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 문화재에 낙서를 한 사연…사행으로 본 역사 이야기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러시아 공사관은 이제 청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공간이었다. 이항억의 <연행일기> 이후 연행록에서는 ‘아라사관’ 혹은 러시아 공사관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당을 더는 갈 수 없던 것과 비슷하다.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구미 국가들이 청과 조약을 체결하고 북경에 공사관을 세웠다. 북경 내 서양을 대표하는 공간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조선 사신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 청나라 vs 명나라 - 청나라가 명나라를 이길수 있었던 진짜 이유 [명청전쟁]

** [토크멘터리 전쟁史] 177부 명나라VS누르하치, 전쟁의 시작

** [동양고전] 유머와 열정의 패러독스, 열하일기(고미숙 고전평론가)

** [위대한 유산] 열하일기 (고미숙 고전평론가)

 

알라딘 첫화면으로 가기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 조선인들의 북경 체험  
  • 손성욱 (지은이)푸른역사2020-12-22
  • P. 37 1880년대 말 청나라는 내우외환으로 의례활동을 위해 코끼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자성의 난 때도,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할 때도 북경에 코끼리는 있었다. 여전히 유용한 존재로 쓰였다. 황제의 위엄을 높여 주고, 태평성대를 가장했다. 주변국의 조공으로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 19세기 중반 들어 상황이 바뀐다. 서양이 중국의 주변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코끼리의 북경행이 점차 줄어들더니 결국 끊기고 만다. 심지어 청나라는 코끼리의 쓸모를 폐기한다. 이런 모습은 오랫동안 동아시아를 주도한 중화질서가 와해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8355381



    남한산성 (2017)The Fortress

    ** [팩 한국사 332회] 이괄의 난이 실패한 이유 feat 정충신의 지략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