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억))
엊저녁 공연을 좋아하는 딸이 1달전에 예매한 뮤지컬 영웅본색을 보았읍니다. 1987년에 영웅본색이 영화로 나왔으니 33년이 흘렀읍니다.
오우삼 감독의 르느와르 영화는 대성공하여 연작으로 계속 나왔고 주윤발의 미소, 담배였나 이쑤시개였나 씹는 표정은 일품이었지요.
디지털를 사용한 무대는 웅장하고 입체적이었는데, 원작 영화를 각색하였으니 뮤지컬 내용도 본 기억이 시나브로 나야할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원작인 영화를 찾아 보았읍니다. 영웅본색1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당연히 뮤지컬과 내용은 대동소이하였고, 내가 기억하는 영웅본색은 1편이 아니었음을 원작을 통해 확인이 되더군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 기억에서 대부분의 장면들이 소실되더라도 한두 장면은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그런 장면으로 본 영화인지 아닌지 판단이 가능한 것이지요.
성 안토니오 아빠스 영명축일을 맞아 신앙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성인에 대한 기록을 다시 읽어보고 기억을 되살리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단원들과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성인에 대한 기록을 올립니다.
-아래-
성 "안또니오" 아빠스
(S. Antonius Abbas)
이미 말한 "바울로" 은수자와 같이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 광야로 피난하여 로 고독히 하느님과 같이 은수생활을 한 사람은 여럿 있으나, 그러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서 공동으로 수도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는 성 "안또니오" 은수자였다. 그러므로 이 성인을 공동체 수도생활의 스승 혹은 시조(始祖)라고 부르는 때도 있다.
성 "안또니오"는 강생 후 251년 성 "이집트"의 "고만"에서 출생하였다. 가정은 부유하고 입신출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은 그는 예수님의 "당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당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 (마태오 19-21)하신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려고 결심하였다.
그 동안 양친도 돌아가셨으므로 그는 유산의 절반을 다만 하나인 여동생에게 주고 그를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나서, 자기는 사막(沙漠)에 들어가 어떤 노수사의 지도하에 완덕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얼마동안 덕을 닦고 난 뒤, "안또니오" 는 더욱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은사의 슬하를 떠나 더욱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서, 무덤과 같은 굴에 살면서 오로지 노동과 기도로써 경건히날을 보냈다.
그러나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I 베드로 5-8)하신 말씀과 같이 악마는 가장 열심한 "안또니오" 를 그냥 두지 아니하였다. 어떤 때는 세상의 쾌락에 대한 상상이나 동경심(憧憬心)을 일으켜 주고,어떤 때는 이런 은수생활은 자기를 돌보지 않는 무모한 짓이므로 하느님의 성의에 의합하지 않는 다. 발리 세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며 모든 유혹으로써 그의 거룩한 이상을 방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안또니오"가 맹렬한 유혹에 떨어지지않으려고 기도를 더 할수록 마귀와 싸워 결코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는 때는 없었다.
얼마 후 겨우 그에게 성스러운 평안이 찾아오고 다시 주 예수의 형상이 나타났을 때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 "안또니오"는, "주여, 저 무서운 유혹을 당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 계셨읍니까? 어찌하여 나를 돌보지 않았읍니까?"하고 공손히 원망 비슷하게 말하니까,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안또니오"야, 나는 네가 저 유혹을 당하는 동안 잠시도 겉을 떠나지 않고, 네 노력의 여하를 보고 있었다.이제는 안심하여라....네게 유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안또니오"를 위하여 생활을 보살펴 준 이는 그의 친구 한 사람이었다. 즉 그는 "안또니오"가 만든 도구(道具)를 시장에 가서 팔아 그 돈으로 그의 필요한 양식을 사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단연코 이 친구로 인하여 전해졌겠지만, 미구에 성 "안또니오" 의 감탄할만한 일상생활이 사방에 퍼지자, 수도(修道)의 희망을 품은 청년들이 계속 그를 찾아와서그의 지도를 받았다. "안또니오" 는 혼자서 온수생활을 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 공로를 많이 세울 수가 있고, 하느님의 뜻에도 더 적합하리라고 생각하여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마침 311년에 "막시미아노" 황제가 박해를 시작하자, "안또니오"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공공연하게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또한 감옥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여 위로하여 주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다가,박해가 끝나자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랑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전에 있었던 곳에 돌아오지 않고, 남몰래 험악한 "고르팀" 산에 숨었으나, 이전의 제자들은 어떻게 스승의 소재지를 알았는지 다시 그의 슬하에 모여와서 영적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이번에는 관리나 상인니나 그 밖에여러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완덕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은 "안또니오"산이라고 부르게 된 "고르팀" 산에 모여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과 더불어 수덕에 전심하였다. "안또니오" 임종 시에는 이와같은 사람들이 무려 5천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또한 수도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덕을 사모하며 찾아와서 영신상에 관한 지도를 받거나 "안또니오"및 제자들의 기도를 청하였다. 그 중에는 "콘스탄틴" 제와 두 황태자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도 대제(大帝)는 사막까지 가지 못하였을 때는, 편지로서 성 "안또니오"의 기도와 회답을 청하였다. 성 "안또니오"는 이에 대해서 올바른 정치를 행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해야 될 것을 권면하였다고 한다.
성 "안또니오"는 104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주교 성 "아타나시오"를 위시하여 일반 민중의 청원을 들으시고, 그 읍에 가서 "아리오"파(派)의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설교를 하셨는데, 그 고결한 풍채에 접하고 그 이치 있는 말씀에 감동되어 진리의 길로 돌아선 이가 허다하였다. 이와같이 사명을 마친 성인은 세 번째 정이 들은 사막에 돌아가서 오래지 아니하여 거룩한 일상을 마친 것이다. 그 때 그는 105세였었고 유해는 제자들로 하여금 정성되이 매장되었다.
"교훈" 성 "안또니오"는 수도생활을 세상에 소개되는 사명을 받아 "수도생활의 시조(始祖)"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지만, 현대의 생활처럼 수도생활과 대조되는 것은 없었다.이러한 시대에 우리 신자들은 수도정신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모든 신자가 수도생활을 할 필요는 없지만, 완덕의 길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수도자가 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된다. 성경에 (이 말을 받아들일만한 사람은 받아들이시오. > (마태오 19:12) 하신 주의 말씀은 곧 수도생활에 대한 권고에 대한 말씀이다. 이와 같이 수도생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풍부히 받으며,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거룩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202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