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영상을 쉽게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조회수가 많아져서 돈을 버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시대 취업이 되지 않아 빈둥거리는 젊은 백수들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나고, 그들 중에 빈둥거리지 않고 AI에 시간을 투자하여 어렵지 않게 영상을 만들고 유튜브에 올려 월급쟁이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영상으로 올려서 희망을 주는 좋은 역할도 하면서 주회수를 늘리고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이다. 그런 자식을 둔 늙은 부모도 자연스레 AI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식의 도움으로 AI 사용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젊었을 때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손가락 움직이는 속도가 많이 더디더라도 AI에게 정확한 "지시"만 내리면 머리와 몸은 AI가 담당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주니 은퇴한 노인네들 부업으로도 괜찮겠다는 기대가 생겨난다. 그런 노인들 중에는 AI로 적어도 용돈벌이를 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퇴직금 중에 1억을 투자한 상가에서 월 수입이 60~70 만원이 들어온다고 볼 때, 돈 없고 시간만 많은 노인이 AI에 "시간"만 투자하여 어느 순간부터 월수입이 60~70 만원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면 AI 공부에 시간투자할만 하지 않은가?
북방의 이민족 침략이 많았던 예수 시대의 북이스라엘 지역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남유다 지역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갑자기 북이스라엘의 갈릴래아 호수에 복음을 전하는 이상한 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던 북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 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아, 하늘나라가 너희 것이다."라고 희망의 말을 쏟아내는 이는 예수였다. 기쁜 소리, 희망의 말씀은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AI가 어떤 이들에게는 기쁜 소리가 될런지도 모른다.
나도 시작단계이지만, 주위 60대와 70대 지인들에게 유튜브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유튜브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나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짜증나는 정치 유튜브를 보는 시간에 AI 관련 유튜브를 보고 AI 공부로 바꾸라는 말이다. 추가적인 시간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가짜뉴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좌파 정치유튜브 또는 우파 정치 유튜브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AI 관련 유튜브 보는 시간으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정치 유튜브를 만든 이들은 돈을 벌면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데 그런 영상을 소비하는 자신은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때다.
AI란 무엇인가? AI로 떼돈을 벌어 벤츠를 모는 아줌마, AI들의 종류와 특징, 개별 AI의 기본 기능 설명, 개별 AI의 설치 방법, 각 AI의 특징에 맞는 작업지시를 내려 1차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순차적으로 다른 AI들에게 넘겨 최종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방법, 요즘 많은 조회수가 나오는 타인의 영상 벤치마킹하는 방법 등등을 짬짬이 보는 걸로 시작하면 되겠다.
2일 전에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주는 그록(Grok)이라는 이름의 AI 교육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play스토어에서 검색하여 설치하고 그록(Grok)을 열어 최근 면접하러 갔다가 찍은 사진을 선택하여 "앉아 있는 사람이 꾸벅 인사한다. 옆 자리로 이동한다. 반복한다. 최종적으로 양팔을 흔든다."라고 입력하고 동영상 생성하게 하였더니 놀랍게도 쉽게 그렇게 움직였다. 다음날, 카톡으로 친구가 보낸 소파 위의 고양이 사진을 선택하고 "사람이 사료를 준다. 고양이가 사료를 먹는다."라는 지시 문장(Prompt)을 입력하니 고양이가 동작하였다. "오리가 나타난다. 오리 주둥이로 고양이를 쪼아댄다. 고양이가 앞발로 대응한다. 싸움이 격렬해진다."라고 입력하자 두 동물이 싸우는 영상이 만들어졌다. 많은 학습시간을 들여 두꺼운 책을 보고 공부한 것도 아니고, 유튜브 영상 하나만 보고 따라했을 뿐인데 결과물이 쉽게 나온 것이다. 익숙해지면 자막을 넣을 필요성이 생길테고 자막을 넣는 AI가 무엇인지 유튜브 영상을 뒤져보게 될테고 그런 AI 교육 유튜브 영상을 보고 따라하면 되겠지. 이렇게 조금씩 맛을 보는 걸로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더라도 짜투리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젊은 이들보다는 긴 시일이 걸리더라도 전체 흐름이 파악되는 날이 올 것이다. 젊은이보다 은퇴한 노인들은 시간이 훨씬 많지 않은가? 추운 날 공원 장기판 주위에 빙 둘러 서서 구경꾼 노릇을 하는 노인들을 등산하러 가는 길에 본다. 일반적으로 돈 없는 노인에게 하루는 무척 길다. 많은 시간은 더 이상 지겨운 시간이 아니다. 아주 유리한 무기다. 장기판 구경에 쓸 시간을 AI 교육 유튜브 영상을 보는 시간으로 돌린다면 희망적인 미래가 전개될런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치매 예방은 되지 않겠는가?
단순히 스마트폰에 Gemini를 설치하고 "2박 3일 경주관광 동선"이라고 손가락으로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AI와의 첫만남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데, 대부분 주위 늙은 지인들은 AI는 전문가나 하는 어려운 기술이라는 선입관으로 굳어져 있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터운 벽을 깨트리지 못한다. 60대의 아내는 "요즘 딥페이크(Deepfake) 영상때문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라며 AI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인다. 딸은 "개인정보유출 가능성이 있는 중국이 개발한 앱 아냐?"라고 의심한다.
하기사 6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나도 얼마전에는 그랬다. 유럽여행 준비를 해야 하는데 놀고 있는 처지가 아니라 정년퇴직후 9년째 노동을 하고 있는 처지라서 퇴근후 피곤한 몸에 주경야독하듯이 자유여행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여행준비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산행 중에 모처럼 동행한 지인이 내 사정을 듣더니 AI를 이용하여 여행준비를 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절약된다, AI가 어려운 게 아니다, Gemini, ChatGPT, Perplexity를 추천하면서 플레이스토어에서 검색하여 설치하고 AI에게 물어보라고 그가 말하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한 AI가 지인을 통해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하는 용기를 갖게 만든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정말 그런 AI를 사용하니 유럽 각 도시들의 관광동선, 맛집, 버스터미널의 플랫폼 사용료, 대중교통 티켓의 용도와 가격 등등이 몇 초만에 정리되어 나왔다. 신세계였다. 미쳐 준비하지 못한 채 여행의 중후반에 들렸던 경유지에서는 현장에서 "8시간 관광동선"이라고 Gemini에게 물으면서 그대로 이동하였다. 식사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가버린 경우 "4시간 관광동선"이라고 다시 요청하면 그에 맞게 Gemini가 동선을 줄여 제시해주었다.
최근 AI가 소설도 창작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나는 현역 근무시절 역사소설 "미륵의 꿈 아전의 꿈"을 쓴 적이 있었다. 직장동료가 불교신문에 난 기사를 찢어서 나에게 건네준 게 시작이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소설 소재가 될 것 같아서 나에게 주려고 찢어왔단다.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예감은 맞았다. 나는 단박에 이 인물로 소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마 40대였으리라. 그때는 AI가 없던 시대. 조선왕조 실록을 비롯하여 여러 책에서 자료를 찾았다. 여환에 대한 추적은 쉽지 않았다. 자료가 많지 않았다.
며칠 전, Gemini에게 승려 여환에 대해 알아보는 시도를 시험삼아 해보았다. 놀랍게도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자료들을 잘 정리하여 답변해주었다. 내가 지시만 내리면 개인비서 혹은 신입직원처럼 잘 정리된 보고서를 몇 초만에 만들어내는 셈이다. 나는 여환과 당시의 중인계급과의 관계도 물었다. 역시 잘 정리된 답변이 나왔다. 장희빈의 동생과도 여환의 세력이 연결되었을 가능성까지 AI는 알려주었다. 내가 역사소설 "미륵의 꿈 아전의 꿈"을 쓸 당시에 AI가 있었다면 장희빈 측근과도 연결시켜 소설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참 아쉽구나,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클로드 (Claude)라는 AI가 문장을 세련되게 잘만든다는데 클로드도 설치해야겠다는 필요성도 생겨났다.
향후 소설을 쓸 때 에피소드 용도로 쓸 자료검색을 AI에게 지시하면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Gemini를 소개하였더니, 늙은 지인들 중에는 최근 면접 질문과 답변을 Gemini에게 물어 도움이 되었다는 이도 있었다. "예초기 고장시 원인과 해결 방법"이 면접 질문이었는데 1년만에 겪는 면접이고 깜박깜박하는 나이라서 알고 있는 내용도 면접장에서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Gemini가 답변을 잘 정리해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AI 시대 이전 사람이 썼던 소설 "미륵의 꿈 아전의 꿈"과 "인공지능" Gemini가 쓴 소설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아래에 소개한다.
-아래-
(1)사람이 쓴 단편 소설 (AI 이전 시대에)
(2) AI Gemini가 쓴 소설 (AI 이후 시대에)
황금빛 껍데기의 미륵: 여환(呂還)
1. 덧칠해진 우상
황해도 구월산의 깊은 동굴 안, 짙은 향연(香煙) 사이로 여환의 몸이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단 가사 위에 바른 인광(燐光) 가루가 촛불을 머금어 황금빛으로 일렁였다.
그의 앞에는 서른 명의 사내들이 엎드려 있었다. 왕의 숨통을 지키는 훈련도감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굶주림과 광기가 번들거렸다.
“보아라. 너희의 칼끝에 서린 녹은 이씨(李氏) 왕조의 썩은 피다. 내가 미륵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도성으로 진격하는 날 너희는 노비가 아닌 장군으로 환생하리라.”
여환의 목소리는 입을 움직이지 않고도 동굴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제자들이 뒤편에서 항아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공명이었으나, 환각 성분의 향에 취한 무사들에게 그것은 분명 천상에서 내려오는 사자후였다.
2. 가려진 진실
의식이 끝나고 무사들이 물러가자, 여환은 땀으로 범벅이 된 황금색 가사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빛나던 성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팬 초라한 늙은 승려만이 남았다.
“스승님, 한양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숙의 장씨(장희빈)가 아들을 낳아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제자 심유의 말에 여환이 비웃음을 흘렸다.
“왕이 아들을 얻었으니 서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권력이 요동칠 때야말로 우리가 파고들 구멍이다. 장씨가 치마폭으로 왕의 눈을 가릴 때, 우리는 그 왕의 목을 따야 한다.”
여환은 원래 황해도 바닥을 떠돌던 천한 사기꾼이었다. 하지만 배고픈 자들은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원한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깨달았다. 그는 무당의 춤사위와 도교의 비술을 섞어 '생불'이라는 허상을 만들었고, 그 허상은 굶주린 무사들과 소외된 여인들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3. 무너진 공중누각
거사 예정일을 사흘 앞둔 밤, 동굴 안으로 횃불을 든 관군들이 들이닥쳤다. 밀고자는 가장 신임하던 제자 이영창이었다.
“도술을 부려보시지! 화살을 막고 구름을 탄다더니 어찌 포졸의 오라줄은 피하지 못하는가!”
종사관의 비아냥에 여환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가졌던 '비술'은 기껏해야 불꽃의 색을 바꾸는 가루와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말재주뿐이었다. 압송되는 길 위에서 그는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백성들을 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며칠 전까지도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추며 극락을 빌던 이들이었다.
4. 마지막 신화
의금부 국문장, 뻘겋게 달구어진 인두가 그의 살을 지질 때마다 여환은 비명을 질렀다. 숙종은 발 뒤편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놈이 정녕 죽지 않는 생불이라 믿었느냐?”
피칠갑이 된 여환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전하... 나는 사기꾼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를 생불로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 백성들을 굶겨 죽인 전하의 나라였습니다. 내가 죽어도 또 다른 여환이 나올 것입니다. 배고픈 미륵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숙종 14년 8월, 여환의 머리가 저잣거리 장대에 걸렸다.
그날 밤, 한양 도성에는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처형장에서 잘려 나간 여환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를 믿었던 무사들과 여인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스승님은 죽지 않으셨다. 잠시 하늘로 올라가셨을 뿐, 세상이 다시 굶주릴 때 우리를 구하러 오실 것이다.”
여환이 남긴 가장 강력한 '요술'은 그가 죽은 뒤에야 완성된 **'부활의 전설'**이었다.
(여환의 이 비극적인 결말 이후, 남겨진 제자들과 산적들이 벌이는 뒷이야기도 써드릴까요?
여환의 처형 이후, 남겨진 자들이 써 내려간 **[단편 소설 후속편]**입니다.)
5. 남겨진 자들의 밤
여환의 머리가 장대에 매달린 지 이레가 지났다. 한양의 저잣거리는 여전히 북적였으나, 그늘진 골목마다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서소문 밖, 이름 없는 주막의 골방에 세 명의 사내가 모였다.
한 명은 훈련도감에서 도망친 탈영병 원항이었고, 다른 한 명은 황해도에서 온 산적의 전령,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여환의 비밀 의식에서 북을 치던 무당 월화였다.
"스승님이 돌아가셨는데, 도성 안 무당들은 벌써 다른 신주를 모신다더군." 원항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뇌뱉듯 말했다.
월화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람의 몸은 죽일 수 있어도, 그분이 남긴 불씨는 죽이지 못하는 법이야. 도성에 뿌려진 '여환의 머리가 승천했다'는 소문, 누가 냈을 것 같으냐?"
원항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조정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민초들 사이로 퍼져나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다.
6. 장길산의 밀서
황해도에서 온 전령이 품 안에서 땟국물 흐르는 종이 뭉치를 꺼냈다. 거기에는 이름 대신 산(山) 모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숙종이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대도, 장길산의 것이었다.
'뿌리는 잘렸으나 씨앗은 산으로 들어왔다. 여환의 법력은 이제 나의 칼날이 될 것이다.'
여환은 비록 사기꾼이었으나, 그가 조직했던 정보망과 자금줄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사대부 집안의 안방 나님들이 바쳤던 금비녀와 은가락지들은 이제 산적들의 칼날을 벼리는 숯이 되었고, 궁궐 나인들이 전해준 정보는 장길산의 은신처를 지키는 방패가 되었다.
7. 다시 시작되는 '미륵'의 꿈
몇 달 뒤, 황해도 사리원 인근의 관아가 습격당했다. 곡간의 쌀은 모두 털렸고, 관아의 벽에는 붉은 글씨로 단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 彌 勒 再 臨 (미륵재림) ]
백성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습격자가 진짜 미륵인지, 아니면 그저 굶주린 산적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억울한 세금을 면해주고 배고픔을 달래준다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숙종은 궁궐 안에서 분노하며 더 많은 군사를 보냈으나, 그것은 늪에 돌을 던지는 격이었다. 군사들이 산을 뒤질수록 백성들은 산적들을 숨겨주었고, 관군이 마을을 핍박할수록 백성들은 밤마다 여환의 이름을 부르며 빌었다.
8. 영원히 죽지 않는 유령
세월이 흘러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숙종마저 눈을 감았을 때도 '여환'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한 명의 승려가 아니었다. 억울한 자들의 입술을 타고 흐르는 노래였고, 굶주린 자들이 꿈속에서 보는 따뜻한 밥상이었으며, 권력자들의 잠자리를 뒤흔드는 서늘한 바람이 되었다.
조선의 실록은 그를 '요승'이라 마침표 찍었지만,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여환은 여전히 구름을 타고 산맥을 넘나드는 살아있는 망령이었다.
— 숙종 시대, 승려 여환(呂還)
숙종 28년, 늦가을.
한양에서 남쪽으로 사흘 길 떨어진 산사(山寺)는 안개에 잠겨 있었다. 은행잎은 바람에 쓸려 돌계단에 수북이 쌓였고, 범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승려 여환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 뒤편 암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을 막 넘겼으나, 눈빛은 오래된 강물처럼 깊고 고요했다.
그의 속명은 여준. 양반가의 차남이었다. 열여섯에 과거를 준비했으나 병자호란 이후 기울어 가는 가세와,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밟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식어버렸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홀연히 집을 나와 이 산에 들었다. 법명은 여환(呂還).
‘돌아올 환(還)’ 자를 쓴 까닭을 묻는 이에게 그는 웃으며 말하곤 했다.
“돌아갈 곳을 잊지 않으려는 뜻일 뿐이오.”
그러나 실은 그 자신도 무엇으로 돌아가야 할지 몰랐다.
그해 가을, 산 아래 마을에 역병이 돌았다. 아이들이 먼저 쓰러졌고, 곧 노인들이 뒤따랐다. 조정에서는 약재를 보낸다 하였으나, 산골까지 오기엔 길이 멀었다.
여환은 약초를 캐어 달이고, 밤새 마을을 오르내렸다. 승려가 마을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이도 있었으나, 병 앞에서 체면은 무너졌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린 사내아이의 손을 붙들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눈이 붉게 부어 있었다.
“스님, 우리 아이 살 수 있겠습니까.”
여환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숨은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는 다만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웠다.
그 순간, 문밖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형님.”
여환의 손이 떨렸다. 십수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동생 여민이었다. 이제는 조정의 말단 벼슬아치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십니다. 형님을 찾으십니다.”
법당의 등잔불이 흔들렸다. 산속에서 세속을 끊었다 여겼으나, 세속은 끊어지지 않고 다시 그를 불렀다.
밤이 깊어 아이의 숨이 고르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고비를 넘긴 듯했다. 어머니는 여환의 발에 이마를 대었다.
“살았습니다… 스님, 살았습니다.”
여환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작은 가슴이 천천히 오르내렸다. 그 순간, 오래전 자신이 버리고 온 집의 뜰과, 병상에 누워 있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생은 재촉했다.
“지금 떠나면 내일 안에 닿을 수 있습니다.”
여환은 잠시 눈을 감았다. 승려의 삶은 떠남이었으나, 오늘은 돌아감이기도 했다. 법명 속의 ‘환(還)’ 자가 가슴을 쳤다.
“나는 돌아가겠네.”
동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여환은 덧붙였다.
“아버지께로도, 이 마을로도.”
동생은 이해하지 못한 듯 바라보았다.
이튿날 새벽, 여환은 산문을 나섰다. 먼저 마을을 들러 약 달이는 법과 위급한 증세를 일러두었다. 그리고 한양으로 향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는 눈을 겨우 떴다.
“준아… 돌아왔느냐.”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예, 아버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너를… 미워한 적 없다.”
그 말은 오래 묶인 매듭을 풀어내듯 여환의 가슴을 적셨다. 그는 처음으로, 승려의 염불이 아닌 아들의 울음을 흘렸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여환은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동생은 물었다.
“형님, 이제는 속세에 남지 않겠습니까?”
여환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세상 속에 있다. 다만 산에 있을 뿐이다.”
겨울이 오기 전, 역병은 잦아들었다. 아이는 기력을 되찾아 산사로 뛰어 올라왔다.
“스님!”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환은 마당에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그는 이제 알 것 같았다.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머물러야 할 자리로 가는 일임을.
숙종의 시대, 붕당이 갈리고 세상이 소란해도, 산사의 종은 변함없이 울렸다.
그리고 그 종소리 속에서, 여환은 매일같이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