으로는  최저 생활은 할 수 있겠지만 데이트 비용은 부족할 것이며 결혼은 더더욱 꿈을 꿀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이 날은 어쩌다 보니 면접 대기자 중에 최고령자가 되어버렸다. 면접 현장에 와서야, 내 나이에는 보건소 민원 담당 역시 적합치 않은 직업임을 깨닫는 우울한 하루였다. 10년간 노인요양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해왔기에 민원담당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많은 나이는 그런 경력까지 묻어버린다. 나이가 젊으면 그런 경력도 가산점을 얻겠지만, 어느 연령대가 되면 어떤 직업군에서는 거의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나이가 되면 두드리다가 더 늙을 것이고 더 취업의 문은 굳게 닫혀 있을 것이다. 나이대에 맞는  을(乙)의 직장, 병(丙)의 직장을 찾아다니며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2018.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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