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상했다는 문자메세지를 받은 날

                   황 안또니오

지금쯤 인천문인협회에서 심사를 하고 있거나 완료하였을텐데,라는 추측을 요 며칠 사이에 하고 있던 참에 인천문협으로부터 입상했다는 문자메세지가 오늘 도착하였다.
그리고 곧 주최측에서 정식으로 연락이 갈 거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예전에 현역으로 대기업에 다닐 때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구 공모전에 해마다 다양한 쟝르의 작품을 보내면 금상,은상,동상 안에 들어갔었다. 단편소설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수필은 전문분야는 아니었지만 인천 지역구 공모전에서 은상,동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는데, 정년퇴직후 머리가 아니라 몸을 사용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는 어쩌다 만들어 보내는 수필이 지역구 공모전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하고 늘 입선이다.
육체의 근육은 더 강해졌겠지만 두뇌의 근육은 점점 약해져가는 탓일까?

정년퇴직후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을 계속 가졌었는데, 몇년 전 내가 살고 있는 구의 구청 주최로 백일장을 대공원에서 열기에  토요일 참가하여 행사장에서 원고지를 받고 공원의 테이블과 결합된 벤치에 앉았다.
수년간 창작을 하지 않다가 당일 주어진 단어 다섯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제목으로 삼아 4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하여 제출하면 되는 동네잔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글짓기 행사였는데 2시간이 지나도록 한 줄을 써내기가 어려웠었다.
이제 머리가 굳어버렸구나, 생각하는 기능이 많이 퇴화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원고지를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철수하고 말았다.

20대때 치룬 신문사 입사시험에는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대해 논술하라는 식의 논술시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머리 속에 대충 정리하고나서 글을 써내려가기 마련인데, 작문은 자신이 있어서 글제를 보자마자 나는 즉시 글을 써내려가면서 동시에 생각을 정리하였기에 주어진 시험시간이 짧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년퇴직후 머리를 사용할 일이 없는, 노동의 시간으로  몇년 보내다보니 펜을 잡던 손에 굳은 살이 생긴 모양이다.

아무튼 굳은 살이 생긴 손으로 몇년 전에 만들었던 구석에 처박혀 있던 수필을 꺼내어 부자연스런 문구만 몇 개 고쳐 주최측에 이메일로 보낸 작품인데, 주최측에서 작품을 심사하는 문인협회로 전달한 모양이고 문인협회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기를 응모 편수가 맞지 않단다. 수필은 2편 제출하여야 하는데 1편만 제출되었단다. 그리고 15매를 보내어야 하는데 너무 길단다. 주최측의 공모전 포스터에 응모 편수 및 원고지 매수가 나와 있지 않은데 이거 무슨 소리지? 내가 대충 읽었었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중에 다시  주최측의 포스터를 보았는데 역시  응모 편수 및 원고지 매수는 적혀 있지 않았다. 갑자기 저런 기준을 말하니 심사대상이 되지도 않고 황당하게 버려질 상황에 처해졌다. 전화상의 여자 목소리가 수기는 20매이고 1편만 보내도 되는데 수필은 15매이고 2편을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갑자기 한줄기 빛이 쏟아졌다.  그래요? 그 작품이 제가 공원에서 일한 경험을 쓴 수기인데요,라고 내가 대답하였다. 그러면 수필이 아니라 수기로 접수할까요,라고 담당자가 말하길래 예, 그래주세요,라고 내가 말했다. 수필과 수기를 구분하다니 수기도 수필에 속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순간 들었지만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였다.
접수 당시에 접수가 거부될뻔한,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던 그 작품이 입상하였다니 감회가 새롭다. 11월에 시상식이 있을 것이고 늘 그랬듯이 나는 혼자 참석할 것이고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기념사진을 못남기게 되겠지.

처음 전국구 공모전에 수상했을 때는 시상식에 가족이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주었었다. 그러나 해마다 수상을 하니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되어 가족이 참석하지 않게 되어 나 혼자 시상식에 참가했다가 상을 받고 귀가하는 게 당연시되었었다. 전국구 시상식의 경우는 간단한 부페 형식으로 뒷풀이를 수상자 및 가족들이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기때문에 은퇴한 선배 직원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기념사진도 남기고 음식도 대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빈 손으로 오지않고 꽃다발을 가지고 왔었다. 이럴려고 부른 게 아닌데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시상식은 홀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현역 시절, 희곡으로 전국구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하였을 때 역시 홀로 시상식에 참여하였었고 KBS에서 방송으로도 나왔었는데 아무래도 이 상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전국구 공모전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KBS의 자회사(KBS 미디어?)로 전화를 하여 해당 디지털 영상을 녹화한 DVD를 구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문의하였었다. KBS의 드라마 등을 DVD로 구워 판매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자회사였으니 얼토당토하지 않은 문의는 아니었다. 자기네들이 DVD로 굽는 프로그램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당시에 담당자가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할수 없는 일이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후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지금껏 해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시상식 방송이 DVD에 담기고 케이스에 넣어져서 처음으로 수상자들에게 보내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DVD에 구워 판매하는 자회사 입장에서는 일회성으로 시상식 방송을 DVD에 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고 수상자들에게 무료로 보내는 것도 의미있겠다고 나름 판단하였던 모양이다. 내가 전화하여 처음으로 시상식 동영상이  DVD로 제작되어 수상자에게 뿌려진 셈인데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해마다 이렇게  DVD로 제작하여 보내주는 걸로 착각할 것 같다. 시상식 DVD에는 시상 장면 중간 중간에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지루하지 않다. 

입상했다는 문자메세지를 받고 보니 이런저런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2021.10.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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