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 근처, 서울 변두리 여행의 하루

                     안또니오

일요일만 쉬는 삶이 시작되려 한다.
그동안 운이 좋아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직장에 다녔었는데, 이제는 국경일도 토요일도 쉬지 못하는 삶을 적어도 수개월 이상은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쉬는 토요일인듯하여 대기업 다닐 때의 동료와 만나기로 전날 약속을 했다.
아침 일찍 동네 정형욋과에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들러 팔꿈치에 뼈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파라핀 장갑을 입히는 치료를 하였다.앞으로는 병원 치료를 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으리라 예상되니 아침부터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 것이다.

 개화산역에서 걷기 시작하여 방화동 사거리를 지나 단골 안과를 약 2년만에 들렀다. 직장이 근처일 때는 매달 안구건조증을 치료하는 인공눈물을 얻기 위해 자주 다녔으나 정년퇴직 후에는 1년에 1번 혹은 2년에 1번 갈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안과가 되어버렸다.
전직장 동료를 방화동의  회사 근처에서 만난 김에 안약도 필요하던 차에 2년만에 단골 안과도 들린 것인데  의사는 예전 그  의사였고 늘 그래왔듯이 고맙게도 안공눈물을 2개나 주었고, 같은 건물에 입점해 있는 약국에 처방전을 들고 갔더니 이쁜 여약사도 예전 그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태풍 탓으로 비바람이 몰아쳐서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나쁜 날씨 탓인지 안과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무 빨리 병원 일이 끝나 버려 약속시간까지는 20분 이상이 남았다. 근처 방신 시장을 둘러 보았다.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비를 맞지 않도록 재래시장 전체에 천장이 생긴 것이 유일한 변화.
이 동네는 재래 시장 뿐만 아니라 거리와 골목들이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전직장 동료  조건O 부장을 만나 갈비탕을 먹고 나와 바로 옆의 다이소에 구경삼아 들렀다. 성냥 대용으로 양초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혹은 가스레인지가 불이 잘 점화되지 않을 때는 불을 붙일 수 있는 미니 점화라이터가 있어 그동안 어디서 사야 하나 궁금했었는데 참 잘되었다 하고 3개  구입했다. 합계 3천원.

그리고 방화역 쪽으로 걸어가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조건O 부장은  국민연금을 타기 시작했으나, 충분한 돈이 아니었고 일없이 하루를 보내기에는 덜 늙은 나이. 드디어 용기를 내어 축구장 관리하는 기간제 근로자를 시작한 모양. 잔디를 보수하고, 예초기도 돌리고. 조경일과 거의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난생처음으로 하는 노동이니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3월 모집 때 대기자로 올라와 있다가 최근 도중에 그만둔 사람이 생겨 대기자에서 추가합격자가 되어 노동을 하게 된 모양.
이렇게 노동을 하면 국민연금과 월급을 합산하면 월 300만원이 될 것이다. 교장,교감이 받는 교육공무원 연금액과 같아지는 셈이다. 많은 금액의 공무원 연금 받는 은퇴자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너무 많이 받으니 일할 필요가 없어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그런 사람들의 권태로운 일상이 뭐가 부러운가?

오히려 건강만 허락한다면 출퇴근을 할 직장이 있고, 새로운 부류의 친구들이 해마다 생기는 기간제 근로자 모집에 지원해보는 것도 괜찮다. 물론 안 해본 노동이라 몸이 고단할 수 밖에는 없다마는, 첫 해를 지나면 안 쓰던 근육이 쓰는 근육이 되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 해는 적응이 되어 할 만한 노동이 될 것이다. 전년도 경력이 다음해에는 대기자가 아니라 합격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와 헤어진 후,  매일 점심 식사후 등산하던 뒷산도 혼자 일부 올라가 보았다.   늘 가던 회사 뒷산 약수터가 보였다. 약숫물이 관을 통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물로 자주 갈아주니 회사 탁자 위의 페트병 어항의 열대어들은 신선한 산소를 마실 수 있었지. 등산을 같이 하던 동료 직원들이 생각났고, 여름철 와이샤스를 등산 티로 바꿔 입던 숲 속의 장소도 보이고 예전보다는 숲이 더 깊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요즘 현역직원들은 예전의 나처럼 열심히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뒷산을 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후에 비가 그쳤는데 비온 뒤의 산 공기는 기분좋게 피부에 와 닿았고 분위기가 좋았다.

귀가하니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잤다.

겸사겸사 시간 잘 내었던  서울 변두리 여행의 하루. 추억여행이 된 하루. 내일은 동네 약수터에 들러 어항에 물을 보충해주어야 겠다.

2018.10.6.토.


p.s.
개화산역에서 조씨 성을 가진 대기업 동료 둘과 만나 점심시간마다 올라가던 개화산 산행을 하였다.  거의 7년만이다. 다음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행사준비에 바쁜 절 구경도 하였다. 절 입구 왼쪽에 연못과 인공폭포가 생겼는데 제법 그럴싸하였다, 산중의 베드민턴장은 예전에는 가건물이었으나 지금은 그 위치에 정상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송홧가루가 심하게 날려서 그쪽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둘레길이 나무데크로 되어 있어서 교실복도를 걷는 느낌이라 좀 아쉬웠고 그래서인지 현역시절 내가 밟던 흙길이 여기쯤이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하산 후 등촌칼국수에 들어가서 칼국수에 소고기 샤브샤브를 넣어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리고나서 개화산역 1번 출구 근처 메가커피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다음달 서삼릉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2025.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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