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갈라티아서 – 바오로의 질책과 호소가 담긴 서간
갈라티아서는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켈트(‘골’ 또는 ‘갈리아’)족 사람들이 오늘날 터키의
수도 앙카라 부근에 정착하면서부터 이 지역을 ‘갈라티아’라고 부르게 되는데, 이후에 로마 제국이 이 지역과 소아시아의 남쪽 지방을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묶어 ‘갈라티아’ 속주로 명명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 중에 이 지역을 두루 방문하여 여러 공동체를 세웠는데, 그만큼 사도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깃든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례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 이 지역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바오로의 사도직에도 의문을 제기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닌 그의 권위가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권위에 미치지
못한다거나 또는 그들에게 종속되는 인물 정도로 바오로를 폄하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갈라티아 신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편지 한 통을 보내는데(아마도 55-56년경), 이 편지가 바로 갈라티아서입니다.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느낀 실망과 서운함은 편지 곳곳에 묻어납니다. 갈라티아서는 다른 서간의 서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사 양식’ 부분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바오로의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6). 바오로의 격양된 어조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도 드러납니다.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3,1); “내가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어조로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4,20). 자신이 직접 세운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컸던 만큼, 작금의 상황에 대한 실망과 상심도 매우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입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한 의화(義化)는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이미 살펴보았죠. 그런데 갈라티아인들은 이 복음을 저버리고 ‘다른 복음’, 즉 율법을 통한 구원의 길로 되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가르침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1,11)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2), 즉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1,15-16) 밝히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론합니다(1-2장).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는 회심하여 하느님에게서 직접 사도직을 받게 되었는데, 그런 후에 곧바로 다른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사도직을 한참 수행한 뒤에야(3년 후 그
리고 14년 후)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오로의 사도직이 그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과 는 전혀 관계없이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직의 정당성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사도직을 받은 이가 전하는 복음 역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죠. 이제 바오로는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2,16)는 대명제를 구체적으로 논증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갈라 3-4장에서 바오로는 유다인들의 성경 해석 방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성경적 논거들을 제시하면서 - 아브라함의 믿음(3,6-14); 후손에 대한 약속(3,15-25); 하가르와 사라(4,21-31) -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통해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성령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참조: 3,13-14). 이어서 5-6장에서는 자유를 누리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인도와 그리스도의 법을 따를 것을 권고합니다.
갈라티아서가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따끔한 질책과 간절한 호소를,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새기도록 합시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의롭게 되려고 애를 쓰는”(2,17) 삶을 살아간다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2,20)는 바오로의 아름다운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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