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기간제 근로자가 되어 출근한다
황 안토
6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50대 중반에 11월말에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그 다음해부터 정년이 60세로 변경된다고 정부에서 발표하였다.
그 전까지는 정년퇴직 기준 나이가 노사협의 사항이어서 회사마다 정년 나이가 다 달랐다. 생일이 한두달 더 늦었다면 회사를 2~3년을 더 다닐 수도 있었는데 아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실제 나이보다 호적이 1년 늦게 되어 있어서 정년퇴직이 1년 더 늦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이왕 매를 맞을 거라면 일찍 맞는 게 좋다,라고 하지 않던가. 남보다 미리 현실에 뛰어들어 부딪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30여년 열심히 일하여 출세하였다면 모를까 정반대의 대접을 받아왔으니 더 연장하여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직장 밖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은 주위 소상공인 지인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후배들처럼 법으로 보장된 60세 정년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못한 현상황에 불만도 없었다.
50대 중반과 나이 60의 사이에 있는 나이가 되다보니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기업에서의 IT 경력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너무 특별한 분야라서 두루두루 쓰이는 전기 전공 출신과 달리 필요로 하는 업체가 없었다.
소규모 지방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아마도 온라인 신문을 관리할 수 있는 웹 관련 코딩 가능한 자, 문장력을 필요로 하는 기자, 광고 유치를 위한 영업도 가능한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주어도 되는 노령자로 딱 적격이라고 신문사 대표는 생각하였겠지. 한 사람이 이 일 저 일 다할 수 있어야 인건비가 절감되고 구독자가 거의 없는 신문사가 운영될 수 있겠지. 시의원, 구의원, 시장 관련하여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고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러 장마철에 공장의 폐수를 불법으로 방류하는 업체를 적발하여 신문 기사로 작성하여 올리겠느니 하면서 무마조의 돈을 받아 신문사 운영비 및 기자 월급으로 쓰는 그런 지방 신문사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문사 대표가 기대하였던 내 IT 기술은 웹 기술이 아니었다. IBM 대형 컴퓨터 혹은 중형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기술이라서 일반 PC 환경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그러다가 1년 3개월의 동면 기간이 지나고, 공원의 녹지를 관리하는 조경노동자로 취직하게 되었는데 퇴직금이 발생하지 않는 8~9개월짜리 기간제근로자였다. 그 기간이 지나면 계약종료로 실업자가 된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한다. 첫 단추를 잘못 잠그면 나머지 단추도 잘못 잠궈지게 되고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인생 2막의 첫 단추로 기간제 조경근로자를 선택하였다. 잘한 선택일까 아니면 못한 선택일까?
그런 평가는 지금 내리는 것이 정확할까 아니면 좀 더 세월이 흐른 후 평가를 내리는 게 정확할까?
이 일이 나이가 늙어갈수록 만족도가 높아지고 가성비가 좋아진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든 전기기능공으로 일하든 70세로 접어들면 밀려나는 것 같다. 순간적인 판단이 늦어져 위급상황에 대처하지 못하여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때문에 자기 스스로 개인사업을 접든가 혹은 회사가 밀어내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개인택시 기사는 자신이 큰돈을 투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운행을 자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면 불안하여 스스로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경 노동자의 경우 전혀 투자금이 없다. 월급쟁이가 다 그러하듯이 건강한 몸뚱아리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 게다가 70세가 넘어도 일할 수가 있다. 예초기,전정기, 엔진톱, 브로아(송풍기), 고지톱 등등의 장비를 개인적으로 구입할 필요도 없다. 자신을 고용한 공원의 창고에서 조경장비를 꺼내어 작업하면 된다.
내선전기를 한달간 해본 적이 있다. 장비를 매달 전용 허리띠를 개인적으로 구입해야 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는 자비로 구입하여 전용허리띠에 매달아야 한다. 회사에서 사주지 않는다.
70세가 되면 어느 분야의 기술자로 일했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일터에서 밀려난다. 그 나이의 늙은 동료의 말에 의하면, 동창 모임에 나가면 일하는 사람은 조경 노동자로 일하는 자신만이 놀지 않고 있어서 친구들이 부러워한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오라고 하는 직장이 없는 나이가 되면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은 무엇이든 소중하다.
2년에 걸쳐서 내 직업에 대해 조언이랍시고 거만하게 기분나쁘게 그런 일하지마라는 지인이 있었다, 그는 내선전기 하청업체인 1인 회사에 들어가서 전기기사보조로 일하다가 일을 배워 독립하였다. 일당이 10만원정도 될 게다. 전기기사는 15만원정도 되고 아주 실력이 있는 경우 일당이 20만원 정도가 된다. 노동강도는 조경 일자리보다 훨씬 약하다.
그러나, 내선전기의 현장을 1달 전기기사보조로 따라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이래서 노가다라는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말이라도 어,아가 다른데 상대방이 기술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으면 측은지심이 생겨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상대방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만드는 말을 골라서 해대었다. 주위에 내선전기 현장을 따라다닌 직장동료가 았는데 어찌나 그가 겪은 경험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똑같던지. 이러다가 스트레스로 암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바닥에서 노가다가 다 되어버린 것일까? 지각하여 성당 안 맨 뒷자리에 함께 앉았는데, 거만한 지인이 갑자기 나에게 뜬금없이 "아직도 공원에서 일하나? 이 나이가 되면 그런 힘든 일은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무직에 일하다가 나와서 육체노동을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고 덕담이나 격려를 해주는데, 같이 종교활동을 오래해온 지인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를 깔보듯이 말하니 황당하여 대응을 하지 못하였고, 게다가 미사중이라 더욱 그러하였는데 매우 분하였다. 2살 차이밖에 안나는 그를 형이라고 불러주고 있는데, 그가 내 아버지라도 되나? 내가 공원일을 때려치우면 그가 나를 먹여 살릴 것인가?
내가 그에게 서운하게 해준 일이 없는데 내가 왜 그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지?
1년후 재방송하듯이 동일한 공간에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맨뒷자리에 같이 앉게 되었다. 거만한 지인이 재방송하듯이 동일한 대사를 뱉기 시작하였다. 그냥 참고 있으면 해마다 사람을 무시하듯이 교만하게 반복하겠지. 아주 세게 나가야 더 이상 재방송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소의 내 성격과는 달리 독기를 뿜어내며 말하였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 네 인생이나 신경 써라."라고. 그러자 깜짝 놀란 그가 "난 네가 걱정돼서 그래."라고 교만한 표정에서 당황스런 표정으로 바꾸면 말했다. "네 앞 길이나 신경 쓰라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신경 끄라니까!"라고 내가 성질내며 말했다. 그랬더니 지난 수년간 더 이상 재방송을 하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걸까? 심리분석을 해본다. 그를 서운하게 했거나 내가 대기업 다닌다고 으시된 적도 없는데 왜 몇년째 저러는 거지? 내선전기나 조경이나 50보 100보 차이일뿐 같은 노가다 신세인데 왜 저렇게 교만 떨고 있는 거지? 그와 어울리는 술친구 중에 한때 갑자기 구의원 선거에 나와서 친구라서 어쩔수없이 선거전에 뛰어들어 한두달 내가 도와준 자가 았었는데, 세월이 흘러 공원 조경노동자로 일하는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비슷한 시기에 배은망덕하게도 그녀석이 보여주었다. 당시에 아마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나누었는 모양이지?
아마도 그들의 자격지심이라는 결론에 나는 도달한다.
한 때 해마다 소설을 한 편씩 창작한 적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여럿 등장하고 행동을 하고 서로 충돌한다. 작가와 성격이 같은 인물도 등장하지만 다른 다양한 인물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등장인물마다 다른 성격, 다른 심리를 가지고 있다. 소설 창작 경험 탓인지 상식을 벗어난 타인의 행동에 대해 심리분석에 저절로 들어가는 습성을 언제부턴가 나는 갖게 되었다. 현역시절 나는 대기업 다니는 티를 내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가, 정년퇴직후 내 직장이 바뀌자 상대적으로 자신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자만심이 들면서 뜬금없이 나를, 나의 노동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나는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조경일을 해보니 예초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다. 셀프세차장 주위 50 평 면적의 화단의 잔디를 2명이 3시간 정도 예초해주고 20만원 받는 아르바이트를 해준 적도 있다. 가정집 앞마당 엉망진창으로 자란 잔디를 예초해주고 점심값을 받은 적도 있다. 우체국 뒷뜰을 15분정도 예초해주고 명절 선물 박스들을 받은 적도 있다.
더 늙어서 시골로 내려가면 예초기를 하나 장만하여 주문을 받아 예초해주면 생활비는 벌 수 있을 것 같다. 무덤 하나를 예초해주는데 10만원이라고 한다. 30분이면 충분하다. 보통 8시간 일하여 받는 일당이
10만원이라면, 30분 예초하고 10만원을 받으니 훨씬 더 나은 기술이 아닌가?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 일하니 힘들어 보이겠지만, 조경인에게 예초기는 아이들의 장난감과 같다. 재미있는 작업이다.
드디어 노동자들의 근무지가 정해져서 공원 사무실 담당자로부터 사무직들의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문자가 날아왔다.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기에 편한, 내가 원하던 공원으로 배치되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왁 플래티 4마리, 청소부 브론즈 코리도라스 3마리, 풍선몰리 옐로 2마리, 수초 하이그로필라 로자네스 4촉이 저녁 늦게 도착하였다. 구피어항에 합사하였다. 다양한 어종이 헤엄쳐다니니 보기에 좋다. 물달팽이 같은 것이 많이 번식하여 퇴치를 위해 갈겨니와 새끼 붕어를 넣었다. 효과가 있는 듯하다. 갈겨니가 풍선몰리와 구피를 공격하는 게 보인다. 도로 민물어항으로 옮겼다 새끼 붕어가 외로워 보인다. 민물어항에서 추가로 새끼붕어 한마리를 더 꺼내어 열대어 어항에 합사시켰다. 몸잡 작은 코리도라스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새끼붕어를 스토커처럼 귀찮게 뒤쫓지만 붕어는 달아날 뿐 다른 열대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붕어는 평화주의자다. 물미역 모스가 더 자란 것 같다. 빈 소라고동 속에 흑사를 채우고 수초 하이그로필라 로자네스를 심었다. 뿌리가 생기고 풍성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한 직장에 연이어 다니지 못하고 해마다 직장이 바뀐다. 공원일이 대동소이하지만 못해본 일을 새 직장에서 경험해보기도 한다. 송O공원사업단 산하의 해OO공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내 역량을 더 발전시키는 직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3.2.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