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사령관에 오른 윤필용은 박 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군의 주요 보직과 장성급 인사까지 관여하면서 ‘참모총장 대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장·대장급 군 선배 상당수가 설날이면 윤필용의 집에 세배를 다녀갈 지경이었다. 윤필용의 수경사가 있는 곳을 가리켜 ‘필동(筆洞) 육군본부’라 칭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박정희 죽음의 전조 ‘윤필용 사건’
[토요판]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⑨윤필용 사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후계자’는 없다
- 수정 2012-05-18 14:42
- 등록 2012-05-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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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5사단장 시절에 만난 윤필용을 총애하여 7사단장, 1군 참모장, 군수기지 사령관, 1관구 사령관 등 새로운 보직을 맡을 때 대부분 윤필용을 데리고 갔다. 5·16 군사반란 당시 윤필용은 이른바 ‘혁명주체’가 아니었지만, 박정희와의 개인적인 인연 덕분에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또는 비서실장 대리로, 육군방첩대장, 수경사령관으로 20년간 최측근에서 박정희를 보좌했다. 윤필용은 육군방첩대장으로 있던 1965년 5월 원충연 대령 등이 주도한 쿠데타 모의를 적발하는 공을 세웠다. 1960년대 초반에 발생한 수많은 반혁명사건은 사실 모두 조작된 것인데, 원충연 사건만큼은 병력 동원이 계획된 실체가 있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