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직장이 바뀐다
                               황 안또니오

매년 직장이 바뀐다.  
정규직이 아니고 무기계약직도 아니고 유기 계약직인 셈인데 1년 미만의 기간만 근무하고 계약이 종료되는 기간제근로자를 정년퇴직후 4년간 계속 해왔다.
내일이면 5년차 기간제 근로자를 다시 시작한다. 보통 8~9개월 기간을 일하고 계약종료가 되며 겨울에는 실직을 반복하게 된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년 미만만 일을 시키는 것이다.
해마다 다른 공원에서 조경 일을 해왔는데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노동을 담당하는 일이어서 60대가 하기에는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경쟁율이 1:5 정도 되었는데 몇년 사이에 1:10을 넘어섰다.
올해는 10명 뽑는데 운 좋게도 10명 안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큰 공원에서 일해왔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큰 공원 산하에 있는 중소 규모의 권역공원에 지원을 하였다.
대공원 산하에 5개 권역공원들이 있는데 공원마다 2명씩 상주하며 관리하게 되리라 추측된다. 각 공원마다 담당 노동자 수가 적기 때문에 무경력자는 채용하지 않으리라 추정이 되어
경력이 낮을 동안은 관심을 두지 않고 지원을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주() 공원은 상대적으로 많이 뽑지만 권역공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를 뽑으니 합격 가능성이 적어보였다.
해마다 지난해 근무자 일부를 남겨두고는 물갈이를 해야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근무한 적이 없는 공원의 근무한 적이 없는 팀으로 지원하는 것이 합격 가능성을 높여주리라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나름 머리를 쓰며 해마다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지원하게 된다.  4년이 지나니 주() 공원은 다 다녀보았다. 어느 공원이 50명 채용하는데도 예비합격자로 밀려났다.
그 공원은 50대때 비경력자로 합격했던 곳인데도 60대인 지금 밀려난 것이다. 합격자중 다른 데 합격한 이가 있어서 그 자리를 매꾸기 위해 나중에 출근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오기는 하였다.
정중히 사양하였다. 월급을 더 주는 대공원에 합격하였으니까. 매월 2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데다가 먼저 된 직장이 있으면 그리로 다니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예비합격자에게 출근의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고.

누군가는 기간제근로자를 메뚜기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내년에는 어디로 폴짝 뛰어야 하나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다음 해는 다른 곳으로 튀기 때문이란다.
옛날 다방 레지같은 신세에도 비유할 수 있겠다.  새로운 얼굴의 아가씨가 다방에 왔다는 소문이 동네뉴스가 되어 시골 전체에 떠돌기 시작하면 정신나간 사내들이 호기심에 그 다방을 들락거리며 커피 매상을 올려준다. 그러다가 식상하게 되는 순간이 오고 매상은 뚝 떨어진다. 더 이상 새로운 얼굴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다방 아가씨는 늘 새로운 얼굴이 되어 매상을 올리기 위해 3개월이 지나면 다른 다방으로 메뚜기처럼 튀기를 반복한다. 내 신세가 별반 다를 바가 없고 매년 다른 직장으로 튀어 작전이 성공한 탓인지 올해도 출퇴근할 공원이 생겼다.
주() 공원은 다 다녀보았으니 주() 공원 산하의 주변 공원, 즉 권역공원에 지원하였고 10명 모집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20여명을 뽑는 다른 권역공원에도 지원하였는데 더 많은 인원을 뽑으니 합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에서 합격 기준이 무엇인지 도저히 올해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작년과 동일한 정원에 망한 소상공인에게도 가산점을 올해는 주다보니 올해는 더더욱 취업하기가 어려웠다.

5개 권역공원들은 집 가까운데 공원관리 노동자들을 배치한다는데, 내일 첫 출근하면 오리엔테이션 중에 작업조끼, 작업화, 우비, 장화를 나누어주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각 담당 공원으로 나누어 배치한단다.
집에서 1시간이 더 걸리는 공원도 있고 10분 거리의 공원도 있는데 어디에 배치될런지?
지금껏 2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주() 공원에서 일해 왔으니 반장이 지시하는대로 많은 동료들과 함께 아무 생각없이 노동을 하면 되었었다. 그러나,  정년퇴직 전 현역 때 워낙 머리를 많이 사용하여 지쳤던 터라, 육체는 피곤해도 머리는 쓰지 않아 좋았던 조경일이 이제는 2명이 맡은 공원을 전담하여야 하니 머리도 쓰며 일해야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어서 여러 명이 일할 때는 고참이 장비를 쥐고 일하니 내 순서까지 오지 않아 숙달시킬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모든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와 걱정이 함께 뒤섞이고 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동네 세탁소에 가서 낡은 등산복 상하 3개를 맡겼다. 자크가 고장이 나서 고쳐서 작업복으로 쓰기 위해서다. 바지는 5천원. 등산복 상의는 1만원.
내일 땅바닥이 진흙탕이 되어 아무래도 신던 장화를 들고 출근해야할 것 같다.  어느 공원은 첫날 작업화, 장화가 지급되지 않아 신고간 운동화를 신고 진흙탕 위의 야자매트를 걷어내는 작업을 했더니 운동화가 하루만에 썩는 내가 나서 빨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새 장화가 첫날 지급된다면 박스 채로 보관했다가 내년에 사용하면 될 것이다. 작업용 목장갑이 첫날은 지급되지 않을 수가 있으니 목장갑도 준비해야겠지. 공원에 따라 주변 식당이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데도 있으니 첫날은 도시락을 준비해가는 게 낫겠다.

기대와 걱정이 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고, 적응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진화하느냐 퇴화하느냐가 정해지므로 정답은 적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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