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면접 보러가는 사람이 있다
안또니오
정규직, 비정규직에도 끼지 못하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신분이 있다. 1년 미만의 기간,즉 수개월만 일하다가 계약종료일이 되면 실직자가 되는 신분이 있다. 무기 계약직은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는 한 매년 자동으로 근무연장이 되는데 반하여, 기간제는 계약서에 쓰여진 기간만 일하고 실직자가 되어야 한다.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업무태만,지시 불이행 등의 이유로 언제든지 계약기간 내에 짤릴 수가 있다.
정년 퇴직을 하니까 갑자기 취업시장 바닥에서는 노인 취급, 더 정확히 말하면 퇴물 취급을 받는다고나 할까, 이력서를 열심히 내어봐야 취업이 되기 어렵다. 청년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이니 정년퇴직자는 더더욱 취업이 어려울 수 밖에. 특별한 기술이 있으면 그나마 들어갈 자리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지인의 회사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아니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사무직 출신은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않으니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것 같다.
30년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하자마자 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배우는데 시간을 투자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다. 이 기간동안은 240일간 실직급여가 지급되므로 기술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술교육으로는 내선전기, CNC, CAM,보일러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취업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쉬는 날이 적고 야근이 많고 일은 힘든 직종이다. 거기에다가 저임금이고 위험한, 열악한 근무환경이면 더더욱 구세대의 취업 가능성은 높아진다.
간단히 말하면 청년들이 취업하기를 꺼리는 3D 업종에 뛰어들어야 구세대는 취업 가능성이 높아진다. 틈새시장이라고나 할까?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오션에서 구세대는 고깃배를 띄워 고기를 잡아야 한다고나 할까?
우연히 알게 된 기간제 근로자는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인데,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구세대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회사들은 일요일만 대부분 쉴 것이다. 토요일은 연장근무를 대부분 할 것이다. 그래야 어느 정도 봉급을 더 받아갈수 있을 것이다. 내선전기를 따라 다녀보았더니 1달의 반은 공치는 날이었다. 공치는 날은 일당이 없다. 그러니 1달치 월급이 반토막이 되기도 한다. 일요일은 쉬지만, 토요일은 공사가 있으면 일을 해야 하고, 공사가 없으면 쉴 수 있겠지만 쉬는 날은 일당도 나오지 않는다. 쉬는 날이 일정하지도 않다. 공사가 없는 날이면 평일이든 토요일이든 쉬는 것이고 토요일에 공사가 있으면 일하러 나가야 되고 그래야 일당이 계산된다.
그에 비해 기간제 근로자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따라서 자기 시간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1박2일의 여행이 취미라면 취미활동으로 쓰일 수도 있고, 소설가라면 소설창작의 시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인생2막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연금생활자라면 충분히 그런 인생2막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국민연금을 수년간 더 납입해야 하는 상황이고 어떤 이는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져 국민연금을 조기수령하는 바람에 연금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 한다. 특별하게 부동산, 개인연금에 미리 투자하여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노후대책이 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국민연금 만이 유일한 대책일 것이다. 가급적이면 국민연금을 불입 만기일까지 어렵더라도 정기적금을 매달 넣듯이 넣어야 한다. 재직자는 회사가 반 본인이 반을 부담하여야 하는데, 실직자가 되면 본인이 전부를 부담하여야 한다. 아마도 소득의 9%가 국민연금으로 매달 나갈 것이다. 그 9% 중에서 4.5%만 본인이 부담하다가 실직자가 되면 9%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소득없는 실업기간 중에도 퇴직금에서 대기업 다닐 당시의 많은 금액 그대로 국민연금을 매달 불입하였다. 다른 노후대책이 없었으니까.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은퇴후 맞이하는 현실은, 인생2막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저소득자의 은퇴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저소득자의 은퇴는 그런 인생2막은 꿈도 꿀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중산층이었다가 은퇴와 동시에 더 이상은 중산층이 아닌 나는 그래도 꿈을 꾼다, 인생2막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꿈 말이다. 경제적인 현실과 인생2막의 꿈을 함께 실현시켜주기에는 기간제 근로자가 잘 맞는 옷이런지도 모른다. 월화수목금은 경제적인 현실 위해 살고, 토일은 인생2막의 꿈을 실현하는 시간으로 산다면 말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반을 회사가 내어주니 참으로 기쁜 일.
300~350만원을 매달 받는 공무원 연금생활자 중 일부는 취미생활을 늘이기도 하고, 즉 월요일은 낚시, 화요일은 사이클 타기, 수요일은 등산, 갑자기 안하던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고,즉 목요일은 영어회화반 금요일은 댄스반 토요일은 수영반에 등록한다. 어떤 게으른 공무원 연금생활자는 자기관리를 못하여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과연 그런 생활이 행복한 인생2막의 모습일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인가 아닌가 여부가 행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정년퇴직후 본의 아니게 실업의 기간이 길어지니까,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러다가는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리겠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1년 이상 실업상태인데 기술교육을 배우느라 적어도 6개월을 학원에 다닌 후에도 만약 취직이 안된다면 실직기간이 6개월 더 연장되는 꼴이 되는데 아마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우울증이 아니라 미쳐버리지나 않을까?
경제적으로도 취직해야 하지만, 마음의 병을 예방하려면 어떤 일이라도 하여야 했다. 공치는 날없이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이 필요했다. 기술 없는 자도 받아드리는 직장이 필요했다. 나이들었다고 취업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직장이 아니라 육체노동이 힘들더라도 나이를 따지지않고 취업의 문이 열려 있는 직장이 필요했다.
같은 교회 교인이 사장으로 있는 직장에서 일하려고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전직장의 명퇴한 동료에게 전화를 하였다. 과연 이 나이에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취직이 될까? 들리는 소문에 그는 전기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승산 없는 기술교육에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며 그의 명퇴후 지나온 과정을 들었다.
학원에서 직장에 연결은 해주지만 청년들 우선이고 고령자는 맨 뒷 순위이다 보니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 신기하게도 나와 동일한 직종에 이력서를 그도 내어왔는데 1군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나는 1군데 면접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걸까? 그러다가 동사무소에 들린 아내가 우연히 알려준 기간제 근로자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체육관 청소, 산불감시원, 전국 인구조사원 등등의 기간제에 대한 정보를 그가 쏟아내었다. 기간제근로자는 일명 "메뚜기족"이라고 부린다고 그기 말했다. 몇 개월만 일하고 계약종료일이 되면 실직이 되고 다음해 봄이 되면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매년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며 이 직장 저 직장으로 바꾸며 메뚜기처럼 폴짝폴짝 뛰며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
60대 중후반의 연령대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60살 이하는 노동경력은 없더라도 젊은 나이 취급을 받으니 취업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일단 들어가면 1년 경력이 붙게 되고 그 다음해는 젊은 나이에다 경력까지 붙으니 지난해보다 더 가능성이 있어진다는 이야기. 그는 힘들지 않는 아주 단기간의 기간제를 여러 개 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근무일수 180일을 채워야 실업급여 3개월이 나오므로 매년 2~3개의 단기간 기간제를 메뚜기처럼 계속 뛰며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초단기 기간제는 일은 힘들지 않지만 매년 새로운 일을 여러 개 찾아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일이 힘들더라도 1개의 기간제로 단번에 근무일수 180일이 채워지는 직장이 나에게 맞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공원의 조경 일이었다. 애초에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알고 뛰어들었었다. 이참에 평생 해본 적 없는 육체노동을 해보자. 내 생각에는 노동강도가 건설노동자의 노동의 80% 정도 되어 보인다. 사무직 종사자에게 이런 노동강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선전기의 보조전공으로 다녀보니 일당 받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약했다. 조경일을 하면서 현장에서는 "완마"라고 부르는 해머를 들고 세멘트 덩어리를 여러번 쳐서 깨뜨린 후 그 속의 철근을 꺼집어 내기도 하고 산 정상으로 세멘트,삽, 물통을 들고 올라가 경계목(경계석)을 박기도 하고 철거하기도 하였다. 통나무를 톱으로 잘라 외발수레에 잔뜩 실고 눈에 띄지 않는 먼 숲 속에 가서 버리기를 반복하며 북한 노동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노동 강도는 일반적인 육체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공공근로 수준으로 보는 이들이 예상 외로 많다. 퇴직 후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재직자들이라 그런가? 아직 관심 밖의 세상이라 그런가? 퇴직자인 나는 이 바닥의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걸 알고 뛰어 들었는데 퇴직 후의 현실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재직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으니 공공근로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
그런데 공공근로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저소득층의 노인네들에게 가벼운 공공근로를 시키고 사회보장 성격의 시급을 주었는데, 지금은 기초연금이란 형태로 그냥 주는 것으로 바뀌면서 공공근로는 거의 사라졌는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보도 블럭을 까는 공공근로를 한 적이 있다는 농사꾼 출신의 70대 동료가 공공근로로 착각하고 공원 조경 기간제에 들어왔다가 노동강도가 너무 세어서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입에 달고 다녔는데, 뒤늦게 3개월 정도 남은 싯점에 추가모집으로 들어온 것이라 몇 개월만 하면 일이 끝나는데 계속 다녀보자는 같이 들어온 동료 말에 계속 출근하였다. 나중에 따로 다루어 보겠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노년층을 위해서는 가벼운 노동강도의 공공근로가 필요하다고 본다.
곰이 겨울잠을 자듯이 3개월의 일 없는 동면기간을 끝내고 내일부터 다시 첫 출근을 한다. 첫 단추를 공원조경 일로 채우다 보니까 올해로 3년차 조경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2년전 처음 내일부터 출근하는 직장에 이력서를 제출하러 갔을 때는 공원 바닥이 빙판이었고 칼바람이 불어댔다. 공원 끝에서 공원의 반대쪽 끝에 위치한 사무실까지는 20분 이상이 걸렸다. 콧물이 흐르고 귀가 시려웠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이력서 등 관련서류를 제출하니 담당직원이 훑어 보더니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류접수 담당자는 제출서류를 모두 잘 작성하여 왔는지를 훑어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정을 하도록 알려주고 별도의 접수 목록에 서류제출자의 이름을 적고 접수번호가 있는 접수증을 찢어준다. 그런데 이 담당자는 접수 목록에 내 이름을 적을 생각도, 접수증을 찢어줄 생각도 하지 않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담당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는데, 서류접수하실 겁니까, 도로 가지고 가시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아니, 공원의 넓은 빙판길을 20분 넘게 칼바람을 맞으며 걸어와서 서류를 접수하는 사람에게 서류를 도로 가져가겠느냐,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이지? 상황판단이 되지 않는 나에게 담당자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하루나 이틀 만에 그만 두는 분이 많아서 그런다면서 서류 접수를 꼭 하셔야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여간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서류 접수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니, 서류접수하러 왔으니 서류접수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담당자의 상사가 "야, 접수 받아 드려."라고 한마디 하자, 그제서야 담당자가 내 서류를 받으며 접수 목록에 내 이름을 기재하고 접수증을 주었다. 집으로 다시 빙판길을 20분 걸으며 공원의 반대쪽 끝으로 돌아기는 걸음은 참으로 무거웠다, 서류심사에서 벌써 탈락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며칠후 의외로 서류통과되었으니 면접일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가 핸드폰에 찍혔다. 면접일에 가보니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 서 있었는데, 여러 시간대로 나누어 면접장소에 오게 만든 모양이었다. 앞 시간대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료포대 5개를 외발수레에 실고 대형 하우스 안의 울퉁불퉁한 지면 위를 달리며 한 바퀴 돌고는 3~4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는 그 앞에 앉아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외발수레가 들어오는 시간을 직원이 재더니 종이에 기록하였다. 얼마나 빨리 들어오는지를 기록하는 모양. 마음이 바쁘니 얼마 못가서 외발수레가 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넘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내 차례가 오기 전에 비료포대는 어떤 방식으로 외발수레에 실는 것이 안정적인지 관찰을 하였다. 어릴 때 시골의 큰집에 놀러갔을 때 외발수레를 딱 한 번 잠시 사용해본 기억이 떠올랐다. 여차하면 무게 중심을 잃어버리고 한쪽으로 쓰러지는 것은 딱 한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서두르면 안된다. 천천히 출발해야 한다. 외발수레의 성격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천천히 밀고 가야 한다. 파악이 되면 그때부터는 평지에서는 속도를 내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지면에서는 천천히 가야 한다. 수십 번 머리 속으로 되뇌였었다.
다행히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외발수레를 넘어뜨리지 않고 59초를 찍으며 들어왔다. 면접관들 앞에 앉았다. 이력서에는 전직장인 대기업 경력과 최전방 군복무 경력이 적혀 있었는데 대뜸 면접관이 하는 말이 당신은 이 일을 못해낸다,라고 말하였다. 아니, 일반적인 면접은 여기 왜 지원했는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라, 어떤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류의 질문을 던진 후 면접인의 답을 듣고나서 미심쩍으면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는 형태일텐데, 처음부터 말문을 막는 소리를 면접관이 던지다니 아주 당황스러웠다. 최전방 향로봉에서 대형 화목톱으로 통나무들을 많이 자르고 그것들을 옮기고 등등의 노동을 많이 했었다,고 대답했더니, 면접관이 여기일은 그 일보다 훨씬 노동강도가 높다, 그래서 당신은 이 일을 못해낸다,라고 쏘아붙였다. 결국 떨어졌다. 그 다음해에 다시 동일한 공원에 또 지원하였다. 이번에는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올해 다시 3번째로 도전하였다. 이제 2년의 조경 경력서가 이력서에 붙어 있다. 당신은 이 일을 해내지 못해,라는 소리를 듣던 내가 2일이 아니라 2년을 버텨내었음을 증명하는 경력증명서가 어느새 2장이나 생겨 면접관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3번째 도전했을 때는 인사이동이 있었는지 면접관들이 바뀌어 있었고 올해 들어 2년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취업지원자들(400 ~500명 사이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로 인해 시간관계상 체력장은 없어지고 면접이 빨리 진행되었다. 면접관은 5~6명이 되었고 면접관의 수만큼 취업지원자들이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다. 올해 들어 보기 드물게 일반적인 질문을 면접관의 중앙에 앉은, 아마도 팀장인 면접관이 이력서를 뒤져보며 던졌다. 좌우에 앉은 더 나이먹은 사람들은 현장반장들인가 보다 하고 내 나름 추측하였다.
조경관련 자신이 해본 업무 중심으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라, 여기 왜 지원했는가,라고 물었다. 이런 정상적인 질문은 잘 대답할 수가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질문들이다.
예초기를 다룰 줄 알고, 고지톱으로 높은 나무 가지치기도 하였고 방재 작업도 하였고, 심지어는 호수에 들어가서 가슴까지 오는 장화복을 입고 들어가서 청태 같은 녹조도 제거하였고 갈대 제거 작업도 하였다. 집에서 가까와서 지원하였다. 이번이 3번째 도전인데 올해는 정말 이 직장에서 일해보고 싶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냥 가지치기하였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사용한 장비,즉 고지톱을 언급해주면 면접관 입장에서 볼 때 거짓말하는 게 아니구나,할테고, 절실하게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계약종료일까지 일할 사람이구나,하는 신뢰감을 면접관으로 하여금 갖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력서에는 지난 10년간 노인요양병원 봉사가 1줄 적혀 있는데 면접관 입장에서는 성실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면접을 통과하였다.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지하철에 내려서 공원 반대쪽까지 20분. 합계 40분이면 직장에 도착하니 출퇴근 시간이 짧다. 만약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는 출근길이라면, 버스가 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감안하여 20분 정도 더 일찍 나가야 하지마는, 이 직장은 지하철과 도보로만 사용하니 정확하게 40분만 걸릴 것이다.
면접일이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면접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여러 공원의 조경 채용마다 이력서를 내어야 했다. 작년 직장에도 이력서를 내었고 서류 통과를 하고 면접에도 갔었다. 그런데 3명의 면접관이 모두 여자들이었다. 아니 적어도 1명 정도는 현장을 잘 아는 남자 반장이 면접관으로 끼여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황당무계한 질문들을 여자 면접관들이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도 10:1의 경쟁율이어서 3~4개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빨리빨리 다음 지원자들을 들여보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첫번째 질문자 왈, 예초기는 다들 사용할 줄 아실테고 하루에 최대 몇 시간 짊어지고 해보셨는지요? 차례대로 답해보세요.
질문자의 의도는 체력 테스트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눈치 없는 첫번째 지원자가 참으로 올바른 답을 했으되 체력이 약하구나 하고 오해 받을 대답을 하였으니, 예초기는 40분 돌리고 20분 쉬고 그렇게 작업하는 거 잖습니까? 참으로 정확한 답이다. 진동이 심한 예초기를 쉬지 않고 계속 들고 일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예초기 자체의 수명을 위해서라도 열을 식히는 시간을 주어야지 계속 오래 가동하면 힘이 저하되고 풀이 잘 잘려지지 않고 수명이 짧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무튼 예초기를 한번도 돌려본 적 없는 저 여자면접관의 머리 속 판단은 저 지원자는 불합격이라고 적고 있을 것이다. 뒤이어 옆의 지원자가 쉬지않고 4시간을 예초작업을 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그 옆 사람은 7시간까지 예초작업을 했습니다,라고 면접관의 의도에 맞춰 답을 하기 시작한다. 둘 다 거짓말이다. 7시간 예초는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예초했다는 말이 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러나 여자 면접관이 듣고 싶은 체력일 것이고 합격이라고 면접관의 머리 속에는 적혀지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거짓말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불합격을 초래할 수도 없어 팩트 만을 이야기했다. 작년에 이 공원 장반장 밑에서 일했는데 1달에 2주 내내 예초작업을 했었다,라고. 이는 팩트다. 3인이 예초기를 매고 넓은 공원의 잡초와 잔디를 매일매일 깎아대었으니까. 물론 매시간 20분의 휴식을 반복하였다. 하루에 최대 몇 시간 체력이 버티며 예초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는 동문서답이 될 수도 있다.
그 옆의 면접관이 자신의 대학전공이 방재인 모양인데 각 나무별 벌레 이름과 그 해충을 죽이는 방재약품에 대해 말해보란다. 이 질문에 대부분의 지원자가 답을 못하고 황당해 하고 면접에서 떨어졌구나,하고 절망했다는 소리가 나중에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소나무는 재선충이라는 해충 정도는 신문기사에서 본 적이 있어 대답할 수 있을텐데도 예초기를 최대 몇 시간 쉬지 않고 돌려보았느냐,라는 질문이 너무 갑질 성격의 질문이어서 너무 기가 막혔던 터라, 재선충도 떠오르지 않아 원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답을 하지 않으면 불합격을 굳히는 짓이므로 역시 팩트(Fact)만 이야기했는데 이 역시 질문자의 의도를 벗어난 동문서답이었을 것이다. 방재 농약은 반장이 농약통에 혼합하여 넣어주면 우리 노동자들은 등에 짊어지고 손으로 저으며 반장이 지시한대로 잡초에 뿌리는 방재작업은 많이 했다,라고 대답하였다. 당연히 여기 공원의 면접 결과는 불합격.
작년에 함께 여기서 일했던 동료가 말하기를, 많은 수가 벌써 내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그러고 보니 면접의 질문들이 황당했다. 자기 소개, 지원 이유를 묻는 일반적인 면접 질문은 전혀 없고 대학교수 모집도 아닌데 답할 수 없는 수준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떤 지원자에게는 미투(Me too)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냐,라는 질문이 날라왔다고. 대답 못할 질문을 듣고 대답 못한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다들 불합격을 예상하며 귀가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면접과는 전혀 관련없이 일할 사람이 이미 내정되어 있기에 대부분 지원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런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주최측에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지는 것은 왜지?
작년에는 독특한 캐릭터의 반장을 만났고 그래서 나중에 소설 창작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비효율적으로 힘들게 작업을 시키는 바람에 육체가 골병이 들 정도였다.
올해는 올바른 성품의 반장과 동료들로 구성되기를 기대 반 걱정 반.
2019.3.3.일.
끝.
ㅡ아래ㅡ
** KBS 특별기획 – 신 노년 시대 1부 58년 개띠 인생2막을 열다 01/13/2018
** 신 노년 시대 : 함께 할 사람이 없는 나 혼자의 인생. 나이 들어 홀로 산다는 것(2018.05.09. 수)