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

      안또니오 

하남시에서 산불방지원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데 비리가 있었다는 신문기사가 떴다.
경마장 같은 처우가 좋은 신의 직장도 아니고 최저시급을 받는 기간제 근로자에도 채용 비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거기 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현직에 몸담고 있는 직원으로서는  용기가 없어서 밝히지 못할 뿐이다. 
하남시  내부 고발자인 공원녹지과 산불담당  A주무관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직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조직사회에서 그가 입게 될 인사상의 불이익이 예상되니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사회 곳곳에 그런 적폐가 만연해 있음을 정년퇴직 후 그런 직종에 일하면서  보고 들었다.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주민의 표를 얻기 위해 시의원, 구의원 등은 지역구의 주민의 청탁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들의 요구를 여러 공공사업장 고위직 임직원들은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채용인원이 한 자리수인 경우는 낙하산들로 채우고 나면 줄도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사실상 들어가기 어렵다. 채용인원이 두 자리수인 공공 사업장에 지원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신문기사로 실리면서 어쩌면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공정하게 올해는 채용 심사를 할런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어디를 가나 실업자는 넘쳐나는 시대라서 기간제 근로자 채용의 경우도 워낙 경쟁율이 높고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여러군데 이력서를 내었다. 그리고 면접을 보았다.  올해는 면접 방식에 있어서 작년과는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팀장이 면접관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 담당 실무자들이 면접관으로 나오고  3명으로 구성된 면접관들 중에는 직원이 아닌 제3자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공정하게 면접을 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또 어떤 사업장은 조경 산업기사 시험을 보러온 것도 아닌데,  조경 기간제 근로자 면접 현장에서 기간제근로자 수준으로 볼 때  어렵고 알 필요도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기간제근로자는 사무실 직원들이 지시하면 그대로 육체노동을 하면 되며, 오히려 아는 체 하면 지시하는 입장에서 건방지다고 보기때문에 거저 아무런 생각없이 지시자의 손발이 되어 지시대로 작업을 완수해야 할 을,병의 위치인 것이다.  그런 근로자들에게 , 관목 3가지,교목 3가지를 말해보라. 특정 나무를 어느 계절에 심어야 하느냐? 비료는 언제 주어야 하느냐? 그런 질문을 해대었다.  다른 면접장에서는 전혀 접하지 않은 면접 질문들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지난해 동일 사업장에서 일한 근로자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문제들인가 하는 의심도 들고, 에구, 남의 잔치에 들러리로 온 격이 되겠구나,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작년 한 해  난생 처음으로 조경 일을 한 나로서는  지시하는데로 일했을 뿐 그런 이론적인 것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마지막 질문은 5가지 나뭇가지에 번호를 매겨놓고 나무 이름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 역시 눈썰미가  있거나 오랜 세월 조경 일에 종사한 사람은 잘 알 수 있겠으나, 나뭇가지만 보고 5가지를 다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이 문제는 다 맞출 수 있었다. 실력이라고 보기 보다는 상당한 운이 따른 셈이었다. 면접대기장에 도착하니  여기 사업장에 함께 지원한 전 직장 동료외에  아는 70 전후의 역시 전직장 동료가 와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면접번호를 서로 물었고 그가 가장 빠른 번호였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그를 만나 어떤 질문을 던지더냐 묻고 답을 들었다.  그는 5가지 나뭇가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기사 조경 일을 오랫동안 한 대선배이니까 오랜 노동을 통해 체득한 살아있는 지식이었을 것이다. "교목, 관목, 비료 주는 시기 등을 묻는데 그런 걸 알면 우리가 이런 힘든 일을 왜 하나?" 라고 불만을 토해 내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에 합격하기는 글렀구나 하는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뭇가지는 순서대로 붉은 열매 달린 것은 '산수유'', 다음은 '회양목',다음은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스트로보 잣나무, 다음은 사철나무, 마지막이 벚나무'라고 말해주고는  먼저 사라졌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검색을 하며 외우기 시작했다. 막상 면접장에 들어가면 긴장하여 잊어먹을지도 모르고 순서를 바꾸어놓을지도 모르니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긴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 긴장하면 방금 외운 것도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기억해낼 수 없는 일시적인 기억체계의 작동불능 상태에 직면할 수도 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교목, 관목에 대해서도 검색하면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당시로서는  작년에 여기 사업장에서 일한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만든질문들이라  생각되어 도저히 합격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심정이라 검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무 이름까지도 모른다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아 사진 검색을 한 것이다.

일반적인 면접 질문은 이러하다.

"어떤 작업을 했느냐?"
이에 대한 질문은 면접대기장에서 기다리며 스마트폰의 메모장 앱에 정리하고 있던 내용을 답으로 하나 하나 내뱉았다.
"고지톱"으로 높은 죽은 굵은 가지 톱질.  작은 낫이 달린 "전정기"로  가지치기. 조경톱으로 가지치기. 낫과 녹화 끈으로 잘린 나뭇가지들을  묶어 잔재처리.
녹화 테이프 및 녹화마대,고추끈을  사용하여 월동작업. 꽃과 나무에 물 주는 관수 작업. 해충을 죽이는 방제작업. 예초기 이용한 예초 작업. 갈퀴 및 브로아(Blow-A)로 잘린 잔디 제거 작업. 장화 신고  낫으로 갈대 베기. 지주목 철거 및 철사,녹화끈 잔재 처리.꽃 나무 및 각종나무 심기. 수목 이전 작업.

"왜 여기에 지원했느냐?"
정년퇴직후 개인적인 미래 먹거리 사업이 무엇이 있을까 찾던 중 이 일이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고, 어차피 이 일을 하려면 동일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보다는 조경업무가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기업문화가 다르듯이 사업장마다 약간씩 다를테고 그런 부분을 배워가는 것도 내 개인의 발전에  도움되리라 생각했다.

 
"팔을 벌려 상하로 움직여보라. 앉았다 일어섰다 몇 차례 반복해보라."

"힘든 일인데 해낼 수 있겠느냐?"
작년 정년 후 조경일에 지원했을 때 받은 질문이었지만 1년 정도 해낸 경력이 있으니 올해는 이런 질문은 없었다.

"무식한 동료도 있을테고 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대처할 거냐?"
 작년 정년 후 조경일에 지원했을 때 받은 질문이었지만 1년 정도 해낸 경력이 있으니 올해는 이런 질문은 없었다.
당시에는 참을성이 많아 나 하나만 참으면 그런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더라고 답한 기억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해 보면 싸울 때까지 시비를 걸어오는  인간도 있으니 참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인격적으로 무난한 동료를 만나는 것도 큰 복.   

그런데 이 사업장은 조경 산업기사 질문들도 던졌으니 이는 참으로 의외의 질문이었다.
마지막으로 1~5번으로 번호가 적혀 있는 나뭇가지의  이름을 하나씩 말하고 나가라고 면접관이 말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긴장하지 않아야 한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나무 이름 5가지, 네이버 사진 검색으로 익힌  나무 이름 5가지를 정확히 천천히 답하자. 짧은 순간이지만 전체 나무를 일단 다 훑어 보았다. 열매가  달린 1번은 쉽게 빨리 답할 수 있었지만 다음의 2번 나무 이름을 떠올린 후 1번 답을 내뱉었다. 3번째는 외국어 부분에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 "스트...... 스트...... 잣나무 종류인데 정확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네요.  다음은 사철나무, 벚나무입니다."
면접관 3명 중 문쪽에 가까운 면접관이 1~5번으로 적힌 종이를 내밀더니 서명을 하라고 말했다.
종이에는 "1. 산수유   2.회양목  3.잣나무  4.사철나무  5.이팝나무"라고 적혀 있었다.  5번은 벚나무라고 말했는데 이팝나무,라니 아건 무슨 상황인지 의아했다.  정답지를 보여 주는 건가?  당시는  면접장을 나가기 직전 갑자기 종이를 내밀며 아무런 설명 없이 서명하라고 하여 어떨결에 서명하였다. 당시  나가는 길이라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했다.

바깥으로 나간 후 생각하니 내가 부른대로 면접관이 대신 답을 적고 나서 내가 말한대로 적었음을  면접인이 확인하였다는 표시로 서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5번은 벚나무라고 말했는데 이팝나무라고 잘못 적은 것을 정정시키지 못하고 서명한 꼴이 되었다. 채용비리의 낙하산 경우는 도움을 주는  자가 있는 셈인데, 내 경우는 거꾸로 정답을 말했슴에도 오답을 적어주는 공무원이 있으니 도움이 아니라 피해를 주는 자가 있는 셈이었다.  단순한 면접관의 실수인가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  어차피 한자리수 모집에 의외의 질문들을 받다 보니 불합격이 예상되었으므로  오답의 정정을 요구하러 다시 면접장으로 들어갈 여력도 없었다.  같이 면접 보는 동료의 면접이 끝나기를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기 직전,  동료에게 이전 사업장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 합격 통보였다. 나에게는 합격 통보가 오지 않았다. 이전 사업장은 2자리수를 뽑는데 그나마 가능성이 많은데 불합격되어 합격통보가 오지 않은 것이다.  여기 사업장은 1자리수를 뽑으니 합격 가능성은 적고, 또 한군데 합격통보가 지금쯤 올텐데 오지 않은 거 보면 거기도 불합격한 모양이고(원래는 오후 3시경 합격통보인데 담당직원이 퇴근 무렵에  다 되어 뒤늦게 합격통보를 해주었다. 나중에 거기는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되었으니 예비합격자로 채우시라고 정중히 사과의 전화를 드렸다.)  올해는 한 군데도 합격 못하나보다,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사업장으로부터 전혀 예상치 않았는데 합격 통보가 온 것이다.
조경 산업기사 시험 같은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 것은 면접의 공정성을 위해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려는 그 사업장 나름의 고민의 흔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남시 공원녹지과 산불담당  A주무관에게 감사드린다.
당신의 내부고발 덕분에 올해는 작년보다  100%는 아니더라도 면접의 공정성이 나아지고 있슴을  느끼고 있다고. 그래서 종래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1자리수 모집의 사업장에 줄도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합격하게 되었다고.

 

2018.3.1.씀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시 내부전산망에 올린 ‘양심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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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시 산불감시원 채용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시 내부전산망에 올린 ‘양심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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