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일지

3/5 (월)

오늘  계ㅇ 공원사업소(본사에 해당)에  첫 출근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후 커피 한 잔을 마시자마자  노동자 대기소(현장부서에 해당)가 있는 연O공원로 이동하여 바로 작업에 투입되었다.

(보통 첫날은 안전교육 겸 업무 소개,작업화,비옷,목장갑 지급을 하며 가볍게 보내는데) 비가 와서 발이 빠지는 진흙탕에서 양배추 뽑고 밀려나간. 야자수 껍질로 만든 야자매트를 6명이 달라붙어  낑낑대며 제자리로 옮겨놓았다.  거름더미에 가서 삽질하여 거름을 외발수레에 담아 꽃나무 심을 자리에 거름 뿌리고 첫날부터 빡시게(?) 작업시켰다.  그래도 남자 근로자 인원 6명이라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성격파탄자는 없는 거 같아 사이좋게 재밌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잔소리쟁이  반장도 없는 것 같고. 올해 운동삼아 잘 보낼 수 있을 듯^^

작업화가 지급되지 않아 신고간 등산화로 진흙탕에서 작업하다보니 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나중에 창고에서 장화를 꺼내 작업을 이어갔는데 진작에 장화를 신고 진흙탕에서 작업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첫날이라 현장 상황을 모르고 투입된 탓이라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 군기를 잡기 위해서라도 빡시게(?) 일을 시킬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열심히 할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팀워크는 잘 될 것 같다. 오랜만에 삽질을 해대다보니 오늘은 괜찮은데 내일 작업할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2인 1조로 작업한 동료 김선생이 갑자기 일을 하게 되어 몸살기가 있는 모양인데 내일은 쌍화탕 두 봉지를 등산백에 넣었다가 저녁에 먹고 자라고 주어야겠다. 

하루 신고 등산화를 집에 와서 빨았다. 진흙탕 속의  더러운 물 때문인지 냄새가 나서 빨 수 밖에 없었다. 내일은 전직장에서 사용하던 작업화라도 들고 가야겠다. 매일 등산화를 세탁할 수는 없는 일이고.


3/6 (화)

관할 공원들 중의 하나인 ㄱㅇ공원으로 출근하다.  공원 입구  낙엽 갈퀴로 긁어 모아 버리기.낫질. 공무원 출신 동료가 하루만에 사표를 내다. 공원 입구의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3/8 (수)

ㅇ ㅎ공원 생태공원의 연못 속의 갈대 제거 위해 장화 신고 낫질하기.  장화에 물이 들어와서 양말 다 젖음. 연못가의 갈대도 제거. 갈대 잔재 처리 위해 외발수레에 잔뜩 실고 한참을 밀고가서 배수로 쪽에 나란히 쏟아 버리기. 높이가 얉게 낫으로 정리해줘야 잡초가 올라오지 않아 예초할 필요없다. 결원이 생기자 전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70대 고 선생이 이 날부터 출근하여 반가왔다.

3/9(목)

ㅇ ㅎ공원 생태공원의 연꽃밭에서 연꽃을 제거 하는 작업을 하루종일 하였다. 지난 해 연꽃 줄기를 낫으로 베어 군데군데 모아두었는데 오늘 그것들을 밭두덩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뻘밭과도 같았다. 긴 장화의 끈을 허리띠에 걸어 고정시켰고, 녹화끈으로 장화의 발등과 발뒷꿈치 부분을 묶어 장화 안의 양말이 작업중 벗겨지지 않도록 하였다. 낫을 들고 뻘밭에 들어가서 군데군데 모아져 있는 연꽃 줄기를 모아 들고나와 밭두덩에 올린다.   연꽃은 지저분한 물에도 잘자라고 자정(自淨)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자정(自淨) 은 커녕,연꽃밭은 썪는내가 지독하게 났다. 비료포대의 두 귀에  노끈을 달아서 군데군데 모아둔 연꽃 잔재들을 마대에 연못 속의 갈대

 

3/10(금)

밭두덩에 모아둔 연꽃 잔재를 한 쪽으로 모으는 작업.

 

3/12(월)

유채꽃 심을 장소에 쌓인 낙엽 모아 버리는 작업. 삽으로 흙을 뒤집는 작업. 비료 뿌리는 작업.


3/13(화)

로타리를 매단 트랙터로 로타리 작업(객토). 유채밭 라이더로 긁어 나라시(평탄 작업).

3/14(수)

유채꽃 심을 밭에 갈퀴로 이랑을 만든 후 유채 씨앗을 뿌리고 라이더로 평탄작업, 최종적으로 공업용 가스통을 굴리가니 끌며 씨앗이 흙 밑에 들어가게 만든다. 소가 된 기분.우스개로 "음메~"하고 소울음 소리를 흉내 내었다. . ......펜스 설치 작업, 족구장 주위 배수구 청소 작업


3/15(목)

반장이 문자메세지를 아침 일찍 보내왔다.

"우천으로 출근하지 마세요"

일당을 받을 수 앖는 공치는 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출근 전에 통보가 왔다는 것. 출근 후 비가 와서 퇴근시키면 왕복 차비만 들고 일당도 나오지 않는다고. 일용직 금로자는 그렇더라도 기간제 근로자는 4시간 일당을 주도록 노동법에 되어 있는데 여기는 전혀 주지 않겠다고. 을병 입장에서는 받아드릴 수 밖에.


3/16(금)

배수지가 있는 마ㅈ 공원에 파견 나가 배수로 철제뚜껑을 열고 토사물,낙엽을 제거후 다시  철제뚜껑을 덮는 작업. 공원 진입로의 쓰레기,개똥 제거 작업 중 버려진 딜도 발견.  쌓인 낙엽 제거 작업. 현장에서 퇴근.

3/19(월)

작연에 죽은 가지 치기 작업 후 쌓아둔 잔재물을 치우라고 하여 외발수레에 실어 수차례 다른 장소에 쏟아버림. 생태 공원이라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는데 팀장이 바뀌니 눈에 안보이는  곳으로 치우라는 지시에 따랐다. 잔재물을 교목(2m이상의 나무) 주위에 모아두어라는 팀장도 있고 깨끗해 보이도록 치우라는 팀장도 있고 제 각각의 스타일이 있다. 작업 표준화 시킨 매뉴얼 없이 일을 시키니 팀장이 바뀔 때마다  잔재의 운명도 자주 바뀐다.

3/20(화)

큰 나무 경우 외발수레에 하나만  얹어 수차례 먼 장소에 가서 버렸다. 채력 방전될 지경. 하루종일 바람이 몹시 불어 동태가 될뻔. 내일까지 춥다는데 단단히 옷을 준비해야겠다.

3/21(수)

족구장 평탄작업을 위해 3 ton무게의 롤러를 3~4명이 마부와 노새가 되어 앞에서 끌었다. 도중에 눈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풍도 불어댔다. 철제 콘테이너 사무실로 철수란 없다. 한데에서 눈비를 피하며 버텨야 한다. 여기 회사문화는 그러하다. 어제 동태가 될뻔하여 옷을 한겹 더 입었으나 3시간을 추위 속에 버티기에는 택도 없었다. 가까운 화장실에 수 차례 들러 씻은 손을 말리는 드라이 기게에 언 손을 비비며 쏟아져 나오는 온풍에 손을 뎁혔다. 간혹 뒤로 달아 엉뎅이도 뎁혔다. 60대 70대 나이의 노동자들이라 저체온증이 올 정도로 장시간 추위 속에 노출 되었다. 이 정도 추위이면 베이스 캠프로 잠시 들어와서 대기하다가 눈비가 강풍이 그치면 작업을 재개하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중국 식당에서 물만두를 두 그릇 시켜 먹으면서 추위를 피하자고 제안했다. 2시간째 추위에 몸이 얼고 있었고 앞으로 1시간은 더 한데에 있어야 퇴근시간이 되는 시간이라 최근 스마트폰을 산 내가 한턱 쏘라고 동료가 그래서 이참에 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무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해서는 안된다며 다음에 먹자고 동료들이 말했다.

새로 산 스마트폰을  가까스로 개통하였다.  휴식 시간이 짧아서 콜센터에 전화하여 개통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 에상했는데, 콜센터 직원이 받는 게 아니라(이런 경우 전화 대기자가 많으면 계속 기다릴 수 없다. 노동이 시작되면 전화를 끊어야 하니까.  다행히 직원과 직접 통화하여 연결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 ARS로 접수를 하면 순차적으로 개통해주는 방식이었다. 접수후 2시간 지나자 구형 스마트폰은 전화가 끊어지고 새 스마트폰을 켜니 개통 절차가 자동으로 각 단계마다 입력하라는 요청이 나오며 그에 따라 지메일 주소 등을 입력하니 3분 정도 소요된 후 개통이 이루어졌다.  그 시간에 족구장에 있었고 제대로 전화걸기가 되는지 확인 위해 아내에게 새 스마트폰으로 첫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은 눈비가 쏟아지기 전이었다.

저체온으로 얼어죽을뻔한 하루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3/22(목)

오전에 병꽃나무 전정 작업을 했다. 높이를  일정하게 만들고 죽은 가지를 제거하는 작업. 어떻게 죽은 가지인지를 판단하지?  가드너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김ㅁㅇ 선생 왈, 손으로 꺾어 쉬 부러지면 죽은 가지. 잎이 달려있지 않고 하얀 가지이면 죽은 가지일 가능성 높다고. 죽은 가지는 절단면이 하얗고, 산 가지는 하얀 절단면이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모처럼 힘들지 않은 작업이었다.
전지는 가지의 잘리는 단면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 세균의 침투 가능성이 가급적 줄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원사 자격증을 갖춘 김ㅁ영 선생은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느라 빠뜨린 관목에 지렁이토를 뿌리느라 일행보다 뒤처졌다. 나는 그와 한 조가 되어 비료를 가득 담은 외발수레를 밀고 보조했는데 일행 대부분은 작업반장 눈에 보이게 눈치 빠르게 가까운 거리에서 작업을 진행해갔고, 김O영 선생은 뒤처져 있었다. 동작이 느리다는 작업 반장의 뒷말이 입과 입을 통해 그에게 전달되었다.

오후에는 지렁이토가 200포대 와서 트럭에서 내려 몇 군데에 나누어 내렸다. 오후 1시에 트럭이 도착 예정이라더니 12:30 경에 도착하여 점심시간 중 30분을 쉬지도 못하고  트럭으로 달려가 하역작업을 해야 했다. 트럭을 대기 시키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에 하역작업을 해도 될텐데 시급한 작업이 아닌데 꼭 이래야 하는 것인가?

관목(2m 이하로 자라는 나무)과 교목(2m 이상 자라는 나무) 중에 교목만 비료를 주어라고 반장이 지시하였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에게 지렁이토를 골고루 뿌리라고 들은 우리 작업자들은 지시대로 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작업반장이 불 같이 화를 내었다. 나이들이 많아서 가는 귀가 먹은 것인가 아니면 정확한 지시를 못한 입 탓인가 모르겠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고가 중요한 것이고 현장에서는  갑이 언제나 옳다. 퇴근 직전까지 공원 관목에 비료를 뿌렸다. 잃어버린 점심시간 30분은  퇴근 전까지도 보상되지 않았다. 점심시간 30분이 이른 퇴근으로 혹은 이른 작업 종결로 보상되리라 동료는 기대하였지만 나는 기대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남은 약 40개 포대는 내일 작업 준비를 위해 외발수레에 담아 작업할 공원 곳곳에 내려놓고 다시 포대를 수레에 실고 운반하여 공원 곳곳에 내려놓기를 여러 차례. 작업이 끝났으므로 외발수레를 반납하고 공원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그런데 영구 계약직 반장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거름 포대를 터뜨리고 삽으로 퍼서 관목에 뿌려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기간제근로자들도 다시 작업하기 시작한다. 나의 깨끗한 손은 다시 더러운 목장갑을 끼고 삽 없이 빈손에 지렁이토를 담아  뿌리기 시작한다.

융통성은 작업 욕심에 묻혀버렸다. 내일도 태양은 뜨고 작업도 이어질텐데,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식으로 급하게 하루 일이 진행되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어야 할 작업이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면 힘든 작업이 되는 법이다.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필사하는 작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2,30 대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어려운 작업이 아니겠지. 그러나 하루에 1,000통을 필사해야 한다면 손목이 고통을 느끼는 빡신 작업이 될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 60대 연령대의 기간제 근로자에게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작업을  3,40대 장정처럼, 연봉을 제대로 받는 직장인처럼 일하게 만드는 것은 , 목표량을 초과달성하는 것은 올바른 직원 관리가 아닌 듯. 아침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일하라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할 틈이 없이 몸이 바쁘게 작업량에 따라가야 한다면 사고가 날 위험이 많아지는 법이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고학력자들도 힘든 노동에 뛰어드는데, 예전의 저학력자들을 상대하던 관리 및 지시 방식은 변치않고 있다. 특히 여기 현장은 그러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예전 직장은 잔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심하여 잔소리만 적어도 만족할 만하다. 그래서 잘 적응하고 있다. 문제는 존재하지만 잘 적응하며 다니고 있다.  어쩌면 내 소설의 독특한 캐릭터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연극배우들은 박봉 탓이기도 하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다양한 캐릭터릐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연기에 도움될 테니까. 영화 "콰이어 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영국 장교 같은 캐릭터를 이전 직장의 반장에게서 발견한 적도 있었다.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지시를 하는 것이지만 작업자의 연령을 고려해주고 존중하는 호칭도 돈 들지 않으니 고려해주면 좋을텐데 그런 점이 아쉽다.

그렇다면 건의를 하라고? 을병에게는 건의를 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지시에 대한 반박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어서 "그럴러면 집에 가서 쉬지 왜 여기 나왔나?"라는 소리 듣게 될 것이다. 당연한 거지만 작업화를 달라고 건의를 하고 싶지만 해마다 동일한 건의가 묵살되었다니 입 닫고 있을 수 밖에.  결재를 올리면 당연히 결재가 나서 작업화가 나올텐데 , 근로자가 필요하다는데 관리하는 담당이 필요없다고 결재를 올리지 않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3/23 (금)

전망대의 비탈에 칡넝쿨과 가시나무로 엉망진창이어서 베어내는 작업을 하루종일 했다. 두 겹의 목장갑을  꼈지만 낫질하는 중에 손가락에 가시가 꽂히고 작업모자에도 가시가 꽂히고 잘려나가는 가시나무의 파편이 앙갚음을 하듯이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와 허벅지를 찌르기도 했다.  월남전에 정글을 헤치며 따이한들이 전진할 때도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 듯.

예전에 군부대가 주둔하던 곳이라던데 어떤 용도인지 모르겠으나 원통으로 깊게 파인 웅덩이가 눈에 뛰였다. 처음에는 눈이 있으니까 피해 낫질을 하며 뒤엉킨 칡넝쿨과 가시나무(엄나무)를 자르며 전진과 후퇴를 거듭했다. 빨리 작업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눈치여서 생각보다 몸이 더 반응하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그 웅덩이에 한 쪽 발 전체가 빠져버렸다. 월남전이었다면 훨씬 더 큰 웅덩이에 죽창들이 꽂혀 있는 부비트랩이었을 것이고 빠진 따이한 병사는 수많은 대창이 몸을 뚫고 나와 비명을 질러대며 죽어갔을 것이다. 동료들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전진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여기는 베트남이 아니고 월남전 시대도 아니었으니 그런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전망대에서 본 반장은 그 웅덩이를 채우라고 지시하고 기간제근로자의 명예반장(이어서 반장 수당이 나오지 않음. 현장일에 잔뼈가 굵어 그는 "월남 고참"인 셈.)인 윤 대장은 왜 빠져가지고 웅덩이를 귀찮게 채우게 만드냐고 투덜투덜. 그가 깊은 웅덩이를 채운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가드너 자격증 갖춘 김O영 선생이 비탈의 아래에 내려 둔 굵은 나무를 나와 둘이서 들고 가서 그 속에 박자고 제안했다. 낑낑대며 둘이서 굵은 나무를 함께 들고 다시 비탈을 올라가서 웅덩이에 박았다. 그래도 구멍이 다 채워지지  않아 나무뿌리 등걸을 두 개 더 끼워넣었다. 만족스런 결과물이 나왔다. 비탈 아래에는  칡넝쿨과 가시나무들을 녹화끈으로 묶어 트럭에 실기 좋게 쌓여 있었다. 옷이 가시에 의해 찢어져서 옷값도 안 나온다고 윤 대장이 투덜대었다. 나는 가시에 찔려 피가 나오던 손가락이 만지면 아팠다. 가시가 빠졌는지 꽂혀 있는지 모르겠으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손가락에 찔렸을 때 가시와 유리 조각의 차이는,  가시는 피부가 밀어내므로 언젠가는 피부 밖으로 밀려나오지만 유리조각은 계속 피부 안으로 전진하여 혈관을 뚫고 들어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행히 작업중 내 손가락을 찌른 것은 유리조각이 아니라 가시였고, 뱀을 만나지도 않았다는 사실.

동료가 몰래 숨겨온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주말이고  몸이 고된 한 주,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편한 한 주를 보내면서 모처럼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요즘 편의점에서는 수입 맥주 4캔에 1만원. 안주도 사야 하니 집에서 멀지 않은 홈플러스에 들러 마른 안주를 샀다. 동료들과 막걸리 한 잔 할 때 간혹 안주가 준비 안된 경우도 있어서 그럴 대 내놓으려고 10개 들이 포장된 어묵포도 샀다. 수입맥주 4캔이 여기서는 8,900 원. 집에 와서 체코 맥주를 마셨다. 대기업 은퇴 전 체코 프라하 여행 때 마셨던 맛이라 여행 추억이 떠올랐다. 달게 잠을 잤다.

 

3/26 (월)

녹화끈으로 묶어 놓은 관목 잔재와  교목 잔재를 외발수레에 실어 도로가로 옮겨 쌓았다. 트럭에 실어 버리기 좋도록. 70대 처음 보는 동료가 첫 출근하였다. 대기자로 있다가 1명이 그만두자 그로서는 운좋게 빠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 출근하게 된 것이다.
며칠전 여성동지 한 분이 작업 마치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산재처리하고 입원 및 퇴사하였는데 그 자리를 남성동지로 채운 것이다. 소형 트럭으로 출근하는 모양인데, 작업차량이 없는 사업소 경우 개인 소유의 차량을  기름값도 주지 않고 작업차량으로 쓰려고 그런 종류의 차량을 가진 사람은 합격되기 쉽다고 한다. 많은 나이라는 핸디캡을 소형트럭으로 만회하는 것이다. 적어도 기름값은 줘야할텐데 벼룩의 간을 빼먹는 짓이 시급을 받는 기간제근로자에게 행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여성동지들이 낙엽을 모아  숲 속에 버렸다. 남성동지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합류했다.
드디어 장화,조끼,우의를 지급 받았다. 첫출근 때 지급되어야 할 것들이 월말이 다 되어 뒤늦게 지급된 것이다.
오후에 안전교육 3시간 받았다. 안전교육은 보내지 않고 작업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미투(me-too) 때문에 관련법이 강화되어 성추행 예방 관련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사업주가 500만원 벌금을 물도록 되는 바람에 처음으로 안전교육 가라고 보내게 된 모양. 안전교육과  성추행 예방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전교육은작업 중에 발생한 사고 사례를 많이 소개하였다. 최저임금을 받는 나이 많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가 엔진톱에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 작업후 씻을 데가 마땅치 않으니 철수하는 도중에 보이는 물에 작업화를 대충 씻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 등등.


3/27(화)

경사면에서 가시나무 넝쿨, 칡넝쿨을 낫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넝쿨 속의 썩은 나무도 제거하고. 잔재는 녹화끈이 없어서 넝쿨로 묶었다. 경사면 아래의 경계석들을 깨끗하게 손질하였다. 밀려나간 경계석은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삐죽 삐져나온 잔 나뭇가지는 톱질하였다. 최종적으로 빗질하였다.
작업 도중에 공원관리 사무실에 팀장이 간혹 머무를 공간을 마련해야 하므로 사무용 테이블을 갖고 와서  채워야 한다고 하여 3명이 차출되어 이 사무실 저 사무실 다니며 헌 테이블을 새 테이블과 교체하고 새 테이블을 갖고 와서 채웠다. 사무실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인데 투입된 것이다. 총작업반장은 트럭  운전을 하였고 우리는 실고 내리고 사무실로 옮기는 일을 했는데, 새 테이블을 제자리에 옮겨놓자 목이 발라 동료는 생수를 마시려는데 물컵이 없었다. 두리번거려 한쪽 구석에 차와 커피,종이컵이 놓여 있는 걸 발견하고 종이 컵으로 생수를 받아 마셨다. 나는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작은 생수병에 생수기의 물을 채웠다. 총작업반장은 일하는데 방해 안되게 빨리 나가라고 말했다. 수고했으니 여기 차 한잔씩 마시고 좀 숨 돌렸다가 하던 작업 계속 하러 가시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을병은 인간이 아니고 네안데르탈인인가?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을 하는 도중에 사무직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었는데 사무직 일하는데 방해 안되게 빨리 나가라니. 70년대 노동자를 대하듯이 하는데 고학력의 베이비부머들이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노동현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을 관리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조그마한 성에서 왕노릇하듯이 왕이 미천한 신분의 백성을 대하듯이 관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침 출근하여 베이스캠프에서 출근부에 사인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폐이발소가 생기게 된 원인은 도시 새마을운동과 관게 있다. 묻지마오 관광이 처음 시작한 곳은 인천 주안역 앞이다. 노래방 도우미가 최초 출현한 곳은 현대 시라고 할 수 있는 포항인가 울산인가이다. 한국 현대사 퀴즈를 내고 정답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새로 온 70대 동료가 이제 이 바닥에도 예전과 달리 수준이 많이 달라졌다고 감탄했다. 장기 계약직인 총작업반장은 의자에 앉아 등 뒤에서 흘러나오는 노동자들의 대화를 귀를 쫑긋하고 들었을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쏫아져 들어오는 이 시대에는 무지몽매한 노동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넌즈시 알려주기 위해 모처럼 내 입을 연 날이었다.
70대 동료 고O근 선생이 갤럭시 J7을 지난해 10월에 사서 월45,792원을 내고 있길래,   2년 약정이 끝나면 월 약 2만원 더 내려가고 데이터는 3배로 올라가고 무료통화는 250분까지 늘어나는 정보를 카카오톡에 정리하여 전날 보내주었는데 오늘 아침에 이해되도록 설명해주었다. 동료들이 나이대가 구세대라서 비싼 요금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작년에도 여러 구세대 동료들에게 더 싼 요금제로 조언을 해주곤 하였다. 


사무실을  나와 다시 경사면 작업 현장으로 돌아와서 넝쿨 제거 작업에 매달렸고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오늘의  작업을 종료하고 여성동지들이가지고온 삶은 계란을 잠시 쉬며 먹고 있을 때 총작업반장이나타나더니 인심 쓰듯이 쉬라고 말했다. 작업은 잘 끝났고 이제 베이스캠프로 걸어갈  일만 남은 시간이었는데,갑자기 총반장이 마음이 변했는지 그만 쉬고 내일  할 일을 더시키며 경사면 아래의 잔재들을 저쪽  한쪽 구석으로 모아라고 지시했다. 내일도 태양은 떠오르는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내일 하면 될 일을 고단한 몸을 다시 일으키며 막판까지 노동을 시켜야 하는가? 다들 젊은 나이가 아닌데 노동 강도를 매일 목표초과달성하는 방식으로 부려  먹어야 하는가? 봉급이 뒷받침된다면 모르겠는데  주는 일당에 걸맞게 노동 강도가 비례해야 합리적이다. 매일 이런 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다보니 왼쪽 팔꿈치가 계속 아프다. 토요일 외에는 물리치료 받을 시간이 없고(근무시간 중 잠시 병원가는 일은 이 바닥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 결근하면,당일치,유급 토요일을 의미하는 주차 및 월차까지 즉 3일치 일당이 날라가니 병원가려고 하루 쉴 수도 없다.) 의사는 쉬거나  작업을 힘들게 하지말고 무리하지 않게 쉬엄쉬엄하라고  조언한다.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어떤 갑을 만나느냐 어떤 회사문화를 만나느냐에 따라 현장 일은 변동이 심하다. 표준화된 작업 매뉴얼이 없으니 인사이동에 따른 새 팀장이 올 때마다 동일한 작업도 작업방식은 늘 변동한다. 작업의 효율성은 배제된다. 생태공원이라면 최대한 자연 그대로 두어 쓰러진 썩은 나무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데 미관상 안 좋다고 멀리 버리라고 한다. 잔재를 실어나를 작업트럭은 지원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외발수레에 통나무를 실고 안보이는 곳에 버리기 위해 멀리 하루종일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비효율적인 작업방식을 해마다 계속한다.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모든 현장작업을 인럭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고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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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갤럭시J7 (2016 )사양:

(2)현재요금제: (KT 통신사) 기계값 포함 45,792 원 (통신료 월 38,390 원 + 기계값 월 7,402 원

LTE 데이터 선택 38.3 요금제(데이터   1GB) ,혹은 , 

LTE 데이터선택 시니어38.3 요금제(2 GB) 
 

-아래- 

 
요금제/데이터/음성/문자//
통신요금(월)
/단말구매가(월)/월 납부금액


LTE 데이터 선택 38.3/1GB ,    밀당(데이터 이월 + 당겨쓰기)집&이동전화 무제한 ,영상&부가 30분 추가제공/기본제공//38,390/7,402/

45,792

혹은 

LTE 데이터선택 시니어38.3 요금제/2GB,    밀당집/이동전화 무제한 ,    영상&부가 30분/기본제공//38,390/7,402/45,792 
 
(3) 2년 약정 끝날 때: (자녀의 도움을 받아 진행)

((현재 KT 통신사에 내는 통신요금(월 통신료 38,390 원 )을   "유플러스 알뜰모바일"로 바꾸면 월  19,800원으로 약 2만원 절약되며, 데이터는 2G--> 6G로 3배 늘어나고 음성통화도 250분까지 무료.))

통신사를 바꾼다. (KT 통신사---> 알뜰폰 통신사)

알뜰폰 통신사인 "유플러스 알뜰모바일"(T.1644-5353)에 전화하여 "유심 가성비 6 요금제"로  통신사바꾸기 (전화번호 그대로 쓰는) 조건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개통절차 설명해줌.

(새 유심카드가 집으로 배달되면,  스마트폰이 전화 안되도록 조치되었을 때,  기존 유심 빼내고 그 자리에 새 유심을 끼움(설명해주는 절차대로 하면 됨)

 

** 유플러스 알뜰모바일 : https://www.uplussave.com/cmmn/index.mhp


** [선택] 유심 가성비 6 요금제 ( 28,600원---> 할인하여    19,800원 / 데이터 6GB / 음성 250분 ) :

 


3/28(수)

ㅎㅅ지의 배수로에 쌓인 낙엽 및 토사 제거 작업. 삽으로 퍼서 버리다. 경사면 가시넝쿨 제거 작업. 김O춘 선생은 무릎에 좋다는 우슬을 작업중 캤다. 나는 씀바퀴를 좀 땄다. 녹화끈으로 가시넝쿨 잔재를 묶었다.


3/29(목)

ㅈㄱ개공원에서 배나무마다 공원 인근 노인복지센타의 노인들의 명패를 달아  나무 주위를 동그랗게 파서 비료를 뿌리고 흙으로 다시 덮는 행사를 하다.


3/30 (금)

봄꽃을 심을 대형 화분을 트럭에서 내렸다.  총반장이 포크레인으로 퍼 온 흙을 삽으로 대형 화분에 옮겨 담았다. 며칠 전부터 팔꿈치가 아팠는데 이 날은 더 아파왔다. 50분 노동에 10분 휴식을 하면 몸에 무리가 안갈텐데 휴식없이 오랜 시간 일하다가 간혹 눈치보며 쉬는 체제로 여기서는 가니 몸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줄 때 생긴 고사 조삼모사가 생각난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던 먹이를 그 반대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니 원숭이의 불평이 없어졌다는 건데, 작업현장에서 휴식 시간을 어떤 체계로 하느냐에 따라 몸에 무리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가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떤해는 오전 30분 오후 30분으로 몰아서 쉬었고, 어떤 해는  1시간 노동에 10분을 쉬었고, 올해는 시급이 올라가면서 휴식은 없어졌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첫날 하던데, 그러다보니 노동으로 지쳐 어쩔수없이 쉴 때는 불법적으로 쉬는 것이어서 눈치가 보인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방식이 가장 능률이 오르고 몸에 무리가 안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듯한데 여기 기업문화는 상식선을 벗어났다.

화분 놓인 자리가 잘못된 자리에 놓였다 하여 대형화분 하나당 2명이 함께 붙어 옮겼다.  업체의 트럭이 왔을 때 처음부터 정확한 자리에 대형화분을 내렸으면 불필요했을 노동이, 인력으로 때우려는 기업문화로 인해 낑낑대며 먼 거리로 옮겼다.

오후에는 경사면에 남은 덤풀을 제거하고 다음 주 치우기 쉽게 길 한쪽으로 쌓아두었다.


4/2(월)

자연마당에서 관목들 주위와 안에 김매기를 했다. 호미로 관목들로부터 10cm 떨어진 주위를 파면서 잔디 뿌리를 끊어 놓는데, 이는 비효율적이라서 삽으로 꾹꾹 발로 밟아 눌러주며 원을 만들었다. 삽날에 땅속의 잔디 뿌리가 잘려나갈테니 관목들 속으로 이제는 잔디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관목 안에 예초기에 의해 잘려나간 잔디 잔재가 많이 있었다. 작년에 예초후 관목 속에 잡초가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 관목 속에 뿌려놓은 것이라 한다.  오늘은 관목 속의 낙엽,잔디잔재를 제거하고 호미로 흙을 긁어 뒤집기도 하고 잡초도 제거하였다. 쭈그리고 하기에는 남자들은 힘이 드는 자세여서 처음에는 소나무솔을 땅에 깔고 그 위에 무릎을 얹고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깔판 위에 무릎을 얹고  작업하니 일하기 수월했다. 김O영 선생과 갗이 작업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주고 받으며 작업을 하니 힘들지 않게 시간이 흘러갔다.

4/3(화)

ㅈㄱㄱ 공원의 배나무에 신품종 배 눈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일자로 뻗은 배나무 가지를 녹화끈으로 묶어 구부려 나중에 배가 열릴 떄 수확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총반장이 좀 일찍 퇴근시켜주었다. 파견 근무 나오면 그는 융통성을 발휘하였다.


4/4(수)


ㅇㅎ공원 대기소 주위의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루종일하였다. 호미가 얼마나 쓸모있는 도구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작업이었다.

풀 뽑는 작업할 때는 총반장은 삽이 필요없다고 하여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삽 없이 작업현장으로 나갔었는데 여성동지들이 낫을 갖고왔길래 삽 대용으로 낫으로 교목들 주위를 흙 속에 깊이 넣어 죽죽 금을 그어나갔다. 삽보다는 당연히 힘이 더 들었다.

땅 밑의 잔디 뿌리가 끊어져나갈 것이다. 그리고나서 호미로 교목들 주위의 잔디를 뿌리채 끍어내었다. 잔디가 교목 안으로 침범하면 영양분을 잔디가 다 빨아먹어 교목의 성장을 방해한다. 교목 안의 잡초도 뿌리채 긁어내었다. 교목 안을 호미로 긁어 김매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잡초도 그런 과정에서 뿌리채 뽑혀 드렁 배를 드러내고 누울 것이고 결국은 메말라 죽을 것이다.  잡초 제거작업 중에 총반장이 지나가다가 나를 불렀다. 쳐다보니 개똥을 치우라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치우지 않는 개똥을 호미로 치웠다. 그 과정에서 무릎 밑에 대는 깔판에 개똥이 깔려 나중에 퇴근 직전에 공원화장실에 가서 빨았다.  작업 중에 월급이 들어왔다는 헛소문이 귀에 들어와서 불법 휴식(?) 때 스마트폰으로 통장계좌를 조회하였다.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예정대로 내일 입금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4월 2일에 국민연금이 회사에서 입금하여야 하는데 실직떄처럼 자동이체로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국민연금 공단에 전화 걸어 확인하니 3월말에 빠져 나갈 3월분이 3월말이 토요일이라서 못 빠져나가고 월요일인 4월 2일에 빠져나간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국민연금은 매월 1일을 기준으로 지역에서 빼날 것인지 직장에서 빼나갈 것인지 결정이 된다. 3월 5일부터 새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으므로 3월 1일은 실직 상태였으니 직장이 아니라 지역에서 3월분 국민연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4월분은 4월 1일 기준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직장에서 국민연금을 빼나갈 것이다.

현 직장인 ㄱㅇ공원사업소는 휴식이 없다는 정책을 고수하다보니 은행계좌 조회를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도 시간내기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풀을 뽑다가 정말 국민연금 3월분을 3월2일에 빼나간 것이 맞는지 확인 위해 은행계좌 3개월치 입출금 현황을 조회하였다.  조회하는 중에 총반장이 지나가며 작업중 딴짓을 한다고 지적하였다. 무릎이 아플 정도로 풀을 뽑고 외발수레에 잔뜩 담긴 풀을 저 멀리 버리러 가서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였는데 그 정도도 용납 못해주다니 기간제 근로자로서 약간의 비애를 느낀다.

내일은 하루종일 비 예보


4/5(목)

비가 와서 출근하지 못하고 공치는 날


4/6(금)

작업복이 ㅇㅎ 공원 대기소에 걸려 있는데, 전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다음날 출근은 ㅇㅎ공원이 아니라 ㅈㄱㄱ공원으로 하라고 전화가 왔었다. ㅈㄱㄱ공원으로 출근하여 오전에는 배나무 묘목 40개를 심었다. 나무 1그루 당 지주대 역할의 막대기를 나무 뿌리를 피해 함께 꽂았다.   반장이 삽으로 약간 퍼서 표시해 둔 곳을 깊고도 동그랗게 팠다. 사무실에서 나온 공원담당 여직원이 그 자리보다는 다른 자리를 파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반장과 바로 위 공원담당의 견해가 달랐다.  판 자리를 도로 메꾸고 근처 다른 자리를 삽으로 팠다. 그런 짓을 몇 군데에서 반복했다.  구멍에 비료를 1/3 정도 넣고 파낸 흙을 그 안에 넣어 비료와 흙을 잘 섞었다. 비료와 혼합된 흙을 도로 바깥으로 삽으로 퍼낸 후 배나무와 지줏대를 함께 세운 후 도로 삽으로 퍼넣었다. 그리고 물이 고이도록 나무 주위를 둑 모양으로 흙을 쌓았다.  그 둑을 단단하게 손으로 두드리고 보기좋게 모양을 만드는데 총반장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호스로 물을 주니 많은 물이 고이자 물이 새지 않고 더 나았다.)

오후에는 물을 주기 위한 2인만 남기고 나머지 3인은 ㅇㅎ공원으로 철수시켰다. 아마도 자연마당의 잡초를 뽑는 작업을 하러 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실 수도에 고무호스를 연결하여 몇 시간 쉬는 시간없이 계속 물을 주었다. 바람이 방향을 자꾸 바꾸며 불어대어 몹시 추웠다. 총반장은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에 들어가서 배나무에 물을 주는 우리의 작업을 감시하였다. 차 안은 춥지 않겠지만 물 주는 공원 현장은 바람이 거세게 사방에서 불어대어 몹시 추웠다.  공원 대기소에 둔 등산배낭 속의 등산용 바람막이옷을 꺼내 입었다. 좀 나아졌지만 추웠다. 이렇게 추울 때는 매 시간마다 10분간 쉬면 좋겠는데 몇 차례 반복하여 2시간 이상 물을 주고나서야 호스를 빼서 감고나서 쉬어라는 총반장의 지시가 내려왔다. 공원대기소에 들어가니 온기가 느껴졌다. 여기 ㅈㄱㄱ 공원에 상주하는 여성동지 2인이 커피를 주었다. 뜨거운 커피를 함께 마셨다.  오늘 작업은 끝이 났나 했더니 여성동지들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지원하게 되었다. OO초를 삽으로 떠서 여러 개로 나누어 다른 장소에 옮겨 심도록 운반해주는 일이었다.  작업이 끝났을 때 화장실 물을 바께스에 담아 흙투성이가 된 등산화를 CCTV가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대충 씻었다. 이런 상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운전수가 좋아하지않을테니까.


4/9(월)

하루종일 잡초를 뽑았다. 총반장이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풀 뽑을 때 삽이 무슨 필요있냐고 하여 삽을 가지고 나갈 수 없었는데 이 날은 총반장이 보이지 않으니 삽을 가지고 가서 관목들 주위를 돌아가며 삽으로 꾹꾹 눌러 잔디뿌리가 끊어지게 하였다. 여성동지들이 호미로 긁어내기 편하니 좋아했다. "일은 이렇게 효율적으로 해야 합니다. 삽을 못 갖고 나오게 하니 낫을 들고 나와 관목 주위를 돌아가며 잔디뿌리를 자르니 힘만 들고 효율적이지도 않고 삽이 힘도 들지 않고 일도 효율적으로 진행되잖아요."하고 말했더니 여성동지들이 동감을 표시했다. 총반장이 삽을 못 갖고 가게 하는 이유는 뿔 뽑는 인원이 삽 때문에 한 명 빠져버리기  때문에 싫어하는 거라고 말하는 여성동지도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총반장의 생각을 정확히 읽은 것이라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삽으로 관목 주위를 돌아가며 잔디뿌리를 끊어놓은 후 바로 주위를 호미로 긁어내는 작업을 나는 하고 있으니까.어떤 여성동지가 자신 주위의 관목도 삽으로 돌아가며 찍어달라고 하길래 내 발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남성 근로자도 발이 있으니 해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삽 들고 일하는 거 총반장이 싫어하는데 나만 삽으로 일하다가 지적 당하고 싶지는 않으니가요"라고 대답해주었다. 전 직장인 ㅊㄹ호수공원에서 동일한 일을 할 때 남자들은 삽으로 교목 주위를 계속 발로 밟으며 전진했고 여성들은 뒤따라오며 잔디를 걷어내었다. 잔디가 교목 안까지 침투하여 잔디와 교목이 섞이게 되면 잔디가 양분을 다 빨아먹어 교목의 성장에 피해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교목 주위의 잔디는 뿌리채 뽑아 버리는 것이다. 여성동지들의 전진 속도에 따라 삽도 서서 잠시 쉬며 기다리다가 가까이 다가오면 삽도 전진하며 관목 주위를 삽으로 눌러주는 짓을 반복하는데 이 방법이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여기 직장에서는 삽을 가지고 작업장에 가지 말라니! 효율적으로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두고 비효율적으로 힘든 방법으로 작업하라니!

저녁 때 김ㅁㅇ 선생과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 한잔 하였다. 그가 전직장인 ㅅㅂ공원을 보고 싶어 하기에 구경을 시켜주고 식사 후에는 야경을 바라보며 거기서 커피를 마셨는데 아주 분위기가 좋았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생 선배의 걸어온 길을 들으면서 나의 미래설계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었다. 8개월간 일을 하면서 ㅅㅂ공원에서도 예초작업, 나무심기 작업, 갈대제거 작업 등을 하였음에도 한번도 여유롭게 ㅅㅂ공원의 야경을 보며 커피 마시는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오늘 저녁 식사후 그런 기회를 가진 것이니 나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4/10(화)

오늘도 하루종일 잡초를 뽑았다. 잔디밭에 토끼풀(클로버), 관목들 속의 토끼풀(클로버). 바람이 몹시 불어대어 작업복 상의가 바람에 날려간다.


4/11(수)

4/14(토) 꽃 축제가 열린다하여 팀장의 지적 사항에 대한 조치로 꽃 축제 관련 길 주변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숲 속의 폐기물을 모아 대형 트럭에 실어 공원 내의 폐기물 보관소에 버렸다. 왕릉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철근이 들어 이어 단단한 콘크리트 경우 무게가 무거워서 왐마(쇠 해머)로 돌아가며 두드려 깨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몇 번 내리치다보니 요령이 생겼고 대형 세멘트 덩어리가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 속의 죽은 나무들을 톱으로 잘라서 몇 군데에 가지런히 쌓았다.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쿨을 당겨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김ㅁㅇ 선생은 40년된 결혼예물 시계를 잃어버렸다. 토시를 하였다면 흘러내린 시계가,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들듯이 토시 속에 걸려 들어있었겠지만 토시없이 일하여 어디에서 흘러버렸는지 모르겠는 모양. 낙엽이 잔뜩 쌓여 찾기가 어려운 상태.


4/12(목)

4/14(토) 꽃 축제 준비 작업은 이 날도 이어졌다. 자연마당의 경사면의 폐기물을 치웠다. 조개껍질이 많이 흩어져 있었고 뼈 마디도 있었는데 나중에 코뼈를 발견하니 돼지였다. 개 대가리뼈도 발견되었는데 원시시대 조개무지도 아닐 것이고 원시인들이 사냥하여 잡아먹은 멧돼지나 들개도 아닐 것인데 도대체 누가 잡아먹고 여기에 버린 것일까?  장판, 가스통,스치로폴 등등을 걷어내어 나중에 트럭이 오면 싣기 좋게 길 가까운 쪽으로 옮겨놓았다.

썩은 나무가지와 등걸을 숲 군데군데 옮겨놓았다. 오후에는 트럭에 실어 잔재처리장에 버렸다. 죽은 굵은 나무는 총반장이 엔진톱으로 잘라는데, 적당한 장소로 옮기는 것은 노동자의 몫이었다. 대여섯명이 달라붙어 낑낑대며 오르막으로 굴러오렸다가 내리막으로 내려 지정된 장소에 보기좋게 쌓았다. 힘쓰는 과정에서 김ㅈㅊ 선생의 팔꿈치가 내 선글라스를 세게 쳤다. 썬글라스 다리의 이음새가 부러졌다. 작년 ㅊㄹ호수공원에서 조경일을 할 때 사서 잘 사용했는데 이 날 망가져버려 속이 상했다. 자꾸 물건을 바꾸기 보다는 한번 산 물건은 오래 사용하는 성격이라 물건과 이별해야 하는 때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련하다.  김ㅁㅇ 선생과 함께 마지막 폐기물을  버린 후 노동자 대기소로 돌아오는 길에 결혼예물시계 찾았느냐고 물어니 낙엽이 두텁게 쌓여 찾는 걸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디언이 기우제를 하면 100% 비가 오는데 그 비결은 비가 올 때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시계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찾아지지 않겠느냐, 의미 깊은 물건인데,라고 말해주었다. 작업하던 숲을 머리 속에 여러 구획으로 나름대로 나누고 근처에 작업하는 날마다 한 구획씩 집중적으로 찾거나 금속탐지기를 사서 찾는 방법도 제안했다. 퇴근 후 집에와서 11번가에서 찾아보니 1만원대와 2만원대에 휴대용 금속탐지기가 있었다. 내일 김ㅁㅇ 선생에게 정보를 제공해주어야겠다. 이ㅂㅎ 선생이 폴더폰 요금을 월 25,000 원을 내고 있길래 그 돈이면 공짜 스마트폰을 주는 알뜰폰 통신사도 있으니 바꿔보라고 권했다. 7대 초반이라 스마트폰 사용할 자신이 없다길래 더 나이 많은 부친도 처음에는 그러시다가 지금은 아주 잘 사용하신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야 하고, 손녀와 카톡하는 재미도 생기고, 실제로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하나씩 묻고 배우다보면 박사가 되는 법이라고 하니 바꾸어보겠다고 하여, 집에 와서 뒤져보니 알뜰폰 통신사 경우 월 29,000원이면 200분 기본통화,문자 50통, 3G에 보급형 갤럭시폰이 공짜였다.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보냈다. 잘 이해 못하리라. 내일 출근하면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어야겠다.


4/13(금)

11시경에 시청 국장이 ㅇㅎ공원에 방문하여 꽃 축제 코스를 걸어본다 하여 오전에 싸리비로 청소했다. 오후에는 자연마당에서 풀을 뽑는 작업을 했다. 1달에 1번씩 나오는 간식으로 지난달처럼 피자가 나왔다. 공원잔디 위에 둘러앉아 피자와 콜라를 먹었다. 저녁에는 호수공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 막걸리를 마셨다.

4/16(월)

자연마당 물때 묻은 돌 닦기. 돌 밑의 민물고기 우연히 잡혀 어항에 넣다.인천시 환경처 직원들이 둘러보고 공원관리가 지나치게 잘 되었다고. 주변 하얀 돌로 데코레이션.


4/17(화)

ㅈㄱ공원으로 가서 추가로 배접붙이기. 경사면  지저분한 거 제거. 총반장이 좀 일찍 퇴근시켜 주었다. 커피 5잔 정도 마셨다. 처음으로 이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산불방지원과 많은 대화.


4/18(수)

오전에 자연마당의 작약과 함께 서식하는 쇠뜨기 제거 작업. 모란(목단)과 작약은 비슷한데 전자는 나무이고 후자는 다년생 풀. 쇠드기 줄기가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에 캐먹다가 복통이 왔다는 예전 뉴스가 있었다는데, 봄에 처음 올라오는 줄기(곧 죽어버린다고)는 신경통에 좋으나 그후 그 줄기를 밀어내고 올라오는 줄기(오래 유지되어 눈에 흔히 띄게 됨)는 복통을 준다고. 쇠뜨기 줄기는 이와 같이 2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앞 단계 줄기가 몸에 좋은데 뒷 단계에 올라오는 줄기를 잘못 먹고 약효없다고 오해한다고.   

오후에 유채싹에 관수(물주기). 오후내내 북한 노동자들처럼 10분간 휴식없이 쉬지않고 관수 하니 힘들었다.

굵고도 길디긴 무거운 고무호스들의 연결을  다시 분리하여 속에 남아있는 물을 뺀 후 돌돌 감아 외발수레에 실어 과수원에 원위치시키고 오후 일을

(쉬지도 않고 일하는 바람에 당연히) 조금 일찍 관수작업이 끝나  쉬려고 앉자마자 반장 끝나기를 호시탐탐 멀리서 보고 있다가 (내일 해도 될텐데, 팀장이 지나가다 보면 한마디할  거라고) 공원 경사면의 큰돌들  삽으로파서 안보이게 땅속에 묻어라고 전화로 지시가 내려와서 여러 구덩이 삽질하여 파서 돌들 묻었다. 오후 내내 피곤했다. 목도 말랐다.  퇴근하기 바빠졌다.

집에 가는 길 홈플러스에 4캔에 8,900 원 수입맥주 사서 가족과 마시며 고단한 하루 고단한 육체를 위로하였다.
체코 흑맥주 코젤(Kozel)은 체코 프라하에서 마셨던 체코 맥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체코 흑맥주를 반캔 마셨는데도 취기가 올랐다. 아내가 나머지 반캔을 마셨다.


4/19(목)

오전에 2개로 나누어져 작업해온 ㅎㅅㅈ 조와 ㅇㅎ공원 조가 함께 모여 양묘장의 철쭉 210주를 삽으로 파내어 경운기에 실기 위해 길가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경운기에 철쭉 210주를 실은 후 삽을 들고 ㅎㅅㅈ로 걸어서 이동하였다. ㅎㅅㅈ에 도착한 후 곧 도착한 경운기에 실린 철쭉들을 내렸다.총반장이 표시한 지점을 삽으로 팠다. 돌이 많이 나오는 땅은 삽질이 힘들었다. 가급적이면 돌이 없는 쪽부터 파야 일하기가 수월하다. 비료를 뿌려넣고 철쭉을 심었다. 오전에 일이 끝나지 않아 오후에도 동일 작업이 이어졌다. 삽질하는 중에 오후 2시경 분당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명한 사진작가로부터의 고소였다. 이메일로 내용을 적어보냈다는데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나지 않는 생활이라 장기간 메일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내 사정을 몰랐을 작가는 오해를 하였을 것이다. 답신이 없자 고소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사실을 오늘에야 형사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집에 와서 메일을 열어 보았고 저작권 문제가 있는 사진을 삭제 조치하였으며 답신 메일을 발송하였다. 내일은 ㅈㄱㄱ 공원으로 출근하여야 한다. 그래서 퇴근할 때 작업복,안전화까지 들고 오느라 짐이 많았다. 분당 경찰서의 전화는 함께 얹힌 짐이었다. 무수한 삽질에 지친 고단한 하루가 저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처리하느라 밤이 깊어져가고 있다. 잠자리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오늘 퇴근 전 1시간 가량은 족구장의 네트를 수선하였다.


4/20(금)

장ㄱㄱ 공원으로 출근하여 고사목을 지정된 장소로 옮겨 쌓았다.  드러누운 길다란 고사목은 1m 정도의 크기로 톱질으로 잘라 쌓았다. 작업중에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가 손가락을 찔러대었다. 그때마다 손가락에 통증이 왔다. 지저분한 넝쿨 더미도 보이지 않는 숲으로 치웠다. 넝쿨더미 밑에 낙엽 썩은 것들이 물을 머금고 있었다. 김O길 선생과 둘이서 하루종일 반복적으로 그러한 작업을 하였다.  총반장은 김O길의 건의대로 ㅈㄱㄱ공원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공구함의 잠금장치가 고장나서 고치느라 예상치 못한 시간이 소요되어 퇴근시간이 바빠졌다. 옷을 갈아 입지않고 흙 뭍은 작업복 차림으로 퇴근했다.


4/23 (월)

하루종일 비로 인해 공치는 날


4/24 (화)

오전은 자연마당까지 전날 비로 인해 떨어진 나무잔재들 빗자루질.
오후는 유채꽃밭을 삽으로 상단 부분 깎아내고 야자매트를 깔기.물  먹은 무거운 야자매트를 옮겨 깔기. 생고생.

4/25(수)

장ㄱㄱ 공원으로 출근하여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잔재들을  흩트리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죽은  나무가지를  연신 톱으로 잘라내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숲 깊숙한 곳에 버렸다. 잘린 나무 옮기는 중에 생긴 상처인지 손가락 마디가 붓고 아프다.  손가락 피부도 까졌다. 계속 톱질을 하다보니 작업 중간 중간 팔힘이 빠졌다. 향로봉에서 더 큰 톱으로 더 굵은 나무들을 잘랐음에도 힘들지 않았는데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 우스개로 당이 떨어졌다, 하면서 중간 중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총반장은 ㅇㅎ공원에 계속 있는지 여기 장ㄱㄱ공원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ㄱㄱ공원에 상주하는 두 여사님과는 전보다 친해졌다.  3~4번째 이 공원에 파견나와 작업해보니 마음 편한 사이가 되었다. 

4/26(목)

양묘 파트가 곧 이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쪽에서 관리하던 영역까지 우리 쪽으로 즉 공원관리 파트로 넘어올 거라고 한다. 인원은 그대로인데 작업해야 할 영역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게 되어 총반장은 걱정이 많아졌다. 오전은 도로가에서 보이는 큰 나무에 올라가 있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워낙 높은 키로 자란 나무들을 타고 올라간 넝쿨이라 고지톱으로 당겨 내리기도 하고 체중을 실어 내리기도 하고 더위 속에서 탈진할 정도로 작업을 했다.  넝쿨과 톱으로 잘라낸 죽은 나무는 움푹 파진 곳으로 옮겼다. 용적을 줄이기 위해 안전화로 밟았다. 안전화에 밟힌 나뭇가지들은 기가 죽어 몸집이 줄어든다. 간혹 큰 나무가 반항을 하며 무릎을 친다. 작업 중에는 몰랐는데 퇴근 무렵 무릎이 아파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큰나무가 밟히면서 저항을 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유채밭 옆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깔린  야자매트의 빈 부분을 기존 헌 야자매트를 갖고와서 빈 모양에 정확히 맞게 낫으로 잘라내어 야자매트를 채우는 작업을 했다.
작업이 끝나고 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 애매하게 남게 되자 총반장은 여성동지들 작업에 지원부대로 투입시켰다.  잡초를 봅았다.

4/27(금)

하루종일 연꽃밭에 들어가 무릎 가까이까지 올라오는 물에서 발이 푹푹 빠지는 뻘 속에서 큰 키로 자란 부들 등 연꽃에게 해가 되는 것들을 삽으로 찍으며 뿌리채 뽑아 논둑에다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오후 작업중 힘이 빠져 더럽고 악취가 심한 연꽃밭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빠졌다. 근처 양묘 파트로 가서 수돗물로 옷을 입은 채로 몸에 물로 대충 씻었다.

4/30(월)

하루종일 연꽃밭에 들어가 부들을 뿌리채 뽑아 논둑으로 옮겼다. 뻘에 깊이 들어간 발목을 빼드라 위기의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이 날은 다행히 연밭에 빠지지 않았다.

  
5/1(화)

쉬는 날. 10시까지 남동경찰서 출두 위해 누적 월차 (1 of 2) 사용.

5/2 (수)

비가 와서 공치는 날. 일당 없음.

5/3(목)

하루종일 붉은 연산홍과 분홍색 연산홍을 양묘장에서 삽으로 캐어 내어 대형트럭에 실고, 자연마당에 내려 꽃나무들을 심었다.
퇴근 전 1시간 30분 정도는 소루쟁이(소리쟁이)를 삽을 깊이 넣어 뿌리채 뽑았다.
잡초 취급 받는 소리쟁이는 의외로 여러 약효가 있다고 한다. 피부병,이뇨,위장병에도 좋고 샴푸 대용으로도 사용된다고. 암에도 좋다고.  그런데 왜 잡초 취급을 받는 것인가? 하기사 뿌리가 깊고 굵게 자라 예초기로 쳐대도 떡이 될망정 끊어지지 않으니 공원에서는 적군.


5/4(금)

마ㅈ공원으로 몇 대의 차에  나누어 대부분의 노동자가 출발하였다. 총반장은 작업을 5시에 종결하고 ㅇㅎ공원 노동자 대기소로 돌아와서 퇴근하라고 하였다. 나중에 들어 알게 된 거지만 그는 ㄱㅇ공원으로 가 있은 모양이었다. 하루종일 마ㅈ공원에서 호미로 관목 주위와 관목 안의 잡초를 제거하였다. 여성동지들의 전문 작업이어서 일하는 걸 보니 관목 안을 끌고는 배를 드러내고 뒤집어진 잡초까지 바깥으로 끌어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뿌리가 드러난 채 무장해제가 된 잡초는 태양이 내리쬐니 말라 비틀어지고 관목의 거름이 될 터인데 말이다. 동료 O무O 선생 왈, 작업후 깨끗하게 보이게 하려고 그럴거요. 잡초도 귀한 생명을 가진 풀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이득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에 따라 해가 되면 잡초가 된다.  관목 속의 잡초 잔재도 관목에게 이득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작업반장이 보았을 때 작업한 결과가 좋게 보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지가 결정되는 셈. 잡초 중에 나중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야생화도 있을 것이다. 가드너 자격증을 갖고 있는 O무O 선생은 그런 풀은 그냥 남겨두고 지나가는 눈치다. 풀 이름을 자꾸 알려주는데 젊은 나이가 아니어서 잘 머리 속에 외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식은 작업에 도움이 된다. 모든 풀이 잡초로 보여 그냥 긁어내면 되니까. 그러나 유식한 O무O 선생은 잡초로 보이지 않는 풀들을 호미로 무조건 끍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간혹 가슴이 아플 것이다. 많이 알수록 마음의 상처도 많아지는 법이다.
ㄱ재ㅊ 선생이 월매를 한 잔 주길래 마셨다. 안주 없이 먹어서 그런지 하루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잡초를 뽑고 모여진 잡초는  숲 속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버렸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는 곳이라 숲에서 오줌을 누었다. 버린 것은 잡초 잔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동지들은 ㅇㅎ공원 노동자 대기소로  돌아오자 참았던 걸 해결하려는지 한꺼번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봉급이 들어왔다. 140만원. 4대 보험중 건강보험만 떼어간  첫달과는 달리, 2째달 봉급부터는4대보험 모두 떼어나가는 결과가 반영된 것. 고생했다고 총반장이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시켜주었다.

5/5(토)

잦은 삽질 탓인지 팔꿈치가 계속 아파 정형욋과를 갔다. 병원들이 문을 닫았다. 월요일까지 연휴라서 휴업이라고 붙여 놓은 의원이 많았다. 정형욋과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있지 않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헛걸음을 한 셈. 토요일 외에는 병원에 갈 수가 없는데 또 한 주가 물리치료 받지 못하고 지나가야 한다. 병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빌딩을 나왔다.
재래시장에 들러 친구에게 점심 먹고 오라,하고 가게를 봐주었다.  커피를 거기서 한 잔 마셨다. 일 없는 날은 집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이라 가끔 들리는 곳이다. 연휴라 고속도로가 붐빈다는데, 나는 믹스 커피 한 잔으로 나누는 친구와의 담소로 한 주의 피로를 푼다.

5/8(화)

하루종일 연꽃밭에 들어가 부들을 뿌리채 뽑아 논둑으로 옮겼다. 고무장갑을 준비해갔다. 그래서 손에 썪는 내가 나는 걸 방지할 수 있었는데 점심식사할동안 젖은 고무장갑을 트럭 밑에 두고 물기가 마르도록 했는데 오후 작업 시작하려고 트럭 밑을 보니 누군가가 훔쳐 갔다. 어쩔수없이 오후에는 목장갑을 끼고 뻘밭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부들을 포함하여 연줄기가 아닌 것은 운반수단인 스치로폴 박스에 일단 실은 다음 연밭 물 위를 화물선처럼 밀어 논둑으로 가서 실려 있는 뻘범벅인 수생 잡초더미를 눈둑 위로 던졌다. 퇴근 직전 비누칠을 여러번 했음에도 썩는 내가 가시지 않았다. 며칠 가야 없어질정도로 지독한 냄새. 오죽하면 미꾸라지조차 없는 연밭일까? 내일도 동일한 작업이라는데 온몸이 쑤시는 하루. 이병O 선생 왈, 물 속에서 하는 노동은 힘들 수밖에 없어.
어버이날인데 늙은 어버이들에게 굳이 이런 작업을 오늘 시켜야 되나,하고 우스개로 내가 말했더니 동료들이 공감했다.


5/9(수)

하루종일 연밭에서 연을 제외한 잡초들을 뽑았다. 부들,물고챙이골,세모고랭이,바랭이풀이 바로 그것이다. 키가 다 자란 부들들은 뿌리가 깊어  쇠고랑이로 흔들어대어도 뿌리채 뽑아내기 힘들었다. 이 경우는 삽이 필요하다. 간식으로 가지고 온 식빵과 딸기잼을 나무 아래 그늘에 두었다가 참으로 먹었다. 연밭에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옷에 뻘이 튀어 악취가 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목이 마르다. 귀가하면 샤워를 하고 시원한 캔맥주 마시고  싶어졌다. 이병O 선생이 농담으로 도토리라면서 검은 연 씨앗을 8개 건네주었다. 이무O 선생이 뿌리가 나올 한 쪽 끝내 스크래치를 내고 심으면 된다, 그 반대쪽에 스크래치 내면 안되고,라며 설명해주었다. 아내가 키워볼 모양이어서 전달하였다.

5/10(목)

양묘장에서 맥문동을 삽으로 캐내어 삽날로  잘게 나누었다. 심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다. 뿌리에 콩 같은 것이 많이 달려 있다. 오래된 맥문동에만 달려 있다고 한다. 진해,거담제의 약효가 있다. 시간이 나면 뿌리에 매달린 것들을 떼어내어 모아서 약으로 달여 먹으면 좋겠는데, 노동 현장은 그런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잘게 나눈 맥문동의 뿌리에 붙은 흙은 털어내고 죽은 잎은 미관상 좋지 않으므로 일일이 제거하여야 했다. 그리고 외발수레에 잔뜩 실고 맥문동을 심을 도로가의 화단 예정지로 옮기기를 반복해야 했다. 양묘장에서 마지막 맥문동들을 실은 외발수레를 밀고 와서는 화단 예정지에 흙을 뒤집고 총반장의 지시대로 정사각형 패턴으로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무O 선생이 V 패턴으로 심어야 맞다고 고집을 부렸다.  2인 1조가 되어 1명은 심을 자리를 삽으로 파주고 그 자리에 다른 1명은 맥운동을 심어나가야 하는데, 같은 조가 된 나의 입장이 난처하였다. 총반장 지시에 맞던 틀리던 따라야 할텐데, 더 전문적인 원예 과정을 밟은  이무O 선생이 다른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우니, 에라 혼나더라도 같은 조가 된 이무O 선생의 의견대로 V 패턴으로 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하다보니 혼자 1인 2역을 하게 되었는데 호미로 파서 맥문동을  정사각형으로 심어나가게 되었다. 김재O 선생이 조밀하게 심어나가지 않고 간격이 많이 떨어지게 심어 나간 데를 뒤이어 심어가다보니 간격이 들쑥날쑥이 되어 갔다. 총반장이 나보고는 심지 말라고 하여 심는 걸 그만두고 여성동지들이 심는 걸 도와주었다. 맥문동의 죽은 잎을 뜯어내고 보기 좋은 맥문동으로 변모시켜 던져 주었는데 그 일도 손이 바빴다. 퇴근길 직장 근처에서 착한 가격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세븐일레븐에 들러 수입맥주 4캔(1만원)과 안주로 과자 2봉지를 사서 수변공원에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후진국일수록 서민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값이 싸야 한다고 이무O 선생이 말했다. 어두워지면서 찬바람이 불었다. 생맥주를 실내에서 마시면 춥지 않을텐데, 공원 벤취에서 캔맥주를 마시는  두 노동자는 점점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낮과 저녁 기온이 차이가 아직은 컸다. 움직이면 덜 추울 터 우리는 15분 거리의 호수공원까지 걸어갔다. 나에게는 조경을 처음 접한 전 직장이고 이무O 선생은 말로만 듣던 공원이라 직접 보고 싶어 하여 시간은 많이 되었지만 걸어갔다.  호수공원을 보고 도로 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여 집으로 귀가하였다.  

5/11 (금)

자연마당에서 잡초를 하루종일 뽑았다. 총반장의 작업 지시가 불분명하여 빠뜨린 부분이 발생했는데, 연못가라서 작업하기 힘드니 서로 미루다가 안하고 지나간 걸로 오해하고 소리를 질러대고 잔소리를 하였다. 좋게 낮은 옥타브로 서로 대화하면  오해가 없이 작업이 잘 진행될텐데, 생고생을 하면서 안좋은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다. 이 문제를 총반장이 퇴근 시간에 재차 집고 넘어가느라고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화가 난 이무O 선생이 정확한 작업지시를 지적했고, 총반장은  예기치 않은 작업현장을 접하더라도 개인적인 판단은 하지말고 무조건
 지시대로 하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충돌이 예상되었다. 반장이 오해한 부분은  비탈지고 잘못하면 호수에 빠질 수 있는 경사면이라 안하고 넘어간 거 아니냐는 것인데, 그건 아니라고 평소에 조용한 내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고, 그런 오해는 큰 충돌을 불러올 수 있으니까 그냥 묵묵히 앉아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60대 70대로 구성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이해도가 젊은이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작업지시를 해야 하는데, 20~30대에게 지시하듯이 대충 작업지시하면  제대로 전달이 안될 수 있다. 답답해 하며 소리부터 질러대니 이해 안가는 경우 정확한 작업지시를 되묻기도 어려울 때도 종종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좋은 소리 못들은 기분 나쁜 하루가 오늘도 발생하였다.

5/12 (토)

정형욋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타왔다. 왼쪽 팔꿈치 안쪽의 뼈에 몇 주째 또 통증이 재발하였다. 지난 주 어린이날 연휴 기간중 병원이 휴무라서 발걸음을 되돌렸었다.  토요일 외에는 병원 갈 수 없는 직장 현실이라 토요일 못 가면 다음 주 토요일까지 치료를 연기할 수 밖에 없다. 자고 일어나니 오른 손 엄지 손가락 첫 마디가 피가 통하지 않은 것처럼 찌릿찌릿하였다.  왼쪽 팔꿈치는  삽질 탓이고 오른손은 하루종일 호미질과 맨손으로 수많은 잡초들를 뽑은 탓이다. 뽑히지 않으려는 잡초들의 저항 탓이다. 
50분 작업후 10분 휴식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텐데, 몸에 무리갈 정도로 노인네들을 몇 시간 작업을 시켰다가  10~15분 쉬게 해주는 현재의 휴식방식은 시정되어야 한다.

5/14 (월)
  
자연마당에서 예초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하루종일 3인이 예초기를 등짝에 짊어지고 예초하였다. 3인은 나를 포함하여 이병O 선생,김재O 선생. 막내이다 보니 비탈의 높은 곳을 맡았다. 예초하다가 비탈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면 돌어가는 예초 헤드의 끈에 신체가 다칠 수 있다. 발에 힘이 들어갔다. 김재O 선생은 자영업자처럼 혼자 움직이니 논외로 하고, 이병O 선생과 함께 움직이며 잔디와 잡초를 깎으며 전진해 나갔다.  칭찬에 인색한 총반장이 시원시원하게 예초한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작년 처음 조경 일을 하면서 예초기를 만져보았는데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당시 잔소리가 지나치게 많은 이동O 반장은 흠을 잡으며 사람의 기를 죽였고, 나중에는 1군에서 2군으로 프로 선수가 떨어지듯이 예초기를 잡을 기회를 많이 박탈했다. 기간제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어디든 선비가 있는 법이어서 염효O 선생이 예초기 사용방법에 대해 같이 작업하며 가르쳐 주었다. RPM을 세게 하여야 한다는 것, 줄이 길게 나와야 원심력이 세어진다는 것. 토끼풀은 예초기 헤드로 그자리에 그대로 때리면 된다는 것. 기본적인 요령이지만,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내용이었다. 염효O 선생 외에는.
오늘부터 예초를 할 거라고 지난 주에 총반장이 말했을 때, 나의 부족한 예초 실력을 보강시킬 좋은 기회라는 기대와 함께, 예초를 그 따위로밖에 못하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 총반장이  칭찬을 하니 데뷰전은 첫 시작이 좋다. 땡볕에서 하루종일 예초하였으니 목이 말랐다.


5/15 (화)

자연마당에서 하루종일 예초기를 짊어지고 예초했다. 총반장은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여름 더위가 온 이 날은 예초기를 든 팔의 힘이 떨어져 땅바닥에 떠 있지 못하고 흙을 때리게 되면 쉴 때가 된 것이다. 
쉬는 시간 염효O 선생에게 전화했다. 전직장에서  기간제 기간이 끝날 무렵, 예초를 못한다고 뒷담화하던 동료들  소리를 듣고  염선생이  고맙게도 이틀 정도 요령을 가르쳐주었었다. 그래서 현직장에서는 시원시원하게 예초들 잘하신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예전 전산 프로그래머 시절, 신입 직원이 들어오거나 다른 팀에서 고참 직원이 인사이동으로 우리 팀에 오게 되면 그들이 업무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뻔한 일. 그래서 10번이고 100번이고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는 내가 짠 프로그램을 주며 이것을 참조하여 조금 고치면 될 거라고  도움을 주었다. 


5/16 (수)

연ㅎ공원 훼손지의 억새밭에서 하루종일 잡초를 뿌리채 뽑았다. 윤 대장이 호미로 하지말고 손으로 뽑아라고 그래야  속도가 빨라진다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 억새와 비슷한 모양의 잡초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잎 중간에 줄이 그어져 있다는 점. 뽑았을  때 쉽게 뽑히지 않고, 심기전에 담겨 있었던 간이 화분,즉 포트의 형상으로 뿌리의 흙덩어리가 올라오면 억새라고 판단하면 되었다. 잡초로 착각하여 뽑으면 도로 심고 밟아주더라도 억새는 생명력이 강해 잘 자란다고 한다. 어린 억새 같더라도 쉽게 뽑히면 잡초구나 하고 버렸다.

이 날과 다음날의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하루종일 비 예보가 되어 있어서 공치는 날이라 생각되어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총반장으로부터 기다리던  출근하지말라는 문자 통보가 오지않아 7:50경에는 출근이 바빠졌다. 점심에는 짜장면 곱배기를 시켜 먹었다.
출근 시간에는 비가 쏟아졌으나 의외로 작업할 때는 이슬비로 바뀌었다. 그러나, 점심 시간에만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오전만 일하고 퇴근시키나 하고 윤 대장은 그럴 경우 날아가는 반토막 날 일당을 걱정하였다. 그의 바램을 하늘이 들어줫는지 다행히 오후에는 비가 그쳐 억새밭의 잡초뽑기 작업을 재개했다.  이슬비 속에서 작업도 하다보니 젖은 흙이 엉덩이에 잔뜩 묻고 하얀팬티가 흙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음날도 전국적으로 비가 오므로 동료와 번개모임을 하였다. 김경O 선생의 동네에서 7천원짜리 버섯 매운탕에 술을 곁들였다. 3인이 모였는데 33,000 원이 나왔으므로 1인당 11,000 원씩 걷어 계산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생각하면 참으로 착한 밥상이요 술상이다. 예초 일기를 쓰고 있다는 전직장 동료 서흥O 선생은  최근 깨달은 예초 비결을 말하느라 신이 났다. 거의 대부분 현직장에서 이번 주  며칠간 예초하며 자연스럽게 나도 알게 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5/17 (목)

비 예보가 하루종일이어서 공치는 날이라 생각했는데, 총반장으로부터 문자가 오지 않아 출근했다. 비가 쏟아져 9시가 되자 퇴근을 결정하였다. 차비를 들이고 출근했는데 허무하게 퇴근하면 오전의 절반이 출퇴근 시간으로 헛되이 날아가는 것이다. 아예 출근하지마라고 문자 왔으면 그러한 낭비가 없었을텐데 말이다.  평일은 반값이라는 동네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하고,  엄청나게 굵은 통나무를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굴려 옮기는 작업 중에 힘을 쓰는 동료 김재O 선생의  팔꿈치가 내 면상을 때려 썬글라스 한쪽 다리가 부러져 나갔었는데 안경점에 수리를 맡겼다. 썬글라스는 1만원에 샀었는데 납땜하는 수리비가 8천원. 작년 한 해 조경일을 하며 유용하게 사용했고 정이 든 썬글라스라서 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때마침 공치는 오늘 검찰청에 출두하라는 전화가 와서 오늘 가겠다고 약속하고 출두하였다.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였던 것이다.

 5/18 (금)

오전에 이슬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하루종일 예초하였다. 공원 잔디밭(자연마당)에  물이 고인 데도 있어서 그곳의 잡초들을 쳐나갈 때는 물이 튀었다. 지난 화요일 예초중에 동료는 풀섶 속에 숨어 있던 뱀을 쳐서 두 동강을 냈다고 기분 찝찝해 했다. 예초를 하다보니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예초는 힘든 작업이어서 틈틈히 휴식을 가져야 한다.  총반장이 없을 때는 예초기를 든 팔에 힘이 빠질 때가 되면 좀 쉬었다고 하자고 동료들 간에 서로 말하여 같이 쉰다. 예초기 소리에 시끄러워 들리지 않으므로 작업자 근처까지 가서 두 손으로 X자 표시를 보여준다. 작업 중지. 휴식의 의미다. 주위에 동료가 보이지 않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총반장이 인원 빼어 다른 잔디밭에 예초하도록 보냈음. 예초를 종료할 시간에 큰 덩어리를 맡기는 바람에 전력질주하듯이 끝내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동료가  늦어진 퇴근길에 말했다.- 팔의 힘이 떨어져 장비를 끄고 5분이라도 쉬었다. 저 멀리 동료가 예초기를 돌리는 게 보이고 총반장이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는 눈이 보였다. 여기 기업문화는 북한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천리마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목표량을 어느 정도 끝내야 잠시 쉰다는 식인데 연식이 있는 노동자들이라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올해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노동을 하다보니 팔꿈치가 아파 정형욋과를 들락거려야 했다. 새로 생긴 병이다. 전직장에서는 손가락 관절염이 당시 새로 생긴 병이었고. 아프다고 아무 때다 병원에 갈 수 없다. 토요일 밖에 병원 갈 시간이 없는 직업이다. 토요일 무슨 급한 일이나 약속이 있으면 그 주는 병원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손가락 관절염은 발생 시키는 직업을 그만두면 낫는다, 호전된다고 한다. 그만두고 다시 동일 직업을 갖게 되면 휴화산처럼 손가락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다시 재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예초 실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직업적인 욕심과 함께 손가락 관절염이 재발할까봐 불안감이 상존하였다.  퇴근을 위해 작업 종료해야 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고 총반장이 쳐다보는 이유는 작업중이던 잔디밭을 혼자서 마무리하라는 뜻일 터 5분 쉬고 일어나 전속력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예초기의 RPM을 올렸다. 진동이 그만큼 심해지므로 장시간 큰 진동에 노출되면 예초기를 든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노동자는 몸이 노동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그렇지 않겠지만, 사무직, 전문직 출신들의 몸은 어느 약한 부위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주로 관절 부위다. 
5시에는 예초를 종료하고 예초기를 정비하여야 할텐데 총반장은 30분 더 예초 작업을 시켰다. 늘 장비를 정비할 시간이 없다.  오늘은 퇴근 전에 얼굴에 묻은 풀 조각들을 씻을 시간이 없었다. 전철 화장실에서 얼굴과 목을 씻었다.

5/19 (토)

자고 일어나니 오른 손가락들의 관절과 손목이 불편하였다. 
어제 막판에 예초기의 RPM을 크게 올리고 바삐 마무리하느라 예초기의 큰 진동에 손가락 관절염이 재발하였다. 동네 정형욋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팔꿈치에는 뼈 주사를 또 맞았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서 자주 맞는 거는 부작용이 있다는데 노동을 위해서는 통증이 줄어들어야 하고 진퇴양난.


5/20 (일)

대천 해수욕장으로 봉사단체 야유회를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행담휴게소에 고속버스가 정차했다. 테이프와 바르는 약으로 노동으로 아픈 테니스엘보, 무릎 통증에 효능이 있다는 걸 홍보하기 위한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아픈 팔꿈치를 치료(?) 받았다. 성능을 알 수 없으니 제품 구매는 미루고 안내서를 받았다.


5/21 (월)

암석원 아래 비탈에서 예초를 하였다. 이번 주 논에 모 심기 행사가 있어서 배경이 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엄망진창으로 자란 잡초를 깨끗하게 잘라버리려는 것이다. 발을 헛디디면 아래의 도랑으로  굴러 떨어질수 있어서 조심하면서 예초를 진행하려니 경력자라 할지라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예초를 해 나가다 보니 잡초가 아닌 갈대가 무리를 지어 있었다. 갈대는 일부 남겨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비탈 위쪽에 있는 갈대는 일부 남겨두면서 예초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진행하다보니 갈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므로 관목을 기준선으로 삼아 아래 쪽은 모두 예초하는 게 결과물이 깨끗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뒤로 틀어 일부 남아 있는 갈대들까지 다 예초하였다. 일하다 보면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굵은 철사가 수풀에 있어서 예초기의 헤드가 그 속에 끼게 되었는데 큰 소음을 내더니 헤드가 회전을 멈추어 버렸다. 상하가 분해되어 버렸다. 도랑 위에 떠 있는 헤드의 아랫 부분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실(끈)이 나오는 눈 두 개가 사라졌음을 곧 깨닫고 예초 잔재물을 뒤지며 찾기 시작했다. 회전 중에 분리되며 날아갔을 테니 도랑물에 떨어졌거나 연밭에 떨어졌을수도 있다. 애초에 눈을 찾을 가능성은  현장의 사정상 거의 없다. 다행히 조장 역할을 하는 김만O 선생이 눈 2개를 보관하고 있어서 그것으로 대체하였고 노란 실을 감아 헤드에 넣고 고정시키는 방법을 그가 가르쳐주었다. 이전 직장에서 들은 내용이지만 사람마다 약간씩 방법이 다를 때가 있어 더 정확한 방법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총반장이 휴가가 아니었다면 분실된 눈 때문에 잔소리가 심했을텐데 작년에 사용하던 재고가  김만O 선생에게 있었으니 천만다행. 아침 출근길에 자몽 쥬스 3곽을 배낭에 넣었다. 퇴근길에 지하철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까지 자신의 소형 트럭에 태워주는 이병O 선생 덕에 절반만 걸어가면 되었기에 고마와서 퇴근 트럭에서 드릴려고 배낭에 넣은 것이다. 퇴근 트럭 안에는 운전자인  이병O 선생과 나,김만O 선생이 탄다. 자몽 쥬스 3곽을 나누어 주고 차 안에서 마셨다. 우연히도 오늘 예초기 눈을 해결해준 김만O 선생에게는 예초기 헤드의 눈 문제 해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된 셈이다. 예초 실력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자신감이 붙고 있다.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었으면 어려운 기술이 아닌데, 전직장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없이 잘못한다고 기를 죽이고 예초 기회를  잘 주지 않고 힘들고 빛나지 않은 일을 반장이 많이 시켰다. 그런데 현직장에서는 1주일 후 2주차에도 계속 예초기를 맡기고 있다. 총반장이 쉬는 오늘은 처음으로 예초기 정비를 하였다. 얼굴에 예초 잔재가 묻지 않으려면 예초기 헤드를 약간 숙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약간 들어야 한다고 이병O 선생이 알려주었다. 이 방법은 전혀 들은 바 없는 방법이다. 다음 작업 때 사용해봐야겠다. 억센 키 큰 잡초더미는 예초기 헤드를 약간 숙이는 게 맞으나, 그 외는 반대로 약간 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얼굴에 예초 잔재가 날려와 덕지덕지 붙지 않는다고.

5/22 (화)

사월초파일 청학사에 가다.

5/23(수)

자연마당의 가장  넓은 덩어리를 하루종일 예초하다.


5/24(목)

자연마당의 가장  넓은 덩어리의 남은 부분을 오전에  예초하여 마무리지었다. 일찍 작업이 마무리되어 점심 도시락을 일찍 열었다. 이런 날도 있구나. 평소보다 길어진 점심시간 김무O 선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예전 직장의 상사 이야기도 나왔는데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인 것 같다는 이야기 등등.

 오후에는 경사가 심한 비탈을 예초하였는데, 비탈의 윗 부분에  삐삐선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가 예초기의 헤드에 심하게 돌돌 감겼다. 여러 차례 감겨서 풀며 작업을 다시 진행했는데, 마지막에 감긴 놈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될 지를 모를 정도로  심하게 감겼다. 휴대용 칼로 삐삐선을 자르려 애썼으나 칼이 부러졌다. 중국산 싸구려 칼이 비삐선을 자르기는 커녕 제 스스로 부러져 나간 것이다. 비탈 아래 총반장이 멀리서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었으니 일하지 않고 요령을 피우는 걸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가까운 비탈에서 예초 작업 중인 김재O 선생의 칼을 빌렸다. 성능 좋은 국산 칼이다. 삐삐선이 잘 잘라졌다. 비탈 아래의 평지로 예초기를 들고 내려갔다. 가파른 비탈 위보다는 평지에서 헤드에 감긴 삐삐선을 풀거나 잘라내는 것이 더 쉴울테니까. 어느새 총반장이 비탈아래 평지에 와 있었다. 설사 오해를 하였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감긴  삐삐선을 보는 순간 오해는 풀렸을 것이다. 국산 칼로 잘라낼 생각이었는데, 총반장은 감긴 삐삐선을 손으로 차근차근 잘 풀었다. 눈이 밝은 사람인듯.
다시 비탈을 올라가 예초하기 시작했다. 헤드의 바닥을 땅에 때리면 실이 양쪽 눈을 통해 조금씩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헤드가 회전하면서 잡초를 자른 과정에서 실은 점점 닿아  짧아지므로  작업 중간 중간 실이 나오도록 헤드의 바닥이 땅에 닿도록 땅바닥을 때려야 한다. 그런데 실이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평지로 내려가서 헤드의 뚜껑을 열어 실을 다시 감아야 한다. 이 부분은 아직 숙달이 덜 된 부분인데 하필이면 총반장이 현재의 작업장에 와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거참.  실을 감아 눈에 끼어야 되는데 전직장의 예초기의 눈은 헤드에 착 달라붙어 고정되어 있어서 쉬웠는데 여기는 예초기의 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꾸 빠져나오니 과도기라 그렇겠지만 다시 잘 감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쉬려고 요령을 피운다고 동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이 일하다보면 성실함을 알게 되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는데, 조경 일을 해보면 이 일의 종사자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오늘 당장 만을 보는 것 같다. 같이 일하면서 그날따라 몸이 안좋아 작업 속도가 늦어지는 경우 저 양반이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보다,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요령을 피우는구나 그래서 저 인간때문에 오늘 전체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게 되었구나,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가방끈이 짧아서 이해폭이  좁은 것일까? 좀더 분석해봐야 할 것 같다.
예초 작업을 마무리후 장비를 정비하였다. RPM을 올릴 때 갑자기 엔진이 꺼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김재O 선생이 연료 뚜껑을 너무 꽉 돌려잠그면 공기가 없어서 기름이 내려가지 않아 엔진이 꺼지는 것이므로  연료 뚜껑을 한번만 돌려야지 여러번 더 돌려 잠그지 말라고 하였다. 처음 듣는 정보. 대우 자동차 디자인을 하였다는 김무O 선생이 연료를 너무 채워 공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뚜껑을 여러 차례 돌려 꽉 잠구었을 때 발생하겠다,고 말했다. 진공 상태가 문제이구나. 하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낡은 구 제품이라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엑셀을 올려(당겨)놓고 시동 줄을 당기곤 했는데 그래도 안될 때가 더러 발생했다. 이 때는 붉은 전원버튼(원래는 작업 종료시 시동 꺼는 버튼)도 눌러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 저것 다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오늘 예초기 정비 중에 동료들에게서 배웠다. 실이 잘 안 나오는 것은 감긴 실이 너무 꽉 당겨 감는 바람에 교차되어 눌려서 눈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므로, 꽉 감지 말고 적당히 힘을 주며 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헤드의 위에 끈이 많이 감기면 헤드를 분리시켜야 하는데 못을 구멍에 넣어 꽉 고정된 상태에서 헤드를 돌리면 분리가 되는데, 시계 방향인지 반시계 방향인지 헤깔릴 때가 있는데, 헤드 윗면에 화살표(헤드의 회전 방향)와 동일한 방향으로 돌리면 헤드가 풀린다고 외우면 된다.
그리고   실을 감은 후 헤드 속에 넣을 때 톱니 밑에 톱니가 넣어져 고정된 상태(LOCK)에서 헤드 상하를 결합시키면 실을 눈 양쪽에서 당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unlock상태가 되어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만약 톱니 밑이 아니라 톱니 옆에 나란히 끼운 톱니가 위치한 상태(unlock상태)에서 헤드 상하를 결합시키면,  실을 눈 양쪽에서 당겨줄 필요가 없고 당겨도 당연히 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 헤드의 아래 불룩한 원이 눌렀을 때 들어갔다가 나왔다가가 되어야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다. 아니면 다시 분해하여 재결합해야 함.

오늘 오전 작업 중 김재O 선생의 예초기 속의 용수철이 열에 녹아 끊어졌다. 원인 분석 위해 예초기를 분해하였는데 구경하였다. 처음 보는 분해이니 공부가 되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많이 배운 날.

"집에 있으면 마음 고생 집 밖을 나오면 몸이 고생"이라고 말했더니 김무O 선생 왈, 몸 고생은 그날 저녁에 잠을 자면 해결된다고. 그렇다. 마음고생은 당일 저녁 잠만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 오랜 시일이 걸릴 수도 있어 육체의 힘듬보다 훨씬 더 힘든 것이다.


5/25(금)

오전에는 경사가 심한 비탈을 예초하였다.   오후에는 내일 손 모심기 행사장 주변의 잔디와 잡초를 예초하였다. 잔디 깎을 때는 예초기 헤드를 기울이지 않고 수평으로 깎아야 된다고 총반장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풀이 길지 않으니 헤드 밖으로 실을 더 길게 내어 에초하고 너무 잔디를 바짝 깎지 말라고 김만O 선생이 지나가다가 훈수하였다. 내일은 1시간 일찍 출근하여 행사장의 천막 등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총반장이 말했다.
내일은 힘든 노동이 없을 것 같아 퇴근길 편의점에서 김무O 선생과 캔맥주를 마시고 귀가. 4캔에 5천원 스페인 맥주 버짓마스터가 없어서 4캔에 1만원 수입맥주를 사서 마셨다.  
4캔에 5천원은 그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기간제근로자를 위한 맥주가 들어왔구나,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달 월급이  세금 떼니 140만원 정도. 그러니 스페인 맥주 버짓마스터는 노동자를 위한 맥주!  세븐일레븐에서 1번만 살 수 있었을 뿐 나머지는 늘 구입에 실패. 다른 노동자가 사간 걸가? 아니면 냉장고 전기세도 안나온다고 업주가 들여놓지 않거나 극소량만 들여놓은 탓인가?

5/26(토)

오전은 천막을 치고 플랭카드를 달았다. 10시가 되자 참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팀장이 모 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김무O 선생과 나는 모줄을 들고 이동하였다. 어린이와 부모들이 논에 들어와서 모를 심어나갔는데 모줄을 제대로 일정간격으로 이동한 탓인지 모들 간의 간격이 일정하게 잘 심겨졌다. 팀장 말에 의하면 모줄잡이는 농사꾼 막내가 하는데 논 면적이 넓으면 쭈구리고 앉아 있다가 이동을 계속 반복해야 하므로 매우 힘든 일이라고.
오후에는 족구장의 잡초를 뽑았다. 출근이 1시간 당겨진 만큼 퇴근이 1시간 당겨졌다.
손가락을 뾰족하게 모은 상태에서 뿌리가 손바닥 바깥으로 노출되지 않게 하여 논바닥에 2~3 cm 깊이로 모를 꽂으면 벼는 웬만하면 산다고 한다. 뿌리가 논물에 둥둥 떠다니지만 않으면. 

1주일 전에 안경점에 수리 맡겼던 작업용 선글라스를 찾았다. 홈플러스  청라점 안의 안경점에서 유행이 지난 것을 운좋게 1만원에 산 것인데, 엄청나게 굵은 통나무를 3~4명이 달라붙어서 용을 쓰며 굴려대다가 김재O 선생의 팔꿈치가  내 얼굴을 세게 쳤었다. 그 바람에 선글라스 다리가 부러졌다. 안경과 다리 사이의 연결쇠가 떨어져 나간 것인데 땜질하는 수 밖에 없단다. 수리비가 8천원.  홈플러스  청라점에 들러 새 선글라스를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으나 완벽하게 눈을 가려주어 예초작업 중 돌이 튀어 눈을 때리더라도 완벽하게 막아주는 안경이기도 하고 지난 해동안 조경 작업을 하면서 잘 사용했면서 깊은 정도 들고 하여 수리하였던 것이다. 1년전 소문을 듣고 홈플러스  청라점 안의 안경점에 들렀던 때가 떠오른다.  5만원부터라고 진열대에 적혀 있었는데 험한 작업용으로 쓰려는데 싼 것이 있느냐 물었더니 유행이 지나 팔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1만원에 가져가라고 30대 주인이 말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일 경우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원 현장에서 노동을 해야 하니 미세먼지를 8시간 내내 마실 수 밖에 없고, 내리 쬐는 태양 아래에서 종일 일해야 하니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눈에 나쁠 것이다. 선글라스를  쓰면 눈이 보호되어 안구건조증도 심해지지 않았다. 작년에 호수공원에서 같이 근무한 염효O 선생이 눈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쓰기를 권했고 그의 말을 듣고 난생 처음 선글라스를  쓰고 공원일을 하게 되었다.

5/28(월)

공치는 날. 자동차 정기검사 위해 누적된 월차(2 of 2) 사용.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밀린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 피곤.

5/29(화)

아침 업무지시 시간에 총반장왈, 연뿌리가 2년 되면 새로운 뿌리가 내리고 2년된 거는 썪는다. 지난 번 우리가 연밭에서 뽑은 게 바로 2년 된 것이라고. 부들과 갈대는 어린 연에게는 적이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예초작업 3주차. 하루 돌리지 않았더니 엑셀 오려 에초중에 헤드 회전이 이내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매번 엄지로 엑셀을 올리니 엄지가 아프다. 
총반장이 내 예초기를 가지고 갈대밭 주위에 임시 통로를 내 보더니 기계 성능이 따라주지 않으니 힘들었던 모양. 퇴근 직전에 직접 수리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오늘 키대로 자란 잡초 무리를 예초할 때, 달리 비유하자면 마치 무딘 칼로 힘으로 잘라대느라 하루종일 더 힘들었는데, 내일 북부의 공원에 가서 예초할 때는 마치 잘 간 칼처럼 훨씬 힘 안들게 잘라댈 수 있으리라.
휴식중 김재O 선생이 1969년 실미도에 HID요원으로 있을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제대후 정신적인 후유증으로 의사처방에 따라 3개월이상 산에서 먹고 자고 하다보니 깨끗이 나았다고. 대단한 사람. 나도 남한에서 가장 춥다는 격오지 향로봉에서 군복무하며 생고생을 했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였으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생이었다. 전리품을 지니고 헤엄쳐 돌아오는 중에 피냄새를 맡은 상어에게 한쪽 다리가 짤린 채 육지로 올라와 스스로 지혈 위해 허벅지를 묶었지만 결국 사망한 동료의 시체. 
피로하여 저녁에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화요일이라 성당 봉사단 모임이 있는 날. 피곤한 몸을 추스리고 모임에 다녀왔다.

5/30 (수)

마O 공원에 5인이 갔다. 훼손지 팀 2인이 예초기를 들고 합류했다. 예초기는 5대. 2인은 싸리비로 청소했다. 예초기에 큰 돌이 튀어 무릎 아래를 세차게 때렸다. 작업화와 무릎보호대를 지급해줘야 하는데, 장화와 고무 재질의 앞치마만을 지급하니 예초기 헤드의 세차게 돌아가는 나일론실에 큰 돌이 튀면 그대로 고통이 전해질 수 밖에 없다. 안티푸라민이나 파스를 븥여도 며칠간은 돌에 맞은 부위가 아플 것이다.
다시 연O 공원으로 돌아와서 창고에 예초기를 넣어두고 퇴근하였다.

5/31(목)

녹사 하우스로 올라가는 비탈 양 가의 잡초들을 예초하였다. 비탈을 내려가서 자연마당의 잔디밭을 예초하기 시작했다. 총반장이 오후에는 연O 공원으로 와서 잔디밭을 깍으라고 하여 그리하였다. 퇴근길에 세븐일레븐에서 1만원 주고 수입캔맥주 4개를 사서 김만O 선생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74살 먹은 그로서는 처음 수입맥주를 마시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6/1 (금)

전날 이병O 선생이 거의 연속 11일간 예초로 팔이 아프다고 하여 이무O 선생으로 교체되었다.  예초기가 길가로 토해내는 풀의 잔재를 싸리비로 쓸어내고, 여성동지들이 관목 안의 풀을 제거하는 풀 매는 일도 하고 김만O 선생의 논 일도 돕고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고생하였던  이무O 선생이 처음으로 예초기를 짊어지고 예초 작업에 합류한 것이다.
참으로 잘된 일이다. 조경 일이 어느 하나 힘들지 않는 작업이 있으랴. 예초작업은 힘들다는 걸 자타가 인정하지만 뒤치닥거리 작업은 그렇지 못하다. 작년 호수공원에서 일할 때 예초기 잡을 기회는 적었고 갈퀴로 잘린 풀들을 긁어 모으고 그것을 트럭에 옮겨 쓰레기장에 버리는 일, 블로아(blow-A)로 불어내거나 싸리비로 쓸어내는 고생만 되고 하찮게 대접 받는 일들을 많이 하였으니 이무O 선생이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의 힘듬을 느낄 수 있다.

오른 쪽 팔꿈치도 약간 아프기 시작하는데, 김재O 선생은 왼쪽 팔이 아프다며 파스를 붙인 팔을 보여주었다. 왜 나와 서로 다른 팔이 아픈 거지? 곰곰히 생각하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왼손으로 예초기의 수평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왼 팔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인데, 나는 왼손은 그냥 쥐고 있을 뿐 오른손으로 수평도 유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먼 손으로 헤드의 수평까지 유지하려다 보니 오른손의 힘이 떨어지면 헤드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튀었던 것이구나. 헤드의 수평은 가장 가까운 왼손이 담당해야 계속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걸 모르고 있었다니!  제대로 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렇게 깨달으면서 예초 기술은 날마다 발전한다. 그와 동시에 몸은 점점 골병들어간다.

6/2 (토)

3주째 예초기를 돌렸더니 손가락들,손목에 관절염 증세가 재발하였다. 왼쪽 팔꿈치 통증도 아직 남아 있었다. 정형욋과에 가서 손은 파라핀으로 장갑을 입히기를 반복하고,  팔꿈치는 찜찔팩,전기자극 치료를 하였다. 안마기를 작동시켜주니 등짝에 맨 예초기의 무게 탓에 허리가 아팠던 게 많이 호전되었다.

6/4 (월)

예초작업중에 예초기(20~25 kg. 헤드와 엔진을 연결한  대는  8 kg )무게를 등짝과 양 손으로 진동을 견디며 헤드를 지면으로부터 떨어져 약간  기울인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적어도 40분 예초작업 20분 휴식을  반복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1시간 이상 예초기를 돌리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이상한 기업문화. 남한에  이런 근로문화가 존재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

1시간 넘어서면 몸은 솔직하여 팔 힘이 빠져 헤드를 떨어뜨려 땅바닥을 치게 되어 수류탄이 터지는 것처럼 흙이 사방으로 튄다.  손가락 관절,손목 관절, 팔꿈치  등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다.  1시간이 넘어 그런 현상이 생기자 엔진을 껐다. 싸리비로 잔디밭 바깥으로 튀어나와 자빠져 누워있는 풀 잔재들을 쓸고 있던 김무O 선생이 커피 한 잔합시다,하고 외친다. 
노동자 대기소가 근처라서 거기에 각자 추렴해서 구입한 믹스커피를 꺼내 온수를 붓고 마시는데, 총반장으로 전화 왔다. 오늘 큰 덩어리를 다 끝내야 하니 커피 다 마셨으면 예초 시작하라고. 커피를 급히 목구멍에 털어부었다. 제기럴, 쉬지도 못하게 하냐? 노동자들의 입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40대 장정(?)도 아니고 60대 노동자들을 이런 식으로 장시간 작업 을 시키면 서서히 골병이 들게 된다. 원래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여기에서 일하며 하루에도 여러 잔 마시는 습성이 생겼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잠시 쉴 수 있으니까.

또 1시간 이상 예초기를 돌리지 팔힘이 떨어져 헤드가 땅바닥에 닿게 되어 흙이 튀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쉬어야 한다. 엔진을 껐다. 총반장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꽥꽥 소리를 습관적으로 질러대는데 내용 전달은 잘되지 않는다. 조근조근 말하면 잘 알아들을 수 있는데 고함을 질러대니 노동자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안전에도 좋지 않다. 왜 벌써 쉬느냐? 30분 더 예초기를 돌리고 30분 쉬어라는 말인듯 한데 1시간 30분 무리하게 예초기를 돌려 골병들고 인심 쓰듯이 30분  쉬는 방식은 좋은 관리 방식이 아니다. 작년에서 일한 호수공원의 경우 이처럼 더운 날씨에는 40분 돌리고 20분 쉬는 작업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40분 작업으로 피로해진 육체를 휴식으로 풀어주고 다시 작업하는 방식이니 골병이 들지 않는다. 휴식 시간은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여 노동을 시작하도록 시간이다. 특정 작업량을 다 끝낸 후 인심 쓰듯이 주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휴식 시간이 들죽날죽 하니 개인 일을 관련 콜센터에 전화하여 보려고 해도 보기가 힘들다. 매 시간 50분이 되면 자동으로 10분 휴식이었던 호수공원의 경우 휴식시간이 예측 가능하므로 콜센터에 전화하여 개인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전혀 그럴 수 없었다. 한 예로 콜센터 직원이 퇴근하기 직전(나의 퇴근 직전이기도 하다)에 자동차보험 재계약을 위해 전화를 하니 대기 없이 연결된 것은 다행스런 일인데 전화를 통해 보험 내용을 알려주는 여직원의 말이 따발총 쏘아대듯이 빨라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곧 퇴근해야 하고 읽어줄 내용은 많으니 여직원의 말빠름은 이해할 만하다. 보험 만기일이라 급히 계약하였다. 작년에는 몇 군데 보험사의 견적을 받아 비교후 더 유리한 쪽으로 재계약했는데, 올해 이 사업장에서는 도저히 그럴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점심 시간은 콜센터도 쉬고, 장시간 작업에 들즉날죽한 휴식으로 늘 몸은 지치니 쉬어야지 콜센터로 전화하여 개인 일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인지  잊어버리고 지나가게 되는 게 다반사다. 게다가 콜센터 전화하면 바로 연결이 되던가? 대기자가 15명입니다,는 식의 멘트가 나오는데.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작업이 시작해야 하니 개인 일을 전화로 보기도 쉽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다.

퇴근 무렵, 내일은 관할 공원들 중의 하나인 장고O 공원으로 예초작업을 위해 5인이 모두 출동하다고 퇴근 무렵에 총반장이 알려주었다. 그 바람에 콜센터 직원과 통화로 자동차보험 체결하느라 시간이 없어 더 정신없이 바빠졌다. 금요일 배밭의 배 솎아내기 이벤트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예초작업을 하루에 끝내려는 것이다. 아직 배는 작으나 솎아줘야 남은 배가 커지기 때문에 필요하다. 근처 노인회관의 노인들이 자기 이름이 매달려 있는 배나무에 와서 직접 배를 솎아내어야 하는데, 그런 중간 관리 과정은 뒤로 빠지려 하고 큰 배가 나중에 열리면 그 때만 먹으려는 노인들이 많아서 도우미로 출동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거의 일을 다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도 배가 사라지니 주인의식을 갖고 주민이 관리하도록 하기 위해 지난 번 행사 때 배나무마다 노인회관 회원들의 이름을 달아주고 삽질후 비료를 뿌려주고 다시 흙을 덮는 작업을 노인 각자가 스스로 하여야 했는데, 그렇게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노인도 좀 있었지만 대부분은 삽질 안해봐서 못한다는 식으로 뒤로 빠져 도우미로 참가했던 우리 노동자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주변을 삽질하고 비료 뿌리기에 바빴다. 금요일은 예초를 하지 않고 배를 솎는 일을 돕는 일이니 모처럼 한가할 것이다.

6/5(화)

출근하여 예초기 3대를 이병O 선생의 개인트럭에 실고 장고O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여기는 작업용 차량이 없어서 노동자 개인의 차량을 이용한다. 그렇다고 기름값을 주는 것도 아니다. 면접 때 개인트럭을 소유하고 있으면 합격이라는 말도 들린다. 장고O 공원에 도착하니 하루종일 돌려야 끝날 정도로 예초할 데가 많았다.  거기에는 여성동지 2명이 상주하는데 이 공원에 작업 올 때마다 커피를 여러 잔 얻어 마시게 된다. 해서 전날 과자를 배낭에 넣어두었다가 이 날  두 분이 드시라고 내놓았다. 냉커피까지 작업중에 들고 와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곧 잠깐의 휴식 시간이 되었다. 작업 종료 시간 전에는 엔진도 과열되어 퍼졌는지 아무리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조장인 김만O 선생이 와서 내 예초기를 여러 번 시동줄을 당겼지만 마찬가지. 저렇게 여러 번 당기면 휘발류가 너무 올라와서 점화플러그를 적셔 오히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휘발류가 증발할 시간을 줘야 한다. 야간의 시간이 지난 후 시동줄을 당기니 시동이 걸렸다. 다행히 남은 작업량을 끝내고 작업을 종료할 수 있었다. 엑셀을 올리니 엔진 소리는 커지만 돌아가는 나이롱끈은 힘이 떨어져 풀을 쳐대는 세기가 많이 약해졌다. 사람도 쉬어야지만 기계도 중간 중간 쉬어줘야 하는데 장시간 돌려대니 연식이 오래된 예초기도 골병이 들어 오후 시간만 되면 엔진소리만 요란하지 풀을 잘라내는 힘이 떨어져 작업자는 일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예초기야 너도 이 직장에서 골병들었구나.  예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퇴근하지 못하고 본대로 귀대하여 창고에 넣었다. 저녁에는 성당 레지오(봉사단) 회합에 참가하였다.  손가락 관절,손목 관절,무릎이 골병들고 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일이 현충일이라 작업을 하지 않으니 관절들이 쉴 수 있다는 것이다. 퇴근 후 약국에 들러 또 관절 파스를 샀다.

6/7(목)

유채꽃밭을 예초하다. 갈아엎고 코스모스 씨앗을 뿌릴거라고. 자연마당으로 이동하여 잔디밭을 한덩어리씩 예초하며 전진하다. 집에 와서 난생처음 칭타오 캔맥주를 마셨다. 아편전쟁후 칭다오 지역을 독일이 차지하였기에 독일맥주 기술이 뿌리내려 칭타오 맥주가 맛있다고 한다.


6/8(금)

아침 식사 중에 의치가 빠졌다.   장고O 공원으로 출근했다. 배나무 배 솎아내기 행사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 오후 1시에 한다더니 오후 2시로 변경되었다. 노인복지센터의 노인들이 참가하여 자신의 명패가 달린 배를 직접 솎아야 하는데 별로 나오지 않아 우리 노동자들이 솎았다. 한 뼘 거리를 기준으로 1개를 남기고 배를 떼서 버렸다. 그래야 알이 굵어지기 때문. 노인복지센터의 노인회장이 수고하신다며 우리 노동자들에게 브라브콘을 나누어주었다.  고마운 분이다. 오늘 작업모를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얼굴이 까맣게 더 타버렸다.
지금까지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는데 오늘 하루가 가장 편하다,고 이병O 선생이 말했다. 동감이다. 이런 날도 있구나.

6/11(월)

자연마당에서 김재O 선생과 2명이 예초기를 돌렸다. 이병O 선생은 다른 공원으로 보내 예초작업을 하였다. 예초후 산책로에 덮힌  풀 잔재를 싸리비로 쓸어야 할 뒤치닥하는 병력이 오후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어중간한 비여서 잠시 비를 피하다가 다시 나와 이슬비를 맞으며 예초하였다. 

아침에 무거운 예초기를 짊어진 채 연료통,도시락,생수까지 손에 들고 자연마당으로 걸어갔다. 평소에는 뒷치닥하는 사람이 외발수레에 그런 것들을 실어주기 때문에 예초담당은 예초기만 짊어지고 이동하면 되었는데 그날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병호 선생과 총반장이 파견간 공원으로 김만O 선생과 김무O 선생도 같이 간 모양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러나 김재O 선생의 생각은 달랐다. 외발수레에 실어서 물건들을 옮겨준 후 이 근처 작업장에서 맡은 일을 해도 되는데 신경안써주니 뿔이 났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비가 더욱 쏟아지기 시작하고 총반장으로부터 철수하라는 전화가 왔다. 반가운 소리. 작년 호수공원에서 조경 일을 할 때는 이렇게 작업 중에 비가 쏟아져 작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노동자들 대부분이 대기소에서 대기를 하였다. 일부는 비옷을 입고 교대로 공원을 돌며 쓰러진 나무가 없는지 순찰을 돌았고. 대기소로 돌아오니 나머지 동료들이 대기소 안에서 혹은 근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아침에 서운한 감정도 있고 다들 비를 피해 쉬는데 예초 담당 2인만 생고생했다는 생각에 성격 급한 김재O 선생이 성질을 내며 화를 내었다. 그러나, 이내 이 근처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원에서 가서 지붕 고치는 작업, 예초 작업 등을 하느라 더 고생을 하였고, 총반장으로부터 전화로 철수명령을 받은 그 시간에 그들이 대기소로 도착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김재O 선생의 오해가 빚어낸 분노인 셈인데,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그럴테지 하는 생각을 미처 못한 탓이다. 나이들이 60대 중반부터 70살 전후가 대부분이다 보니 점점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고집불통이 되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연령대의 동료와는 어느 순간이 되면 공통적으로 고집불통이 되어 자기 주장만 한다. 벽과 마주친 기분이 든다. 옛날에는 도제 방식으로 선배에게 후배가 하나씩 배워야 했고 부모에게 자식이 또한 그러해야 했다. 그런 방식으로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지식 혹은 기술이 습득 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스마트폰의 기능조차  교육의 흐름이 역류한다. 직장 선배가 직장후배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물어서 배워야 한다. 구세대가 옳다고 알고 있는 옛지식 혹은 옛날 기술은 신세대가 검색엔진을 통해 인터넷에서 더 최근,최신의 방대한 자료를 찾아낸다. 노하우(Know-How)시대가 아니라 노웨어(Know-Where) 시대로 바뀌어버렸다고 하지 않은가? 

오전에 김재O 선생에게 예초기를 끈의 회전방향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깎은 후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걸 깎는지 물어 보았다. 정확한 걸 알고 싶어서 동일한 질문을 몇 사람에게 한 질문인데 사람마다 약간 다른 대답도 있었다. 반대방향으로 돌어올 때 헤드의 기울기 방향(을 반대로 기우는 것은 어려우니)은 그대로 하고 방금 깎았던 부분을 그대로 다시 지나온다, 그러면 안 깍고 지나갔던 부분도 완벽하게 다 깎인다는 것이 그의 대답.

내일은 관할 공원 중의 하나인 장미O으로 바로 출근하라고 하였다.

6/12(화)

네이버 길찾기를 참조하여 처음 가는 장미O에 잘 찾아 출근하였다. 수년간 쌓인 낙옆을 갈퀴로 긁어 모아서 자루에 담고 그것을 보이지 않는 숲으로 버렸다. 부러져 떨어진 나무들은 일정한 길이로 잘라 보기 좋게 사각형 기둥이 되도록 쌓았다. 중간 중간 올라가서 쌓인 나뭇가지를 밟아 납작하게 만들고는 내랴왔는데 길이가 좀 길게 삐죽나온 나뭇가지에 무릎 아래가 찔려 아팠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런 작업 환경에서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조장 이만O 선생은 가시에 찔려 아픈 모양. 맨 위는 솔가지를 얹었는데 은폐가 목적. 워낙 낙엽이 많아 이런 방식으로 작업진행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총반장이 낙엽 대형 포대를 더 갖다달라고 어딘가에 전화했다. 그래서 대형포대에 잔뜩 담고는 2명이 같이 비탈 위로 차량이 올 수 있는 지점으로 옮겨 모으기를 반복했다.  지나가던 주민이 방울토마도를 주고 간 모양. 쉬는 시간 나누어 먹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하루종일  대체로 급한 성격의 김재O 선생과 느긋한 성격의 김무O 선생(서로 성격상으로 대척점에 있는 두 사람의 조합)이 2인 1조가 되었고, 나는 조장  김만O 선생과 2인 1조가 되어 작업을 진행하였다. 4인이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기도 하고 총반장의 지시에 따라 조별로 다른 장소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김재O 선생조가 맡은 일이 다 끝났다며 우리조에 합류하였다. 조장 판단에는 벌써 끝날 덩어리가 아닌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업자의 마음에 들게 마무리 지은 것이지, 총반장의 마음에 들지 않게 마무리를 지은 것이어서 조장  김만O 선생이 내심 뿔이 났다. 그의 갈퀴가 마무리되었다는 덩어리를 다시 긁기 시작했다. 직접 말을 못하지만 두 사람의 일처리가 조장이 보기에는 얼렁뚱땅으로 보이는 모양. 사실, 수년간 쌓인 낙엽은 긁어도 긁어도 땅바닥이 스폰지처럼 쿠션이 있을 정돈이니 어느 정도 해야 할 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젖은 낙엽과 썪은 낙엽,부러져 썪어 있는 나뭇가지들이 계속 나오는 작업이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작년에도 총반장과 함께 일한 김만O 선생이 어느 선까지해야 총반장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지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이다. 

항상 그렇듯이 긴 노동 시간에 짧은 휴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오후 5시 전에 당일 작업이 대충 끝났다. 김재O 선생 김무O 선생 조는 비탈진 작업장 위에 서 있었고 조장은 갈퀴를 들고
비탈진 작업장 아래에 있었다. 그가 말했다. 눈치없이 저 위에 서 있으면 일 안하고 쉬고 있다고 총반장이 오해할 건데 눈치들이 없다. 5시까지는 작업 현장에서 뭘하더라도 해야 하는데 말야,라고 했다.  김무O 선생한테 넌즈시 5시까지는 움직이라고 하니, 김무O 선생 단호하게 왈, 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별 어려운 것도 아니고 조언을 해준 내가 황당했다. 종일 북한 노동자처럼 일하고 마지막에 느슨하게 일한 것처럼 오해 살 필요가 있을까?  별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단호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타협이 없는 선이 있다. 늙었다는 특징. 늙음은 산술적인 나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나이는 많으나 젊은 사람과도 대화가 잘 되고 자신의 생각,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견해로 대체할 수도 있는 생각의 유연성이 있는 노인은 늙지 않은 것이다. 젊은 것이다. 작년 호수공원에서 일할 때 같은 나이의 두 동료가 있었는데 한 명은 나이보다 더 늙어서 대화가 고리타분하였고, 다른 1명은 더 젊어서 대화가 신선했다. 내 나이 또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6살 정도 많았다. 마음이 맞으면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한 직장, 호수공원.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는데, 생각이 늙지 않으면 나이를 초월한다. 
내일 투표일이 지나고 나면 모레 다시 장미O으로 출근하여 작업을 마무리짓는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루종일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할 사정이 있어서 모레는 하루 공치는 일이 발생. 

조장의 건의가 반영되어 하루종일 작업하느라 고생하였다고 총반장이 퇴근 시간을 배려해주었다. 

6/13 (수)

지방선거. 공치는 날. 영도포구청역에서 전전직장(부산)에서 같이 근무했던 회사동료를 만나 만두국을 먹고, 영도포구청역 4번 출구 나오면 보이는 까페. 주문 기계의 메뉴화면에서 커피의 종류 및 크기를 선택 후 현금 혹은 카드 결재하면 주방에서 주문대로  커피를 내리고 잠시후 커피를 내주었다. 스몰 컵 아메리카노가 990 원. 이렇게 싼 아메리카노는 처음 보는 듯. 영등포구청 앞 공원에서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하니, 성서 시대의 지도들을 담은 자료를 드렸다. 예수 시대의 지명을 담고 있는 지도들이므로 구약성경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6/14(목)

개인적인 일로 하루종일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날. 그래서 공치는 날. 아침에 비가 쏟아졌다. 출근한 동료들은 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반장이 모두 도로 퇴근시켰다고 한다. 어차피 공치는 날이 된 셈인데 나로서는 잘된 일.
점심을 사먹기가 시간적으로 충분치 않아 서울역 롯데리아에서 간단하게 한 끼 때우기로 했다. 불고기버거 3,500 원, 스몰 컵 아메리카노 1,500 원.  맛있었다. 구세대여서 롯데리아에서 직접 주문할 일이 없었는데 좋은 경험을 하였다. 옛 대우 본사 건물을 보니 채용 면접을 보러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으로 조성했다는데 절약된 식사 시간을 이용하여 올라가보았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약간만 보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으니 성공적인 기획인듯.

6/15(금)

장고O로 출근하여 토사로 막힌 배수구 쇠뚜껑을 열고 삽으로 계속 퍼 올렸다. 파도 파도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배수구의 깊이가 깊었다. 따라서 토사가 깊게 쌓여 있었다. 나중에 구멍이 드러났다. 쇠뚜껑을 도로 닫았다.
가시 나무 등 죽은 나뭇가지를 다른 동료들이 잘라놓았는데 끈으로 묶어 사람의 눈에 뛰지 않는 숲 속으로 옮겨 쌓았다.
1주일 전 이빨이 부러지면서 떨어진 의치(브릿지)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어서 조퇴하였다.
오후 일을 못하므로 하루 일당은 반으로 줄어드는 날. 월급제가 아니라 시급제이기 때문에 일한 시간만 계산하여 나중에 한 달후 일괄 지급되는 것이다. 반나절이라도 일을 하고 조퇴해야 유급토요일을 찾아먹을 수 있다. 하루를 그냥 쉬어버리면 한 주를 만근하지 않게 되어 유급토요일을 찾아먹을 수 없다. 토요일 하루 일당이 날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일당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아무리 아파도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여반나절이라도 일하여야 하는 슬픈 직업이다.

6/18(월)

1달후 사내감사가 있는 모양. 사무실 직원들의 요구 사항이 많아져 빠른 해결을 위해 평소보다 이른 시간의 미팅후 장미O으로 트럭 타고 이동하였다. 오전에 낙옆 포대를 트럭에 실어 쓰레기하치장으로 옮기는 작업하였다. 김만O 선생과 내가 같은 조가 되어 총반장이 운전하는 트럭에 탑승하여 탑재 및 하역 작업을 하였다.
죽은 키큰 나무를 김만O 선생과 내가 작은 톱으로 자르기도 하였다. 화목용 큰 톱이 있으면 덜 힘들텐데 작은 톱으로 비효율적으로 톱질하니 힘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향로봉에서 군복무하면서 겨울에는 눈 덮힌 산을 넘고 넘어 화목(땔나무) 작업을 할 때 굵은 나무를 많이 잘라보았기에 톱질은 꽤 잘하는 편.
나무가 쉽게 쓰려지는 방향을 보고 나무의 등에 톱질할 것인지 나무의 배에 톱질할 것인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거의 톱이 나무를 베어나가면 기울어지는 나무 자체의 무게로 인해 우지끈 소리내며 한쪽으로 쓰러지면서 잘린 나무 밑둥이 튀면서 작업자를 칠 수가 있으니 항상 피할 공간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런데 총반장은 공원의  나무들 사이 사이의 좁은 작업공간에서 쓰러지는 나무가 인근 나무에 걸리지 않게 톱질하라고 소리쳤다. 지시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을의 위치에 있다 보니 작업자의 안전사고 예방보다는 쓰러지는 나무의 위치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며 자르다보니 쓰러지는 나무 밑둥이 튈 때 좁은 공간에서 피하다 보니 축대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발을 제대로 디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 디뎠으면 다쳤을 상황.  애완견이 사람보다 대접 더 받는 세상이라더니 바로 그런 대접을 받는 셈. 나무가 쓰러져 옆 나무에 걸리면 작업자 2인이 힘을 함께 모아 끌어내리면 되지, 그 과정에서 나뭇가지에 손상이 오는 것이 작업자 안전보다 더 중요한가?
작은 톱으로 굵은 나무들을 자르는 것은 당연히 비효율적. 총반장이 트럭을 몰고 가더니 잠시후 엔진톱을 가지고 돌아왔다. 총반장이 종횡무진으로 잘라대는 나무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숲 속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보기좋게 쌓는 일을 반복했다.

오후에는 썩은 나무의 가지들을 보기 좋게 쌓아둔 것을 모두 트럭에 실어 쓰레기하치장으로 옮기는 작업하였다. 도중에 자연마당의 주차장에 트럭을 잠시 멈추고 동네 주민이 몰래 버린 오래된 쓰레기들을 포대에 담아 트럭에 실었다. 깨진 유리, 서류함, 혈액들이 잔뜩 들어 있는 스치로폴 박스 등을 포대에 담아 트럭에 실었다. 혈액들은 몰래 버려진 걸보아 세균이 있거나 에이즈 감염된 것일수도 있는데 총반장이 시켰는지 많은 비닐들 속의 혈액들을 일일이 땅 바닥에 쏟아내느라 김재O 선생이 다른 쓰레기를 치울 여력이 없었다. 땅도 오염될 것이고 김재O 선생의 목장갑도 혈액에 오염되었다. 목장갑을 두겹 낀 김만O 선생이 자신의 겉장갑을 건네었다. 젖은 목장갑보다는 더럽지만 마른 장갑이 더 나을 것이므로 동료들이 젖은 목장갑을 버리고 마른 목장갑을 끼라고 다들 권했다. 개잡부 일까지 하게 되는구먼,그놈의 감사 때문에.

6/19(화)

연밭 주위 논두렁의 부쩍 자란 잡초들을 예초기로 제거하였다. 3인이 예초해야 하는데 김재O 선생이 병원 가는 날이라 하루 쉬는 바람에 이병O 선생과 나, 2인이 예초기를 돌렸다. 예초 시기를 놓쳐 너무 자란 잡초들은 강인했다. 2,3 단으로 나누어 쳐나갔다. 1단으로 맨 아래를 치면 헤드에 실처럼 감겨들어 헤드 회전이 약해지므로 매번 감긴 실을 풀어야 한다. 실은 식물의 줄기 속의 섬유질 성분이 변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넝쿨 식물의 넝쿨이 굵은 실처럼 헤드를 순식간에 감으면 회전이 멈춘다. 엑셀을 완전히 내리고 헤드에 감긴 실이나 넝쿨을 풀어내어 제거 후에 다시 예초기를 돌려야 한다. 3인 분량의 일이었으므로 1인 분량의 잡초들이 논두렁 한쪽에 남았다. 내일 이어서 해야 할  부분.

6/20(수)

연밭 주위 논두렁의  나머지 잡초 덩어리를 오전에 예초하였다. 연식이 오래된 내 예초기가 시동이 걸린 후 저절로 꺼져 버렸다. 그러더니 시동줄을 당겨도 아예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 캬부레타를 열어 치솔로 먼지를 제거한 후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 동료들은 예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시동이 안걸려 예초작업을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작업 중인 고참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수 밖에 없는 상황. 휴식하자고 작업을 중지시키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도움을 청했다. 잘난 척 잘하는 이병O 선생도 시동 걸기는 계속 실패. 다른 사업장에서 반장했다는 김재O 선생이 원인을 찾아내었다. 에어(공기) 때문에 기름이 엔진으로 내려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조여진 나사를 푸니 기름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재조정하고 시동을 거니까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렸다.  엑셀 조정하는 나사 위치 등 몰랐던 지식도 배운 날.
점심식사후 자연마당으로 넘어갔는데 2인은 거기서 예초작업을 하였을 것이고 나는 치과 치료를 위해 조퇴하였다. 일당이 반만 나오는 날이 된 것이다.

6/21(목)

하루종일 자연마당에서 예초하였다. 오전에는 누구나 힘들어하는  비탈 면을 예초였는데 김재O 선생은 무릎 근처 뼈에 약간의 금이 갔다 하여 비탈에 올라가지 않고 비탈 아래의 잔디를 예초하였다.  이병O 선생과 나는 비탈에 올라가 예초기를 돌렸는데 칡넝쿨이 굵어져서 자꾸 예초기의 헤드에 감겨 헤드의 회전이 멈춰 감긴 칡넝쿨을 풀고 다시 예초기를 돌려야 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다. 일이 진행되지 않고 짜증 나는 상황. 온몸에서 땀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이 더위에. 원래는 낫을 들고 지원부대가 예초기 부대의 앞에 있는 칡넝쿨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지원부대는 밀려나간 야자수 매트를 제 위치에 도로 놓는 작업 등에 투입되어 있으니  비탈을 담당한 예초부대 2인이 예초기를 내려놓고 칡넝쿨의 원 뿌리 부분의 밑둥을 잘라내어 돌돌 감아 덩쿨을 노끈 삼아 묶어서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나서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칡넝쿨이 굵어지기 전에는 비록 감기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 예초기의 빠르게 회전하는 끈으로 잘려지게 하면서 진행하면 덜 감긴다. 그러나 칡넝쿨이 굵어진 상태에서는 잘려지기는 커녕 오히려 헤드의 회전을 중지시킨다. 비탈을 끝내고 옆 잔디밭 큰덩어리를 예초하기 시작했다. 오후내내 예초했지만 마무리할 수 없었다. 김재O 선생이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는데 노동자 대기소까지 생수를 가지러 갔다가 온 모양. 잡초는 지천에 깔려 있었고 자전거 거치대 주위에는 자갈들이  풀과 함께 뒤섞여 있어서 회전하는 예초기의 끈에 맞아 튀는 돌이 무릎 아래 뼈를 때릴 가능성이 많았다. 희한하게도 이 회사는 작업화와 무릎보호대를 지급해주지 않고 장화 신고 예초하라 하니 이런 작업 현장은 엑셀을 낮추어야 한다. 엑셀을 높히면 헤드의 회전력이 높아지고 끈에 한 방 맞은 돌들이 고통스런 소리를 질러대며 사방으로 튀면서 무릎 아래의 뼈를 때려 타박상 혹은 금이 가게 할테니까. 그리고 다른 동료는 지상으로부터 헤드를 약간 떨어진 상태에서 예초를 해야 되는데 힘이 드니까 땅에 대고 예초를 하다가 작업현장이 자갈투성이라 자갈에 헤드 아랫부분이 닳아 구멍이 나서 며칠만에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점도 자갈이 많은 현장에서는 고려해야 한다. 진동이 심한 예초기를 땅으로부터 떨어지게 들고 작업을 해야 하니 손과 팔의 피로가 심하므로 40분 작업에 20분 휴식해야 맞다. 요즘처럼 더운 한여름 날씨에는 30분 예초작업에 30분 휴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업장은 1시간 예초 작업은 예사이고 1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예초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자주 있다. 손가락 관절, 손목 관절, 팔꿈치가 나빠져서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이니 이거 원. 오후에는 시동이 걸렸다가 금방 시동이 꺼지는 상황이 재발하였다. 연료통 안의 에어(공기) 문제라고 하니 연료를 가급적 꽉 채우지  않고 적당량을 넣고, 하루 작업이 종료되면 예초기가 넘어지더라도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얀 연료 레버를 상하 상태(연료통에서 엔진으로 연료가 흘러들어감)를 전후 상태로 꺾어놓았는데,  레버를 손대지 않고 상하 상태로 창고에 반납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녁에는 전직장 동료들과 만났다. 내가 총무를 맡고 있는 셈인데 가급적이면 회원들이 힘든 노동으로 번 많지 않은 월급에 맞게 술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카톡으로 수입,지출,잔액,지출내역을 회계보고 한다. 회비 2만원을 걷었고 4명이 모였다.  저렴한 횟집에서 광어회 대 (35,000 원), 매운탕, 공기밥, 사이다를 먹고 마셨다. 소주는 옆 구멍가게에서 사갈 수 있기 때문에 3병을 샀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섞어서. 2차는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수입캔맥주 4캔(1만원)과 소고기 육포(1+1), 버터구이 오징어,과자 등을 사서 편의점 바깥 테이블에 놓고 마셨다. 예초 방법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직업은 숨길 수 없는 듯. 정치 토론보다는 차라리 이런 실제 현실에 당장 도움되는 대화가 낫다. 나는 전자가 공자왈 맹자왈 같은 유학이라면 후자는 실학이라고 비유한다. 안주가 남아서 술을 또 시키게 되고 술이 남아서 또 안주를 시키게 된다고 동료가 말하길래, 오늘은 마음껏 드시라,  아직 회비가 남아 있다,고 했다. 수입캔맥주 4캔이 더 테이블에 얹어지고 비스켓이 막고 싶다는 회원의 말에 오징어땅콩(2+1) 3개가 테이블에 얹어졌다. 남은 오징어땅콩, 캔맥주는 나누어 가졌다. 나중에 집에 가서 먹으면 되므로. 
요즘 말로 가성비 높게 저녁시간을 보낸 셈인데 회원들이 만족해 하니 기분 좋은 일.
 

6/22 (금)

오전에는 예초 작업, 오후에는 장고O 공원에서 자매결연한 노인복지센터의 노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달린 배나무의 배에 봉지를 싸는 행사가 있어서 도우미로 남자 노동자 5인이 투입 되었다. 참석하지 않은 노인도 많았고, 노인의 팔이 닿지 않은 가지에 달린 배에는 내가 배봉지를 씌워 주었다. 배 딸 때만 나타날 생각으로 전혀 관리하지 않은 배나무 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 노동자들이 배봉지를 싸주는데, 행사에 참석하여 행사 취지에 맞게 자신의 배나무를 관리하는 노인과 전혀 참석하지 않아 노동자가 대신 관리해주는 배나무의 노인의 수확이 나중에 같다는 것은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고 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행사는 노동 강도가 약하므로 모처럼 갖는 "꽃보직".   배봉지를 1,000 개를 가지고 왔다는데 내일 따로 와서 작업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며 배봉지를 받아서 배봉지 씌우기행사를 하지 않고 사라진 노인들이 많아서 배나무에 붙은 노인 수는 별로 없었지만 남은 봉지도 별로 없어서 나중에는 봉지가 없어서 작업이 일찍 끝났다. 배봉지 1,000 이면 모든 배를 씌우고도 반은 남을텐데 봉지를 못 씌운 수많은 배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난 번에 심은 어린 배나무 주위의 잡초를 호미로 김매는 작업을 하였다. 휴식을 하고 있을 때 총반장이 인원 중에 나를 빼서 김만O 선생이 톱을 들고 다니며 자른 나뭇가지들을 숲 속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켰다. 그래도 퇴근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여성동지들의 김매기에 투입되었다. 김매는 중에 나중에는 김무선생과 대화하다가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김매면서 이런 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면서 작업의 힘듬을 잊는 것인데, 판사처럼 올니 그르니 하고 평가를 하려 들어 논쟁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이럴 때는 절벽 앞에 선 것 같다. 다양한 나이가 섞여 있는 직장에 근무하면 젊은 직원들과는 대화를 나는 잘하는 편인데 60대 중반이상의 연령대가 대부분인 이 분야의 직장에서는 별 거 아닌데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자기 주장이 강해 대화가 안되는 순간이 있다. 사람의 생각이 어찌 다 같을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어찌 100 퍼센트 옳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상대방은 하는구나,하고 다른 화제로 자연스럽게 옮기면 되는데, 어떤 나이대의 노인이 되면  그런 방법은 모른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계속 같은 이야기를 길게 하며 물러설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거대한 벽 앞에 서게 되는 기분. 가급적이면 토론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물러서고 마는데 그럴 틈을 주지 않을 때는 원치 않지만 말려들 수 밖에.  
총반장이 좀 일찍 퇴근시켜주었다. 땀이 범벅이 되고 땀냄새 나는 몸을 샤워로 씻어내고 서둘러 예술회관의 야외무대 무용을 보러 갔다. 인천시립무용단에서 하는 무료공연. 마지막에 많은 무용수들이 함께 북치는 장면은 아주 장관. 열렬한 박수 소리. 1주일의 힘듬이 사라졌다. 예술에 대한 목마름, 그리고 창작의 자극을 받으려고 수년 전부터 칮아오는 금요예술무대이다. 올해는  지난 주 "유랑극단"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러온 게 뒤늦은 시작.
내일은 토요예술무대에 안데스 노래가 공연된다 하니 잊지 않고 보러 가야겠다.

6/25(월)

동아치과 진료 위해 월차 사용.

6/26(화)

전국 비. 공치는 날

6/27(수)

오전에는 자연마당에서 쓰러진 나무 자르기. 오후에는 훼손지 코스모스 심기 위한 삽으로 흙을 뒤집는 일, 관목 속의 잡초 김 매기.

6/28(목)

하루종일 자연마당에서 예초. 작업종료 시점에 소나기가 퍼부었다.

6/29(금)

하루종일 자연마당에서 예초. 예초기 엔진에서 연기가 계속 나왔다. 엑셀을 최대한으로 당겨도 헤드 회전이 강해지지 않아 잡초가 잘 잘리지 않아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7/2 (월)

전국이 장마와 태풍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온다. 출근하자마자 비 때문에공치는 날이라고 결정하고 바로 퇴근할 시킬 게 뻔하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분쟁시 증거자료로 삼기 위해 아래와 같이 총반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라도 일하게 된다면 월차 처리해달라고. 실제 출근한 직원들을 바로 퇴근시켜 공치는 날이 되었다.

-아래-

O 반장님,휴가 잘 보내셨나요?

태풍으로 인해 비가 계속와서  오늘(7.2) 하루 공치는 날이 될 것 같은데, 혹시 그렇지 않고 일하는 날이 된다면 황O O 은 년차(월차)처리해주십시요.

* 며칠 후 나중에 이날은 (누적된) 월차 사용한 걸로 처리했다고 총반장이 말해 황당했다. 총반장 왈, 다른 직원은 무급이고 나는 유급으로 처리된 것이라고. 월차를 사용하고 돈으로 받겠다고 하여야 유급으로 처리되는 것이지, 월차로 사용한 걸로 하면 유급 처리가 될 수 없는 게 아닌가 ? 자신의 말의 오류를 깨달았는지 총반장은  그러면 황씨와 총반장 자기 사이의 약속으로 월차 안낸 걸로 하자,고 한 발 물러섰다. 이  날 하루는 모든 월급명세서를 다 훑어보고, 실제 남아 있는 누적된 월차 수를 알아야 제대로 처리가 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7/3(화)

나의 예초기가 퍼진 상태. 수리 보내어야 할 지경. 창고에 도로 넣다. 임플란트 수술 오후에 잡혀 있어서 조퇴하였다. 오전에는 예초기 3대 중 2대만 돌렸고 나는 싸리비로 주민들이 다니는 산책로를 쓸었다. 전날 비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솔잎, 나뭇잎이 젖은 바닥에 붙어 깨끗이 쓸어내기가 힘들었다. 오줌이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간 이병O 선생의 예초기는 김만O 선생이 돌렸다. 나는 오전만 근무라서 예초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싸리비를 잡았다.


7/4(수)

총반장이 정전(관목을 가지런하게 가지 치기)하여 잘려져 나간, 나뭇잎이 달린 생가지들을 갈퀴로 김만O 선생이 한 곳에 모아두면 그것들을 대형 포대에 담아 외발수레에 실어 잔재처리장으로 옮겨 버렸다. 이 일을 이무O 선생과 같이 했다. 무더위에 목이 말랏다.

 정비를 맡긴 내 예초기가 고쳐졌다 하여 대기소에 물 채우러 가는 길에 찾아 창고에 넣었다.


7/5 (목)

내 예초기는 부품 자체를 통째로 갈지않고 휘발류로 깨끗하게 세척만한 모양이었다. 돌아가는 힘이 전과 동일하게 약하여 풀 베기가 여전히 힘들었다. 청소를 하려고 기화기를 열었다.기화기 속의 낡은 스폰지가 눈 익은 예전의 스폰지 그대로 였다. 부품교환이 아니라 세척만 했음을 알게 해준 증거물.
나는 비탈 쪽  잡초를 쳐내려가고 이병O 선생은 아래 평지를 예초하였다. 쉬는 시간에  그가 내 예초기를 사용해보더니 예초기를 바꾸어  작업하자고 했다.  비탈의 거친 키 큰 잡초를 치려면 정상적인 회전력을 가진 예초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 그도 느꼈을 만큼 내 예초기는 엔진의 힘이 없었고 엔진이 불완전 연소가 되는지 계속 연기가 흘러나왔다.

내 예초기를 들고 이병O 선생은 평지의 잔디를 쳤다. 곧 70을 바라보는 그로서는 힘들게 비탈의 억센 풀을 쳐가는 것보다는 평지의 잔디를 느리게나마 예초하는 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게다.
힘 센 예초기를 게다가 이 기종은 가볍기까지 하니 억센 풀이 시원스레 잘려나갔다.
풀이 많이 자라 섬유질이 생겨 헤드에 실타래처럼 감겨 헤드의 회전이 자주 멈추었다.헤드를 분리시켜 실타래를 제거후 다시 헤드를 결합해야 했다. 무척 짜증스러운 반복.
그런데 갑자기 다시 헤드를 예초대의 기어에 결합할 때 이상하게 결합되지 않았다. 여러번 시도해도 마찬가지.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헤드의 나사홈의 암나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들락거려서 그랬던 것. 예초기의 주인인  이병O 선생에게 헤드를 들고가서 물었더니 바위에 몇차례 탁탁 헤드를 부딪혔다. 그러자 암나사가  원래 위치로 나왔고, 헤드를 결합하니 잘 결합되었다. 다시 예초기를 청기와 건물에 맡겼다. 들리는 소문에 거기 반장이 예초기 정비 박사라고 한다.

7/6 (금)

정자에 드러누웠다가 일어나다.

오전에는 낫으로 칡넝쿨을 쳤다. 그래야 뒤따라오는 예초기 헤드에  넝쿨이 감겨 헤드가 정지하는 일이 예방되니까.

그러다가 군데군데 반장이 전정기로 잘라놓은 관목의 나뭇가지들을 트럭에 실고 실었다.  (원래는 내 일이 아닌데, 우렁이 행사 준비로 논으로 동료가 가는 바람에 내가 그 일까지하느라 휴식시간을 오전  가질 수 없었다.)

점심 식사후 정자에 드러누우니 피로가 조금 풀린다.


7/7 (토)

우렁이 방사 체험행사 위해 특근. 1 kg에 1만원. 10 kg 10만원어치의 우렁이를 비닐봉투에 적당한 수를 넣어 참석한 가족에게 배포. 딸과 엄마 2인이 온 가족의 기념사진 및 동영상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여 찍어주었다. 내가 제안하기 전까지는 아이엄마가 아이 독사진 만을 찍고 있었다.
사무실 조경 담당 이정O 주사에게 5월달 월급명세서를 아직도 안받았으니 달라고 했다. 감사 준비로 깜박 했다는데 아무래도 계속 깜박할 것 같은 예감. 월급명세서를 봐야  누적하지 않은 월차가 일당으로 계산되었는지 알 수 있다.
팀장에게 내년에는 우렁이와 함께 미꾸라지도 논에 뿌리는 것이 어떠하냐고 제안했다. 미꾸라지가 잡초를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팀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검토해보면 정확한 걸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가 말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관련된 기사들.
행사 끝나고 오후에는 토끼풀 뽑는 작업에 투입. 삽으로 토끼풀 뿌리를 잘라주면, 뒤따르는 작업자들이 토끼풀을 호미로 김매었다. 무더위에 삽으로 푹푹 밟아 잔디 땟장을 만들듯이 해나가니 힘들었다.

-아래-

(1)

김진호의 是是非非

메기와 미꾸라지

이 회장(이병철)은 시험삼아 논 1마지기에는 벼를 심고, 다른 한 마지기에는 ‘미꾸라지’새끼 1천마리를 사다가 길렀다. 가을에 수확 때까지 양쪽 모두 똑같은 비용을 투입해 각각 재배하고 길렀는데, 벼를 심은 논에서는 예상대로 쌀 2가마니가 생산됐으나 미꾸라지를 기른 논에서는 커다란 미꾸라지가 약 2천마리로 늘었다. 그것을 전부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았더니 쌀 4가마니 값을 받았다. 그 이듬해 또 다른 방식으로 시험양식을 했다. 한 쪽 논 200평에는 역시 어린 미꾸라지 1천마리를, 다른 논 200평에는 미꾸라지 1천마리와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사는 천적인 ‘메기’20마리를 같이 넣고 길렀다. 그해 가을에 양쪽 모두 수확을 하고 보니, 처음 논에는 2천마리의 미꾸라지가 생산됐고,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어 길렀던 논에서는 메기들이 열심히 미꾸라지를 잡아먹었는데도, 4천마리로 늘어났고 메기도 200마리로 늘어났다. 이 회장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 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생명계의 자연현상은 어려움과 고통과 위험이 닥쳐오면 긴장해 더 활발히 움직이고, 생존본능이 강화돼 더 열심히 번식하고 훨씬 더 강인해진다는 사실이다.
(생략)


(2)

무농약 벼 재배를 위해 어린 토종 미꾸라지 4만 미 방양


배포 2018-06-28 13:48:03 | 수정 2018-06-26 10:23:51 |

   
기북면에 친환경 쌀 생산 위해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 토속어류산업화센터가 고품질 무농약 벼 재배 14년 차를 맞은 포항 기북면 친환경 쌀 생산단지 논에 어린 토종 미꾸리 4만 미를 방양했다.

포항시 기술보급과는 환동해지역본부와 추어탕의 주재료로 이용되는 미꾸리의 벼논 방양으로 벼 생장과 무관한 새로운 소득산업 가능성을 검토한다. 포항시 기북면 산또래 쌀 작목반 삼광벼 재배 논 0.4ha에 방양한 후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미꾸리 양식 시범사업을 융합 추진한다.

친환경 쌀 생산을 위해 포항시 기북면 산또래 쌀작목반 논에 미꾸라지 4만 미를 방양하고 있다(포항시 제공)

포항시는 국립수산과학원 보고 자료를 토대로 현재 벼 생산소득의 약 40% 이상에 달하는 추가 농가소득을 예상하고 있다.
 
(생략)

(3)

강동구, 모내기 마친 논에 우렁이-미꾸라지 방사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입력 : 2012/05/16 11:48


(서울=뉴스1) 양동욱 기자= 16일 오전 서울 강동구 일자산 자연공원 내 영농체험장에서 관내초등학교 학생들이 우렁이와 미꾸라지를 논에 방사하고 있다. 미꾸라지는 하루평균 300~1,000마리의 모기유충과 알을 잡아먹으며 우렁이는 이끼와 수중생물들을 섭취하여 제초제나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2012.5.16/뉴스1

(4)

우렁이 농법

(5)

논에 방사한 미꾸라지는 잡초 제거는 물론 해충을 잡아먹고, 배설물은 벼에 영양분을 공급해 쌀 생산량을 높여준다.

또 논에서 번식한 미꾸라지는 농가 추가 수입원이 된다.


7/9(월)

전국에 비. 아침 출근 시간에 비가 소강 상태. 자연마당 가시나무 관목 속의 칡넝쿨 제거 작업에 투입. 낫으로 걷어내고 잘라내었다. 갈퀴를 가져가면 팔 길이보다 멀리 뻗은 칡넝쿨을 걷을 때 편리하다. 속의 덤풀은 여사님들이 나중에 걷어낼 거라고. 비옷을 입고 작업 진행. 오후에는 비가 많이 내려  작업을 중지하고 가까운 정자로 피신했다. 오후에는 거의 작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계속 내렸다. 칡넝쿨은 다 걷었지만 관목 주위 군데군데 잔재는 치우지 못했다. 그것을 치우다가는 비 맞은 생쥐 꼴이 될 것이므로.
총반장은 전정작업 위해  이무O 선생과 함께 계O 공원으로 파견 나갔다. 나중에 전화로 지시한 모양인데 약 1시간 일찍 퇴근시켰다.


7/10 (화)

도저히 수리가 안되는지 내가 쓰던 예초기 대신에 제노아 예초기가 왔다. 총반장이 엑셀을 올려 회전력을 여러 차례 점검한 결과, 갑자기 힘이 저하되는 걸 발견. 휘발유 유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리를 위해 다시 청기와에 맡기란다. 자연마당 예초후 산책길을 일부 덮게 되는 잔디 잔재를 싸리비로 쓸고 맨홀 위의 잔디 잔재도 쓸다가 예초기가 수리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예초기 작업에 합류하라고 총반장이 지시하였다. 상태가 좋은 싸리비를 챙겨 갔기 때문에 미화(?) 작업은 쉽고 편했다. 어제 총반장이 일찍 퇴근시켜주었으니 시키지 않은 일이지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 좋지,하는 생각에 전날 치우지 못한 가시나무 관목 주위의 칡넝쿨들을 짬짬이 서너 차례 외발수레에 실어 멀리 버렸다. 시키지 않은 작업까지 하다보니 하지 않았으면 편하게 지나갔을 하루가 무더위 속에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햇살에 익었고 고단해졌다.

퇴근 위해 노동자 대기소로 돌아오니 내가 쓸 제노아 예초기가 창고에 들어와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수리했을까? 내일은 나도 예초작업에 다시 투입될 수 있을까?

저녁에는 봉사단 모임이 있는 날이라 지친 몸을 이끌고 모임에 참석했다.


7/11(수)

계O 장미공원으로 가서 낙엽을 대형포대에 담았다. 3인은 갈퀴로 산책길에서 보이는 낙엽을 긁어 군데군데 모으며 전진하고, 김만O  선생과 나는 낙엽더미를 포대의 아가리를 두 발로 벌려 두 손으로 담었다.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담다가 더 이상 포대의 아가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포대를 일으켜 세운 후 낙엽을 더 담았다. 젖은 낙엽 포대는 2인이 함께  들어 트럭에 나중에 실었는데 무게가 너무 무거워 힘들었다. 태풍 때문에 쓰러진 나무를 숲 속으로 옮겨야 되는데 너무 굵고 키큰 나무여서 톱으로 몇 토막 내어야  3~4명이 뭍어 옮길 수 있었다.  지친 몸이었지만 동료보다 젊다 보니 내가 작은 톱을 들고 마다하지 않고 굵은 나무를 혼신의 힘을 다해 토막 내었다. 나이든 동료들은 힘드니 톱을 잡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낙엽 담고 묶기에 이미 지친 몸이 톱질까지 하니 체력이 완전방전되어 버렸다.  트럭에 실린 낙엽포대를 2인 1조가 되어 잔재처리장에 하역하여 쌓는데 손에 힘이 빠져 너무 힘들었다.

그걸 보고 이병O 선생이 항상 내가 체력이 없는것처럼 쉽게 말하길래 기가 차서 톱질까지하여 오늘 체력이 방전된 모양이다고 설명해주었다. 나이 더 많은 그들을 위해 힘들지만 톱질까지 마다않고 해주어 방전된 것인데, 자기 힘자랑을 위해 동료를 깎아내리는 짓을 또 하다니. 나로서는 그런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동을 하면서 도토리 키재듯이 자기 자랑을 위해 남의 약점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동료를 배려한 결과를 고맙게 여기는 눈이 없다니 인생을 제대로 살아온 걸까?  그로기 상태가 될 정도로 바쁘게 작업이 진행되어 골병든 하루. 총반장이 퇴근 전 1시간 쉬게 해주었다. 고맙기도 한데 병주고 약 주는 기분.   


7/12(목)

장고O 공원에 예초하러 가다. 무더위 속에서 힘이 들어 예초기를 내려놓고 쉬면 총반장이 오늘 중에 끝내야 한다며  재촉하여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예초기를 돌렸다. 새로 지급된 예초기도 고물이라 진동이 너무 심했다. 예초기를 들고 있는 팔이 힘이 다 빠지기를 반복.  예초작업 거의 끝날 때 나이롱 실(줄)을 갈기 위해 헤드 두껑을 열어야 하는데 탈진하여 헤드를 열 힘이 없었다. 어제 이어 오늘도 그로기 상태.
장고O 공원에 출장 작업을 가면 쉬는 시간 인색하게 작업을 시키지만 퇴근시간을 30분 정도 총반장이 당겨준다. 그러나, 이 날은 퇴근 예상시간이 되자 가지말고 대기하라, 반장이 소리쳤다. 정식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퇴근시켰다. 아침 업무 지시 전 대기시간에 연일 노동강도를 높여 작업시키니 총반장을 욕한다고 오해를 하여, 사무실 직원의 지시가 비합리적이고 오락가락하여 총반장도 힘들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김재O 선생이 말했지만, 총반장은 노동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모양이고 나쁜 기분을 늦은 퇴근, 정확히 말하면 정상 퇴근으로 보복한 듯하다. 휴식 시간을 잘 주지 않고 무더위 속에 바삐 작업을 시키는 대신 장고O 공원에서는 이른 퇴근으로 풀어주는 작전을 그가 써왔는데 오늘은 소위 말하는 곤조를 부린 것. 달리 해석되지 않음.

7/13 (금)

하루종일 자연마당 예초하다. 클로버가 무성했다. 오전에는 3인이 예초. 오후에는 2인이 예초. 김재O 선생은 친척이 교통사고를 당해 조퇴.  이병O 선생이 내 예초기를 사용해보더니 힘이 약하다며 이런 장비를 현장작업에 사용하면서 작업진행이 늦다고 반장이 그러느냐고 불평을 하였다. 김재O 선생의 예초기로 작업하기를 권했다. 김재O 선생의 예초기는 힘이 좋았다. 큰 키의 갈대도 잘 잘려나갔다.  잘려나가면서 헤드를 감아 헤드를 멈추게 만드는 갈대의 저항이 당연히 있었지만. 동료 2명의 예초기들은 성능이 좋았다. 지난 번 예초기와 달리 새 예초기는 시동이 잘 안 걸리는 현상은 없어졌으나, 힘의 세기에 여전히 문제가 있고 진동(vibration)이 심해 예초작업하기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초작업을  거의 동료들만큼 잘 진행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일은 특근을 한다는데, 치과 예약이 되어 있기도 하고 무더위에 연일 노동강도가 너무 세어서 이러다가 골병들 것 같아 나는 쉬기로 했다. 특근은  일당의 1.5배를 주니 동료들은 선호하는 편.

7/16 (월)

연O 공원 남초소에서 하루종일 예초하다. 어제 특근 때 김만O 선생이  내 예초기를 사용하면서 힘이 없다며 고쳐 쓰지 않고 그냥 사용했냐고 자기가 고쳐놓았다고 잘난 척 했다.  사용해보니 헤드 진동이 심해지고, 잘 걸리던 시동도 한 번에 걸리지 않고 개선된 게 아니라 개악이 되었다. 헤드가 어느 경우든 떨어대니 제대로 깎을 수가 없다. 총반장에게 예초기가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졌다고 하니 귀찮아 하는 눈치. 오후에 이병O 선생이 병원 가느라고 조퇴하였다. 그의 예초기를 내가 사용했다. 그의 예초기는 아주 상태가 좋았는데 오후에 사용해보니 이것도 헤드 진동이 심했다. 아니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총반장이 노동자대기소 앞에 두고 온 내 예초기로 오후 내내 돌리더니 진동이 심하다는 걸 자신도 느꼈는지 내일 손 봐줄 모양.

7/17 (화)

총반장이 헤드에 연결된 기어 부품을 교체하였다.  김만O 선생이 고치기 전 상태로 돌아왔다. 신제품이 아니므로 이 기계로서는 이 정도이면 작업할 만하다는 수준이 있는데 딱 그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엑셀을 적당하게 유지하면 헤드가 떨리지 않는다. 약한 풀이나 잔디를 예초할 때 유지하면 되는 엑셀 위치다. 엑셀을 더 당기면 헤드가 떨리기 시작하는데 강한 풀을 예초할 때 유지하면  되는 엑셀 위치다.  고치기 전에는 어느 위치에 있던 헤드가 심하게 떨었다. 그래서 예초작업하기가  힘이 배로 들었었다. 연O 공원 북초소, 즉 훼손O
로  예초 지원을 나갔다. 예초기가  고쳐졌으니 제 기량을 발휘하며 무성한 잡초를 제거해나갔다. 무더위에 긴 시간 작업하니 목이 말랐고 나중에는 예초기를 든 팔에 힘이 떨어져 죽을 지경. 드넓은 잔디를 예초하였는데 작년과는 달리 땅바닥을 치지 않고 동료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잔디를 쳤다. 예초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만족. 그러나 체력은 바닥. 총반장이 작업진도에 만족했는지, 긴 예초작업 짧은 휴식으로 강행군 시키다가 작업을 종료시키고 30분 정도 휴식을 주고는 퇴근시켰다.

7/18 (수)

전날 예초기를  훼손O 창고에 두었고, 연O 공원 남초소에서 작업복과 장화로 갈아 입고 걸어서 훼손O로 출근하였다. 이 날은 1시간 일찍 출근했는데 10시에 숲 치유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므로, 새로 생긴 숲 치유 둘레길을 깨끗하게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줍고, 갈퀴로 낙엽을 긁어 군데군데 모았다. 그러면 동료들이 숲 속으로 버렸다.  3시간 무더위 속에서 작업을 하였는데 팀장이 고생했다고 11시에 작업종료하고 점심 때까지 노동자들 쉬게 해주라고 총반장에게 지시하였다.
오후에는 예초작업 강행군을 하였다. 간식으로 치킨이 나왔지만 별로 선호하지 않아 같이 나온 수박을 배불리 먹었다. 전날이 중복이라서 전날 나왔어야 하는데 사무직 직원이 모르고 지나쳐 다음날에 나온 것이다.

7/19 (목)

훼손O의 대부분의 잡초, 잔디를 하루종일 예초하여 마무리지었다. 이날은 총반장이 폭염이라서 점심 시간을 30분 더 연장해주었다. 

7/20(금)

연O 공원 남초소에서 하루종일 예초하다. 헤드 떨림이 언제부턴가 심해져서 예초작업하기가 더 힘들었다. 

우렁이 방사 체험행사 (7/7 ,토)때  사무직 이정O 주사에게 5월달 월급명세서를 인쇄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도  받지를 못해 전화 및 문자를 보냈다. 곧 7월달 봉급명세서(는 8월 초에 나올 것이다)가 나가니 그때 함께 주겠단다. 반달 뒤에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2달채워서 주려는가? 도저히 이해 안가는 일처리다. 이 날은 그녀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월급명세서를 봐야 월차가 돈으로 나온 것인지, 누적이 잘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데 너무 일처리가 더디다. 기간제는 졸로 보는 것인가?

퇴근 무렵 반장에게 6월 월차 하루가 유급으로 나와야 하는데 계산이 안된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적치 월차가 누적되어 있더라도 적치된 월차를 쓴 것으로 월급명세서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달(6월에 월차 쓰면 6월 월차 사용으로 나온다는 소리) 월차를 쓴 것으로 나온다고 했다.  어쨌건  6월 월차 하루가 유급으로 나와야 하는데 계산이 안된 것에 대한 답은 되지 못했다. 총반장은 5월 봉급명세서와 월차사용 현황을 이정O 주사에게 말해 인쇄해달라고 하여 다음 주 (월요일?)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월급명세서를 다 훑어보고, 실제 남아 있는 누적된 월차 수를 알 수 았으니 월차들이  제대로 처리(누적이 되든, 유급으로 계산이 되든)가 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총반장이 조퇴(반차)를 하면 1일 8시간, 5일 40시간을 못 채우니 만근이 아니어서 주차(유급주휴수당)가 발생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여기 사업소는 주차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생색내듯 말했다. 결근하면 만근을 못채워 유급주차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오전은 일하고 오후에 일 안하고 들어가는 게 해결방법인데, 그리고 어느 직장이나 그렇게 하면 주차 발생하는 것인데 그럴 듯하지마는 이상했다. 이병O 선생이 다른 직장에서도 조퇴(반차)를 하면 주차 생기는데요,라고 가볍게 반박했다. 총반장은 같은 말은 반목. 김무O 선생이 반장 말이 맞다고 거들었다. 1일 8시간이므로 5일이면 40시간을 채워야 주차가 발생한다고 법대로 따지면 반장 말이 맞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네이버 검색엔진을 통해 알게 된 정보,즉 주차는 출근한 날짜 수(5일)로 따지는 것이지 근무 시간(40시간)으로 따지는 게 아니다고 휴식시간에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  김무O 선생은 늘 그렇듯 자기 주장을 계속 내세웠다. 나는 여러분 위해 내가 찾아본 건데 김새게 그러느냐고 했다. 자료를 달라고 하기에 직접 찾아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관심이 없어서 찾아볼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답.

월차 누적 문제로 총반장에게 물어보고 있을 때도 쓸데없이 끼어들어 자기는 그 달 그 달 사용하지(돈으로 받는 듯) 누적하지 않는다고. 만약 급히 쓸 일 있으면 그냥 결근한다고.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다고. (만약 결근하면, 결근 당일 수당 뿐만 아니라 주차 및  월차까지 손해보기 때문에 대부분 동료는 갑자기 생길 수 있는 미래의 큰일에 결근하지 않기 위해 월차를 조금이라도 누적해두는데 이 건 무슨 궤변이람?) 각자 사는 방식은 자기 마음인데 잘못된 방식을 남에게도 강요하듯이 끼워드는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짓.

5월 월급명세서도 김무O 선생이  이정O 주사와 친하니 전화하여 달라고 해달라고 며칠 전 말했는데 이 날 확인하니 전화하는 게 맞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아직 전화하지 않았고, 우렁이 방사할 때 내가 이정O 주사에게 인쇄해달라고 하자 이정O 주사가 안해주겠다고 자기는 바로 옆에서 들었다고 귀 어두운 소리를 했다. 이정O 주사는 말하자면 본사에 있기 때문에 행사가 있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자기 판단에는 전화로 말할 상황이 아니라고 하여,그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아 이정O 주사에게 휴식시간에 전화로 5월 봉급명세서를 재요청한 것이다.  60대 중반 이상 되는 동료들의 공통점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인데 흔히 말하는 똥고집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매번 내 의견을 접으면 어느 순간 열이 나는 때가 생기는 법. 매번 그럴 수는 없다. 

ㅡ아래ㅡ

지각,조퇴,외출 시에도(즉,8시간 근무 안하여도)  만근 인정하여 주휴수당(주차)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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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55조 (휴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brms&logNo=221150007448&targetKeyword=근로기준법 55조&targetRecommendationCode=1&keywordSearchType=TEXT

근로기준법 제 55조-휴일

1)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2)유급휴일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일을 개근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영 제 30조)

 

유급휴일은 ,토요일과 일요일 처럼 공휴일에는 휴무인  5일근무제를 적용받지 아니 하고 추가로 근무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유급휴일수당은 유급휴일인 토요일과,일요일날 근무를 하지 않아도 지급되는 수당을 말하는데.통상임금의 개념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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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기준법:

https://namu.wiki/w/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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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답

https://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6&dirId=60105&docId=303040640&qb=6re866Gc6riw7KSA67KVIDMw7KGw&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

고용노동부님 답변

질문자 채택

1. 안녕하십니까?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입니다.

2. 귀하께서는 ‘주중 지각·조퇴시 주휴수당 지급여부’에 대하여 질의한 것으로 판단되며,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 동안의 소정근로일을 개근한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5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0조),
    
나. 지각·조퇴·외출등의 사유로 소정근로의근로시간 전부를 근로하지 못하였다하더라도 소정근로일에 출근하여 근로를 제공하였다면,이를 결근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므로 주휴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합니다.

3. 추가적인 문의사항이 있으신 경우에는 귀하께서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1350)으로 문의하여 주시면 정성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23(월)

연O 공원 남초소에서 하루종일 예초하다. 33도가 넘는 폭염주의보 탓에  점심 시간이 2시간 주어졌다. 경O 공원을  수요일 오픈하기 때문에 예초기를 돌리는 3인 빼고는 총반장이 모두  경O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퇴근도 거기서 할거라며 도시락과 개인 배낭을 들고 가라고 총반장이 지시했다. 분수,물놀이 시설,인공폭포가 그 공원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 여자를 각 1명씩 고정 배치한다며,  이무O 선생과 박미O 여사가 바로 당첨된 사람들. 여자는 원했고 남자는 총반장이 지정. 예초기 3인 빠지고 조장 역할하는 김만O 선생 빼고, 그러다보면 경O 공원으로 갈 남자는 김무O 선생 밖에 없기는 하다.
30분 예초,30분 휴식을 반복하라고 총반장이 지시하였으니 폭염 속의 예초작업은 덜 힘들었다. 엑셀을 조금 올렸는데도 헤드 떨림이 심해져 끈을 더 길게 나오게 하면 떨림이 줄어들까, 허벅지에 예초대를 붙이면 떨림이 줄어들까, 고민하며 여러 방법 써보니 허벅지에 대를 붙이니 떨림이 덜 했다.


7/24(화)


오전은  연O 공원 남초소에서 예초하다. 오후에는 수요일 오픈하는 경O 공원으로 이동하여 예초하다. 훼손O에서도 예초기 2대가 합류하였다. 연합함대 작전처럼 오후에 한꺼번에 예초기 5대가 투입되어 잔디를 깎았다. 예초기 엑셀을 올리니 헤드가 너무 심하게 진동하여 일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고물 예초기를  3인 중에 가장 경력이 짧은 나에게 주다니. 더 고쳐봐야 별로 개선될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사용한다마는 기가 막히는 예초기 상태. 오후 반나절에 부랴부랴 오픈 준비작업 중 잔디 예초작업을 마치려고 하니 바빠져서 폭염 탓에 기진맥진한 하루. 저녁에는 성당 봉사단 모임이 있는 날이라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였다.

7/25(수)

오전은  연O 공원 남초소에서 화장실 뒤 잔디를 예초하여 마무리지었다. 그리고나서 다리 밑 터널 주위의 잡초를 예초하였는데,  도중에 이병O 선생은 김만O 선생과 지주목을 드릴로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김재O 선생과 나,이렇게 2인이 마지막까지 남아 예초작업을 했다. 성능이 좋은  이병O 선생의 예초기를 내가 짊어지고 사용하기로 했고 엔진이 허덕거려 힘이 없는 내 예초기는 그가 창고로 반납하였다. 올해 구입한 예초기라서 이병O 선생의 예초기는 A급  성능. 양묘 총반장이 오더니 자기 구역까지 예초해주기를 부탁하여 김재 선생이 그 쪽까지 더 해주었더니 여사님을 통해 냉커피를 두 잔 보내왔다. 오후에는 족구장의 잡초를 호미로 제거하는 일을 나는 여성동지들과 함께 일했다. 전달에 사용하지 못한 간식비가 이 날 집행되어 피자를 휴식 시간에 콜라와 함께 먹게 되었는데 김재O 선생은  경O 공원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배달하기 위해 자신의 승용차를 끌고 거기로  가사 퇴근 시간되면 거기서 퇴근.

7/26(목)

마O 공원으로 예초기 5대 모두 출동하여 하루종일 예초하다. 폭염이어서 가지고 간 식수가 부족할 정도로 목마름이 심했다. 토끼풀이 많이 퍼져 있었는데 예초기로 군데군데 눌러준 후 바닥을 치면 효과적으로 예초가 되는 풀이다.  김재O 선생이 월차라서 대타로 그의 예초기를 짊어진 김만O 선생은 그런 방법을 모르는지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초하고 있었다.

7/27(금)

장고O 공원으로 출근하였다.  배나무 밭 주위에  세개의 구멍난 굵은 지주목(말뚝)으로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9시가 아니라 이른 8시20분경부터 시작하였다. 다들 일찍 출근해 있으니 일찍 작업을 시작하고 일찍 퇴근시키겠다는 게 총반장의 생각. 삽날의 2배 깊이로 깊게  구멍을 파내려가는데 돌이 많아 파기가 힘든 데도 있었고 간혹 파기 쉬운 곳이 걸리기도 했다. 일정한 거리마다 표시를 총반장이 해두었고 표시된 부분을 파내려 가면 되었다. 잘 파지지 않아 훼손 O 창고에 보관된 데코(창처럼 긴 쇠막대. 흙을 쪼아대고 휘저어 흙 속의 돌을  들어내거나 깨뜨리는 도구)를 고종O 선생이 자신의 차를 몰고 다녀왔다. 전날 월차였던  김재O 선생은 하나를 완료하면 다음 표시된 자리를 파야 하는데 파내려 가기 어려워 보이면 그 자리를 슬쩍 지나가고 파기 쉬워 보이는 곳으로 더 이동하여 팠다. 노란 색 위험표시 끈이 드러나고 더 파면 가는 관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가스관인가 했더니 공원 가로등의 전기선 관인 것 같다고 동료가 말했다. 그런 경우는 그 자리를 피해 다시 파야 한다. 이무O 선생이 무더위 속에서 힘들게 파 내려간 구멍에 그런 관이 드러나 그 옆에 새 구멍을 나란히 파는 게 보였다. 총반장과 김만O 선생은 구멍에  말뚝을 박고 흙을 채우며 이동하였다. 간혹 깊이 파지 않았다고 총반장이 고래고래 소리질러 윤의O 조장이 도로 후퇴하여 더 파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판 자리를 보니 더 깊이 파야 하는데 다음 팔 자리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잘 파지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총반장과 함께 말뚝을 박으며 이동하는 바람에 깊이가 맞지 않으면 김만O 선생이 좀 더 파야만 했을 것이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대단한 체력. 나이 탓에 이 바닥에 들어오기 힘든 현실이니 더더욱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반장에게 보여줘야 하는 실정이니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녹화끈으로 말뚝의 상단에 묶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장면이 보였는데 말뚝의 수평을 잡는 것이라고 한다.

하얀 로프 끈으로 2개의 구멍에 넣어 팽팽하게 만든 후 로프 끝에는 고정쇠로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였다. 나중에 줄에 기대거나 하여 로프가 축 처지면, 고정쇠의 나사를 풀어 다시 로프를 당겨 팽팽해진 상태에서 고정쇠로 하얀로프의 양쪽  끝을 중첩되게 한 후 고정쇠로 고정을 시키면 된다고 한다. 3개의 구멍 중에 맨 아래 구멍은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음. 발 뒷꿈치로 말뚝 주위 흙을 다졌다. 평균 10개의 구멍을 팠다. 딱딱한 땅에 삽질이 잘 되지 않지만 삽날로 쪼아대고 깨어지는 돌 파편을 바깥으로 퍼내고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결국은 깊은 구멍이 생겼다. 인생도 그러하겠지. 온갖 역경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 우물 파듯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다면 해결되겠지만, 쉬 포기하거나 피해 버리면 물이 올라오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쓸데없는 삽질하다만 흔적만 계속 내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전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김경O 선생이 퇴근할 때 자기 차를 타고 가서 자신의 아파트 근처 편의점에서 시원한 수입캔맥주를 마시자고 하여 그리하였다. 나는 체코 흑맥주 2캔을, 그는 다른 걸로 2캔을 2시간여 대화를 하며 마셨다. 전직장 동료 서흥O 선생을 부를까 했었는데 소주파라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마실 수 없으니 우리 둘만 마셨다. 염효O 선생도 부르고 싶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니 포기했다. 마지막에 편의점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헤어졌다. 만원의 행복.

하루종일 삽질로 팔꿈치가 아파서 잠자리 들기 전에 양쪽에 파스를 붙였다.


7/30 (월)

장고O 공원으로 출근하였다. 또 다른 배나무 밭 주위에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금요일보다는 삽질이 잘되었다. 전날 갑자기 내린 소나기 탓에 땅에 수분이 들어간 때문일까? 큰 지주목은 울타리용 말뚝으로 사용되었고 작은  지주목은 말뚝 주위의 흙을 두드리며 다지는 용도로 사용 되었다. 2개의 울타리를 치는데 업자 견적으로는 천만원이라고 한다. 총반장과 기간제 근로자 10명 (여성동지 2인 포함)으로 재료값만 들이고 공사한 셈. 36도 넘는 폭염으로 점심 시간 2시간이 주어졌다. 공원 정자에소 점심식사후  낮잠을 자면 피로가 풀릴텐데, 총반장이 정자로 올라와서 나누는 대화가 길어져서 졸리는데 드러누워 잘 수 없었다. 


7/31(화)

오전에는 계O공원 입구 우측에 동네사람들이 불법으로 텃밭으로 사용 중인 곳을 정리하러 갔다. 농작물 금지 팻말이 서 있지만, 땅속에 큰 장독대가 파묻혀 있고 돌솥이 여러 개 버려져 있고 고목 등걸,잡목, 부억칼 등등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 있었다. 잡목은 묶고 오후에 트럭에 실기 싶도록 도로가에 모았다. 낙옆은 대형 낙엽포대에 담았다. 식당 주인이 나와 냉커피를 대접하였다. 자신의 식당 주위를 깨끗하게 해주니 고맙다는 뜻일 것이다. 주민 1명이 나와 80살 넘은 자기가 다니기 편하게 장독을 옮겨달라고 하며 계속 말을 붙여 왔다. 노동을 하고 잠시 쉬는데 이런 저런 개인적인 요구는 노동자로 하여금 피곤하게 하는 짓. 대화를 하다 보면 그걸 꼬투리로 민원을 제기하는 수도 있다고 되도록이면 민원인과 접촉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을 정도. 시원한 물 한 잔도 돌릴 줄 모르더라. 인생을 헛 산 듯. 도움을 받았으면 고마움을 작게라도 표현할 줄 알아야 나이값을 하는 게 아닐까?
오후에는 도로가에 모아둔 쓰레기를 트럭에 실는데 대형 LCD TV를 어느 사이에 주민이 버렸다. 그것까지 트럭에 실었다.  쓰레기하치장에 종류별로 버리고, 며칠 전에 장미원에서 젖은 낙엽들을 대형 낙엽포대들에 담아 일시적으로  쓰레기하치장 어중간한 위치에 쌓아두었던 것을 일일이 제 위치로 옮기고 포대를 칼로 뜯어내어 속의 낙엽을 부었다. 폭염 속에서 반복하는데 힘들어 긴 시간 작업을 할 수 없어 짧은 작업 짧은 휴식을 반복했다.
낙엽이 바짝 마른  낙엽포대는 삭아서 재활용이 불가능했고 들기에는 가벼웠다. 그러나 낙엽이 덜 말라 젖어 있는  낙엽포대는 무척 무거워 둘이 들지 않고 혼자서 땅바닥에 질질 끌며 옮겼다. 둘이 들든 혼자 끌던 무겁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질질 끄는 게 나았다. 


8/1(수)

경O공원 물놀이 시설 주위가 완전 땡볕이라 대형 행사용 천막들을 주위에 빙 둘러가며 설치하기 위해 오전은 천막 설치 작업을 하였다.
오후에는 코스모스 꽃밭의 야자수 매트에 대가리를 내민 잡초들을 호미로 제거하였다. 폭염에 10분만 앉아서 작업해도 땀이 주루룩 흐를 정도.  그래도 예초기 안하니 손가락 관절이 좋아지니 좋다고 김재O 선생이 싱글벙글. 하기사 나도 계속 손가락 관절이 이상하다. 파라핀 치료를 정형욋과에서 받기도 했는데, 예초기의 심한 바이브레이션이 관절염을 직업병으로 발생시키는 주요 요인이니 사무직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조심해야 할 병.

8/2(목)

하루종일 코스모스 꽃밭의 야자수 매트에 대가리를 내민 잡초들을 호미로 제거하였다. 오후 후반부쯤에 세족장(맨발로 둘레길을 걷고 마지막에 흙 묻은 발을 씻는 욕조 같은 공간)에 새 시체가 있으니 그걸 막기 위한 뚜껑을 설치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울타리 용 긴 대나무를 2개 들고 가라고 총반장이 말하여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폭염 속의 도로를 걸어 세족장으로 향했다. 김만O 선생은 검은 그늘망을 들고 갔다. 작업 도중에 대나무 1개가 더 필요하다하여 또 다시 폭염의 도로를 걸어 왕복해야 했다. 대나무를  각각 세족장의 좌우 끝에 두고 가운데에 대나무를 두고 검은 그늘망을 대나무에 끈으로 여러 부분 묶었다. 발씻을 때는 돌돌 말아 열고, 다시 돌돌 풀어 세족장을 덮는 것이다. 처음 팀장 지시는 대나무들로 촘촘히 덮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반장이 쉬운 방법을 찾은 셈이다. 숲 치유사가 문제를 제기하여 자기네가 해결하지 않고 우리 쪽에서 해결하도록 내려온 모양. 새로 만든 둘레길을 돌며 숲 해설하는 것인데 그의 그럴 일이 없는 모양이라서 할 일이 없는 보직인데, 노느니 하루에 2번씩 돌면서 둘레길 상태를 체크하고 세족장에 새 시체가 떨어져 있는 희귀한 예가 발생하면 제 손으로 치우고 청소하면 될 것을 놀고 먹거나, 새 시체 발견을 보고만 하고 해결책을 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은 끝이라는 심보.  들리는 말에 2인 중에 1명은 교장 출신이라고. 일당이 9만원이고 어쩌다 숲치유 예약이 발생하니 은퇴예정자는 이런 직종도 생각해볼 만. 관련 교육기관에서 6개월정도 교육 받고 자격증 시함은 1년에 1번 있고 절반이 매년 합격하는 모양. 지금 나로서는 6개월을 교육 받느라고 보내고 싶지는 않음. 퇴직 직후에 그런 걸 알았다면 고용보험 기간중에 그런 교육기관에 다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현재는 그렇게 6개월 보낼 입장이 못됨. 마음이 편치 못할 듯.


8/3(금)

이 날은 7월 봉급 명세서와 5월 봉급 명세서가 함께 나왔고, 봉급이 입금되었다. 휴가철이라 사무실 직원들이 각자 휴가 가기 전에 서둘러 결재를 하여 일찍 나온 듯하다.

자연마당의 연밭은 연꽃농사가 시원치 않았다. 그에 비해 경기장이 바라보이는 대형 연밭은 연꽃농사가 대성공. 그래서 연을 보러오는 방문객의 발을 그곳으로 돌릴 필요성이 생겼다. 하루종일 대형 연밭에 가서 수풀이 무성해진 진입로를 예초하여 길을 내고 두개의 연밭 중에서 성공한 연밭 주위의 밭두렁을 예초하게 되었다. 3인의 예초부대가 투입되었다. 진입로 초입은 길게 자란 갈대로 길이 없어졌다. D급 상태인 내 예초기로는 엔진의 힘이 딸려 쳐내기가 어렵다. 그 자리는 A급 새 예초기를 짊어진 이병O 선생이 맡았고 나는 좀 더 나아가 적당한 자리를 맡아 길을 내었고 김재O 선생은  더 나아가 적당한 자리를 맡아 길을 내었다. 헤드 밖으로 길게 끈을 나오게 하니 회전력이 약해 많이 자란 굵은 잡초는 끊어내기가 어려워졌다. 부드러운, 키 작은 잡초들을 먼저 쳐내며 끈의 길이가 줄어들도록 만들었다. 끈의 길이가 짧아지자 회전력이 빨라져 굵은 잡초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잘라낼 수 있었다. 최대한으로 엑셀을 올려야만 잡초를 잘라내며 전진할 수 있는데 헤드의 떨림은 심했다. 김재O 선생이 자신의 예초기가 힘이 없다며 기계를 조정하였다. 그의 도움을 받아 내 예초기도 더 힘 있게 만들려다가 그냥 사용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잡초 제거하는데는 도움되겠지만, 헤드 떨림이 더욱 심해져서 잔디를 예초할 때는 아주 힘들어지고  심한 진동이 관절염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동도 잘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예전에 그런 상태였다가 여러 차례 고쳐 지금 상태가 된 것이니까. 현장에서는 퇴출되어야 할 예초기 상태다. 전직장의 경우 염효O 사부의 예초기만 이런 상태이고 다른 예초기는 여기 예초기보다는 상태가 더 좋았다. 간혹 염효O 사부의 예초기를 사용할 때가 있었는데 바이브레이션이 너무 심해 이것 쓰다가는 관절염이 발생하겠는데,하고 독백하곤 했는데, 지금 내 예초기가 똑같은 증세. 아무튼 짧은 끈 길이와 회전력의 최적의 조합을 찾아 잡초를 쳐나갔다. 끈이 길어야 회전반경이 더 넓어져서 한 번에 많은 풀을 쳐낼 수 있어서 작업이 수월한데, 짧은 끈으로 만드는 회전반경은 한번에 적은 양의 풀을 쳐낼 수 밖에 없으니 비효율적이지만 고물 예초기로는 이 방법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해결책이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노동자 대기소 근처의 막국수 식당에서 사먹기로 하였기 때문에 연밭에서 먼 대기소로 돌아와서 양양  비빔막국수를  이병O 선생,  김만O 선생, 나, 이렇게 3명이 함께 먹었다. 1,000 원을 추가하여 곱배기를 먹었는데 9,000 원. 김재O 선생은 분식은 속에 안좋다며 보양식 추어탕을 먹으러 다른 식당에 갔다. 내 개인적으로는 추어탕이 좋으나, 동료와 함께 하는 자리를 더 중요시했기에 전날 약속한 막국수를 먹었다. 냉면과 차이가 뭐내고 물었더니, 강원도가 고향인  이병O 선생 왈, "막국수 면발이 더 부드러워 씹기 좋고 냉면발은 잘 끊어지지 않는 것도 있더라".

퇴근후 서구 세무소 근처 단골집 어시장에 전직장 동료와 모여 광어회를 먹었다. 회원 5인 중 서흥O 선생이 폭염 탓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매운탕과 공기밥으로 저녁을 한자리에서 해결. 2차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수입캔맥주를 마셨다. 나는 코젤 2 캔을 마셨다. 아직 술이 남아 있는데 김인O 선생이 화장실 갈 때 암호를 입력하는 방법을 몰라 화장실 문을 열지 못할 것 같아 동행해주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테이블 위의 캔이 사라져 있었다. 술 안 마시는 동료가 11시가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린 것.


8/4(토)

어항에 오랜 살아온 큰 버들치가  죽어서 둥둥 떴다. 폭염 때문인가? 아니면 폭염 탓에 주말산행을 하지 않았고 하산길에 늘 떠오든 약숫물을 떠오지 않아 어항에 약숫물을 추가로 넣어주지 못한 주가 여러 주 흘러가다 보니 수질이 나빠진 탓인가? 버들치를 치웠다, 더 이상의 부폐로 인한 수질악화를 막아야 했으니까.

생수를 타려고 전전직장의 생수하치장으로 승용차를 몰고 갔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다. 매월 첫 주만 토요일에 문을 여니 오늘을 놓치면 평일은 일을 해야 하니 올 수가 없다. 퇴직 무렵 꽤 많은 생수 포인트가 남아 3개월에 1번씩은 생수를 가지러 옛직장 근처로 간다.  다닐 당시에는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옛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폭염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생수 박스들을 뒷베란다에 옮겨놓고 이왕 땀 흘린 김에 등산가기도 어려운 폭염이니 어항 물을 갈아줄 약수물을 뜨기 위해 빈 생수 페트병 20개를  승용차에 실었다. 30 L를 담을 수 있는 용량. 에전에는 문학산의 청학사 약숫물을 떠오곤 했는데 물이 없을 때가 더러 있어, 간석오거리 약사사 약숫터로 가서 약숫물을 담아왔다.

8/5(일)

어항물을 갈았다. 냄새 나던 어항물이 쾌적한 약숫물로 바뀌었다. 10년 이상 살고 있는 붕어 2마리, 금붕어 2마리, 야생 미꾸리 1마리, 동자개(?) 1마리가 기분좋게 헤엄치고 있다. 버들치가 몇 마리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지난 번 죽은 큰 버들치도 10여년 살다 죽은 것인데 마지막 남은 버들치였던가?


8/6(월)

김재O 선생이 월차낸 모양. 김만O 선생이 그 대신으로 예초기를 짊어졌다. 3인이 벼 논 주위의 논두렁과  근처 연밭 옆 길을 예초 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번 주는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폭염으로 인한 휴식 시간. 시설관리공단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데 여기는 이번 주에 시행 시작. 오전 2시간과 오후 2시간, 합해서 4시간만 폭염 속에서 일하면 된다. 오전은 이병O 선생이 정신이 어찔하고 몸이 안좋은 상태가 와서 작업 중 그늘에서 쉬었다고 한다. 오늘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었다. 나는 벼 논두렁 주위와 그 옆의 배수로에 올라와 있는 잡초를 쳤다. 잡초가 길고 억셌다.  회전력이 약하므로 적정한 길이가 헤드 밖으로 나오게 하여 잡초를 쳐나갔다. 점심시간이 4시간이 된 셈이어서 처음 소설책을 꺼내 읽었다. 
점심 도시락을 사왔으나 김만O 선생이 짜장면 먹으러 가자 하여 예초부대 3인이 입맛도 없고 하여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물만두도 시켜 먹었다. 김만O 선생이 계산하는 바람에 오는 주말에는 내가 계산하기로.


8/7(화)

월차(3번째)를 내어 경북 안동에 다녀왔다. 방사선 치료 받는 작은 처제의 병문안. 청주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간 후 청주에서 동서의 차에 동승하여 안동으로 내려갔다.
이 날 연합함대를 이루어 5대의 예초기가 자연마당에 투입되어 연못 쪽의 잡초를 예초하였다고 한다. 길게 자란 갈대는 너무 억세서 낫으로 베기로 하고 남겨두었다고. 여성동지들은 김 매었다고.

8/8(수)

연합함대를 이루어 예초기 5대가 자연마당에서 잔디밭을 깍고 연못가의 갈대 및 잡초를 예초했다. 11시부터 4시까지 폭염으로 작업중단이라서 터널 속에서 잠을 잤다. 눈 붙였으나 잠은 오지 않아 그냥 누워 있었다.
전날 내 예초기를 사용했던 김만O 선생이 헤드가 심하게 떨리고 힘이 약하니  나에게 총반장에게 고쳐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여러번 고친 게 현재의 상태라 더 이상 고쳐질 것 같지 않고 현상태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런 고물 예초기로 하루종일 많은 잔디를 깍았다.

8/9(목)

하루종일 자연마당에서 잔디밭을 예초하였다.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병O 선생이 시동이 걸리게 고쳐주었다. 시동을 걸고 그가 잠시 내 예초기를 작동해보았다. 회전력이 약해 풀을 자르는 세기가 약하고, 헤드 떨림이 심해서 도저히 현장에서는 쓸 수 없다고 그가 말했다. 이런 말은 이전에도 내 예초기를 잠시 써볼 때마다 동일하게 한소리다.  이병O 선생의 예초기는 A급  성능의 새 예초기. 그런데 퇴근 무렵 산책길 가의 잔디와 나무 주위를 헤드가 점점 심하게 떨리는 헌 예초기로 예초하고 있는데  이병O 선생이 내 작업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 작업에나 신경쓸 일이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러더니 그가 과장해서 심하게 기쁜 나쁜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쥐 파먹듯이 깎으면 높은 사람이 보면 성질내며 욕한다고. 계속 듣는 상대방 생각은 하지 않고 지껄였다. 자기의 예초실력을 자랑하려다 보니 상대방을 더 깔아내리면 더 자기 자랑이 된다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나는 잘 안다. 잘난 척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방법은 한두번은 참지만 계속 들어줄 수는 없다. 비열한 짓이니까. 총반장 있을 때 그런 짓을 할 수도 있고. 해서 나도 반응했다. 기술 문제 같으면 듣고 고칠 수도 있겠지만, 헤드가 심하게 떨리는 장비 문제인데 어쩌란 말이냐? 성님도 내 예초기가 헤드가 심하게 떨리는 걸 잘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하냐? 그런 소리 들으면 내 마음이 아프다,라고. 옆에 지나가던 빗자루질 하는 윤의O 선생이 헤드가 떨리면 고르게 예초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며 내 편을 들었다.


8/10(금)

하루종일 자연마당의 비탈을 예초하였다. 구청 관할인데 직접 관리하지 않고 올해는 하청업체에 넘겨버리니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이익을 내려는 하청업체가 거의 방치를 해버리고 있는 실정. 해서 칡넝쿨에 잡초가 키대로 자랐다.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면 바로 해결될 텐데 총반장은 우리 노동자에게 그렇게 해보란다.  내년에 구청의 녹지과에 기간근로자로 지원해야 할 지도 모르니 그런 민원을 제기했다가는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이 지역 기간제 노동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총반장이 구청 녹지과에 협조 공문을 보내면 해결될 문제. 아니면 개인으로 그 자신이 구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해도 되고. 그는 할 일이 많은데  인원이 없다고 늘 말하면서도 그렇게 문제를  풀지 않고 늘 우리가 예초를 하게 한다. 이렇게 남이 늘 해주니 정작 담당인 구청에서는 더더욱 신경 안 쓸 것이고 이렇게 계속 반복될 것이다. 남의 산소에 벌초해주는 격.
 작년에도 여기서  일했던 윤의O 선생이 총반장이 독수리 타법으로 오래 걸려 문서작성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협조공문 독수리타법으로 치다가는 며칠 걸릴 수도 있고 저정을 제대로 못해 한순간 파일을 다 날려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지도 모른다. 요즘 PC로 문서작성은 기본인데 이해가지 않지만 그래서 협조공문을 작성하지 못하는 그의 답답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기장판을 이어붙여 깐다든가 창고 내의 정리함을 만든다든가 하는 재주는 탁월한 사람이다.

오후에 드디어 고물 예초기가 작업 도중에 시동이 꺼지더니 정비를 하여도 도저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시동 걸기를 포기하고 싸리비를 잡고 예초기가 지나가면서 산책길에 잘려져 나간 잔디 찌꺼기를 쓸어내는 일을 했다. 윤의O 선생이 빗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가 빗자루를 놓고 쉬는 시간에 내가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예초기 고장으로 내 일이 중단되었으니 예초작업을 못하게 된 시간이 미안하기도 해스리.
퇴근 전에 총반장에게 월요일 고쳐달라고 말했다. 엔진까지 정비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총반장은 결론을 내었다.

퇴근길 홈플러스에 들러 수입캔맥주와 안주거리를 샀다. 체코흑맥주 코젤을 한 캔 마셨다. 마음이 풀렸다.


8/11(토)

아침에 정형욋과를 갔다. 해드가 심하게 떨린 탓에 손가락 마디에 관절염 증세가 지병처럼 반복되었기 때문이고, 왼쪽 팔꿈치의 안쪽이 또 아팠기 때문. 팔꿈치의 바깥이 아픈 것은 테니스엘보. 테니스, 골프 따위의 스포츠를 하는 사람에게 발생하며 팔꿈치의 안쪽이 아픈 것은 육체노동자에게 발생한다고 한다. 예전에 같은 증세로 병원에 들렀을 때 원장이 말해주었다. 초기에는 고물 예초기의 엑셀이 사용중에 저단으로 자꾸 이동하는 바람에 예초 세기가 약해지니 자꾸 액샐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 반복 되었다. 정상적인 예초기라면 고단으로 올리면 그 상태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즉 자꾸 엄지로 조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물예초기 엑셀이 자꾸 내려가니 도로 올리는 짓을 엄지 손가락으로 계속 하다보니 엄지 속이 찌릿찌릿한 상태가 1달 이상 지속되었었다. 파라핀으로 양초 장갑을 입히는 치료를 하다보니 그런 증세는 사라졌지만, 손가락 관절염은 심해졌다가 견딜만 하다가를 반복. 병원을 나와 근처 재래시장 방앗간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방앗간 주인이  비싼 야채 야구르트를 먹고 있길래 아로니아를 먹기를 권했고 그의 부탁에 11번가에서 아로니아 분말을  주문하여 나누기로 했다. 1인당 1만원에 1달 먹으니 가성비 좋은 선택.  TV를 바꾼다고 하길래 11번가를 뒤져 몇 가지 종류를 정리해주었고 그 중에 USB포트가 있고 LG 정품 패널을 사용하는 중소기업 43인치 LED TV를 추천해주었다. 택배비 2만원 포함하여 26만원이 안되는 가격.
지인의 방앗간을 봐주었다. 그가 맡기고 다른 일을 보러 갔기 때문. 그 바람에 시간이 꽤 흘러 늦은 점심 시간이 되어 그가 사주는 칼국수를 먹고 귀가하였다.


오후 늦은 시간에 만월산에 어항에 넣을 약수물을 뜨러 갈 겸 산행을 하려고 말셀로 형을 불렀다.  오후 5시 넘은 시간이었지만 폭염이 심했고 만월산 초입에서 가까운 벤치에서 준비해 간 독일맥주와 안주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하산하였다. 그는 건강상으로 이유로 전직장을 그만 두었다가 다시 새직장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내정은 되었으나 아직 부르지 않아 답답한 상황. 나도 비슷한 상황. 차이는 현재 그는 실직 상태이고 나는 취직 상태라는  점. 
  

8/13(월)

출근하니 부산스럽게 동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경O 공원으로 가니 빨리 준비하란다.우리 초소에서 이병O 선생만 예초기를 1대 가지고 가고 훼손O  초소에서   예초기를 2대 가지고 가라고 총반장이 지시한 모양. 나는 싸리비로 예초 잔재들을 쓸어 큰 푸대에 담았다. 일을 마치고 나는 초소로 가서 퇴근하지 않고 경O 공원에서 바로 퇴근하였다. 김무O 선생이 편의점에서 수입캔맥주를 한잔 하자,하여 일본 생맥주 맛을 잘 재현하고 있다는 처음 보는 캔맥주를 그가 추천하여 마셨다. 맛 좋았다.


8/14(화)

제3부지에 예초한 날.
전날 퇴근무렵 총반장이 경O 공원으로 출근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퇴근 준비를 하느라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니 반장이 동료들에게 말하는 말 전체가 아니라 끝 부분만을 들을 수 있었는데 확실한 확인이 필요하였다. 해서 아침에 김재O 선생에게 전화하여 확인하니 직접 경O 공원으로 출근할 사람은 해도 된다고 했으며, 김재O 선생 자신은  자신의 예초기를 가지고 작업하기 위해 연O공원에 들렀다가 올거라고 하였다.
그는 전날 훼손O 초소에서 가지고 온 2대의 예초기 중 김경O 선생의 예초기를 사용했는데, 헤드가 심하게 떨려 못쓰겠다고 말했었다. 총반장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예초기가 1대 더 온 격. 총반장이 헤드가 심하게 떨리는  김경O 선생의 예초기로  나도 예초하라고 시켰다. 엑셀을 최대한 올려야 길게 자란 찬디가 깍길 만큼 올해 구입한 신형 예초기임에도 헤드 떨림이 심했다. 그런데 정작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헤드 바닥이 찢어지고 흙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톡톡 두드려도 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헤드를 갈아야 해결될 문제. 두드려서 자동으로 끈이 나오지 않으니 끈이 금방 닳아 짧아지면 시동을 끄고 헤드 뚜껑을 열고 수동으로 직접 손으로 끈을 빼내어야 하니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김재O 선생이  자신의 예초기를 가지고 이유를 알겠더라. 총반장에게 그가 점심 먹으러 연O  공원 초소로 가면 새 헤드를 갖다 달라고 했더니 오늘은 그냥 쓰란다.  그러면서 끈이 얼마 남았는데 새 끈을 넣지 얼마 안남은 끈을 다시 넣어 쓰느냐고 짜증내었다. 수동으로 계속 끈을 빼내야 하는 현 상황에서 긴 끈을 넣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전혀 아니고 끈은 버리기에는 많이 남아 있는 편이었다. 반장이 헤드 속에 남아 있는 끈을  버렸다. 흙이 들어오는 헤드를 바꾸어 주지 않고 최대한 쓰게 만드는 지나치게 절약(?)하는 평소의 그의 태도는 작업 능률을 많이 떨어뜨렸다. 목장갑도 매달 한 타래씩 지급되어야 정상인데 한 켤레씩 꺼내 써라 빨아서 계속 써라,고 잔소리해대니 노동자들은 그의 집에 가면 빼돌린 목장갑이 엄청 많을 것이다. 목장갑 장사를 하나,하고 뒷담화를 하였다. 작업 진도가 늦다고 재촉하면서 예초기 헤드를 바꿔주는데는 인색하니 이거 원 앞뒤가 많지 않다. 헤드 실이 긴 잔디와  잡초를 쳐나가면 나일론실은 금방 금방 닳는다. 계속 땅바닥을 두드려 헤드 속의 실(끈)이 나오게 하여 긴 끈 상태를 유지해야 회전하며 원이 넓고 그 만큼 예초되는 면적이 넓어져 작업진행이 빨라지는 법. 닳아 짧아지는 실로 작은 면적만 치게 되고 수동으로 끈을 길게 밖으로 내기 위해 헤드 뚜껑을 여느라 작업을 중단하기를 반복해야 하니 작업 효율성은 제로.  요즘 노동은 10%가 노동자의 기술 혹은 능력,90%가 장비로 하는 시대라고 한다. 옛날에는 장비가 시원치 않아 거의 모두 몸으로 때웠지만, 북한이라면 몰라도 남한에서는 오늘날 그런 노동현장은 없다. 아니 남한 속의 북한이 여기 있다. 블로아(Blow-A)로 붕붕 불어대면 효율적인데도 싸리비로 쓰는 비효율적인 현장이 여기다.
아무튼 도로로 나누어진 경O 공원의 도로 건너편을 하루종일 4인이 예초하였다. 이병O 선생,김재O 선생, 고종O 선생,나.
총반장이 예초기를  각 초소의 창고로 반납하라고 지시하고, 화장실에서 얼굴의 땀과 목에 잔뜩 묻은 예초의 흔적들을 씻고 나오니 벌써  이병O 선생의 트럭이 떠나고 없었다. 그 차에 신발과 빨래감들이 실려 있는데. 전화하여 이병O 선생이 위화도 회군을 하게 하였다. 장화 신고 퇴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전날에 이어 GS25 편의점에서 김무O 선생과 수입캔맥주를 마셨다. 금요일부터 연일 마시게 되니 다음날 후유증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도 힘들고 무덥고 목말랐던 하루를 둘이서 시원한 맥주로 고단함을 잊는 시간을 가졌닥나 할까?  때마침 준비해간 안주가 있어 캔맥주만 사면 되었고 광복절 다음날인 모레도 이 공원에서 작업한다니  그날 또 퇴근길에 마시기로 하였다. 1명 더 끼워넣을까 아니면 번개팅으로 여러 명이 근처 가성비 높은 횟집에서 먹을까 생각중. 똥꿈을 꿔서 복권을 사려고 맘먹었는데 저녁에 봉사단 정기 모임이 있어 서둘러 가다 보니 깜박 잊어버렸다.


8/15(수)

만월산을 오랜만에 제대로 산행하였다. 폭염 탓에 그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8/16(목)

경O 공원에서 작업 3일차. 경O 공원으로 바로  출근.
놀이터가 있는 제 1부지에 예초 작업하러  2인(이병O 선생,김재O 선생)은 바로 그쪽으로 출근해 있단다. 휘발류 통,큰 포대 5장, 싸리비를 들고 제1부지로 걸어갔다. 도중에 고종O 선생의 차량이 제 1부지로 예초기 2대를 실고 지나가기에 기름통과 싸리비, 푸대를 실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김경O 선생이 타고 있었다. 4명이 예초를 하면 나는 풀 잔재를 쓸아야 한다. 
내 예초기가 고장난 상태이고, 윤의O 선생이 월차를 누적하여 광복절에 이어붙여 서해 섬으로 휴가를 떠나가는 바람에 그 대신 빗질을 내가 맡게 된 셈. 다른 인원들은 전날 예초한 제3부지위 관목 속의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 작업에 투입되었다. 김매기하는 것보다는 빗질이 더 좋은 일. 오전에는 예초기가 쉬면 함께 정자에서 쉬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오후에는 쉴 틈이 없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잡초 잔재들을 쓸어대느라 아주 바빴다.

점심 식사 때 김만O 선생이  마실 생수병은 멀리서 작업하는 예초 작업자들이 가져가라, 자신들은 노동자 대기소에서 가까운 바로 건너편 제3부지에서 김매기 하니 대기소에 설치된 생수를 와서 마시면 된다고 동료를 배려 하였다. 예초부대는 도시락을 사오지 않아 주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오후 3시까지 폭염 덕분에 휴식이므로 시원한 동네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 앉아 있다가 제1부지로 갈 것이다. 
나는 도시락을 싸왔으므로  노동자 대기소에 돌아와서  김만O 선생,김무O 선생,박미O 여사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반장이 들어와 생수는 자기들이 들고 가서 마시고 제1부지에는 수돗물 음용수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것을 마셔라,고 했다. 나는 반농담으로 노인네들이 입이 고급이라  수돗물은 마시지 않습니다,고 했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들은 예초부대원들이 분노하였다.  빈 생수병이 충분치 않았고 제3부지가 초소에 가깝다고는 하나 김매다가 물 마시러 왔다 갔다 하면 작업진도가 그만큼 나가지 않을가봐 총반장이 그렇게 말한 것일 게다. 박미O 여사가 생수병 하나를 예초부대 용으로 건네 주었다. 식사후 오후 작업 시작 시간이 가까와 왔을 때 그것을 들고 멀리 제1부지로 건너갔다. 

동네 나이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이 냉장고에 얼린 생수병을 컵 2개와 함께 마시라고 정자에 나두고 갔다. 폭염에 고생 많다며 일부러 가지고 온 것이다. 이런 분들 때문에 힘들어도 일하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마실 물은 충분해졌다. 

예초작업 사진을 총반장이 문자메세지로 보내달라고 하여 보내주었다. 카톡으로 보내면 공짜이고 문자는 첨부된 사진에 대해 별도의 요금이 들어가니 카톡으로 보내면 안되느냐,하고 물으니 카톡으로 사진 보내면 사진을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해야 하는데  갤러리에 저장되지 않으니 그것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사무실에  발송할 수가 없다,고 총반장이 말했다. 어렵지 않다고 해도 총반장은 머리를 저었다. 
오후에는 예초 잔재가 온천지에 튀어나와 쉴 시간없이 쓸어야 했다. 예초부대를 먼저 보내고 계속 혼자 남아 더 쓸어야 했다. 흐르는 인공 계곡에 떠 다니는 예초잔재는 대충 건지기는 했으나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고 퇴근시간이 바빠 초소가 있는 제2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8/17(금)

경O 공원에서 작업 4일차. 경O 공원으로 바로  출근.
이 날은 여러 공원으로 흩어져 하루종일 관수 작업하였다. 김무O 선생이 잔디밭 가운데로 기나긴 호스를 끌고 가서 사방의 관목과 교목에 주는 것이 물주기가 편하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설명해주기 전에는 잔디밭 바깥에 기나긴 호스를 내놓고 주위 관목부터  빙돌아가며 먼저 물을 주고, 끝나면 잔디밭 중앙에 들어와서 다른 나무에 물을 주는 게 효율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앙에서는 안쪽에  교목과 키가 더 큰 관목이 있어서 도로가의 키 작은 관목은 보이지 않아 물주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호스 주둥이를 반쯤 누르면 물세기가 세어지니까 중앙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도로가의 키 작은 관목에게도 물이 전달되었다. 이 공원에 관수를 자주한 경험자라서 김무O 선생의 요령이 더 효율적이었다. 덕분에 관수작업을 효율적으로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원래 관수작업은 2인 1조로 진행하여야 한다. 그래야 보조가 뒤에서 호스가 꼬여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고 2인이 서로 교대하여야 휴식도 교대로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대부분 관수작업을 이 날은 1인이 하도록 총반장이 작업 배치를 하였다.
김무O 선생에게 쉴 때는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 반장이 근처 있으면 관수(물 주기)는 휴식이 없다, 화장실 갈 때는 교목의 가지에 호스 대가리를 올려놓고 가면 된다,고 작업요령을 알려주어 도움이 되었다.
점심때 3시간까지의 휴식 시간 도중에 총반장에게 카카오톡 사진을 폰에 저장하는 법,저장된 장소 찾는 법,갤러리로 이동 시키는 법,문자메세지 혹은 카톡에 그 사진을 보내는 법을 쉽게 정리하여 그의 카톡으로 참조하라고 보냈다.
다음 주 월요일도 경O 공원으로 출근하여 남은 관수작업을 진행하라고 총반장이 퇴근직전 지시하였다. 퇴근 길에 김무O 선생가 또 생맥주 맛이 나는 일본캔맥주를 마시게 되겠군.
저녁에 성당 봉사단 월 모임이 있어 참석하였다. 하루종일 서서 관수하느라 다리가 힘이 들어, 단장이 힘든 사람은 앉아도 된다 하여 서서하는 기도 중에 자리에 앉아 기도하였다.


8/18(토)

폭염 탓에 한참을 못 갔던 문학산 등산을 오후 늦은 시간에 시도했다.  허기가 져서 벤댕이 회덮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행을 하였다. 예전에 무릎이 건강할 때는 참으로 자주 다닌 산인데, 오랜만에 오니 반갑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였다. 집에 와서는 코젤을 한 캔 마셨다. 9월에 직원 추가채용 때 여기 들어오려는 전직장 동료 조영O 선생이 통풍 올 수있으니 맥주를 자제하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맥주보다는 육고기를 너무 자주 즐기면 통풍이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계속 경O 공원으로 출근하는 바람에 퇴근할 때 캔맥주를 매번 마시게 되니 주량이 약한 나로서는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닌데 몸이 부대끼는 것은 사실이다.


8/19(일)

성당 주차 봉사.  시이비 종교에 대한 특강이 미사 중에 있어서 1:30 정도 미사 시간이 소요. 9시 미사가 10:30 정도에 마치면서 베드로 형제가 들어오고 나가는 차가 꼼짝 못하고  골목에 대기하는 상황이 되어 혼자 바빴다. 내가 합류하고 뒤이어 최 부단장이 합류하여 성당을 빠져나가는 차를 먼저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빠져나가게 유도하였다. 다 빠져 나간 후 들어오는 차를 성당 주차장 내에 제자리에 질서정연하게 주차하게 유도했다. 주차봉사 하느라 깜박하고 미사 직후 미사 참석 싸인을 받지 못했고, 성직자들이 식사하러 나가시는 바람에 무더위 속에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성당으로 나와야 했다.견진 위한 미사 참석 싸인을 신부님께 받았다.
베란다 물이 샌다고 아래층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직접 그 집에 내려가 상태를 확인하였다.

8/20(월)

경O 공원으로 출근하여 놀이터가 있는 제1부지에서 하루종일 관수작업을 하였다. 고무호스가 무겁고 길어 나무들에 의해 호스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그런 한계를 감안하여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어 물을 주어야 했다. 김무O 선생이 호스를 처음 풀 때와 작업 중 무거운 호스를 이동 시킬 때 도와주었다. 그는 여사님과 함께 김매기 작업을 주로 하였다. 김만O 선생은   경O 공원으로 출근하였다가 연O공원 남초소에 관수를 하러 가라 하여 작업복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간 모양이고, 이병O 선생과 김재O 선생은  자연마당에 예초하러  가라고 작업변경 전화가 사전에 간 모양이어서  경O 공원으로 출근하지 않고  경O 공원으로 출근하여 예초기를 챙겨 자연마당으로 간 모양. 훼손O 직원들은 관수작업, 김매기 한 모양.

하루종일 관수작업 중 총반장이 좀 쉬라는 뜻으로 내 호스를 건네받아 자신이 직접 물을 주기도 했다.

사무실 간부직원이  김무O 선생의 조경서적들을 빌려갔다가 돌려주러 오면서 노동자들과 나누어 마시라고 박카스 1박스를 들고 왔다. 이런 인간적인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본대로 귀환. 그런데 내 예초기가 계속 고장 상태일텐데, 내일 나는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거지?

8/21(화)

전날 총반장이 퇴근 후 술 마신 모양. 아침에 노동자 대기소에 나타나지 않고  조장 김만O 선생에게 전화로 작업 지시하였다. 이병O 선생은 월차여서 그의 예초기를 내가 사용하게 되었다.김재O 선생은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는 조퇴. 병원에 가는 모양. 훼손O 초소에서 김경O 선생과 고종O 선생이 자연마당 예초지원을 나왔다. 오전에는 나를 포함하여 4인이 예초 작업, 오후에는 3인이 예초작업을 했다. 김만O 선생은 전날 총반장과 함께 연못 속의 갈대와 부들을 낫으로 베었는데 오늘도 이어서 동일한 작업을 하는 모양.

오후 일하는 시간 중반 쯤에 예초기를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전날 술로 인해  주독이 안 풀린 총반장이 늦게 출근하여 노동자 대기소에서 시원한 에어콘을 틀어놓고 낮잠을 자던
총반장이 트럭을 끌고  자연마당에 나타나서 예초부대들을 소집하였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예초작업만 해도 무더위 속에 힘든데 연못 주위에 군데군데 잔뜩 모아둔 갈대 및 부들 더미를 트럭에 실어라고 하였다.  오후 시간을 갈대 및 부들 더미를  실는데 인력을 동원했다면 무리가 덜 했을텐데 오후 작업 시간의 반만을 가지고 무리하게 물기가 잔뜩 묻어 무겁고 더러운 더미를 트럭에 실고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기를 4차례 반복하니 휴식 시간이 없었다.  휴식없이 일해야 퇴근이 늦어지지 않을테니 총반장은 잠시 쉬었다고 하자는 소리가 없었다. 북한 천리마 운동도 아니고 남한의 공원 작업 현장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기가  막힌다.  낫으로 갈대 더미를 적당량 걸고 다른 손으로  받치며 트럭까지 걸어가서  실기를 반복하다 보면 체력이 완전 방전 되었다. 낫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고종O 선생은 가장 많은 더미를 안정적으로 운반하였다. 나는 그처럼 많지는 않지만 총반장이 잔소리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분량을 낫을 든 손과 맨손을 함께 사용하여 운반하였다. 트럭 위에서 올려진 더미를 트럭 안쪽으로 낫으로 끌어당기던 조장 김만O 선생이  조금씩 올리라고 자기 팔이 빠질 것 같은지 소리쳤다.  그의 소리에 잠시 운반량을 줄여 보았지만,트럭 운전석에 앉은 총반장은  그렇게 조금씩 실으면 언제 일이 끝나겠느냐고 잔소리할 것이 뻔하니 이내 많은 양을 운반하여 실게 되기 마련이었다. 김만O 선생도 예초하다 지친 몸으로 투입된 예초부대 3인도, 여성동지도  모두 천리마 운동하느라 힘든 오후였다.
10월에 국화꽃 축제가 있는 모양인데 그 준비작업으로 연못의 풍경을 가리는 긴 갈대와 부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8/22(수)

예초기 고장 상태이니  이병O 선생과 김재O 선생이  자연마당 예초를 하는데 길가로 튀어나온 잡초 잔재를 싸리비로 쓰는 일을 나는 하였다. 그러다가 트럭을 타고 조장  김만O 선생과 나는  콜롬OO 공원으로  가서 김매기 결과물인 대형 포들을 트럭에 가득 실었다. 그리고 쓰레기 하치장에 하역하였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에  트럭을 바짝 후진하여 그대로 뒷부분을 들면 제 위치에 잡초 포대들이 쌓일텐데 머리가 썩 좋지 않은 총반장은 트럭에 올라가서 트럭 옆의 어중간한 위치에 하역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점심 식사후 오후에는   어중간한 위치에 떨어져 있는 대형포대들을 쓰레기산까지 끌고 가서 내용물을 쏟아버리고 포대는 재활용하게 모으라고 지시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완료하고 쉬려는데 항상 그러하듯이 쉴 시간이되니까  2시경 트럭을 몰고 총반장이 쓰레기 하치장에 나타났다. 태풍 때문에  콜롬OO 공원의 물놀이장 주위의 대형 천막을 철거하러 가야 한다고 트럭에 타라는 것이었다.

콜롬OO 공원에 트럭을 주차하자,
쓰레기 하치장에서 못 쉰 휴식시간을 여기서 스마트폰을 보며 쉬는데, 스마트폰에 경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던 총반장이 스마트폰 보지말고 잡초 뽑아라고 소리쳤다. 오늘 휴식시간도 갖지 못했다고 하니,총반장은 휴식은 없는 거요,라고 말 했다. 얼마전 1시간마다 10분 휴식으로 바뀌었다더니 역시 자기가 법이어서 쉬라할 때 쉬어야 하니 일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쉬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작업하니 체력이 방전되고 관절에 무리가서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풀 뽑으며 옛날 불친절한 공무원의 공통점,그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민원 접수가 최선이라고 내 경험을 김무O 선생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작업중 대화는 단순한 작업의 지겨움을 많이 잊게 만들어준다.

갑자기 총반장이 계O 공원으로 기물을 실으러 가야 한다면서 다시 트럭에 우리 2인을 태웠다.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큰 통을 담고,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박스 등을 트럭에 실었다. 장미공원  초소에 휴지박스들을 내려주고 다시 콜롬OO 공원으로 왔다. 물놀이가 끝나는 오후 5시부터 천막을 철거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절거후 트럭에 실고 연O 공원으로 복귀하여 창고로 옮기면 퇴근시간을 훌쩍 넘길 것은 자명한 사실.

주민이 들어 있지 않은 천막을 김무O 선생이  먼저 접자고 말하자,김만O 선생 반대했다. 총반장이 지시하지 않은 일을 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하느냐,고 그가 말했다.

5시에 천막 철거를 시작하면  퇴근이 늦어질텐데,
반장은 그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을 내놓지 않았다.

김만O 선생이 천막을 박은 못을 5시전에 미리 빼놓으면 철거시간이 절약되지 않겠느냐고 건의하자 반장이 받아드렸다. 그 바람에 퇴근시간에 가까스로 퇴근할 수 있었다.

반장은 내일 태풍경보가 있어서 내일 출근할 피상근무자와 출근 안할 직원을 발표했다.
여성동지들은 모두 출근하지 않고 남자 중에는 각 초소 1명씩  출근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와 윤의O 조장.
태풍 피해  신속 조치 위해 남자 노동자가 남는 건데 7명 다 남기지 왜 2명만 빼는지 이해 못하겠다고 윤의O 조장은 뿔이 났다는 소문.


8/23 (목)

오늘 하루 공치는 날이고, 오늘은 남쪽에 태풍 피해가 있지만, 중부지방은 내일쯤 피해가 예상되므로 내일도 십중팔구 나는 연이어 하루더 공치는 날이 되리라 추측되어,부친이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만약 금요일 출근한다면 누적된 월차가 하루치 남아있으므로 그걸로 처리하면 될 터.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역시 내일도 나는 푹 쉬어라는 총반장의 전화가 오후 늦게 왔다.
윤의O 조장을 출근 명단에서 뺀 것은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지만, 나는 왜 총반장이 뺏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참에 간병을 위해 잘 되었다는 생각.

8/24(금)

아침에 총반장의 전화가 왔다.
사무실 직원의 지시가 바뀌어 오늘 모두 출근한다고. 졸지에 나는 결근처리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 그래서 월차처리를 총반장에게 요청하고 확실히 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7.2의 상황으로 반장은 내 월차가 1일 남아있는데도 없는 걸로 착각하고는 했기 때문에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8/25(토)에는 8/23에 출근한 비상대기조에서 빠졌던 사람들을 출근시킬 건데 출근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부산에 있어 출근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ㅡ아래ㅡ

반장님, OOO입니다.
어제 전화에서  비상대기조가 아니므로 
오늘도 출근하지 말라고 하셔서 이참에 부친이 입원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아침 전화에서 사무실에서 출근하라고 지시가 변경되었다고 하시니, 다음과 같이 7월분 누적된 월차(년차)가 남아 있으니 그걸로 월차 처리하시면 됩니다. 

다음의 내용 참조하십시요.

ㅡ다음ㅡ


((월차 사용 내역 확인.2018.8.24.현재))

월차 생성:4월,5월,6월,7월,8월 ㅡ총 5개
월차돈지급:5월ㅡ총1개

월차 누적: 4월,6월,7월,8월 ㅡ총 4개

월차사용:  5월,6월,8월 ㅡ총 3개
(5/28, 6/25, 8/7)

월차 잔여: 1일 남음


8/25(토)

노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후 2:20 출발 버스를 탔다. 30분 이상 연착되어 7:30경에 인천 도착.

8/27(월)

총반장으로부터 비가 오니 출근하지 말라고 전화가 왔다. 출근 준비 중이지만 대문을 나서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무실에서 카톡으로 반장에게 공치는 날로 통지가 온 것.

8/28(화)

2인이 자연마당 예초에 투입되고, 나는 김만O 선생과 함께 큰 연못 속에 들어가서  키대로 자란 갈대를 낫으로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부들은 남겨두어라고 총반장이 말했다. 빨간 긴 장화를 신고 연못 속에 들어가서 키큰 갈대숲의 수면 아래에 낫을 집어놓고 갈대를 베었다. 베어져 대자로 들어누운 갈대들은 수면 위에 임시로 띄워두고 계속 갈대를 베어나갔다. 그리고 수면에 어느 정도 갈대가 드러누우면 그것들을 끌고 연못 밖을 나가 길가에 쌓았다.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총반장은 우산을 쓰고 연못가에서 작업 내내 감시를 하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잔소리하였다. 물을 잔뜩 머금은 갈대더미를 낫과 다른 손으로 운반하는데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팠다. 운반 중에 바지에 갈대의 더러운 물이 적셔지면서 어느새 바지가 다 젖어버리고 바지 가랭이까지 물이 흘러내리니 긴 장화 속도 연못 물이 스며들어 장화를 신었지만 발 속은 축축해졌다. CCTV처럼 반장이 감시하듯이 서 있으니 쉴 수도 없고, 체력이 방전되기를 여러 차례. 드문 일이지만 반장이 쉬었다가 일하라고 말하더라도 감시하는 눈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해 5분도 안되어 다시 연못 속에 들어가서 허리를 꾸부리고 하루종일 일해야 하니 체력이 재충전될 수가 없이 계속 방전만 되었다. 폭염이 끝나면서부터 말로는 1시간 작업 10분 휴식으로 바뀌었다고 그가 말했지만 그렇게 자동으로 휴식시간을 찾아먹을 수 없었다. 여기 현장에서는 총반장이 왕이고 법이었다. 쉬라고 하기 전까지는 골병이 들더라도 작업을 계속하기를 원하니 몸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갈대 제거 작업 마무리 단계에서 예초부대 2인이 예초기를 반납하고 연못가에 옮겨둔 갈대 더미를 길가로 옮기는 일에 투입되었다. 비가 오니 예초를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어 연못 지원으로 총반장이 뺀 것인데 진작에 이리로 뺐으면 갈대제거조가 여러번 체력이 방전 안될 텐데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지원병력이 투입되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날 무리한 탓에 다음날 오른쪽 무릎이 계속 아파오는 후유증을 낳게 된다. 작업 종료하기 1시간 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공원의 정자로 비를 피했다. 골병든 하루 쏟아지는 비 때문에 정자로 피신하여 예초부대 2인과 갈대제거조 2인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 물폭탄이 저녁 8시경에 쏟아지고 있었다. 금새 구두 안이 다 젖어버렸다. 봉사단 매주 모임이 있는 날이라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하루종일 비 예보여서 내일은 공치는 날일 것 같아 후배가 한잔하자길래 골뱅이에 생맥주 500cc 한잔을 마셨다.


8/29(수)

일기예보와는 달리 흐림. 출근. 술 마신 뒷날이라 연못 속에 들어가는 갈대제거 작업이 부담되었다. 전날 무리한 작업 탓인지 무릎까지 아팠다.

총반장은 집이라며 오후에 출근하겠다고 조장 김만O 선생에게 전화로 작업 지시를 하였다. 2인이 자연마당 예초에 투입되고, 나는 김만O 선생과 함께 큰 연못 속의 갈대를 낫으로 제거하는 일이 주어졌다. 그런데 연못 건너 수로에 빽빽한 갈대숲 속의 갈대가 지난 밤 집중호우로 상당수가 자빠져서 흉물스러웠다. 그래서 긴 붉은 장화를 신고 수로 속에  들어가 드러누운 갈대를 낫으로 베고  길가로 옮겼다. 나중에 조장 김만O 선생이 자신이 벨테니 나는 갈대를 받아 길가로 옮기는 일을 하라고 하였다. 분업하니 전날보다는 좀 덜 힘들었다. 그러나 전날 후유증으로 한쪽 무릎이 갈대를 운반할 때마다 아팠다. 총반장이 없으니 체력이 방전되기 전에 잠시 휴식을 하니 힘은 들어도 체력 방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로가에 임시로 쌓아놓은 갈대더미를 길가로 옮기는데 그 속에 숨어 있던 개구리가 뛰쳐 나와 수로의 더러운 물에 뛰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물 속이 아니라 다시 물 밖으로 나가려고 고개를 쳐들고 물가에 동동 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물 속으로 사라질 법한데 절대 그럴려고 하지 않고 물가에서 조금씩 도망가기만 했다. 순환이 안되는 수로여서 물이 더러워 개구리조차도 숨이 막히니 물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참으로 가관. 수로의 물이 흘러야 할텐데 고여 있고 키대로 자란 갈대는 아랫부분이 썩어가니 수질은 더욱 악화될 테고 개구리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물 속으로 악화된 것이다.  갈대를 베다보니 갈대의 아랫부분이 대게의 다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참으로 닮았다.

 오후에는 잔디밭 안쪽 배수 탱크가 있는 곳이라는데 토사가 많이 흘러내려 흙이 왕창 빠져나가 크고 길다란 홈으로 패였다. 주위 흙을 파서 메우기를 여러 차례. 무릎이 아픈데도 삽을 발로 밟아 흙을 떠야 했다.
그리고 자연마당 초입의 정자가 있는 광장이 흘러나온 토사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물 호스로 물을 뿌리고 싸리비로 쓸고 사각형의 삽인 각삽으로 보도블록 위의 토사를 떠서 보도블록 밖으로 버리기를 반복했다. 마무리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정자로 피신하였다. 여기서 김매기를 하던 여성동지 3인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나는 추가모집에 합격하여 9월부터 이 직장에 나온다는 전직장 동료가 계속 위치라든가 여러가지를 알아봐달라고 귀찮을 정도로 요청하는 바람에 답을 해주느라 계속 카톡을 하느라 동료들의 대화에 전념하지 못했다.
퇴근 시간에 비는 더욱 강해져서 김재O 선생의 승용차를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도서관 책을 반납해야 하는데 물폭탄때문에 다음날로 미루어야 할 듯.
이렇게 내일 아침까지 비가 쏟아지면 내일은 공치는 날이 될 듯.
총반장은 월차를 낸 모양.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노동 강도는 오늘도 높았지만 골병들 정도는 아니었다.


8/30(목)

오늘도 전날처럼 조장 김만O 선생과 같은 작업조가 되었다. 여전히 오른쪽 무릎이 아팠다. 예초부대도 전날처럼 2인이 자연마당에서 예초작업을 했다.
수로의 자빠진 갈대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빨간장화를 신고 제거하는 게 오늘의 작업이었지만, 그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전날 하늘에서 쏟아진 물폭탄으로 공원 곳곳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전날 보수작업을 한 두 곳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다시 재보수 작업을 해야 했다.  배수구가 토사에 의해 덮히는 바람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배수구로 빠지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토사를 실고 흘러내린 곳이 바로 자연마당 초입의 정자 앞 광장이다. 다시 물청소를 했다. 물청소 도중에 모래가 많이 쌓이면 물의 힘만으로는 아래로 밀어내기 어려워졌다. 싸리비로 쓸어내기에도 부담스럽게 무거워진 모래들. 각삽으로 아래로 아래로 모래를 밀어냈다. 그리고 남은 모래에 대해 물 호스로 물청소를 하는 것이다. 모래가 적으면 싸리비로 쓸면 되는데 모래가 많으면 빗질로도 모래가 잘 밀려나가지 않는다. 마무리 짓고 잔디밭 안쪽 배수 탱크가 있는 곳에 갔다. 여기도 어제 보수작업했지만 도로아미타불. 이틀 연속 하늘에 구멍이 나서 물폭탄이 쏟아진 탓이다. 삽질하여 크게 패인 웅덩이를 모두 메꾸었다.
작은 연밭의 전망대의 둔덕이 무너져 내려 그것을 보수하러갔다. 전망대 앞의 연밭의 물이 전망대 뒤의 둔덕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물폭탄 때는 더 세게 흘러나왔을테고 지반이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흘러내린 모양.  질퍽거리는 진흙탕에 삽을 넣어 떠서 메꾸는데 삽질이 쉽지 않았다. 이건 힘만 들고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근처 물이 없는 경사면에 가서 흙을 삽에 담아 운반하며 터져 나간 둔덕을 메꾸었다. 어느 순간 물이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이 보수한 둔덕 속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터지게 만들지나 않을까? 이 작업도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건 아닐까?
오늘 하루도 불편한 무릎을 끌고 힘들게 보냈다. 총반장은 다른 관할 공원 2 군데에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점심식사 후에는 그 쪽으로 갔는지 오후에는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퇴근후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책을 다시 빌렸다.

 
8/31(금)

아침 업무지시때 총반장이 아프면 이야기하라 업무 조정을 해주겠다고 이따끔 이야기했으나, 지금껏 나는 아파도 그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만O 선생의 조언도 있고 하여 출근하자마자 3일째 무릎이 아프다고 총반장에게 말했다.  듣고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말한 내가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침묵. 해서 반장님이 아프면 말하라 해서 말씀 드리는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잠시후 업무지시를 위해 반장이 나왔고 노동자들은 대기소 앞의 간이 정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 왈, 반장 자신도 어제 힘들었다. 아프다고 일 안할 수도 없는 거 아니냐? 이건 원, 반장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지금껏 아파도 말을 꺼낸 적이 없는데, 괜히 말해 내 입장만 난처하게 되었다. 나중에 반장이 침착을 되찾고 그래서 풀을 맬거냐, 뭘 해야 무릎이 안 아프겠느냐고 물었지만, 뭐 하라고 총반장이 지정해주면 자연스럽지만 저렇게 짜증을 내고 난 다음에 뭘하고 싶으냐 하는 것은 그가 하고 싶은 질문도 아니고 내가 그 중에 하나 고르는 것도 그가 듣고 싶은 답은 아니다. 수 개월 겪어보았는데 그런 눈치없는 나도 아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릎이 아프더라도 어제에 이어 연못 혹은 수로의 갈대를 베고 나르는 일일 터. "오늘 평소와 달리 작업중에 비리비리하더라도 요령 피운다는 오해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무난한 답을 해줄 수 밖에.

키가 엄청 크게 자란 소나무들을 긴 대나무들로 서로 녹화 밴드로  묶어 쓰러지지 않도록 해 둔 것 중에 지난 밤 물폭탄에 대나무 하나가 파손되었다. 새 대나무 장대로 교체하는 것이 오전의 첫 작업. 사다리가 부실하여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와서 부러진 부분을 김만O 선생이 먼저 고쳤다. 보조 역할을 맡은 나는 그가 총반장에게 펜치를 가져오라 시켜 갔더니, 현장에 있는 걸로 쓰면 되지 왜 안 시킨 짓을 하려고 하나, 펜치가 왜 필요해요, 하며 짜증을 내었다. 나는 사다리 상태를 몰랐기 때문에 당시는 소나무 고정에 사용하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반장에게 답할 말이 없었다. 녹화밴드로 묶어야 되는데 늘 그렇듯 작업용품 구비에 인색한 반장이라 녹화밴드 재고가 없었다. 해서 아마도 인도네시아 야자수를 원료로 하여 만들었을 녹화끈-이마저도 남은 끈이 별로 없어 기존 나무의 끈을 잘라서 이어 작업했다.-으로 고정했다.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강한 바람이 불면 녹화끈이 끊어질 것이다. 제대로 재료가 있어야 보수를 하지 이런 걸로 보수를 하라고 하다니, 하며  김만O 선생이 총반장에 대해 불평을 터뜨렸다. 자연마당으로 가서 수로의 넘어진 갈대들을 낫으로 제거하고 옮기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김만O 선생이 수로에 들어가서 자르고, 나는 그것들을 나중에 트럭으로 실기 좋게 길가로 옮겼다. 하도 반복적으로 왔다리 갔다리 걸으니 무릎이 아플 수 밖에. 다 끝나자 연못에서 갈대를 베고 있는 총반장 쪽으로 가서 합류 했다. 연못의 한쪽 가는 트럭이 지나가지만 저 반대쪽 가는 트럭이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쪽의 갈대의 시체들은 트럭이 들어오는 길가로 멀지만 옮겨놓아야 하는 상황. 옮기는 도중에 돌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고. 반장이 같이 일하니 휴식도 하는 둥 마는 둥 금방 일어나서 일해야 하니 무릎은 아프고 옮겨야 할 거리는 멀고 정말 힘들었다. 9월이면 남자 4명, 여자 10명이 들어온다. 그 때 많은 인원을 투입하면 일이 덜 힘들텐데 적은 인원으로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하고 동료들이 불평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우스개로 총반장이 썩 좋은 머리는 아닌 것 같다,하고 웃는 얼굴로 말하곤 한다.  연못 갈대 제거 작업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3개의 연못 중 하나는 갈대들이  9월에 자르세요,하고 버텨 그렇게 남겨졌다.
갈대더미를 한 손에는 낫으로 갈대더미의 머리 아래에 받치고 , 맨손은 무게 중심을 감안하며 적당한 부분을 들고 옮기니 효과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 전에는 두 손이 반대였다. 낫든 손은 보조역할을 했고 제대로 도움되는 위치를 찾지 못한 채 날랐었다. 여러 번의 반복 작업을 통해, 그리고 친절한 선배의 지적을 통해 자신에게 알맞는 자세를 찾게 되는 법. 

아침 작업지시 중에 반장 자신이 월말이라 관할 공원들을 돌며 출근부를 모으기에 바쁘다,고 한 양반이 하루종일 연못의 갈대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장 작업보다는 출근부를 모아서 사무실 담당에게 빨리 넘겨주어야 담당이 빨리 처리하여 봉급이 빨리 나올텐데, 저렇게 딴 짓을 하다가 늦게 출근부를 넘기면 월급은 그만큼 더 늦게 나올텐데, 노동자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비가 쏟아지다가 약한 비로 바뀌어지기를 반복하던 오후, 연못의 갈대 제거작업 중에  총반장은 우산 쓰고 감시하듯이 연못가 전망대에 서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마구 퍼붓는 비는 정자에서 잠시 피했지만 약해진 비로 바뀌면 연못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총반장이  우산 쓰고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같은 공원사업장인 바로 옆의 양O 쪽은 작업을 중단하고 3시경 본대로 귀대하는 게 보였는데 바로 퇴근을 시켰다고 한다.  양O 쪽은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팀장이 오면서 작업 현장이 소문난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갈대 제거 작업 중 억센 갈대가 썬글라스를 쳐서 안경테가 부러져 안경알이  나도 모르게 떨어져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작년에 전직장에서 조경일을 할 때 구입하여 참으로 잘 사용했는데 올해 통나무를 여러 명이 붙어 오르막으로 굴려올리다가 동료의 용쓰는 팔꿈치에 세차게 부딪혀  떨어진 안경다리를 수리하여 쓸정도로 쓸만한 것이였는데 오늘 이별을 하게 되는구나. 오호 통재라.

퇴근길에 9월부터 여기 출근하는 전직장 동료 조영O 선생을 만나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수입캔맥주를 간단하게 마시기로 했다. 먼저 저녁식사를 하고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생맥주 맛이 나는 일본캔맥주를 기분좋게 마시고 헤어졌다.


9/1(토)

정형욋과 가서 오른쪽 무릎에 물리치료를 받았다. 풀매기를 하는 중에 오른쪽 무릎이 찌르듯이 아파   6월9일 정형욋과 갔을 때 의사는 연골이 닳기 시작하는 초기 증상이라고 했고 퇴행성관절염으로 갈 수 있다,책상다리 및 무릎 꾸부리기를 피하라고 했었다. 그동안 괜찮았는데 부족한 휴식시간에 과중한 노동으로 또 발생한 듯.  50분 노동 10분 휴식. 이렇게 하면 골병이 안 들텐데, 총반장의 감시체제에서는 그가 선심 쓰듯이 쉬라고 할 때까지는 노동을 계속하는 게 원칙처럼 되어 버린 이 곳에서는 골병들 수 밖에 없다.


9/3(월)

새벽에 잠이 깼다. 잠이 깬 김에 추석기간  KTX 기차 좌석 취소가 발생했는지 앱에 들어가보니 매진이 좌석 있는 걸로 바뀌어 있었다. 부랴부랴 예매에 성공했다. 운이 좋다. 대신 잠이 부족하여 노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오전에  김만O 선생과 나는 연이어 연못의 갈대 제거와 운반에 투입되었다. 김만O 선생이 낫으로 잘라난 갈대들을  물가에 눕혀 놓으면,나는 키대로 누운  갈대의 시체들을 트럭이 들어올 수 있는 길가까지 운반했다. 2-3일 펼쳐서 쌓아두면 물기가 마를테고 나중에 트럭에 실을 때 가벼울 것이다. 오후에도 동일한 작업에 투입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작업으로 바뀌었다. 오늘 오전까지 며칠째 잔디밭 가장자리에 군데군데 쌓아둔 갈대 쓰레기를 트럭에 실는 작업으로 변경되었다. 오늘부터 추가모집에 들어온 노동자들 중 남자 3인이 출근하자마자 작업화나 장화도 지급되지 않은 채 신고온 운동화 차림으로 오전내내 잡초뽑기를 하다가 
오후에는 갈대 쓰레기를 트럭에 실는 작업에 우리와 함께 투입되었다. 비는 하루종일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출근 첫날부터 빡시게 작업하는 셈. 트럭 3대 분을 실어보낼 때 쯤 비가 엄청쏟아지기 시작하여 인근 경기장과 연결된 통로로가서 비를 피했다. 총반장이 배수구에 흙이나 잔재가 덮혔는지 보고 빗자루로 쓸어내며 대기소로 돌아오라고 연락이 왔다. 퍼붓는 빗속에서 그렇게 하다보니 하수구에 빠진 생쥐 꼴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철수하여 노동자 대기소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앞의 간이 정자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보았다. 총반장이 들어오라고 하기 전에는 대기소 안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왠일로 반장이 대기소로 들어와라, 옷이 다 젖었으니 퇴근 옷으로 갈아 입어라,고 평소와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좀 일찍 퇴근시켜주었다.

오전 작업 완료 때만 해도 총반장은 무척 뿔이 나 있었고, 점심 끝날 시간까지만 해도 그를 뿔나게 만든 김재O 선생을 1차 경고로 말하자면 반성문을 상부에 내게 만들고 2차로는 짤라버릴 태세였다. 그러기 위해 어딘가에 전화를 하면서  자문을 얻는 것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니 노동자 대기소 안에 같이 있었으니까.

나중에 전체 윤곽이 들어왔지만 오늘 사건을 대략 정리하면 이러하다.
자연마당 초입에서 오늘부터 여기 주둔지에서 근무하는 남녀 7명정도와 기존의 여성동지가 함께 풀매기 작업에 투입되었고, 예초부대는 인근의 작은 연밭 밭두덩의 잡초들을 예초하고 있었다. 예초는  김재O 선생과 이병O 선생, 그렇게 2인이 하고 있었다. 
 11시 30분경 예초작업이 끝. (통상 11:30에 작업을 끝내고 씻고 노동자 대기소까지 걸어서 점심 먹으러 간다. 걸어가는 거리가 있으므로 시간이 좀 소요됨)
총반장은 예초기 소리가 안나므로 김재O 선생에게 전화. 배가 아파서 약국에 왔다고 대답. 총반장이 왜 약국 가면 반장에게 보고를 해야지 마음대로 가냐, 빨리 들어와라.  김재O 선생 왈 식당에 와 있다. 반장 왈 벌써 식사하러 갔냐며 짜증. 김재O 선생도 화가 나서 짜증. 총반장이 김재O 선생을 잡으려고 꼬투리를 찾고 있다가 걸고 넘어진 것 같다. 김재O 선생은 도시락을 안 싸올 때가 많아 자주 사 먹었다. 예초부대가 자연마당에서 예초하면 도시락을 갖고 온 경우 아예 들고가서 노동자대기소로 들어오지 않고 자연마당에서 식사하거나 짜장면을 배달해 먹었다. 하루종일 예초가 힘든데 노동자대기소까지 와서 밥을 먹고 다시 자연마당으로 걸어가서 예초기를 돌리면 오며 가며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점심시간 쉴 시간이 없게 되니 현장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동안의 총반장의 갑질 행위, 감시행위, 노동자를 노예,노비를 대하듯이 휴식없이 중노동 시키는 행위에 대해, 6개월 참고 지내온 김재O 선생도 드디어 분노가 폭발하여 여러 군데 알린 모양.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가 되기 전에 김재O 선생이 노동자 대기소로 들어왔다. 총반장과  김재O 선생, 둘이 대기소에 들어간 상태.  총반장이 1차 시말서를 쓰라고 소리질렀을 테고, 김재O 선생은 노동자가 노예가 아니다, 마음 편하게 노동하게 만들어줘야지 감시하는 게 반장이냐, 나도 반장 오래했지만 당신같이 하는 반장이 어디있냐,반장이면 약자를 배려하고 살아라,등등 그의 잘못을 지적한 모양이고, 조리있게 말해도 귀 막고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밀어부쳤을 반장이고 그렇게 언쟁이 오고 갔던 모양. 균형을 깬 것은 도중에  김재O 선생에게 두 차례나 걸려온 의원의 전화. 그리고 아마도 나중에 오후에 시청의 암행감찰 부서에서 사무실 팀장급에게 조사를 위한 전화가 왔을 터.  놀란 팀장은 총반장에게 전화를 했을 터. 자를려고 덤벼들었던 총반장이 1차 시말서를 쓰지 않겠다, 회사 그만둘까,하고 김재O 선생이 물으니 그만둘 필요는 없다며 뒤로 물러섰다.
오늘 오후 평소와는 다른 총반장의 모습은 그런 전쟁이 있은 후 약삭빠르게 바뀐 모습일 게다.

점심시간에 총반장에게 내가 물었다. 지급 받은 내 우의는 한번도 안 입었으며 Large 사이즈인데 작으니 XL사이즈가 필요하다. 이번에 온 직원들 우의를 구매할 때 감안하여 구매하고 나와 교환해줄 수 없느냐,고
그러자 총반장이 빤히 보더니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은 우의를 지급 안할 거다, 그리고 기존의 지급 받은 우의는 기간제 기간 끝날 때 도로 받아 내년에 들어오는 사람들 줄거다.
(작업화, 우의를 지급하면 노동자 소유가 되는데 도로 돌려 받겠다는 회사가 어디 있는가?) 기가 막힌 이병O 선생 왈, 남이 입던 걸 누가 입습니까, 그리고 나는 팔아 먹었는데요. 돌려주기 싫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우리집에 총반장이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하련다.
작업화도 지급하지 않고, 예초 할 때 무릎보호대도 지급하지 않고 매달 1보루씩 주는 목장갑도 주지 않고 1켤레씩 필요할 때만 빼 쓰게 하고 빨아서 여러번 쓰라고 하고. 작년에는 삽도 모잘라서 다른 작업장의 창고에서 훔쳐오게 만들고, 등등 총반장이 챙겨주어야 할 부분은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정당한 비품을 도로 반납하라고? 작업화는 팀장이 준다고 해도 자기가 막아버리겠다는 총반장. 기가 막히는 일. 지금처럼 장화 신고 예초하다가 날카로운 돌조각이 날아와 발가락에 박힌다면 담당 공무원들이 그때서야 책임질 것인가? 

오늘 들어온 70대 노동자는 취로사업의 약한 작업강도로 생각하고 왔다가 첫날부터  비를 맞으며 휴식없이 힘든 작업을 하다보니 골병들겠다는 생각과 총반장의 작업 관리 행태로 보니 김정노동이 심할 것 같아 오늘 하루만 일하고 안나와도 1일치 일당은 나오느냐고 물어, 나온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9월 출근부를 아직 만들지 않아 노동자들이 출근 싸인을 하지 못했으니 1일치 일당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총반장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노동을 6개월째  견뎌내고 있다. 오늘 입사한 기간제 노동자들은 3개월반 정도만 감정노동하면 될 것이다.


9/4(화)

장화를 신는데 총반장이 왜 장화를 신느냐,오늘 무슨 일하는지 모르느냐,고 말을 걸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일 되어서야 오늘 해야할 작업지시를 내리니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전날 개인별 어느 작업 현장에 가서 어떤 작업을 할지 미리 알려준다면 좋겠는데, 거의 그런 정보 공유는 없다.
오늘도 연못 3개 중에 마지막 남은 연못 1개 속의 갈대와 부들을 제거하고 길가로 운반하는 작업을 하란다. 장화를 왜 신느냐는 말은 가슴까지 오는 어부장화복을 입고 연못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왜 장화를 신느냐는 이야기였다. 무릎이 며칠째 아프다고 했는데, 김매기라든가 예초 작업으로 돌려주지 않고 물 속에 들어가서 갈대를 베라고? 물 속의 질퍽거리고 쑥 빠지는 곳도 있는데 더 무릎 아프게 만드는 환경의 작업에 투입하려는 참으로 배려없는 작업지시다.  동료들은 내 무릎의 통증을 아니까 굳이 물 속 작업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이어 오늘도 연못 안에 들어간 작업은 조장  김만O 선생과 새로 들어온 조영O 선생이  맡았다. 추가 모집으로 들어온 다른 두 명의 동료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눈치. 70대의 나이라서  그런가?  조영O 선생이  들어가지 않으면 무릎 아픈 내가 들어가도록 만들었을까? 동료들이 마실 물을 생수통에 받아 들고 가는 나인데 정작 나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면, 나도 동료를 배려하지 않게 될런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허리춤에 내가 마실 물은 달고 다닌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입만 달고 다니고 마실 물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공용 물을 정작 나는 필요치 않지만 동료들을 위해 오전에 1병,오후에 2병 물을 채워 간다.
조영O 선생은 전직장에서 같이 일했고 그 후 우스개로 청라라이온스 클럽 회원으로 1달에 1번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동료다. 은행원 출신에 정계 재계에 인맥이 많은 사람이다. 두세번 보증을 잘못 써서 모든 재산을 날리고 공원관리에 나온거라고. 그는 60대 말이고 한국외국어대 출신. 보증 잘못 쓰기 전에는 황금기여서 이야기꺼리가 다양하게 많은 인물. 화제꺼리도 많은 사람이다. 어부장화복 입은 모습을 셀카로 찍어야겠다길래 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나중에 연못 속에서 일하는 장면까지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3명이 복잡하게  같은데서 오늘 자르고 있는 갈대를 받아 운반하는 것보다는 신입 2인이 같이 운반하도록 하고, 나는 그저께와 어제 다른 연못에서 잘라놓은 갈대를  운반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혼자 징검다리를 건너며 길가로 갈대를 혼자서 옮겼다. 반장 지시 사항이기도 햇으니까. 
다 옮긴 후 오늘 자른 갈대를 운반하는 2인에 합류하였다. 갈대는 많이 젖어 있어, 마른 갈대를 옮길 때보다 냄새가 나고 물이 흐르고 좀 더 무거웠다.

일에 미친듯이 김만O 선생이 갈대를 잘라 물가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았고 운반조 3인은 미친듯이 길가로 옮겨 마르기좋게 펼쳤다. 미친듯이 갈대를 운반하다보니 조영O 선생의 작업중인 사진을 깜박하고 찍지 못했다. 내일은 찍어주리라. 손목도 아프고 팔관절도 아플 정도로 많은 갈대를 운반했다. 


퇴근길을 가르쳐주느라 추가모집으로 들어온 황택O 선생과 걸어가는데 조영O 선생이  술,술,그러길래 3인이 퇴근길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수입맥주 코젤을 마셨다. 황택O 선생과  조영O 선생이  맛좋다고 말했다. 체코맥주 코젤은 내놓으면 처음 마시는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조영O 선생이  작은 코젤 6병을 사와서 주량을 넘어섰고 맥주로 배가 불러 저녁밥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출근 이틀만에 동료와 술 마시게 된 황택O 선생은 아직은 서먹서먹한 동료들과 처음  갖게된 술자리가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게다가 편의점에서의 수입캔맥주는 첫 경험이니 더욱더 그럴 것.

점심은 밖에 나가서 3인이 우거지갈비탕을 먹었다. 7,000 원.


9/5(수)

오늘도 어제와 동일하게 조영O 선생과 김만O 선생이 어부장화복을 입고 연못의 갈대 낫질을 하였고, 나와 황택O 선생, 새로 온 또 한분은 갈대를 운반하였다. 전날 미친듯이 갈대를 운반하였고, 총반장은 현장을 보지 않았기에 월요일까지는 해야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 날은 팔 아플 정도로 많이 들고 운반했던 전날보다는 팔이 안 아플 정도로 운반하고 중간 중간 허리를 폈다.
조영O 선생이  어부장화복 입고  연못 속에서 일하는 장면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나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숲을 배경으로 낫을 들고 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낫으로 갈대들을 든채 옮기려는 모습도 동료에게 부탁하여 찍었다. 전직장에서도 노동하는 모습을 찍었는데, 아름답지 않은데 사진으로 왜 남기려하느냐,라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다. 미술작품도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은 했겠지만, 나중에는 추함도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좋은 예로 고흐의 "신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eaingsoon&logNo=220904836980). 고흐는  낡고 더러운 작업화를 통해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총반장은 오늘  경ㅁ공원으로 예초부대 2인과 거의 모든 여성동지들을 이끌고 가서 하루종일 풀뽑기를 하느라, 갈대제거조를 감시하지 않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감시하는 눈이 없으니 정신적으로는 피곤하지 않았다. 내일도 거의 모든 여성동지들을 이끌고 경ㅁ공원으로 가는 모양. 많은 인원이 투입되니 작업 진전이 빠르고 풀이 제거되는 면적도 많아져서 총반장이 싱글벙글한다고. 이 사람아, 진작에 많은 인력을 뽑았으면 지금처럼 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될텐데 그동안 적은 인원으로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면서 작업진전은 빠를 수가 없고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관리했는가?  이 말은 총반장 뿐만 아니라 그 위 상부에게도 하고픈 말.
 
내일은 황택O 선생에게 경ㅁ공원으로 바로 출근하라고 총반장이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뽑은 풀을 대형 포대에 담아 군데군데 흝어져 있을테고, 총반장이 대형트럭을 끌고 가면 대형 포대들을 트럭에 실고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그에게 귀뜸을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퇴근한다면 지하철역이 어디가 가까운지,어디서 환승하면 되는지를 카톡으로 알려주었다.



9/6(목)

오전에는 어제 마무리짓지 못한 갈대더미를 길가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끝낸 후 자연마당  초입의 산책로가 지저분하여 싸리비로 쓸었다.
꽤 긴 산책로였지만 갈대제거조 4인이 투입되니 점심식사에 늦지않게 청소작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호미로 자연마당 초입의 잡초제거에 1시간 정도 투입되었는데,작업도중에 총반장으로부터 빨리 쓰레기하치장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경ㅁ공원의 잡초를 대형포대에 잔뜩 실은 트럭이 오고 있어 하역을 위해 쓰레기하치장에 오라는 것이다.
트럭에 경명공원에서 2인이 타고 와서 대형포대를 트럭 옆으로 던져 내렸다.
갈대제거조 4인이  대형포대를  끌고 쓰레기산에 부었다.빈 대형 포대는 재활용 위해 차곡차곡 쌓아 한군데 모아놓았다.
2,3번째는 총반장 혼자 트럭을 몰고 왔는데, 포대에 넣지않고 트럭에 잡초들을 그대로 실은 채 와서 뒷부분을 들어 쏟아부었다.
앞으로 나온 잡초더미를 포크로 뒤로 던져 올려 쓰레기산 모양이 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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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ㅁ공원의 잡초를 대형포대에 잔뜩 실은 트럭이 오고 있어 하역을 위해 쓰레기하치장에 오라는 것이다.
트럭에 경명공원에서 2인이 타고 와서 대형포대를 트럭 옆으로 던져 내렸다.
우리 3인은 그것을 끌고 쓰레기산에 부었다.빈 대형 포대는 재활용 위해 차곡차곡 쌓아 한군데 모아놓았다.

2,3번째는 총반장 혼자 트럭을 몰고 왔는데, 포대에 넣지않고
3차 분량을 그



9/7(금)

남자 1명(황택O 선생,여성동지들과 제조작업을 했다고 함)만 연O 공원 남측부지에 남겨두고 장고O공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김재O 선생의 예초기를 정비업체로부터 찾았다. 그동안 고쳐진 내 예초기를 그가 사용했었다. 내 예초기는 얼마전에 제대로 고쳐진 모양. 이병O 선생과  김재O 선생, 이렇게 2인만 예초작업에 투입되었으니 내 예초기가 고쳐졌다는 걸 모르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날도 우리측에서는 이병O 선생과  김재O 선생,훼손O에서는 김경O 선생과  고종O 선생,이렇게 4명이 예초 연합함대를 이루었다. 예초기를 돌리는 중에 김경O 선생의 예초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과열된 용수철 막대가 부러진 것이다.  그래서 총반장은 양묘 노동자 대기소 옆에 임시 보관중인 내 예초기에서 동일 부품을 빼내어 교체하라고 지시한 모양. 그래서 다시 김경O 선생의 예초기는 다시 되살아났고 내 예초기는 다시 고장난 예초기로 변해버렸다. 

나는 조장 김만O 선생,장전O 선생,조영O 선생과 함께 다른 여러가지 일을 했다. 나나머지 3 사람은 연뭇가의 길게 자란 풀들을 낫으로 잘랐다. 아니 이가 나간 낫은 잘 들지 않아 낫으로 풀을 뽑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 동료들이 사용한 낫들도 마찬가지. 여기 공원관리 사업장의 작업도구들은 북한 사정과 비슷하게 열악하다는 걸 매번 느낀다. 풀을 다 제거한 후는 갈대를 대형트럭에 실는 일을 했다.
연못 속에 어부가슴장화를 입고 들어간 김만O 선생이 낫으로 갈대와 부들을 베어 물가에 내놓았고, 그것을 연못 밖의 나무데크로 만든 산책길로 장전O 선생이 옮겨 놓았다. 그는 70대 중반으로 가장 고령자. 몸집은 작지만 일을 잘하는 야무진 동료다. 
나는 조영O 선생과 함께 낫을 이용하여 갈대와 부들을 트럭으로 옮겼다. 
점심은 공원 앞 노인복지센터에 가서 식권(2,700 원)을 사서 먹었다. 도시락을 사오지 않은 3인 (나,장전O 선생,조영O 선생)이 거기 식권을 사서 먹었는데 막상 식권을 사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회원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대 오늘 하루만 허락해주겠으나 다음부터는 안된다고 깐깐해 보이는 봉사자로 보이는 분이 말했다. 여기 공원의 노동자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통하지 않았다.
...
........

점심 식사후 여러 작업에 투입되었다. 야자매트 보수작업은 

, 배 과수원의 떨어진 배를 삽으로 구덩이를 파서 묻는 작업, 트럭에 잔뜩 실린 갈대 및 잡초잔재를 쓰레기 하치장에 가서 붓는 작업을 했다. 거의 쉬지않고 노동했는데도 여기 쓰레기 하치장에서 좀 쉬다가 들어가라는 소리는 않하고 자연마당의 슾지에 가면 풀매는 여사들이 있으니 합류하여 일해라고 총반장이 말했다.  쓰레기 하치장에서 자연마당의 슾지에까지 걸어 가면 아마도 도착후 10분 정도 지나면 풀뽑기 작업이 종료될 것이다. 10분을 더 일 시키려고 그리 가서 합류하라고? 지독한 사람이다.  거기 도착하니 호미로 다들 풀메고 있었지만 우리는 호미도 없으니 작업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반장의 전화가 왔다. 팀장이 연못 3개 중에 3번째 연못에 붕어가 떠 있으니 치우라고 연락왔으니 조류전망대 아래에  숨겨둔 뜰채로 붕어를 떠서 치우라고 말했다. 뜰채로 떴으니 삽도 없고 꽤 큰 붕어를 묻기가 마땅찮아 근처 돌무덤 속에 넣어 버렸다. 생선 비린내가 코에 들어왔다. 
전직장 동료를 만나 육봉달에서 무한리필(12,000 원)로 돼지고기를 먹었다.


10/2(화)

훼손O로 가서 어제 이어서 건너편 잔디밭에 퍼진 큰 잡초를 곡깽이로 제거하라고 작업지시가 내려올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무도 그쪽으로 작업지원 나가지 않았다.

어제 자연마당 연못 1 곳의 수면에 뜬 누런 청태를 뜰채로 떠서 연못가에 버리는 작업을 조장 김만O 선생과 황택O 선생이 한 모양. 어부장화옷의 어느 부분에선가 새서 연못 물이 스며들어 팬티까지 젖어서 냄새가 난다고 두 사람이 말했다. 총 어부장화옷을 수선한 후  청태작업을 시켜야 할텐데, 총반장은 오늘도 청태 제거작업을 해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서 작업해야 한단다.  김만O 선생을 잘라나온 나무와 청태 잔재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돌리고 , 연못에는 나와 황택O 선생이 들어가란다.
가지고 간 청테이프로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길게 붙여 임시로 수선했다. 총반장이 자기 발치수에 맞춰 산 275m 장화옷은  황택O 선생이 들고가 입었는데 전날 옷을 뒤집어놓지 않아 장화속에 물이 고여 있어서 입으니 발이 다 젖는 모양.   양묘 쪽에 가서 빌려 입은 270m 장화옷은  청테이프로 수선이 잘한 탓인지 김만O 선생이 입었던 어제와 달리 내가 입은 장화옷은 더러운 연못물이 스며들지 않았다.

황택O 선생과 하루종일 자연마당 연못 2 곳의 수면에 뜬 누런 청태를 뜰채로 떠서 연못가에 버렸다. 짧은 뜰채는 그가 들고 나에게는 긴 뜰채가 남겨졌다. 그는 연못 속 얕은 곳에서 가벼운  짧은 뜰채로 청태를 뜨고, 나는 깊은 곳에 넓게 모여 있는 청태를  무거운 긴 뜰채로 팔 아프도록 떴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너무 쉬운 작업을 맡았다고. 그러나 무거운 뜰채로 깊은 곳에서 작업한 내 경우는 힘들었다. 연못과 연못이 연결된 얉은 곳은 민물고기 새끼가 엄청 많았다. 뜰채로 뜨면 민물고기 새끼가  여러 마리 뜰채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파닥거렸다. 가지고 간 생수병에 넣었다. 오후에는 작업자가 마실 생수병과 물고기를 담을 생수병을 가지고 갔다. 작업종료 시점에 더 이상 물을 마실 필요가 없게 되자 생수병 2개에   민물고기 새끼를 나누어 담았다.
전직장에서도 함께 근무했고 현직장에서도 함께 근무한 김경O 선생,조영O 선생,나 3인은 김경O 선생 아파트 상가에서 버섯칼국수를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집 어항 속에 민물고기 새끼를 넣을 작은 어항을 추가로 설치하여 나누어 넣기도 하고, 큰 어항에  그냥 방사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큰 민물고기들에게 먹힐까봐 분리시키는 것인데, 큰 물고기와 함께 방사된 무리들이 잡아먹히지 않고 잘 사는지 관찰 필요.


9/7 (금)

아침에 김재O선생의 예초기를 정비 공장에서 찾은 후 장OO공원으로 갔다.
그동안 내 예초기가 고쳐져서 김재O선생이 내 것을 쓰고 본인의 예초기는 고장나서 정비공장에 맡긴 상태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황택O 선생만 (여성동지와 함께 제초작업을 했다함) 연O공원 남측에 남겨두고 남자 모두 장OO공원으로 갔다. 훼손O의 예초부대 2인, 연O공원 남측의 예초부대 2인,합하여 4인이 예초 연합함대를 이루었고, 조장 김만O 선생,나,장전O 선생,조영O 선생은 다른 여러 일을 했다. 연못 속에 어부가슴장화를 입고 들어간 김만O 선생이 낫으로 갈대와 부들을 베어 물가에 내놓으면 트럭에 실는 작업,연못가의 잡초및 갈대 낫으로 제거작업, 야자매트의  터진 부분을  바느질하듯 손가락으로 찔러넣은 후 녹화끈으로 보수하는 작업을 하였다.

마지막에는 배밭의 떨어진 배를 군데군데 삽으로 파서 속에 묻었다. 배나무마다 근처 노인복지회관 노인들의 이름표가 달려 있어 아마도 노인 한 명이 배를 따러 배밭에 들어간 걸 총반장이 본 모양.
배 따지 말라고 총반장이 소리를 질러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삽으로 땅을 판 후 배를 무조건 묻어라고 지시했다. 어떤 배나무는 흔들어대더니 떨어진 배까지도 함께 묻어라고 지시했다.
배나무 주위에 삽으로 원을 그리듯이 땅을 파고 비료를 뿌려넣고는 흙으로 덮고, 배봉지 입히기 행사때 노인복지센터 노인들을 도와서 배봉지를 싸고, 배밭을 예초한 게 우리 노동자인데 떨어졌으나  멀쩡한 배는 맛보게 하면 좋을텐데 모조건 모두 묻어라고 소리질러댔다. 자신은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배를 담았다.

트럭에  실린 갈대및 잡초 잔재를 쓰레기하치장에 버리기 위해 나와 조영O선생이 트럭에 탔다.
쓰레기하치장에 쏟아버린 후,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한 우리 둘에게 자연마당 슾지에 가면 동료들이 일하고 있으니 합류하라고 지시했다.
거기에 걸어가면 10분후 작업 종료 시간이 될 것이다.
쓰레기하치장에서 좀 쉬다가 씻고 대기소로 귀대하라고 하면 좋지 않은가?

예상대로 걸어가서 합류하니 10분후 작업종료.
총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번째 연못에 붕어가 있으니 치우라고 팀장의 지시가 왔단다. 
 조류전망대 밑에 숨겨둔 뜰채를 찾아 꺼내들고 큰붕어 시체를 떴다. 땅 속에 묻어야겠는데 삽도 없고 호미질하던 여성동지들은 작업종료후 귀대했을 터라 호미를 빌릴 수도 없다.
해서 근처 돌무덤의 돌을 들어내어 그 속에 넣고 돌을 다시 쌓았다.  붕어무덤이 된 셈.
총반장은 다시 장고O공원으로 가서
예초부대들을 배 생매장에 동원했다고 한다. 배맛은 노동자들이 볼 수 없게 하고.

저녁에는 전직장 동료들과 돼지고기를 안주로 하여 술을 마셨다. 2차는 편의점에서  수입캔맥주를 마셨는데 체코 흑맥주 코젤과 아사히 흑맥주를 꺼내놓으니 동료들이 맛있게  마셨다.


9/10  (월)

오전에 제초작업. 습지  주변 잡초를 호미로 제거하는 일이다. 여성동지들 속에 나,황택O 선생,한장O 선생이 섞였다.
한장O 선생은 제초작업이 제일 쉽다고 하지만, 여자에게 적합하지 남자에게는 부적합 일. 영 체질에 맞지 않다.
호미로 닭이 부리로 쪼아대듯이 흙을 쪼아대면 뿌리채 잡초가 쉽게 빠져 나온다. 그걸 작은 구멍이 쏭쏭난 작업함에 담는다. 가득 담아지면 숲 속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버린다.
외발수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약간의 거리가 있는 뒷편 숲 속으로 버리러 가기를 반복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작업자들 가까이에 외발수레를 두고,작업자들은 작업함의 잡초들을 외발수레에 버리고, 외발수레에 가득차면 남자노동자가 수레를 끌고가서 숲속에 버리는 게 효율적이다.
그런 생각은 있으나, 총반장에게 건의하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그냥 시킨대로만 하세요,하고 소리 지르면 내 기분도 잡칠테니 그냥 마음 속으로만 담고 입밖으로 뱉어내지 않는다.

그런데, 내 머리 속에 잠시 들어왔는지 총반장이 갑자기 나를 부르며 외발수레를 하나 갖고 오라고 하였다.
우리 대기소의 외발수레는 너무 먼 거리여서 자연마당에서 가까운 타 사업장의  수레를 빌리려 갔다. 비닐 하우스에서 하나 꺼내 잠시 쉬었다. 지나가던 이 사업장의 반장이 어디로 가지고 가느냐,허락 받고 가느냐,하고 물었다. 자연마당으로 간다,비닐하우스에 아무도 없어서 허락은 받을 수 없었는데 잘 쓰고 반납하겠다,고 답해주었다.

잡초를 호미로 제거하는 도중에 외발수레를 끌고 숲속에 잡초더미를 버리기를 몇 차례하니,총반장이 나와 한장O 선생은 예초부대에 붙어 길에 드러누운 잔디 잔재를 쓸어라고 했다.

1인이 빗자루질하면 힘들지만 2인이 하면 꽃보직. 2번 쓸지 않으려면 산책길
의 양쪽 잔디밭의 테두리를 예초부대가

먼저 예초해주어야 한다. 내가 예초할 때는 빗자루조를 배려하여 잔디밭 테두리를 먼저 예초한다. 예초부대에게 테두리부터 예초해달라고 요청하며 2번
쓸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 틈틈이 쉴 수도 있어 한장O 선생도 만족스런 표정.
퇴근길에 황택O 선생과 편의점에서 기분좋게 2캔씩 나누어 마셨다.
O 선생



9/11 (화)

오전 잠시 호미로 잡초제거작업을 하다가  총반장이  트럭을 몰고 나타나자 며칠째 노천에서 잘 마른 갈대더미들을 낫과 손을 이용하여 트럭까지 운반하여 실기를 반복하였다. 김만O 선생이 트럭 위에 올라가서 차곡차곡 쌓았고  나,황택
O 선생,한장O 선생 3인이 군데군데 모아둔 갈대더미를 운반하고 트럭 위에 올렸다. 트럭 3대분을 실으니 갈대더미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이제 실을 게 없으니 트럭이 오지 않을 터 3인의 노동자는 잠시 휴식을 드디어 취할 수 있었다.

잠시후 오전 작업종료 시간이 될테이고,나는 예초연합 함대와 점심 도시락을 함께 먹기 위해 가지고온 도시락을 들고 훼손O에서 온 예초부대에 갔다. 도중에 연O 공원 예초부대 2인이 따로 정자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훼손O에서 온 예초부대 2인은 전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으며,전날 자기들도 도시락을 사올테니 나도 도시락을 작업현장에  들고와서 같이 먹자고 하였기에 같이 모여 먹었다. 연O공원의 노동자 대기소로 가서 먹으면 걸어가고 걸어오는 시간을 빼면 쉴 시간이 없는데, 이 날은 점심시간이 여유로왔다.

오후에는 총반장이 엔진톱으로 고사목  혹은 가지를 자르면, 계속 길가로 옮기고 모으는 일을 했다. 총반장이 엔진톱을 끄고 잘라진 고사목들을 옮기는 일이 끝나자,좀 쉬라는 말도 없이 총반장은 예초부대의  잔디잔재를 빗자루로 쓸어라고 지시하였다. 연이어 잔디잔재투성이가 된 산책로를 3인이 쓸었다. 3시30분이 되자 매달 1회 제공되는 간식이 도착. 모든 노동자를 정자에 모았다. 콜라와 치킨이 배달되어 있었고 숨겨놓은 사이다 4~5병이 한쪽 구석에 검은봉지 속에 들어있길래 꺼내먹으려니 총반장 왈,사이다는 손대지마세요. 김경O 선생이 웃으며 1병 만 꺼내먹으면 안될까요,하고 물으니 총반장은 못 들은 척. 어디로 빼돌리는 모양인데 지독한 작자.(나중에 퇴근할 때보다 사이다 봉지를 자신의 차에 실기 위해 손에 들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닭을 못 먹으니 나는 콜라만 마셨다. 왜 닭을 못 먹느냐고 매달 묻는다.

작업 마무리할 시점이 가까운데 총반장이 트럭을 몰고 왔다. 퇴근 시간이 많이 늦어질  상황. 내일해도 될 일을 작업 분량과 소요 시간은 생각지 않고 참 즉흥적인 총반장. 노동자들은 퇴근시간을 넘기지않기 위해 죽자살자 잔재들을 트럭에 실었다.
걸어서 퇴근하다가 황택O 선생이 편의점에서 수입캔맥주를 마시고 가잔다. 땀을 시원한 맥주로 시키는 것이다.

O 선생



9/13 (목)

예초 부대가 지나간 잔디밭 위에  마른 갈대가 하얗게 변색되어 남아 있었다.

갈퀴와 싸리비를 사용하여 산책길에서 2m 정도까지는 보기좋게 잔재를 모아서 외발수레에 담아 멀리 버렸다.

나는 싸리비로 빗질을 담당했는데, 한장O 선생이 외발수레에 담아  자연상태로 보존하는 땅의 움푹 파진 곳에 버렸다.
반장이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여기는 빗물이 흘러가는 배수로인데 어찌 생각없이 여기 버리느냐,라고.
반장은 외발수레를 내가 맡아 전날 자신이 잔디 잔재를 버릴 곳을 알려준 곳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하루종일 외발수레에 길가에 내놓은 잔재를 담아 버리기를 반복했다.
조장 김만O 선생외 2인은 갈퀴로 잔디 잔재를 끍어 군데군데 모아놓았고 나는 그걸 외발수레에 담아 숲속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렸다.
고사목 가지를 잘라 쌓아둔 데도 있어 그것들도 운반했다.





9/14 (금)

오전에  코스모스밭의 잡초 제거 및 배수로 만들기 위한 삽질을 김만O 조장과  추가모집으로 온 황택O,한장O,조영O 선생과 나에게  하라고 총반장이 지시했다. 그리고 예초 부대에서 김재O 선생이 오늘 반차이므로 오후에는 조장 혹은 내가 예초부대에 투입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작업장으로 출발할 때쯤 총반장이 나는 자연마당으로 가서 여성동지들이 풀을 뽑으면 외발수레에 담아버리라고 지시를 바꾸었다. 어제 자연마당 예초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으니 오늘도 예초는 해야하고, 오전 오후를 자연마당에서 일하라는 뜻이리라 내나름 짐작하였다.
점심은 예초수당이 생기니 짜장면 값이 들어오는 셈이었고 병가를 내었다고 첫출근한  조영O 선생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물만두를 추가로 시켜 내가 샀다. 병가를 끝내고 나온 동료를 위한 작은 배려.

어제는 남자 동료들에게 아몬드 사탕을 나누어주었는데, 오늘은 남녀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작업중 체력이 떨어지면 당 보충이 필요하니까 동료 간에 사탕을 나누어주는 문화가 자연스레 생겨난다.

오후에는 조류전망대 밑에 숨겨두었던 외발수레를 도로 꺼내어 여성동지들의 작업장에 가져다주고 나는 오후에는 예초하니 여기는 지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예초부대에 합류하였다.

김재O 선생의 예초기는 제대로 고쳐진 게 아니었다. 성난 소처럼 날뛴다고나 할까? 풀의 상태에 따라 세기를 다르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지나치게 세게만 가능하여 예초기를 놓치면 다칠까봐 걱정될 정도로 성난 소처럼 날뛰며 풀을 쳐나가다가 시동이 꺼져버렸다.
(나중에 안 일인데 농기구 수리업체에 맡긴 후에도 거기가 예초기 전문은 아니라서 시동이 꺼지곤 하는 걸 총반장도 고쳐보려다가 포기하고 김재O 선생이 성난 소 상태로 만들어 억지로 사용은 가능하게  한듯. 요근래 그가 예초할 때  빗자루질하며 지나가면 엄청난 엔진소리 내며 돌이 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직접 그의 예초기로 작업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성난 소를 엑셀을 약간 내리니 소가 죽어버리기 때문인듯.

오후는 이왕 시작한 예초작업을 오후 작업종료 시간까지는 계속해야 짜장면값(예초수당)이 빠질텐데 상황이  애매하게 되었다.
이병O 선생이 자신의 예초기로 예초하란다. 그리고 자신은 내가 사용하던 김재O 선생의 예초기를 고쳐 보겠다고.
그가 총반장에게 현상황을 보고하자, 총반장은  나를 귀대시키라고 지시했고, 이병O 선생은 자신의 예초기로 내가 예초중이라고 답했다. 훼손O에서 지원 나온 예초부대 2인과 함께 휴식을 취하니  내 등의 예초기를 받아 이병O 선생이 혼자서 계속 예초기를 돌렸다. 저 멀리서 동서남북 모두 감시하기 좋은 위치(연못 전망대,갈대를 대부분 쳐냈으니 전망을 가리지 않는다.)에서 쳐다보고 있으니 그도 놀 수는 없는 일. 나는 오후 예초를 계속할 수  있어서 좋았고,그는 오후 많이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자연마당의 예초는 완벽하게 끝났다.
이병O 선생이 총반장의 다음 지시를 받으러 걸어가는데 총반장이 정비하며 쉬다가 귀대하라고 손짓했다고 한다.
이병O 선생의 예초기는 성능이 아주 좋은데, 그 전에 사용한 성난 소를 다루느라 그런지 손가락 관절염 증세가 도졌다.

저녁에  견진교리를 받기 위해 성당에 갔는데 몸이 피곤한 탓인지 교육 후반부에는 졸리기 시작했다.

퇴근길 김경O 선생이 수입맥주 마시자고 했으나, 사절한 이유는 견진종합교리 때문.



9/17(월)

코스모스밭을 제초하다가 경O공원으로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잡초가 가득 담긴  대형포대를 실어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기를 2번 반복했다. 나와 한장O 선생이 트럭을 탔다.
경O공원에 도착한 후  상주직원 김무O 선생과 한장O 선생이 함께  무거운 대형포대를  트럭에  실었고 나는 트럭 위에서 대형포대 속의 잡초더미를 바깥으로 털어내고 빈 대형포대는 재활용 위해 트럭 바깥으로 한쪽에 떨어뜨렸다.나중에 빈 대형포대는 상주직원 김무O 선생이 모아서 다시 쓸 것이다.
하역 작업  끝난 후 다시 코스모스밭으로 와서 하루종일 제초작업을 하였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동료와 캔맥주를 마셨다.


9/18 (화)

매자나무의 가시에 찔려가며 관목 속,관목 주위의 잡초를 호미로 제거했다. 4인이 투입되었다. 나중에 외발수레를 근처에서 가지고온 후 외발수레에 모아둔 잡초를 실어버리는 일을 전담하였다.

작업 끝무렵 여성동지들이 관목 속의 썩는 내 나는 폐기물들을 조장에게 치워달라하여 조장 김만O 선생이 외발수레에 실어주면  나는 뒷숲에  버렸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작업 종료 싯점에 외발수레를 수돗물에 씻었지만 지독한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폐기물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몇달 전에는 혈액  등을 버려 의료 폐기물임을 알겠던데 오늘은 혈액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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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수)

자연마당의 패인 곳을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하였다. 삽질, 외발수레로 운반을  맡아 작업했다. 삽으로 흙을 파낸 곳은 고르게 평탄작업하여 마무리하였다.

시간이 몇 시간 남아서 여성동지들의 작업을 지원하여 야자매트의 잡초를 제거작업에 투입되었다.

퇴근길 경ㅁ공원 상주직원 김무O 선생을 만나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추석보너스 현금 40만원이 입금되었다.
복지카드에 현물교환권 30만원은 별도로 곧 제공 예정.



9/20 (목)

오전 1시간 족구장 풀을 뽑다가 장OO공원 배나무 행사에 투입되기 위해 이동하였다.

플랭카드를 매달고 탁자를 내놓고, 배수로 입구의 칡넝쿨을 제거하였다.
밤을 처음 까보았다.

공원 건너편 노인복지센터 노인들이 참가하여 자신의 나무 및 동료회원의 나무에서 배를 따서 한군데 모았다. 일단 모은 후 회원끼리 골고루 나눈다고 한다.
비료 뿌리기,배 봉지 싸기,접붙이기,예초작업 등을 공원관리 실무자로서 직접 일을 했지만 배맛은 보지 못했다. 지난 번에는 배 솎는 작업 중 솎아낸 멀쩡한 배조차 총반장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땅속에 묻어라는 바람에 봉지째 생매장했다.
그때 총반장 자신은 검은 봉지에 배를 담아갔다. 그럴려면 노동자의 눈에 안보이게 가져가든지.

오늘은 배나무 행사의 마지막날. 오늘도 배맛을 보지않으면 그동안의 흘린 땀이 화를 낼 것이다. 노인들의 배 따는 걸 돕기 위해 작은 마대를 들고 다니며 높은 가지에 매달린 배를 담은 후 모으는 곳에 붓기를 반복했다.
행사가 끝난 후 우리가 먹을 높은 가지에 있어 따지 못한 배들을 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작은 마대에 담았다. 그중에 상태가 좋은 것은 상납하려는지 내 마대에서 총반장이 자신의 마대로 옮겼다.

배를 한군데 모은 곳에는 배가 많이 남아 있었다. 배의 양이 많아서 썩거나 작은 배는 많이 남겨두고 노인들이 떠난 탓. 동료 노동자들이 담아가기에 나도 작은 마대에 담아 내 등산백에 넣었다.
그리고 총반장의 지시에 의해 배밭에 남은 배는 삽으로 흙을 판 후 묻었다.

2시간 이상 남은 시간, 배수로 경사면의 넝쿨과 잡초를 낫으로 베고 치웠다.

작은 딸이 좌석여유가 없는데도 뉴욕으로 할인표로 성공적으로 탑승했다. 운이 좋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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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금)

아침에 많은 비. 그러나 회사 도착 무렵에는 다행히 많이 약해진 비. 오전에는 비옷을 입고 일하면,오후에는 맑아진다는 일기예보. 이런 날은 날씨탓으로 작업에 등한시한다며  총반장은 도로 집에 들어갈거다,라고  하면서 좀더 상황을 보자,라고 말했다. 출근부를 돌리지도 않았고 작업지시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사무실에 결정을 미루고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인데 사무실에서 일을 시키라고 연락온  모양.
1시간 족구장의 제초작업을 남녀 같이하도록 시켰다. 비가 계속 내리자 바지가 젖기 시작했다. 남자 노동자 2인은 노동자대기소에 가서 비옷 바지까지 갖춰 입고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몸이 추워지고 거의 1시간 작업한 터라 근처 정자에서 쉬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쉴 때  총반장이 나타난다.
우연의 일치인거냐, 모두 이렇게 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하고 총반장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더니 아저씨들은 훼손O로 호미를 들고 이동하란다. 산림치유사가 개발한 둘레길 3곳에 나무 집 모양의 무거운 목제보관함이 3개 있는데 그것을 제 위치로 옮기고 허브로 바꾸어 심기 위해 일부 지역을 호미로 제초해야 한단다.

목제 보관함은 크기도 크거니와 무거워서 5인의 노동자가 달라붙어도 꼼짝하지도 않았다. 주위에 둘레길 표시로 평행으로 달리고 있는 튼튼한 하얀 끈을 일부 풀어 4겹으로 만들어 목제 보관함의 바닥에 집어넣어 4인이 양쪽 옆에서 끈을 꺼집어 넣어 들고 이동시켰다. 1인은 뒤에서 밀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더니 꿈쩍도 안하던 보관함이 도구를 사용하니 놀랍게도 이동이 가능했다.
오전에 3개 모두 제 위치에 자리잡게 옮길 수 있었다.

오후는 허브밭을 개간하겠지만,나는 반차이므로 점심 식사 후에는 퇴근하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

산림치유사 2명이 고맙다고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주었다. 같은 노동자인데도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해결해주어 고마움을 표시한 것. 들리는 말에 그들은 우리보다 2만원 정도 일당이 많은 9만원 정도. 6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자격증 시험을 치면 반은 떨어지고 반은 붙는다고 젊은 산림치유사가 예전에 말했다.

연O 공원 노동자대기소의 창고에 신발을 두고온 바람에 15분 이상을 걸어가서 장화를 벗어놓고 신발로 갈아신고 다시 훼손O의 노동자 숙소로 돌아왔다. 이때는 오후 1시가 넘어 동료들이 작업현장으로 간 시간이라 문이 잠겨 있어 전화를 한  후 열쇠둔 위치를 알아내고 옷을 갈아입고 등산배낭을 매고 버스 정류소로 걸어갔다. 훼손O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안녕. 어쩌면 오늘이 이 바닥의 일은 마지막일테니까.

추석 보너스로 나온 복지몰 사용설명서 및 구매 가능한 마일리지 30만원은 이웃 일터는 이미 배포했다는데 총반장은 늘 그렇듯이 노동자 권익에는 무관심하여 내일부터 추석연휴인데도 이 날도 인쇄하여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웃 일터에서 사무보조를 하는 노동자에게 물어보니  그가 인쇄해주었다.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동료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직접해보니 좀 어려웠다.
복지몰 사용설명서대로 해도 구세대 노동자들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므로 회원가입 절차부터 과정들을 정리하여 카톡으로 동료들에게 보내주었다.
총반장이 알면 싫어할 수도 있겠다.
여성동지에게는 조장 박경O 여사에게만 카톡 보내어 배포하도록 했다.

고종O 선생으로부터 고맙다는 답이 왔다.
김경O 선생 부부는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몇 차례 문의전화가 왔다.정리한 걸 보내주니 드디어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당도.

이제 남은 것은 매월 1일 기준으로 취직상태냐 실직 상태냐에 따라 국민연금  회사 절반 보조를 찾아 먹는 일. 그에 따라 퇴직일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장기결근해야할 일만 남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같은 회사임에도 다른 사업장인 양묘 쪽은 팀장이 5시에 보내주면서 명절 잘 쉬라고 말했다고 한다. 팀장 한 명 바뀌면서 북한 같은 분위기가 인간적인 분위기로 약간씩 변하는 게 엿보인다.
그러나, 여기 공원관리는 팀장이 반장을 데리고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반장은 노동자에게 지시하고, 아침에 총반장 말했듯이 명절 전이라고 일찍 마치는 거는 없다더니 1시간 전은 커녕 5:30분에 퇴근시켜 모든 노동자가 불만이 쌓였다고 한다.
30분 당겨주는만큼 막판에는 휴식없이 무리하게 일을 시켰을 것이다.

7월에 마지막 예방접종인 3차 예방접종을 받아라고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었다. 당시에 즉시 총반장에게 이야기하니 대상자들 모아서 같이 갈거라고 미루더라. 그 후 다시 언급한 적 있는데 사무실 담당이 바뀌어 바빠서라는 이유로  미루었다. 나는 그때 1차.2차,3차 예방접종 대상자들을 조사하여 준비해놓아야 사무실에서 추진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그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보건소 보내면 몇 시간 노동을 시키지 못하니 그 꼴은 못 보아서 온갖 핑계대면서 진행하지 않는 그의 심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퇴직하자 마자 내 시간내어 예방접종 맞아야 할듯. 3차까지 맞아야 비로소 항체가 생긴다고 한다.


9/27 (목)

예방접종을 10월에 아마도 계양구 보건소에서 단체로 받을거리고.
7월에 계양구 보건소로부터 문자받았는데 총반장이 단체로 보내줄거라며 3개월 미루더니 내가 그 기간에 받을수 있을까? 

오전에는 배수로의 청태를 뜰채로 제거하는 작업을 혼자 했다. 몇 주째 집을 나가 있던 내 장화가 창고에 들어와 있어 내 장화를 신고 조류전망대로 걸어갔다. 그 밑에 뜰채 2개가 숨겨져 있다고 김만O 선생이 말해주었다.
뜰채를 들고 배수로에 들어가 청태(녹조)를 떠서 배수로 밖 경사면에 던졌다.청태가 검은 색깔을 띄며 배수로 밖에 드문드문 보기 싫게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마르면 아주 작아진다고 한다.
수질은 썪는 내가 날 정도로 나빴다. 장화 바닥과  장화 위 부분의 경계선이 떨어져 그 틈으로 물이 들어와 장화 속 양말까지 젖기 시작했다.
내가 신고 일할 때는 멀쩡했던 장화가 집을 장기간 나가서 남의 손을 타니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이 모양이 된 모양.

청태만 뜨지 않고 물속의 검정색 파래 덩어리 같은 것도 뜰채로 떠서 버렸다. 청태의 원인제공자가 그놈인 것 같아서.

배수로의 얕은 쪽을 뜰채로 뜨는데 붕어 새끼가 뜰채 속에 있었다. 아주 이쁜 놈이었다. 생수 페트병에 대가리부터 넣었는데 잘 들어가지 않아 겨우 집어넣었다.

더 큰 물을 생수 페트병으로 교체하고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총반장의 감시를 피해야 하니 제 때 물을 갈아주지 못했고 오후는 작업시간이 길어 더더욱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퇴근무렵 붕어는 죽어 있었다. 안타깝다.  차라리 배수로에 생수병채로 수면 아래에 큰돌을 눌러 고정시켜놓았다면 그래서 퇴근무렵에 꺼내어 화장실의 깨끗한 수도물로 교환하여 집으로 수송했다면 그나마 산 채로 데리고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방법이 떠올랐다. 

붕어 외에도 잡힌 것둘이 있었으니 돌 사이에 서식한다는 동자개 종류를 2마리, 민물새우,피래미 새끼가 뜰채에 올라와서 생수 페트병에 넣었다. 산소를 많이 소비하는 붕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살려와서 어항에 부었다.

오후 나무잔재 치우는데 합류.  나무 잔재를 공유지를 불법 점유한 기도원 성격의 교회 쪽의 숲에 버리거나 하치장에 들고가 버렸다.  밤나무 밑에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주웠다. 정자 근처의 밤나무에도 밤이 엄청 열려 있었는데 다음날 보니 하루만에 밤송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남은 시간은 코스모스밭으로 가서 백문동 및  야자매트에 올라와 있는  잡초 제거 작업에 투입되었다.


9/28 (금)

국화전시회 준비는 오늘 하루뿐이라 자연마당 잡초제거. 가는 길에 배수로를 보니 청태 또 발생.

오후 식사후,
족구장의 동호회 철제 보관함을 4인이 이동. 끔쩍하지않음. 250 kg 정도될 듯. 지주목 3개를 아래에 계속 깔아가며 이동. 손가락 지주목밑에 들어가 뭉개질 뻔. 잔디 위 어느 지점부터는 직접 밧줄을 이용하여 낑낑대며 창고 뒤로 운반하여 붙힘. 허리 나가면 안되는데 조심 조심.

싸리비,지주목을 하치장에 버리고 잡초제거.클로버 제거에 남은 시간 투입됨.
20분 일찍 보내주었고,황택O 선생은 오전만 일하고 반차내고 보길도로 삼치회 먹을 거라고 웃으며 떠난 탓에 철제 보관함 운반은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행운아. 그러나, 이렇게 무거운 쇳덩이를 충분한 인원들이 있을 때 해야지 부족한 인원으로 작업시켜야 하느냐고 총반장의 아둔한 머리가 또 증명된 날.

내일 건국대 내선전기  7시에 만나 가기로 문자옴. 알바 기회.

도서관에 가서 책 반납 및 빌리다.

홈페이지  게시판이 갑자기 크롬에서는 나옴. 익스프로러에서는 게시판 내용 없는 걸로 나오던 것이 멍하니 아무런 response 나오지 않음. Chrome에서 나오는 건 전날 저녁부터 나오게 된 듯.



9/29 (토)


새벽에 스미트폰으로 홈페이지 익스플로러에서 들어가니 게시판 제대로 나옴. 호스팅업체에서 MySql DB의 테이블들을 Repair명령어를 사용하여 혹시 해결해준 건가?

항상 문제 생겨 upgrade하면 며칠 후 게시판이 제대로 나왔음..이번은  20여일이나 걸렸지먄.


건국대 골목의 일본식주점 이카자야 전기공사를 보조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10/2(화)

훼손O로 가서 어제 이어서 건너편 잔디밭에 퍼진 큰 잡초를 곡깽이로 제거하라고 작업지시가 내려올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무도 그쪽으로 작업지원 나가지 않았다.

어제 자연마당 연못 1 곳의 수면에 뜬 누런 청태를 뜰채로 떠서 연못가에 버리는 작업을 조장 김만O 선생과 황택O 선생이 한 모양. 어부장화옷의 어느 부분에선가 새서 연못 물이 스며들어 팬티까지 젖어서 냄새가 난다고 두 사람이 말했다.  어부장화옷을 수선한 후  청태작업을 시켜야 할텐데, 총반장은 오늘도 청태 제거작업을 해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서 작업해야 한단다.  김만O 선생을 잘라나온 나무와 청태 잔재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돌리고 , 연못에는 나와 황택O 선생이 들어가란다.
가지고 간 청테이프로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길게 붙여 임시로 수선했다. 총반장이 자기 발치수에 맞춰 산 275m 장화옷은  황택O 선생이 들고가 입었는데 전날 옷을 뒤집어놓지 않아 장화속에 물이 고여 있어서 입으니 발이 다 젖는 모양.   양묘 쪽에 가서 빌려 입은 270m 장화옷은  청테이프로 수선이 잘한 탓인지 김만O 선생이 입었던 어제와 달리 내가 입은 장화옷은 더러운 연못물이 스며들지 않았다.

황택O 선생과 하루종일 자연마당 연못 2 곳의 수면에 뜬 누런 청태를 뜰채로 떠서 연못가에 버렸다. 짧은 뜰채는 그가 들고 나에게는 긴 뜰채가 남겨졌다. 그는 연못 속 얕은 곳에서 가벼운  짧은 뜰채로 청태를 뜨고, 나는 깊은 곳에 넓게 모여 있는 청태를  무거운 긴 뜰채로 팔 아프도록 떴다. 그가 말했다. 오늘은 너무 쉬운 작업을 맡았다고. 그러나 무거운 뜰채로 깊은 곳에서 작업한 내 경우는 힘들었다. 연못과 연못이 연결된 얉은 곳은 민물고기 새끼가 엄청 많았다. 뜰채로 뜨면 민물고기 새끼가  여러 마리 뜰채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파닥거렸다. 가지고 간 생수병에 넣었다. 오후에는 작업자가 마실 생수병과 물고기를 담을 생수병을 가지고 갔다. 작업종료 시점에 더 이상 물을 마실 필요가 없게 되자 생수병 2개에   민물고기 새끼를 나누어 담았다.
전직장에서도 함께 근무했고 현직장에서도 함께 근무한 김경O 선생,조영O 선생,나 3인은 김경O 선생 아파트 상가에서 버섯칼국수를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집 어항 속에 민물고기 새끼를 넣을 작은 어항을 추가로 설치하여 나누어 넣기도 하고, 큰 어항에  그냥 방사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큰 민물고기들에게 먹힐까봐 분리시키는 것인데, 큰 물고기와 함께 방사된 무리들이 잡아먹히지 않고 잘 사는지 관찰 필요. 모두 피래미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어항에 넣고 관찰하니 3가지 종류인듯. 피래미,붕어,미꾸라지의 새끼인듯. 미꾸라지 새끼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꼬리의 움직임이 미꾸라지와 동일해서.

10/3 (수)

개천절. 저녁에 민물고기밥을 쿠팡에서 주문했다.

10/4 (목)

오전에 자연마당 초입의 자갈길 위에 야자매트를 새로 깔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자갈을 완전히 제거하고 삽으로 자갈은 빈 비료 포대에 가득 담으라고  총반장이 작업지시를 했다. 자갈 제거후  오후에 업자가 와서 흙바닥에  야자매트를 깔거라고  총반장이 말했다. 자갈로 채워진 비료포대를 길가로 옮길 때마다 너무 무거웠다. 팔이 빠질 뻔. 노동자들은 야자매트 밑에 자갈이 있어야 비가 와도 그 밒으로 물이 흘러가는데 맨 땅에 야자매트를 깔면 비올 때마다 밀려나가지,하며 반장의 지시를 못마땅해 했다.
한창 작업 진행 중에 총반장이 작업지시를  번복했다.  자갈로 채워진 비료포대를  다시 원래 위치에 자갈을 부어 비우라는 것이었다. 자갈을 부은 후 락끼로 평탄작업을 하라고  하였다. 그 위에 업자가 와서 야자매트를 깔거라고 했다.  그래서 비료포대 속의 자갈을 자갈길에 다시 붓고 자갈길을  삽으로 까기도 하며 평탄작업을 했다.


 점심 시간에 업체 트럭이 야자매트를 실고 왔다. 오후에는 야자매트를 굴려 풀었다. 노동자 일부는 남아서 야자매트를 깔았을 때 돌이 솟아오른 부분이 있으면 야자매트를 도로 감은 후 평탄작업을 다시 한 후 야자매트를 다시 풀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다른 작업을 위해 이동하였다. 산책길 몽골천막들 안에 국화 화분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비닐로 바람막이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쉬지도 않고 작업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퇴근 전에 마칠 수 있었다. 6시 다되어 퇴근.

이날 아침 작업지시 시간에 장모 병간호 위해 다음주부터 휴직을 해야한다고 총반장에게 말했더니 훼손O에서는 친정 어미니 간병위해 딸인 노동자가 결근형태로 휴직한 선례가 있음을 나도 알고 있는데, 장모 병간호를 위해 사위가 휴직하는 건 안된다는 취지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항상 노동자 반대편에 서서 논리를 펴는 사람이라 이럴 줄 충분히 예상했지만 너무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인다. 관리팀 담당자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나중에 총반장이 말하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휴직할 것인지를 생각해두었다가  관리팀 담당자가 현장에 나타나면 말해줘라,라고 말이 좀 바뀌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관리팀 담당자와 팀장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천막의 한쪽 개방된 벽 부분에 비닐을 붙여 설치하느라 관리팀 담당자에게 전화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10/5 (금)

내일부터 국화축제를 한다. 태풍이 올라 온다는 예보가 있지만 남부에는 많은 비가 예상되나 중부는 그렇지 않은 모양.  아침에  약간의 비가 내렸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날씨. 나를 포함한 3인은 몽골천막의 칸막이 비닐을 설치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나마지 남자 노동자들은 데코용 대나무를 자르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국화축제는 양묘 팀의 행사이어서 공원관리팀은 전혀 상관없다더니 노는 꼴을 못 보는 총반장이  양묘 반장에게 도와줄 일이 있냐,하고 물었고 당연히 그쪽 반장은 도와주면 좋지요,하고 답을 했고, 그래서 국화축제에 엮여 들어가게 된 것이다.  3인의 손발이 잘맞아  칸막이 작업이 착착 잘 진행되자 총반장은 우리 3인에게만 맡기고 자신은 손놓고 뒤로 빠졌다.  나는 보조를 한 셈이고 조장과 황택O 선생이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갔는데 눈으로 어떻게 비닐 칸을 설치하면 되는지 일의 순서를 눈으로 익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직접 주도적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아침에는 약하던 비가 점점 거세어졌다. 다행히 몽골천막 안에서 하는 작업이라 비는 피할 수 있었지만, 작업 중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작업이 마무리되어갈 즈음에는 옷도 젖어 추웠다.
작업 도중에 관리담당이 휴직을 위한 장기 결근 사유서를 들고 왔다. 약1달간 결근하는데 대해 사유서를 작성하고 싸인을 하였다. 총반장은 1달이나 결근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자, 관리담당 주사는 이 정도 편의는 봐 주어야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라고 수월하게 답을 했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항상 노동자 반대편의 견해를  총반장은 낸다.  일을 시켜 먹을 생각 밖에는 없는 사람. 일해주는 게 고마와서 노동자의 부탁을 긍정적으로 접근하여 도와줘야 인지상정인데 전혀 그런 정이 없는 사람. 차가운 피를 지닌 드문 형태의 사람을 여기에서 본다.

조경일지는 여기에서 멈추게 되는가? 아니면 다시 이어질 것인가?


10/8 (월)

병간호 사유로 월차. 족구장 잡초 뽑는 일을 동료들은 했다고 한다.


10/9 (화)

한글날.


10/10 (수)

병간호 사유로 월차. 마O공원에서 예초 및 잡초 뽑는 일을 동료들은 했다고 한다.

10/11 (목)

계양구 보건소에 가서 일정보다 당겨 유행성 출혈열 3차 예방접종을 개인적으로 가서 맞았다. 오후에는 노트북 액정화면이 색깔이 이상하게 나와서 LG서비스센터에 직접 들고 가서 수리하다. 액정은 이상없고 케이블이 노후화되어 열이 많이 발생하여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수리비 51,000 원.

10/21 (일)

60 L 어항에 야생미꾸리가 토해낸  토사물을 대충 제거하고 빠져나온 물 만큼  약숫물을 보충하였다. 중형 어항 속에 설치된 3개의 작은 어항 나누어 넣었던 물고기 새끼 중에 1개는 틈새로 빠져나가 망둥어의 사냥감이 되어 버렸고, 3개의 어항에는 각각 2 마리의 물고기와 8마리 정도의 물고기들이 아직 살아 있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던 민물새우가  마리 정도의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작은 어항 속에서 발견되었다. 망둥어에 쫒긴 민물새우가 5cm 높이 정도는 점프한다고 하니 피해  도망치다가 작은 어항 속으로 뛰어든 모양. 작은 어항 벽을 타고 바깥으로 튀어나가려고 하는데 벽면이 미끄러워 쉽지 않은 모양. 줄새우는 공격성이 있다는데, 요놈은 줄무늬가 없는 생이새우. 별다른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이끼나 물고기 배설물을 먹는 모양.


 조경 일지

10.29 (월)

2주 이상 지나고 첫출근한 날.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작업 내내 반장이 감시하러 나타나지 않았다.

2번째 호수에서 청태(녹조)를 뜰채로 떠서 치우는 일을 하루종일했다. 3인이 투입되었다. 어부가슴장화 2개 모두 물이 샌다 하여 부츠 형태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붉은 장화를 신고 호수에  들어갔다. 이 장화로는 호수 깊은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
3m 정도 길이의 대나무를 작업 현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대나무가 버려진 숲에서 찾아 가지고 낫을 끄트머리에 재생타이어 고뭇줄로 묶고 수중에서 올라온 식물을 베라고 하였다. 그것들이 청태로 변하는 원흉. 이전에는 청태만  뜰채로 떠서 물가에 버리면 되었는데 ㅡ땅위에 버려진 청태는 햇빛을 받으면 아주 작게 쪼그라드니 굳이 따로 모아 쓰레기장에 옮겨 버릴 필요 없음ㅡ이 날은 외발수레에 담아 쓰레기장에 버리라고 반장이 지시했다. 마땅히 시킬 일은 없고 놀리지는 않아야 되겠고 하여 하루종일 일하도록 만들다보니 평소와 다르게 추가적인 작업을 붙인 모양.
그리고 뜰채에 긴 대나무를 연결하라고 했다. 원래 긴 대나무는 지주목으로 지탱하는 나무들을 인접한 나무끼리 대나무로 횡으로 한번 더 묶어서 강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어린 나무를 심은 후 2~3년 지나면 뿌리가 깊게 내려 더이상 지주목은 필요없게 되어 제거되는 지주목과 긴 대나무는 숲 속 안 보이는 곳에 버린다. 그 대나무를 주워서 뜰채에 연결해 묶어서 사용하라고 총반장이 지시했는데, 뜰채가 창고에 있는지 조류전망대 밑에 있는지 월차까지 합하면 20일만에 직장에 복귀한 탓에 현상황을 알 수 없어서 청태 제거ㅡ나는 지금껏 1번만 투입됨ㅡ에 자주 투입되던 김만O 선생에게 뜰채가 보관된 위치를 물었더니 자기가 어떻게 아느냐고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70대 초의 나이인 그는 50대 중반의 총반장이 말 놓아도 무례하게 대해도 군말없이 시킨대로 하는 사람인데 동료인 나한테는 왜 이러는 거지? 오랜만에 출근하니 현상황을 몰라 묻는 거지요,하고 내가 말했다.
조류전망대 밑에 있겠지,하고 갔더니 없었다. 그제서야  예전에 김만O 선생의 지시로
노동자대기소 옆 창고에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조영O 선생이 긴 대나무에 낫을 끼워넣기 위해 대나무 마디 끝부분을 금이 가게 만들어 낫자루를 그 속에 끼웠다.  그리고는 빠지지 않도록  검정 고무줄로 묶었다.
나머지 2인은 뜰채를 가지러 노동자대기소로 걸어갔다.이거 원, 도중에 총반장을 만나면 작업도구도 안챙기고 작업장 갔었냐고 한소리 듣고 바보되겠는 걸.
다행히 총반장은 관할지역의 다른 공원에 가서 노동자 대기소에 없었다.
대기소 옆 창고에 싸리비가 잔뜩 쌓인 선반 밑에 보이지않게 뜰채가 깔려 있었다. 예전에 선반 위에 올려놓은 기억이 있어서 많은 싸리비에 깔려 보이지 않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뒤적거려 2개를 찾아내었다. 

한장O 선생이 낫으로 얕은 깊이의 갈대를 베었다. 나머지 2인은 뜰채로 청태와 물 아래의 검은 퇴적물을 연못 바깥으로 버렸다.

연못은 물 반 고기 반이어서 막간을 이용하여 어항에 넣을 물고기를 뜰채로 잡았다. 쏘가리,민물새우,치어들을 페트병에 담았다. 쏘가리는 조영O 선생이 대나무를 길게 박은  뜰채로 뜰 때 지나가다가 얼떨결에 뜰채에 들어온 모양. 이게 뭐냐,소리치길래 보니 처음보는 물고기. 한장O 선생이 쏘가리라고 말했다. 쏘가리를 어항에 키울 수 있다니 행복하다. 잡식성이므로 작은 물고기와는 격리해서 키워야할 듯.

한강의 물을 그대로 파이프로 흘러나오게 하여 공원의 나무에 준다고 한다. 톤당 16~18원 정도. 한강 물에 한강의 다양한 어종이 함께 밀려들어온 탓에 더러운 호수에 여러 어종의 물고기가 살게 된 듯.
동료가 말했다. 똥물에서 살던 물고기가 약숫물에서 살게 되었다고. 집 어항은 수도물이 아니라 약숫물을 사용하게 있음을 알고 하는 말.

청태 제거 작업중 부부가 산책하다가
문의
쏘가리가 뜰채
총반장이
잡았다.

기간제 물은  아줌마

10/30 (화)

총반장이 2번째 호수 청태(녹조)를 다 제거했느냐 물었다.  호수의 중앙에도 제거했느냐 물었다. 그가 2번 3번 묻는 것은 물이 스며드는 어부가슴장화를 신고 호수 중앙까지 집어넣고 싶어서 일터.
호수 중앙에는 수초만 올라와 있을 뿐 녹조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
어제는 오후 4시쯤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오늘 하루종일 추워졌고 하루 중 가장 온도가 높다는 오후 2시조차 추웠다. 이런 날 물 들어오는 어부가슴장화를 신
고 물에 들어가면 냄새나고 더러운 차가운 물에 팬티까지 젖을 것이다.
어부가슴장화 수선은 해주지않고 일 부려먹는 것만 생각하는 총반장.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다.

남자 노동자들은 모두 싸리비로 자연마당으로 가는 입구부터 자연마당 전체 산책길을 쓰는 일에 투입되었다.
시킬 일이 별로 없어서 하루종일 청소를 시키는 것이다.
힘을 쓰는 작업이 아니므로 쉴 때 몹시 추웠다. 내일부터는 오리털 방한복을 추가로 더 입어야할 듯.

10/31 (수)

양묘장 안의 똥포지에서 철쭉100주를 캐어내어 훼손O의 도로가에 심었다. 말라죽은 철쭉을 뽑아내고 그 자리를 삽으로 더 판 후 비료를 넣고 비료와 흙을 호미로 섞은 후 새 철쭉을 심었다. 삽으로 파낸 흙으로 다시 빈 공간을 채웠다. 흙은 다지지 않았다. 물이 스며들려면 발로 밟아 다지면 안된다고 한다.
오랜만에 출근한 후 처음 훼손O의 동료 노동자와 연합함대를  이루어 작업하는 것이어서 반갑게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노동을 하지않고 집에서 쉬고 지냈더라면 인연이 없었을 사람들. 이렇게 땀 흘리며 같이 일하다니 새로운 인연들이 생기고 오랜만에 본다고 반갑게 맞이해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등산용 오리털 옷을 바람막이 옷 안에 입고 나온 첫날이라 추위를 전날과 달리 느낄 수 없었다.

오후에는 총반장이 페인트칠을 하느라 감시하러 오지않고 그 지역에서 적당한 일을 찾아하라고 지시하여, 철쭉을 심은 넓은 터에 자갈이 많아 자갈들을 군데군데 삽으로 웅덩이를 파서 보이지 않게 묻었다.

저녁에는 전직장 호수공원의 동료들을 만나 횟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11/1 (목)

오전에는 노동자 숙소가 있는 연O 공원 남측부지 전체를 싸리비로 쓸었다
오후에는 동일 장소를 제초작업하였다.

11/2 (금)

코스모스밭을 엎어버리고 다른 식물로 심을 모양이다. 낫과 외발수레를 준비하여 투입되었다. 코스모스를 뿌리채뽑는데 굵은 것은 뽑히지 않아 그 경우에는 낫으로 주위 흙을 긁었다. 뿌리를 보호하고 있던 흙이 부스러지고 무너져내리자 코스모스 뿌리는 힘없이 뽑힐 수 밖에.

도중에 내일 행사준비 작업에 투입된 조장 김만O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와 조영O 선생이 작업도구를 두고 몸만 빨리 오라고 하였다. "빨리"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 보니 성격 급한 총반장이 거기 있나보다,하고 추측되었다.
양묘 사업장의 창고에서 탈곡기를 같이 들고 옮기려고 부른 것이었다.
옆에 리어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우니 네 명이 들고가자고 김만O 선생이 고집을 부려 들고 행사장으로 운반했다. 그냥 빈손으로 걸어갈만한 거리이기는 하지만 잡기도 불편한 탈곡기를 들고 걷기에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거리였다.조영O 선생이 리어카에 실고 옮기면 힘들지 않을텐데 왜 일을 힘들게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행사장에 총반장이 역시 있었다. 탈곡기에서 튀어나오는 볍씨를 몸 전체로 막을 방벽이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도 잘 깔려 있어 그 위에  탈곡기를 놓았다.
벤취와 테이블들을 치우라하여  옮겼다.
다시 원래 작업장소로 돌아와 코스모스를 뽑았다.

오후에는 산림보호청에서 비료 주기행사가 있어 나무마다 3군데 삽을  찔러넣고 땅을 벌려서 고형비료를 넣고 삽을 빼니 아가리 버렸던 땅이 입을 다물자 감쪽같이 비료가 눈에서 사라

전직장의 근무기간이 끝날 무렵 예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던 예초기 싸부 염효O 선생이 행사에 동원되어 왔다가 아는체 했다. 반가왔다. 모두 삽을 들고 고형비료를 들고 나무들을 향해 돌격하느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11/3 (토)

벼 베기 행사 특근.
행사 주체가 올해부터 지원팀에서 한다고 한다.
총반장은 지원팀으로 전화를 한다.
상대방 담당이 탈곡기등 준비물을 다 준비해두었으며 자기네가 하니까 공원관리팀은 신경쓸 일이 없다고 말하는 모양.
총반장은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애쓴다.
노동자들이 노는 꼴을 못보는 성격의 소유자다.  남의 일조차 자신의 일로 만들어 주최자는 생색만 내고 뒤로 빠지고 모든 행사준비와 뒷처리는 공원관리의 일로 되어버리는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탈곡기만 둔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탈곡할 때

11/5 (월)

양묘장에서 단풍나무 묘목 100주 정도를 캐어 뿌리의 흙을 녹화테입으로 감싸  트럭에 실었다.
녹화테잎의 양 끄트머리를 칼로 찢어서 묘목을 묶는다. 녹화테입으로 뿌리의 흙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돌돌 싼다.마지막은 처음과 동일하게 양끄트머리를 칼로 찢은 후 묶는다.
점심을 일찍 먹고 계양 장O 공원으로 가서 비탈에 삽으로 파서 심었다. 돌이 많아 삽질이 쉽지 않았다.
팀장과 공원담당이 비탈 위의 기존의 큰 나무의 뻗은 가지에 묘목이 가려지지 않도록 더 아래 심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니 총반장이 위치를 더 아래로 변경하여 파라고 작업지시했다.
어렵게 팠더니 도로아미타불된 구멍들.

11/6 (화)

똥포지에서 박태기 나무 묘목을 100 주 파내어 트럭에 실었다. 박태기 나무는 철쭉처럼 흙덩어리가 뿌리를 화분처럼 감싼 채 삽으로 뜰 수 없었다. 흙이 바스러졌다. 묘목은 작아도 뿌리가 길었고 굵었다. 뿌리가  아랫도리처럼 알몸으로 드러난 채로 트럭에 실렸다.
화살나무 100 주도 캐어 트럭에 실었다.
오후에 어제 단풍나무 묘목 일부 남은 것을 지선사 주위에 심었고 일단 낫으로 사계청소를 한 뒤  박태기 나무 묘목도 동일한 자리에 심었다.
화살나무는 계양공원 장미원의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전망대 밑에 촘촘히 심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와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 근처에  기존에 깔려있던 반석들을 걷어내고 정자를 업체가 설치하면서 원상복구를 하지 않아 조경 노동자들이 대신 작업하게 되었다.
정자 주위의 자갈이 많은 땅을 곡갱이로 깠다. 곡갱이질은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이 날 많이 해보았다. 갱이와 곡갱이의 차이는 후자는 전자보다 위에 뾰족한 것이 더 붙어 있는 것이라고. 돌이 많을 때는 뾰족한 부분으로 찍어줘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아래쪽의 넓적한 괭이 부분은 큰 돌에 불꽃을 일으키며 불꽃이 튀어나갈 뿐이다.
업체 직원들이  정자를 설치하면서 기존의 반석을 걷어내고 한쪽에 쌓아둔 반석들을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정자 주위에 깔아나갔다.
돈 많이 받고 일하는 업체에게 제대로 일해놓아라고 호통쳐서 업체가 원상복구하게 해야지 왜 우리한테 총반장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시키느냐고 노동자들의 불만의 소리가 나왔다.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을까? 총반장이 고생했다며 1시간 일찍 퇴근시켜주었다.

11/7 (수)

철쭉 1,000주를 똥포지에서 캐어내어 장고O 공원에 심는다고 총반장이 말했다. 삽질을 하는 도중에 철쭉이 크기 때문에 트럭에 실린 500~600 주만으로도 충분하겠다고 그만 실어란다.
점심은 장고O 공원에 가서 먹고 거기서 퇴근하기로 하고 이동하였다.
흙을 뒤집어 엎고 그 위에 검은 비료를 뿌리고 삽으로 적당한 깊이의 구멍을 파고 철쭉을 심고 적당히 흙을 손이나 발로 다져주었다. 너무 단단히 다지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돌밭이어서 삽질이 힘들었다. 괭이가 있었으면 흙 파기가 쉬웠을텐데 준비되지 않았다. 괭이가 없자 보니 삽끝으로 쪼아 돌을 깨기도 하며 그바람에 삽질 요령이 많이 늘었다.
철쭉이 모자라서 이병O 선생의 소형 트럭으로 똥포지에서 200 주를 더 캐어왔다. 그래서 하루만에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고생하였다며 만족한 표정으로 총반장이 1시간 일찍  노동자들을 퇴근시켰다.

장인 제삿날이지만 아내만 내려보내고 나는 연일 삽질하였다. 누적해둔 월차가 없다보니 결근을 하는 수 밖에 없는데, 결근하면 결근한 날의 일당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유급 휴무인 주차 일당도 날아가고 다음달 발생하는 월차(수당)도 날아가니 경제적인 손실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올해는 제사를 위해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11/8 (목)

전국에 비. 출근했다가 바로 퇴근시켜 결국 공치는 날.

11/9 (금)

계양산 장O공원의 정자 주위의 자갈이 많은 땅을 곡갱이로 까고 삽으로 팠다. 그리고 반석을 깔았다.
며칠 전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기에

11/10 (토)

특근.  계양산 장O공원에 연합함대를 이루어 산책길 바닥에 물묻은 채 바짝 얼굴을 붙이고 있는 낙엽들을 갈퀴로 끌고 싸리비로 쓸어 군데군데 모았다가 대형포대에 꾹꾹 눌러 최대한 담았다.
총반장이 그렇게 담아라고 지시했단다.물 먹은 낙엽을 대형포대에 꾹꾹 눌러 담았으니 2명이 붙어서 트럭에 올리다보면 허리에 무리가 갈 것이다. 3명은 붙어서 함께 포대를 올려야 할듯.
고기 가든 식당에 흙 묻은 작업화를 신고  들어갔다. 갈비탕 8,000원,뚝배기 불고기 7,000 원. 좋은 분위기.맛좋음.

11/12 (월)

오전에는 코스모스밭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낙엽을 싸리비로 쓸었다.
트럭에 실린 낙엽 대형포대가 도착한다 하여 쓰레기하치장에 가서 하차하고 쏟았다. 대형포대는 재활용 위해 모았다.

오후에는 워낙 낙엽이 물 먹어 무거워 1명더 필요하여 내가 추가적으로 투입되었다. 계양산 장O원에 가서 낙엽 대형포대를 실고  쓰레기하치장에 낙엽을 쏟았다.

11/13 (화)

오전에는 정자 앞의 쥐똥나무들 때문에 전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민원이 들어왔는지 쥐똥나무들을 삽으로 캐어 정자 뒷편으로 재배치하였다.

오후에는 논바닥에 누워 있는 볏단을 논둑에 올리고 묶었다. 건조한 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벼로 볏단을 묶는 거는 처음해보았다.

11/14 (수)

철마산에서 자고 장고개에 아침에 출근하는데  간혹 만두도 사먹고 블루스타에  라면도 끓여서  먹기도 한다는 꽃거지가 전화가 없다는데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처럼 중얼거리기도 한다는데,오늘도 변함없이 출근해있네요.

오전 큰나무  주위에 질소,인산,가리로 구성된 산림용 고형복합비료를 주었다.
큰 나무에만 사용해야 한다. 관목에는 오히려 독하여 해가 될 수 있단다.
나무가지가 뻗어 있는 만큼 동일한 거리까지 뿌리가 뻗어 있으므로 나무가지 끝의 수직 아래의  땅에 삽을 밟아 넣고는 앞으로 좀 밀면 생기는 흙의 틈에 고형비료를 3~5알을 넣고는 삽을 빼내고 흙 크레바스를 밟아주면 깜쪽같이 흙 속에 비료가 묻혀버린다.
나무 주위 삽은 2
오후 장고개에서 경계석  설치,양배추 설치,구절초 제거중

11/15 (목)

오전에 훼O지에 가서 모래와 세멘트가 섞인 몰타르 (40 kg짜리)  4포대, 삽, 경계목 7개를 실었다. 계O공원 두 군데에 경계목을  설치한단다.
경계목은 공원 경계를 나타내는 용도이지만 사람의 눈에 안 띄는 위치가 최적의 위치라고 한다.
둘레길을 나타내는 표지목은 눈에 잘 띄는데 설치되는데  경계목은 정반대로 눈에 안 띄는데 설치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또라이들에 의해 파손되는 걸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계O산을 올라가며 경계목을 설치하기 위해 경계목을 짊어지고 올라가거나 물을 들고 올라가거나 콜타르 20 kg을 짊어지고 가느라 팔이 빠질듯이 아프고 어깨,허리가 아팠다.

경계목을 박을 자리에 삽으로 깊이 판다.돌이 많을 때는 곡괭이질도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호미로 돌과 흙을 걷어낸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호미로 박힌 돌을 빼내는 데 호미가 효과적인 것은 놀라운 일.
경계석을 흙구멍에 세우고 고정을 위해 돌들을 끼워넣는다.  빈 비닐 비료포대  혹은 바께쓰에 콜타르와 물을 붓고 섞은 후,  삽으로 떠서 흙구멍에 붓는다. 나무가지를 콜타르에 꾹꾹 눌러 빈틈없이 구멍 안으로 스며들게 한다.
물이 마르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물과 콜타르가 섞여 질펀한 상태에서 그 위에 삽으로 흙을 떠서 덮는다. 경계석에 콜타르 가루가 묻었으면 세척을 위해 경계석에 물을 부어 깨끗하게 만들면 잘 완료된 것.

6개의 경계목 몰타르로 박고, 약수터 근처에 있는 군인 방카 (화약고?)속에 버려진 온갖 생활 쓰레기를 꺼집어 내어 트럭에 실고 계O산 장미원 출발. 같은  산 다른 쪽  백양사로 가서 1개의 경계목 을 설치하고 공원 입구의 낙엽 포대를  트럭에 실고 쓰레기하치장에 버렸다.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귀대.

11/16 (금)

오전에는 조영O 선생과 나는 조류전망대 근처 클로버들을 여성동지들이 호미로 제거하는데 지원나갔다. 콜로버 천지에는 삽으로

오후 고형비료 자연마당

물고기 뜰채

11/17 (토)

오전에 혼자 여성동지 지원 삽질.
볍씨를 마대에 담다

물고기 뜰채

11/19 (월)

여성동지 도와 삽과 삼지창.
강 모래와 뜰채로 새끼.
돌 밑에 미꾸라지 3마리,망둑 새끼

11/20 (화)

오전 빈 코스모스밭 산책길을 싸리비로 쓸었다. 황택O 선생이 갈퀴를 가져가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싸리비로 밭의 가랑자리로 쓸면 낙엽더미가 모이게 되고 갈퀴로 숲속으로 넘겨야 쉬운데  싸리비로 낙엽더미의 무게를 감당하며 넘기기에는 힘든 일. 조영O 선생이 갈퀴를 가져와야겠는데,하고 반복적으로 앵무새처럼 말한다. 그러나,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노인네들의 특징이다.

결국 내가 운동삼아 노동자 대기소 옆의 창고로 다시 가서 갈퀴를 가져왔다.
밭 고랑에 잔뜩 쌓인 낙엽더미를 숲으로  갈퀴로 넘기는 것도 힘이 드는데  싸리비는 더더욱 힘들었겠다.
갈퀴로 낙엽더미를 숲으로 넘긴 후,싸리비로 고랑을 깨끗이 쓸었다.

오후에는 황택O,김만O 선생 조에 합류하여 연못 주위의 꽃창포를 베었다. 이렇게 잘라주어야 갈대가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꽃창포와 뒤섞여 있는 부들은 그대로 두었다. 부들에서 솜 같은 것이 계속 날려 옷에 묻었다.

오후 후반부에 나,조영O,이병O 선생 3인은 총반장이 모는 트럭 타고 경명공원으로 낙엽 대형포대를 실으러 갔다.
 

11/21 (수)

아침 미팅때 송별식 회식한다며 김만O 선생이 2만원 달라고 하여 주었다. 언제 어디서 하는지에 대해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오전에 빈 코스모스밭과 이어진 백문동밭과 주위에 떨어진 낙엽들을 싸리비로 쓸었다.

10월에 2번째 회식장소를 O숙자 여사가 총무를 맡아 자신의 지인이 하는 오리 식당에 갔었는데 큰 도로가에 위치하지 않고 골목에  구불구불 들어간 위치였는 모양.
남자들은 대부분 다른 깨끗한 식당에서 회식하기를 원했다.
닭을 싫어하는 나는 소,돼지를 먹는데로 정해라고 의견을 내었다.
O숙자 여사는 오리뿐 아니라 삼겹살도 있다고 답했다. 동일한 지인의 식당에 가려는 모양.
총반장도 넌즈시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김재O 선생이 직장 근처,큰 도로가에 있는데를 회식 장소로 잡아야 한다고 빽 소리를 질렀다.

점심 식사후 다시 작업하러가는 시간에 동료들을 대표하여 O숙자 여사에게 가서 조심스레 얘기를 시작했다.


11/22 (목)

오늘 조회때 홍길동 왈, "쫑파티 장소 문제로 의견 불일치 있는 걸 점심때 들었다.
회식후에도 장소문제로 말이 나올  수 있으니 전체회식은 안하겠디. 
하려면  개별적으로 해라."

 O숙자 여사는 사과는 없었고,
저,조영선,이병호,김재춘(8만원)이 내일 저녁 육봉달 6시에 참석합니다.

예약을 위해 훼손지는 남녀 몇 명 올 것인지와 총 인원에 회비 2만원 걷어야.

남녀 회식 고집하는 3인방에게는 2만원씩 돌려줬음.

경ㅁ공원 김무O선생도 참석.

메뉴는 삼겹살,대패삼겹살.항정살 무한리필 12,000 원

오전에 논에 가서 볏단을 외발수레에 실고 남측 공원부지의 배롱나무를 볏단으로 둘러싸는 월동작업을 하루종일했다. 점점 추워져서 월동준비하려다 정작 내 자신은 동태가 될 뻔. 손가락이 추위로 갈라졌다. 볏단은 아래는 볏알 부분을 위로


11/23(금)

 백양사 (경O여대)근처 계O공원에서 하루종일 낙엽을 모아 대형포대에 실었다. 그리고 대형트럭에 실었다. 총반장이 여러 번 혼자 트럭을 몰고 연O공원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훼O지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낙엽 대형 포대를 내리고 쏟아 낙엽의 산을 만들 것이다.

작업의 마지막은 죽은 나무들을 한 쪽 구석에 차곡차곡 보기좋게 쌓는 일이었다. 톱으로 큰 나무는 적당한 길이로 썰었다.

다들 현장에서 퇴근 위해 가방을 챙겨갔지만, 조선O 선생과 나는 연O공원의 대기소에 옷이랑 가방을 두고 왔기 때문에 대기소로 되돌아 와야 했다. 이 날 저녁에 대기소에 가까운 고깃집에서 대부분의 남자 노동자들의 쫑파티가 있기 때문이다. 김재O 선생의 승용차를 타고 연O공원의 대기소에 오니 총반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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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토)

아침에 첫눈이 내렸다. 도로에는 곧 녹기 시작했다. 가까운 문학산에는 눈이 쌓인 곳도 있으리라. 오래간만에 문학산을 등산했다. 눈을 볼 수 있었다.


11/26(월)

이날도 백양사 (경O여대)근처 계O공원에서 하루종일 낙엽을 모아 대형포대에 실었다. 그리고 대형트럭에 실었다. 총반장이 여러 번 혼자 트럭을 몰고 연O공원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훼O지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낙엽 대형 포대를 내리고 쏟아 낙엽의 산을 만들었다. 점심 시간에 첫 트럭이 가는 바람에 훼O지 노동자들의 식사 시간이 11:30이 아니라 12:00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트럭이 후진하여 비탈진 산책길 윗편에  잔뜩 쌓아둔 낙엽 대형포대들까지 후진하여  포대를 실으면 덜 힘들텐데, 총반장이 트럭을 여기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조장 김만O 선생이 말하며 저 아래까지 낙엽 대형포대들을 어깨나 등에 각자 짊어지고 옮겨야 한다 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오후 5시에 예방접종 맞으러 나가라고 하여 아침에 그말을 들은 조장 김만O 선생이 열받았다. 반장이 일만 부려먹으려 한다며 차라리 퇴직후 개인적으로 가겠다고 말하였었다. 반장 트럭이 마지막으로 짐을 씰고 떠난 후 오후 4시경 보건소로 가라고 대상자들에게 내가 권유하였다. 그들은 그 시간에 빠져나갔다. 내 나름 그들을 빨리 내보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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