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루스벨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승만을 주목해야 하는데,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① 미국 국무부는 당시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을 정리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1942~1943년 한국인의 주장을 옹호하는 상당한 압력(considerable pressure)이 대통령에게 가해졌다. 한미협회, 이승만, 미 의회의 여러 의원들이 한국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했다.” 한미협회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설립한 단체였고, 미 의원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인물 역시 이승만이었다. ② 이승만의 주요 로비 대상 중 한 명이었던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1940년 한국 이재민의 구호 사업 등 친한 활동에 헌신적으로 나섰다. 당연히 루스벨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휩쓸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조선의용군의 ‘연안행’은 그들의 삶과 꿈을 되살리려는 시도이자 그들의 잊혔던 꿈을 다시 흔들어 세우는 걸음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