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마태오 복음서 II – 구약과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
지난 시간에 이어 마태오 복음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고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복음서의 첫머리에서부터 명확히 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 저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이)로 소개하는데, 여기에 “다윗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첨가함으로써 그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 즉 현세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해 줄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심을 특별히 부각시킵니다. 예수님과 구약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요셉에 이르기까지 나열되는 예수님의 족보(마태 1,1-17)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땅과 후손의 약속(창세 12장), 그리고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왕조에 관한 약속(2사무 7장)이 마침내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옛 약속(구약)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완성된다는 전망은 마태오 복음서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탄생(마태 1,22-23), 성가정의 피신 행적(마태 2,15),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심(마태 2,23), 카파르나움에 자리 잡으시는 과정(마태 4,13-16),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시는 모습(마태 8,16-17),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마태 21,1-11) 등, 그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대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율법의 가치를 매우 존중하고 옹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18).이렇게 하느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의미와 참뜻을 밝히고 새롭게 풀이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는 마태오복음 5,21-48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의 표현이 여섯 번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라고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소위 “여섯 가지 반대 명제”입니다. 모세를 연상케 하는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탁월한 권위를 가지고서 모세의 율법들(살인, 간음, 이혼, 거짓 맹세, 복수, 원수에 대한 계명)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시면서 그 충만한 뜻을 되찾아주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원칙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38-42). 사실 구약에서 이 조항은 눈에는 눈으로 반드시 맞대응하라는 잔인한 규정이라기보다, 오히려 지나친 복수를 금지하기 위한, 즉 “눈에는 눈”을 넘어서는 과도한 복수를 염려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러한 규정이 하느님의 참된 뜻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수정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황금률(마태 7,12)과 “하느님 사랑-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마태 22,34-40)은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새 율법의 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마태오 복음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고 율법을 완성하시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드러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만민의 구세주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늘 나라의 복음과 사랑의 가르침이 결국 모든 민족에게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22호 20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