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휩쓸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조선의용군의 ‘연안행’은 그들의 삶과 꿈을 되살리려는 시도이자 그들의 잊혔던 꿈을 다시 흔들어 세우는 걸음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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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연안행 - 안재성(미리보기)
** 북한 핵개발은 사실 중국 때문이라고? 북중관계 진실! l 국제관계 전문가 김동기 l 혜윰달, 생각을 비추다
조선의용군, 그들은 왜 연안에 갔을까… 안재성 장편 ‘연안행’입력 : 2011-12-30 18:21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휩쓸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조선의용군의 ‘연안행’은 그들의 삶과 꿈을 되살리려는 시도이자 그들의 잊혔던 꿈을 다시 흔들어 세우는 걸음걸음이다. [출처]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697671 상관인 여자와 부하인 남자...사랑에 빠질 확률은? [서평 & 인터뷰] 조선의용군의 사랑과 꿈 다룬 안재성 소설 <연안행> / 박현주 2012.02.23
이 소설 <연안행>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문학작품 중 조선의용군의 창설부터 해방 후 상황까지 그린 최초의 작품이며, 조선의용군을 소재로 한 최초의 픽션이기도 하다. 탈북을 준비하는 어느 시베리아 벌목공이 아버지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라는 프롤로그의 설정도 흥미를 끈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9757&CMPT_CD=SEARCH
조선의용대 본부는 중국 항일 전선의 변동에 따라, 무한에서 계림을 거쳐 1940년 3월에는 중경으로 이동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중국군 ‘6개 전구 남북 13개 성 전지’에 배속되어, 대일본군 반전선전, 대중국민 항전 선전, 일본군 포로 심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 지구에 국한된 선전 활동은 조선의용대 내부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결국 화북 지역에서의 무장투쟁을 요구하던 대원들은 1940년 말부터 이듬해 여름 사이 황하를 건너 태항산 팔로군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태항산 지역에서 기존의 조선청년연합회 회원들과 합류한 조선의용대 주력은 1941년 7월 7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화북지대(華北支隊)로 개편되었다. 출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210
중일전쟁[中日戰爭]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다1937년 일본은 전선을 확대하는 이면에 비밀 교섭도 시도하며, 1938년 11월에는 이른바 ‘동아 신질서’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즉 ‘국민정부는 이미 지방정부에 불과하고, 그들이 항일 태세를 지속하면 일본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다만 일본은 “영원한 동아의 안정을 확립하는 신질서”를 건설하려 하며, 국민정부가 항일 정책을 포기하면 신질서에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940년 3월 일본은 중국국민당 내 대일 주화론자 왕징웨이(汪精衛)을 내세워 난징에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은 왕징웨이 정권을 일본의 괴뢰정권으로 인식하고, 한간(漢奸) 즉 매국노라고 멸시하였다. 동년 11월 일본은 왕징웨이 정권과 조약을 체결하여 중국의 유일 정부로 인정하고,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일본·만주국·중국 3국의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동아시아 신질서의 확립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왕징웨이 정권은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아니었고 일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조선 의용군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만주 일대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이자,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朱德)는 조선 의용군(총사령 무정)에게 둥베이(東北)의 만주 지역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옌안 및 중국 각지에 있던 의용군 부대들이 만주로 들어갔다. 일본이 패망한 뒤 조선 의용군은 북한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의용군이 북한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것을 우려한 소련군이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이후 1945년 12월에 무정과 최창익, 한빈 등 고위 간부진과 대원 100여 명은 개인 자격으로 북한으로 들어갔다. ** 아직도 소문만 무성한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 중일 전쟁에 미국이 끼어든 이유는? [전쟁사 읽어드립니다 EP.27] | 역사학자 임용한 박사 ** [232회] [역사저널 그날] 태항산의 전설 ‘십자령 전투’ 2019.08.18 일 ** [232회] [역사저널 그날] 나 조선사람 의용대요 - feat. 김원봉 2019.08.18 일
** 민족 반역자 노덕술 - 최고의 악질 친일파 고문경찰 ** [244회] [역사저널 그날] 청산되지 못한 역사, 친일파 제3편 - 친일파의 명작 스캔들 2019.11.19 화
김일성, 중공의 ‘북한화교 동원 공작’ 전폭적 지원김명호 교수의 북-중 교류 60년 |
중일전쟁
래너 미터 지음 | 기세찬·권성욱 옮김
글항아리 | 528쪽 | 2만5000원
이 책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곳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1937년 7월7일, 베이징 근처에서 ‘루거우차오(盧溝橋) 사변’으로 알려진 국지적 분쟁이 일어났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032036015&code=960205
장제스 일본에 버텨…중국 G2로 성장
중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